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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창조의 삶
요 12:1-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
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 하더라.
새해 첫 주일 아침입니다. 새해에는 새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기도와 새 꿈들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새해에는 오늘 읽은 말씀으로 한해의 삶의 지침으로 삼고 신앙의 기초로 삼고자 합니다. 본문은 읽을 때마다 감동을 주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읽으면 진정한 헌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마르다의 집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여기에 몇 가지 주목할 내용이 있습니다. 이 주목할 내용들이 한 해 동안 우리의 삶에서 나타나야 할 내용들입니다.
예수님이 내 집에 오신 은혜
예루살렘 근교에 베다니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그 집에는 마르다 나사로 마리아 3남매가 살고 있습니다. 그 집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이 집은 예수님이 오고 가시며 부담 없이 쉬어가시는 그런 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도 이 집을 방문하셨던 일이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 집은 참 복을 받는 가정입니다.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가정, 이 정도면 가장 이상적인 가정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이 삶이 최대의 영광의 삶입니다. 주님이 찾아오시는 가정, 우리들이 그 이상 무엇을 더 바랄 것입니까. 이것이 최상의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한 해 동안 주님이 함께 하시고 찾아오시는 그런 가정의 삶이되어지기를 기원합니다.
가정은 집이 좋아야 반드시 좋은 가정은 아닙니다. 집이 커야 좋은 가정도 아닙니다. 집은 초막이든 궁궐이든 상관없습니다. 다만 그 집에 주님이 오시고 임재하시고 찾아오시는 가정이라야 복된 가정입니다. 그래서 가정에는 경건이 있고 성스러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이 오시고 임재하실 수 있습니다. 새해에는 무엇보다도 주님이 함께 하시고 임재하실 수 있는 그런 가정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향유를 부음
그 집에 주님이 오셔서 함께하고 감사하고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그때 성경을 보면 마리아가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이 기름을 붓는 일이 의미가 큽니다. 당시에는 왕의 대관식 때 그리고 제사장이 임직식 때에 기름이 부어졌습니다. 또 성경에 보면 성령이 임하시는 모습을 기름이 부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죽었을 때 시체가 썩지 않도록 방부제로 향유 기름을 사용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여기 이 여인이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부은 것은 당시 왕에게, 제사장에게 붓는 그런 심정으로 부었을 것입니다. 시편133편을 보면 “기름이 아론의 수염에 흘러 옷깃까지 내림 같고”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이 모습이 가장 성스럽고 복되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상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의 모습은 가장 복되고 성스럽고 가장 극적인 헌신의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 여인이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쏟아 한꺼번에 부었다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아주 만족해하십니다. 예수님이 그 여인의 전적인 헌신의 마음과 생각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모습이 전적인 헌신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헌신하는 사람은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 여인이 그렇게 하기까지 얼마나 기다렸고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고 있었겠습니까. 새해는 우리들이 이렇게 진솔하게 주님께 마음과 정신과 뜻을 쏟아 붓는 헌신이 있는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기 성경을 조용히 음미해 보면 아주 신기한 모습을 한 가지 발견하게 됩니다. 성경은 이 여인이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발에 부었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도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고 했습니다. 향유가 든 옥합은 쏟아 부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옥합은 거꾸로 들어도 향유가 쏟아지지 않습니다. 대부분 향유든 향수든 고가의 향품은 병의 몸통은 크지만 병 입구는 작습니다. 그래서 내용물이 잘 쏟아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을 보면 향유병을 깨트려서 예수님의 머리에 송두리째 부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흘러내리는 향유를 머리로 닦아냈다고 했습니다. 이 모습이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향유병을 깨부수었다는 말은 자신을 깨부수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행동을 보면 그 여인이 향유를 쏟아 붓는데 조금도 주저함이나 망설임이 전혀 없었다는 말이 됩니다.
그 향유 값이 얼마입니까. 그 향유 값만도 300데나리온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300데나리온이면 노동자의 일 년 품삯입니다. 오늘 돈으로 환산하면 수천만 원 상당입니다. 그 고가품을 주님께 드리기 위해서 깨서 쏟아 부었다는 것은 전혀 아낌이나 주저함 없이 쏟아 부었다는 말입니다. 신앙생활하는 데는 때로 이런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감동을 창조할 때는 이런 결단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큰 헌금을 해야 할 때는 이런 망설임이 따르게 되는데 그때 이런 용기가 필요합니다.
새해에는 마음을 흔쾌하게 송두리째 쏟아 붓는 신앙생활을 한번 해 보십시다. 헌신도 주저하지 말고 100% 마음을 흔쾌하게 쏟아서 헌신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맡은 일을 위해서도 마지못해 하느라고 피곤해 하지 말고 아주 흔쾌하게 일해 보시기 바랍니다. 또 11조 생활도 아주 흔쾌한 마음으로 해 보시기 바랍니다. 봉헌의 삶은 주저하고 미적거리면 그 의미가 반감됩니다. 헌신도 봉헌도 11조도 아주 흔쾌하게 해 보십시오. 그리고 한 해 동안 나의 삶에, 나의 신앙에, 나의 진로에, 나의 영적생활이 어떻게 변화하고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한번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틀림없이 나의 삶에 엄청난 변화가 주어질 것입니다. 무엇인가 씨를 심어놓고 이것이 어떻게 자라는가, 어떤 꽃이 피고 어떤 열매가 맺힐 것인가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생활도 행복한 삶입니다. 악을 심어놓고 어떤 결과가 주어질 것인가를 기다리는 마음은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지만 선을 심어놓고 어떤 선의 열매가 맺힐 것인가를 기다리는 마음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록펠러라는 사람은 가난한 가정에서 평범한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록펠러를 어려서부터 시장에 데리고 다니며 시장의 원리를 가르쳐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그가 어려서부터 근검절약하는 삶을 가르쳐 주었다고 합니다. 록펠러가 6살 때 어머니가 용돈으로 처음 20센트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2센트를 떼어 11조를 드리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록펠러는 평생 11조를 드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록펠러 를 11조의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록펠러가 후에 미국의 석유 95%를 점유하는 사업가로 성공해서 오늘의 부자 빌 게이츠보다 3배나 더 많은 인류 역사 이래 가장 많이 돈을 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후에 사업이 커지면서 11조만 담당하는 직원이 40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평생 24개 대학을 설립하고 4,928개의 교회를 세웠다고 합니다. 이런 삶의 열매들은 어느 날 우연하게 만들어지고 우연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 않고 열매를 거둘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배후를 들추어 보면 한결같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록펠러의 성공 뒤에는 그런 사연이 들어 있습니다.
새해에는 무슨 일을 하든지 아주 흔쾌하게 해 보시기 바랍니다. 회사에서도 그렇게 흡족한 마음으로 일을 해 보십시오. 사업도 그렇게 최선을 다 하는 심정으로 한번 일해 보십시오. 그리고 신앙생활도 그렇게 한번 해 보십시오. 11조의 삶도 주저하지 말고 아주 흔쾌하게 한번 해 보십시오. 그리고 한해를 다 보내고 지나온 한해를 면밀하게 한번 결산해 보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거기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해를 살아갈 때 값비싼 향유를 송두리째 병을 깨서 예수의 발에 붓는 이 여인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진정한 헌신, 진정한 봉헌, 진정한 수고의 삶에는 이런 행복이 주어집니다.
향유 냄새
본문을 보면 마리아가 향유 병을 깨서 예수님의 발에 부으니 “방에 향기가 가득했다“고 했습니다. 향유 병을 송두리째 깨서 부었으니 방에 그 향기가 얼마나 진동했겠습니까. 그날 온방에 향기뿐 아니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도 향기가 만발하였을 것입니다. 그것이 향기 나는 삶입니다. 향기는 나를 깰 때 나타납니다. 나를 부술 때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 향기는 버려야 풍깁니다. 뿌려야 나타납니다. 쏟아야 나타나고 깨야 나타납니다. 아무리 값비싼 향유도 병속에 그냥 놔두면 향기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지출이 없고 희생이 없고 헌신이 없으면 향기도 없습니다. 이 여인이 향유 병을 깨부숴서 예수님의 발에 부었으니 그 방에 향기가 얼마나 강하게 나타났겠습니까. 내가 아무리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그 지식이 사용되지 않고 내 속에 그대로 감추어 있으면 아무 향기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내게 아무리 좋은 재능이 있어도 나만을 위해서 사용되고 내안에만 감추어 있으면 그 좋은 재능도 아무런 향기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 여인이 향유 병을 깨부수어서 쏟아 부을 때 온방에 향기가 퍼졌습니다. 신앙생활은 나를 송두리째 깨부숴서 드리는 삶입니다. 그것이 헌신이고 순종이고 드리는 삶입니다.
새해에는 우리 자신을 아주 부수는 심정으로 뜨겁게 헌신의 삶을 한번 살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새해에는 세상에 이런 진한 향기를 충만하게 뿜어내는 삶을 살아보려고 힘써 보십시오. 이것이 감동을 창조하는 삶입니다. 그렇게 한해를 살고 년말 쯤 되어서 나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고 나의 삶에 어떤 열매들이 열렸는가를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삶에 참 소중한 변화와 열매들이 열린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만족해하시는 예수
성경을 보면 이 여인이 옥합을 깨트려 예수님의 발에 부을 때 가룟 유다가 왜 값비싼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않고 허비하느냐 하고 비난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유다는 참 당돌한 제자였습니다. 예수님 면전에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자기가 언제 가난한 사람에게 관심을 가졌습니까.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항상 이런 이유를 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자기는 하지도 않으면서 남들이 하는 일을 못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두 가룟유다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이 여인의 행동에 대해서 예수님은 아주 만족해 하셨습니다. 그리고 본문을 보면 유다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를 가만히 두라”고 하셨습니다. 또 마태, 마가복음에서는 “그 여인을 괴롭게 하지 말라”고 유다에게 핀잔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6장을 보면 그 여인의 행동을 보고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10)하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 말은 예수님이 마리아의 헌신에 대해서 상당히 기뻐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면 됩니다.
또 12절을 보면 “그가 나의 장례를 준비하였느니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 여인의 헌신이 단순한 헌신이 아니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예견하고 미리 죽음을 예비한 헌신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이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마리아가 그날 예수님이 며칠 있으면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알고 그런 행동을 하였는지는 모르지만 그날 마리아의 옥합을 깨트리는 일이 결국에는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알고 장례를 위한 행동으로 인정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이 마리아의 행동이 얼마나 기념비적인 행동입니까. 제자들 특히 가룟 유다는 왜 가난한 사람에게 주지 않고 허비하느냐 하고 딴죽을 걸었지만 마리아는 적어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예견하고 절호의 기회에 예수님께 봉헌의 은혜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이 흔쾌하게 헌신하다 보니까 그 헌신이 단순한 헌신이 아니고 자신은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결과는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당시는 죽은 시체를 미라를 만들어 굴에 넣어두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체가 부패하지 않도록 몰약도 넣었고 방부제로 이 향유를 넣었습니다. 이 여인이 주님을 위해서 봉사하다 보니까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예비하고 준비하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은혜이고 복입니다.
우리의 헌신, 봉헌, 예배, 수고는 모두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할 일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하면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감동도 줄 수도 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시던 중 모처럼 시름을 잊고 마음껏 기뻐하게 하는 헌신을 하였습니다. 새해에는 이런 헌신의 삶으로 여러분 자신이 행복하고 주님이 기뻐하시고 이 세상에 감동을 주는 그런 삶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명예로움
인생에서는 이 명예라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이 여인의 행동은 2천 년 전에 있었던 행동인데 오늘 우리들에게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것도 성경을 통해서 말입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예수께서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 영광입니다. 사람은 명예를 존중해야 합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일생이고 명예이고 인격입니다. 사람은 죽어도 행한 일은 오래 남습니다. 이 여인은 2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인데 그의 헌신의 내용이 오늘까지 전파되고 있습니다.
새해에 무슨 계획을 세우셨습니까. 아무리 거창한 계획을 세운다 해도 헌신이 없고 모두를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계획이 없으면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새해 여러분의 계획 속에는 헌신의 계획으로 가득 차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을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계획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기원합니다. 그때 우리 주님이 그 꿈을 이루시고 그 계획을 소중하게 이루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새해에는 감동 창조를 우리 생활 속에서, 가정 안에서, 일터에서, 교회 안에서, 동네에서, 직장에서 충만하게 이루시기를 기원합니다.
작가 정채봉이 쓴 “첫 마음”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오늘은 이 시를 소개하면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앞에 놓고 일과표를 짜던 그 마음으로 공부한다면, 사랑하는 친구가 처음 눈이 마주치던 날의 그 떨림으로 계속된다면, 첫 출근하는 날 신발 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 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개업 날의 첫 마음으로 돈이 적으나 밤이 늦으나 손님을 기쁨으로 맞는다면, 세례 받던 날의 빈 마음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교회를 다닌다면, 너는 너 너는 나라며 화해하던 그날의 일치가 가시지 않는다면, 여행을 떠나는 날 차표를 끊던 가슴 뜀이 식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은 그 때가 언제이든 늘 새로운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질 것입니다.” 한해를 이런 새로운 마음으로 감동을 창조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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