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생! (창 1:26-31)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여기 '사람'이란 말은 '히'어 발음으로는 '아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담아' 하신 것은, '사람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단어의 뜻은 '흙, 먼지, 티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아담아'라고 하신 것은, 마치 '흙아! 흙덩어리야! 이 먼지야! 티끌아!' 이런 말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근본을 깨닫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담아'하고 부를 때마다 '너는 근본적으로 비천한 흙덩어리'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존귀함을 받는 것은 우리 육체에 있지 않습니다. 사람이 거룩하다함은 하나님의 형상인 하나님의 영을 불어넣어 주셨기 때문에 거룩합니다. /믿어져야 합니다./아멘!/
27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고 그를 섬기라고 그렇게 지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은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지, 정, 의'로 지음 받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를 믿고 구속받은 사람을 가리켜서 하는 말이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리나"(골3:10)고 했습니다. 이는 타락한 인간이 구속함을 받아 처음 지음 받은 형상을 회복한다는 뜻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음으로 무한한 가치와 존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만물의 영장으로, 양심도 주었고, 이성도, 자율성도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도덕성과 거룩 성을 주었습니다. 선을 추구하는 마음, 성결하고자 하는 마음, 만물을 다스리는 주관성도 주셨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마치 옛날 대영제국의 왕이 자기가 가지 못하는 지방에 자기 형상을 만들어 세워 그 위엄과 통치권을 표시한 것처럼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 당신의 주권을 유지하시며 진행하시기 위하여 대리로 쓰시려고 인간은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존엄성은 누구도 침해해서는 안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들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관계를 가져야만 참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믿/
1.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창조하셨는데, 그 창조의 특성 몇 가지가 있습니다.
①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주셨습니다.
막9: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또 빌 4:13절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할/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무안한 가능성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믿/
▶내의명주란 말이 있습니다. 옛날 인도에 어떤 장자가 귀여운 자기 아들 옷 속에 값진 보배 구슬을 매달아 주었으나, 그 아이는 집을 뛰쳐나와 거지가 되어 유랑생활을 하면서도 그 구슬이 자기 옷 안에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몇 해가 지나서야 자기 집을 찾아오게 된 그 아들에게 '어째서 너는 네 옷 속에 값진 보배 구슬이 있는데도 거지 노릇을 하게 되었느냐?'고 묻자, 그때서야 그 거지 아들은 '자기 옷섶에서 구슬을 이제야 발견하게 되었다.'고 했답니다.
실로 누구에게나 다 내의 명주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무한한 가능성을 부여해 주셨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 무한한 가능성을 깊이 묻어두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영성이 깨어납니다. /할/
▶인도의 수녀 테레사는 알바니아의 한 노동자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많이 배우지 못했습니다. 가진 것도 없었습니다. 몸집도 작았습니다. 인물도 볼품이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겨자씨 한 알처럼 미미한 존재였습니다. 그는 늘 자신 스스로를 가리켜서 즐겨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I am nothing(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가 1979년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되었을 때도 그는 연설 가운데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I am nothing(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런 테레사가 인도의 빈민촌에 뛰어 들었습니다. 사랑을 품고 들어갔습니다. 그곳에 버려진 사람들, 병든 사람들, 죽어 가는 사람들을 최선을 다해서 정성껏 돌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뭇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킨 사랑의 여인이 되었습니다. 빈민굴의 성자가 되었습니다.
1997년 그가 죽었을 때, 인도에서 국장으로 그의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렀습니다. 텔레비전을 통해서 전 세계에 그의 장례식이 방영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면서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겨자씨 같이 작게 시작했던 그의 삶이 놀랍도록 성장해서 큰 나무처럼 된 것입니다. /아멘!/
②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엄청난 '가치성'을 주셨습니다.
막8:36-37절에 보면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찍이 '너희는 온 천하보다 귀한 목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28절에도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엄청난 가치성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아멘!/
③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독특한 '유일성'을 주셨습니다.
60억이 넘는 인간사에 나를 닮은 사람은 있을 수 있어도 나와 똑같은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데일 카네기'는 '당신은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럼 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는가? 그 이유는 2:18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아내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면서 서로 위로하고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믿/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되 남자와 여자로 만들어 짝을 지어 주셨습니다. 창2:24절에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그런데 아담이 하와를 보고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남녀의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고 더 짙은 것은 여자를 남자 갈비뼈로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여성은 남성으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은 고로 좋은 반려자 배필이 되어야 합니다. 바가지들을 긁지 마십시오, 또 여성은 남성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남성은 여성을 사랑하고 보호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원리입니다. /할/
2. 인간 창조의 목적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①28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복을 주시기 위해서 인간들을 지으셨습니다. /믿/ 성경은 온통 축복 받은 비결로 가득합니다. 32,500가지의 약속이 있습니다. 그 말씀이 무려 7,000번 이상 주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복중에 가장 큰복은 하나님을 깨닫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아멘입니까?/
②28절에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 하라!"는 축복을 주시기 위해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사람이 생육하고 번성함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지만, 그러나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육하라 하셨으나 아담과 하와는 살인자 가인을 낳았고,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냈습니다.
'번성하라'고 하셨는데 번성한 것은 선한 것이 아니라 죄악뿐이었습니다. '충만해라'고 하셨는데 죄악만 충만했고, 파괴와 강포만 충만해졌습니다. 시기, 질투, 원망, 불평, 불만, 또 살인, 음란, 도둑질, 불의, 추악, 비방, 탐욕, 교만, 불효, 무자비한 것들이 충만해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신 것은 생명의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써 그 생명을 보존하고 번성케 하여 '이 땅에 가득 하라'는 축복입니다. /아멘!/
여기 '충만'이라는 단어는 신구약 성경 가운데서 자주 빛나고 있습니다. 그 뜻은 '채우다. 성취하다. 완성하다'라는 뜻입니다. 또 '넘치다. 차고 넘치다' 등의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이 말은 ⑴배 안에 선원이 꽉 차있는 경우(만선), ⑵도시에 꽉 차있는 인구, ⑶일정한 수의 전부(만수), ⑷일정한 기간의 전부(시간의 충만), ⑸어떤 일의 완성(役事의 충만) 등을 나타낼 때 사용한 단어입니다.
신약의 경우 막6:42-43절에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라는 경우입니다. 바구니가 꽉 찼음을 가리킵니다.
또 시24:1절에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라고 한 경우입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의 은총입니까? /할/
③땅을 정복하고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범죄한 후 저주를 받음으로 인간이 평생토록 이마에서 땀을 흘려야 살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땀을 흘린다는 것은 수고와 노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건만 오늘날 도리어 인간들이 피조물들에게 다스림을 당하고 있습니다.
새해가 오면 또 선거 철이 오면, 또 새 집을 짓고 빌딩을 지으면 죽은 돼지 머리 앞에 머리를 숙이고 복을 달라고 비는 모습을 보십시오,
모든 피조물들이 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나타나는데 유독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따르지 못하고 더 반항하고 멀리 떠나는 모습뿐만 아니라 우상에게, 무당에게 머리 숙여 복 달라고 하는 것이 바로 다스리는 자가 아니라 죄의 다스림을 받고 있는 모습입니다.
④하나님의 뜻대로 약속하신 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빼앗긴 축복을 되찾으려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야 합니다. 요3서 2절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치 기관차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면 객차나 화물차가 잘 움직이지만 기관차에 고장이 생기면 객차나 화물차를 끌고 갈 수 없는 이치입니다. 본래 영의 기능은 하나님과의 교통을 이루는 것인데 아담이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과 교통이 단절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의 형상을 닮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예수가 곧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믿/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건너야 합니다. 바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전12:13절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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