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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회개

거룩한 목마름 마5:3~11

by 【고동엽】 2022. 2. 25.

2019년 마리아행전 집회 중 이주연 목사  

제가 <2019년 마리아행전> 집회에 강사 중 한 명으로 초대되었는데

무슨 말씀을 준비해서 어떤 말씀을 전할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하다가..

그냥 늘 하던 대로, 이 교회에 와서,

오히려 제가 힘을 얻고, 제가 은혜를 받으러 왔습니다.

 

이 자리에 오면 은혜에 강이 흘러 넘치고, 생명수가 흘러 넘치는 것을 늘 경험합니다.

 

또 한편으로 제가 고백을 드리게 된 것은

산마루 (빈민선교) 공동체를 지난해 2018년 5월 달부터 준비를 하며

지금까지 오는 동안에 제가 계속 한 것은 <회개의 시간>을 제가 보내고 있어요.

 

제가 은혜를 받는 것은, 뭔가를 하면서 제가 은혜를 받는 게 아니고,

회개하면서 은혜를 받고

또 그런 은혜를 받으면서 오늘 여기에 초대되고 불림 받은 것은

바로 "그 회개를 증언하라" 하시는 말씀으로 제가 받아 드리게 되었습니다.

 

▲먼저 이 집회 자리에 서면서 한 가지 말씀 안 드릴 수 없는 것은

지금 이 집회가 제게 굉장히 특별한 것뿐만 아니라

한국 기독교에게도 특별하고,

한국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도 아주 특별한 자리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면 우리가 새벽기도도 있고, 특별 새벽기도도 있고, 심야기도도 있고, 철야기도도 있지만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회!"

이런 이름을 걸고 오랫동안 중보기도 하면서 (마리아 행전) 집회를 만든 것은 특별합니다.

 

여러분들은 정말 특별한 일로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분들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한국 기독교의 독특성과 같은 겁니다.

 

한국기독교는 선교 처음부터 '민족 (을 위하는) 교회'로서 시작을 한 겁니다.

2000년 세게 기독교 역사에서 특별한 거예요.

 

더욱이 130년 전 당시는 제국주의시대 이고

또 그 제국주의의 권력의 중심은 신앙적으로 기독교 권에 속해 있는 거죠.

 

그래서 130년 전에는 역사를 앞서간 제국주의의 그 열강들이

아시아도 지배하고 아프리카도 지배했던 시절이죠.

 

그러기 때문에 여러 소수민족들이나, 각 민족들은 기독교가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

기독교가 제국주의자들과 함께 들어왔기 때문에 굉장히 반대로 했어요.

 

근데 유독 우리 조선땅, 이 땅 만큼은

그 제국주의의 세력이 아시아를 덮치고 있는 그 때 임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들이 들어오고

 

또 교회가 우리 민족의 독립과 그리고 계몽,

그리고 봉건주의 철패, 그리고 나라를 바로 세우려고 하는 일들에 앞장 섰어요.

 

그뿐만 아니라 여성의 인권,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는 주장을 앞서서 했죠.

한 마디로 축첩제가 수 백년 동안 이어져 왔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종식시킨 것이 우리 교회입니다.

 

일부일처제의 하나님께서 짝지워 주신 부부의 관계,

이 가정을 지키도록 하기 위하여 그런 일을 한 것이죠.

 

이런 것만 보더라도 우리 한국 기독교는 "민족 교회"로서의 역사를

처음부터 이어왔던 겁니다.

 

여러분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는 이것은 바로 그 전통 속에 있는 거예요.

오늘 여러분은 (이런 사실을 혹시 일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역사하시는 그 역사 속에서 여러분이 함께 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이 한반도의 하나님의 나라를, 또 그의 의를 이루어 가려고 하시는데,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고 계시고, 그런 불림을 받은 분들이 여러분들이고,

그 일에 도구가 되고, 주님의 손발이 되신 분들이 바로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 여러분들이 모인 이 자리는 특별한 자리이고,

나라와 민족을 위한 이 기도회는 계속 되어야 됩니다.

 

지금 많은 교회들이 힘을 잃고 있어요.

또 이런 기도를 하지 않고 있죠.

 

물론 가정을 위한 기도도 해야 되겠고, 자녀를 위한 기도도 해야 되겠고,

아내와 남편을 위한 기도도 해야 되지만,

 

그러나 이 큰 주제인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 이것을 우리가 유지해야 되는데

바로 여러분들이 이 사명에 불림 받았다는 면에서 특별하고,

그래서 제가 이 자리에 서는 것도 영광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3천 명이 넘는 분들이 그것도 해마다 모이는 이 대성회는

아마 다른 나라에는 없을 겁니다.

 

나라 민족을 위해서 기도할 때, 특별히 3천 명이 넘는 분들이 다 여성인..

이렇게 여성들만 특별히 모이는, '마리아들'의 기도회가 세계에 있나요?

 

이것은 기독교역사 뿐만 아니라, 현재 지금 진행되고 있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룩하는데 여러분들을 불러서 쓰시고,

그리고 이 민족의 여성들을 불러 쓰신다고 하는 거지요.

 

또 특별한 것은, 여러분들이 지금 전부 하얀 저고리를 입고 계세요.

하얀 저고리에 검정 치마의 100년 전 복장을 입으셨는데, 아주 특별하게 보입니다.

유관순 열사를 생각나게 하는 복장입니다.

 

유관순 열사는 세례 받은 교인이었습니다.

이 땅에 복음이 전해졌을 때 최초에 그 복음을 받아 들인 사람들 중 한 분이세요.

한국 선교 최초에 복음을 받아들이고 거듭난 여성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거기에 뿌리가 다 있다는 것을 생각을 하고 있으면 좋겠고,

저는 그렇게 봅니다. 여러분들이 다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고 또한 기도했던

유관순 열사의 후손들인 것입니다.

 

▲금년 <마리아 행전> 집회의 주제는 "거룩한 목마름"입니다.

여러분, 어떤 것이 "거룩한 목마름" 일까요?

 

저는 '거룩한 목마름'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고민을 엄청나게 많이 했어요.

제가 38년 목회했는데, 지금까지 목회한 것을 다 회고해 보면서 생각해 봤어요.

 

제가 지금까지 신학공부하고 성경 읽은 것도 다 생각해 봤어요.

'거룩한 목마름이란 뭘까?'

'무엇에 대한 목마름이 거룩한 목마름일까?'

 

(회중 중의 한 분 : '하나님 나라에 대한 목마름이 거룩한 목마름입니다!')

 

대단하십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갈망이 거룩한 갈망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이루려고 하는 것,

또 천국이라고도 표현되는데,

그것을 내가 갈망하고 그것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 거룩한 목마름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그 하나님의 나라 와 그 의를 위한 거룩한 목마름을 가지고

여러분이 막 길을 나서려 할 때, 그 이전에 꼭 걸리는 게 있어요.

 

오메가 앞에 알파가 있는 셈이지요.

그 알파는 뭐죠?

회개 입니다!

 

회개의 열망! 뜨거운 회개의 열망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가장 거룩한 목마름입니다!

 

거룩한 목마름에 이르게 되기 전까지

누구도 회개하게 되지 않아요.

 

그리고 거룩한 그 목마름을 갖고 회개하려고 할 때에

거기에는 성령의 터치가 없으면

결코 결코 여러분들이 회개했다고 하는데

'진정한 회개'가 아니라, '회개에 관한 것'을 한 거예요.

 

내가 깨어져 나가야 이게 회개거든요.

근데 내가 나 자신을 집어던지고 깨뜨리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깨뜨릴 수가 없어요.

 

여러분 여기서 제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다 그러면

다칠까요, 안 다칠까요? 어떻게 될 거 같습니까?

깨져 버리고 다칠 것입니다.

 

그런데도 나를 던지려면 용기가 있어야 되지요.

만용이 아니라 진정한 용기가 있어야 되는데,

이것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남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발견하고 나를 깨뜨리는 (회개하는) 용기는

성령께서 도우셔야만 내가 깨어질 수 있어요.

 

두렵고 또한 창피하고 그리고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나를 (회개로) 던질 수가 없어요.

던지면 깨지니까요!

 

여러분, 이 물컵을 집어던지면 깨질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내 자신을 (회개로) 집어 던졌을 때 깨어지겠지요.

이것이 회개입니다.

 

우리들이 높은데서 아래로 뛰어내려 떨어지는 것도 얼마나 두려운데,

그건 육신이 깨어지는 거죠.

 

그런데 내 육신만이 아니라 내 속에 모든 것이 깨어져 나가려면

이건 용기없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회개하려면, 우리가 거룩한 목마름을 가지고 기도하고

회개할 수 있도록 성령의 충만함을 달라고, 성령의 손길을 구해야 됩니다.

 

예수께서 그래서 공생애 시작하시자마자 우리 인간들을 향해서

첫 번째 하신 말씀이 있죠.그 일성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그 외침이 주님의 모든 것의 모든 것을 담고 있어요!

 

예수님의 설교의 모든 것일 수도 있어요.

그게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회개하면 내희들 곁에 천국이 (가까이) 있으니까 천국을 얻을 것이다' 라는 말이에요.

 

여러분들이 천국보다 더 소중한 것을 얻을 수 있는 게 있나요?

무엇이 더 우리 인생에서 필요하죠?

 

세상 것을 다 얻어도 천국을 얻지 못하면, 인생은 헛 산 것이 됩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져도, 천국을 얻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는, 다 이르게 될 터인데

세상에서 너무나 잘 살고,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이루었지만

마지막에 갈 곳(천국)이 분명하지 않다면...

 

혹시 여러분 중에 떠날 준비하시는 분 계세요?

이 삶을 정리하고 떠날 준비가 되어 있으신 분!

우리는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하고 살아야 됩니다.

 

그런데 회개를 하게 되면,

여러분 내가 언제든지 떠날 수 있도록 준비 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만약 '목사님, 저는 아직 떠날 준비가 안 됐습니다' 하면,

내가 진정 회개했는지/ 안 했는지 한번 살펴보셔야 돼요.

 

회개하면.. 세상을 다 놓아버리고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회개한 사람은,

삶이 끝난 다음에 (천국 갈) 그날만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 여기에서 천국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어 가면서 사는 거예요.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천국을 갈망하고 사는 삶이죠.

 

네 정말 그렇게 하기 위해서 회개를 해야 되는데

저도 정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일 하기 어려웠던 것이 회개인 것 같아요.

 

▲최근 제가 1년 내내 회개를 하게 되었는데

제가 회개를 하게된 계기가 있어요.

 

작년 2018년 5월 21일, 저희 산마루 (빈민선교) 공동체를 세우는 그 자리에,

제가 몇 년을 이런 공동체를 만들려고 찾아다니다가

한 3년 만에 지금 그 자리로 찾아가게 됐어요.

 

제가 거기 처음갔는데, 그 자리에 서는 순간에 임재를 경험했어요.

경외심, 두려움, 떨림 그런 전율이 오면서

사일런스 silence 가 고요하게 밀려 오더라고요.

그리고 전율하는 경험을 했어요.

 

동행했던 교우들은 그 공간이 너무 좋으니까

그 곳을 '큰항아리 골' 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항아리처럼 생겨가지고 가운데는 아주 5만평 되는 편평한 땅이 있는데

그 주변이 항아리처럼 둘러처져 있어요.

 

그래서 한겨울에도 바람이 없어요, 햇살도 따뜻하고..

( 여러분들도 헌금에 동참하셔서 함께 준비하신 곳입니다)

 

제가 그 터를 보면서, 거기 올라가서 보고서 그 임재를 경험하는데,

그때 제게 주신 말씀이 있어요.

'회개한 자가 거하는 거룩한 땅이 되게 하라!'

 

여러분은 믿음이 좋아서 지금 '아멘!' 하시는데, 저는 믿음이 없어가지고

'거룩한 땅이 되게 하라'는 좋은데,

'회개하라'는 좀 거북했습니다.

 

'예수 믿을 때 다 회개하고 믿는데.. 뭘 또 회개하라 그러시나?..'

 

그래서 제가 '노숙인이나 어려운 사람들, 이런 분들이

여기 와서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고.. 그래서 거룩한 곳이 되게 하면 되겠다..'

일단 쉽게 그렇게 생각을 하고, 그날은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후부터, 제가 기도를 할 때마다

이제 제가 회개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이미 회개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보니까 그게 엉터리 회개였던 것입니다.

 

회개는, 성령이 역사하셔서 내가 통곡을 하고, 회개를 해야 되는 일이에요.

그게 거듭나는 거죠.

그래서 회개를 거듭하면서 지금까지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회개라는 것이, 얼마나 은혜가 없이는 안 되는 것인지를

제가 절감을 합니다.

 

일례를 들면, 우리들이 <아버지학교>에서 배우는 것처럼

'남편은 결혼을 해도, 남편이 아닌 남자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남편을 물 가에 있는 어린아이처럼 생각해야 됩니다.

무턱대고 믿지 말고, 잘 관리를 하셔야 됩니다. (*회중 웃음)

 

교회 권사님, 장로님이라 하더라도 잘 잘펴보셔야 됩니다.

진짜 회개하기 전까지는, 아무리 훌륭한 인품을 가졌어도

그런 유혹에 빠질 위기를 자기 속에서 계속 불러일으키는 거예요.

왜냐면 거듭나도, 아담의 죄성(육신)은 아직 우리에게 남아있으니까요!

 

그렇다고 배우자를 너무 존경하지 않으면 그건 또 안 돼고요.

그런 본성들을 늘 회개하며 살아가야 된다는 뜻입니다.

 

(혹시 잘못을 범했더라도) 정죄하는 것과, 회개시키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회개는, 사랑으로, 성령의 감동과 감화로

그가 자기 모든 잘못을 스스로 내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토로하게 하는 것입니다.

  

제 아내가 여자대학에서 지금 가르치고 있는데

채플시간에 머리가 허연 은혜로운 나이드신 목사님께서 오셔서 설교를 하신대요.

 

그럴 때 시작하면서 이런 얘기를 하신대요.

'내가 이 여자대학에 올 때마다, 내가 이 나이가 됐는데도

여기 올 때는 아직도 마음이 설렌다'

 

어휴 거룩한 은혜로운 목사님도..

전 아직 머리가 희지도 않고 은혜롭지도 못한데

그런 분도 그렇다고 합니다.

 

근데 그 얘기를 전해주면서 제 아내가

'당신은 어때요?'

 

 

◑회개한 사람의 증거

 

사람이 회개한다고 하는 것은

'내가 나 자신을 바라볼 때 어느 정도 온전하다고 해서 내가 회개 했다'고 말할 수 없어요.

 

회개한 사람의 한 가지 증거는 뭐냐?

내가 언젠가 정말 그 성령의 뜨거움을 내가 감당하지 못 해서

내가 몇 날 며칠 울고 회개한 어떤 경험이 있을 때 진짜 회개한 것이 됩니다.

 

그게 거룩한 목마름 입니다.

그런 것을 한번 경험하게 되면,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내가

그러한 그 회개의 자리로 다시 가려고 하는 그 거룩한 목마름이 생겨요.

 

내가 실수를 또 합니다.

 

회개하고 나면, 여러분 실수 안 하나요?

합니다.

 

그러나 진짜 회개한 사람들은, 그 다음에 실수하게 될 때,

그게 진짜 자기 실수(범죄)인 줄 알고, 즉시 또 회개하게 되는 겁니다.

 

그때 주님께서 (성화의 길로 인도하시면서) 도우시는 거지요.

 

▲1. 본문 마5장의 팔복의 말씀에 대해 생각해 볼 때,

여러분 우리가 회개하는 것이 우리들의 거룩한 목마름이고,

또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려고 하는 것이 거룩한 목마름 인데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이루려고 할 때 그 내용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 그것을 이룩할 수 있는 우리들의 영성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그 결론이 팔복입니다.

 

팔복의 말씀이 바로 그 하나님의 나라를 이룩하려는 사람들의

그 내적인 성장 과정이며, 그 내적인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열망하는 사람들, 타는 목마름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사람들은

결국은 회개하게 되고, 회개하게 되면 어떻게 되죠? 가난한 마음에 이르게 돼요! *마5:3

 

내가 회개했는가?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거룩한 열망을 가지고 있는가/ 없는가?

뭘 보고 알 수 있나요?

내 마음에 가난한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 그거예요!

 

가난한 마음에 이르면 천국을 얻게 된다 그랬습니다. *마5:3

하나님의 나라를 갈망하는 사람들, 그 거룩한 목마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 마음 속에 회개의 결과로 가난한 마음이 깃들게 되어 있어요.

 

우리는 회개하고 가난한 마음을 가져야 돼요.

 

그럼 내가 가난한 마음을 가졌는지/ 안 가졌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일례로 가난한 이웃이 여러분의 눈에 보이면, 가난한 마음을 가지신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수없이 지나가는데도 다 남이고, 내 눈에는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건 아직 가난한 마음에 이르지 않은 증거입니다.

 

또 회개해서 가난한 마음에 이르게 되면

<가난해도 괜찮다>는 마음이 들게 됩니다.

 

여러분, 지금 제일 사람들이 두려워 하는 게 뭐냐면

남편/아내가 떠나도 좋은데, 그렇게 되어서 내가 가난해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일찍 가셔도 괜찮고, 내가 가난하지만 않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부 사이에도 물질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부부가 둘 다 회개하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남편 먼저 보낼래? 부유하게 살래?' 만약 양자택일 하라면

가난하게 사느니, 남편이 떠나더라도 자기가 부유하게만 살면 괜찮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간이라는 게 연약한 거예요. 내가 불편하고 어려운 것은 못 견뎌 해요.

'배우자가 없어도 좋아, 나 생활만 안정되면 돼!' 하시는 분들은 여기에 안 계시겠죠.

 

또 내가 회개하고, 가난한 마음에 이르른 증거는

평소 삶에서 <내게 천국이 보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보이면> 내가 마음이 가난하게 된 것입니다.

 

내 마음에 원하는 것이 계속 천국만 보여야 됩니다. 하나님, 주님이 계속 보여야 됩니다.

(세상 것들이 계속 눈에 보이는 사람은, 아직 진정 회개하지 않은 것입니다.

아니면 과거에 한 때 회개했으나 현재는 미혹에 빠진 상태입니다.)

 

'천국'을 인격적으로 부를 때는, '주님'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주와 함께 할 때는 천국이 그와 함께 가게 되어 있습니다.

 

▲2. 우리가 정말 회개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가 아주 거룩한 갈망을 가지고

타는 목마름으로, 거룩한 목마름으로 우리가 구할 때는,

우리가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슬퍼하는 마음! *마5:4

 

슬퍼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어떻게 돼요? 회개하고 슬퍼해 보셨습니까?

마음이 깊어져요

그렇지 않고는 내 마음이 어떻게 해도 깊어지지 않아요.

 

우리 주위에 마음이 깊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은 회개하신 증거입니다.

 

제가 목회를 하다 보니까 자식을 잃은 부모를 위해서도 기도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일이 없어야 되겠지요. 그런데 살다보면 군대 가서 자녀를 잃은 부모들,

이런 분들을 만나게 되어 있는데.. 그런 분들을 보면 굉장히 슬픔이 있는데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분들의 마음은 아주 깊어요.

 

또한 그분들은 병든 자라든지, 절망한 사람들에 대해서 깊은 이해심을 가지고 있어요.

스스로의 마음이 깊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절망과, 어려움과, 병들어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깊이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회개하면 그렇게 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여러분, 이웃의 고난을 보고서도 슬퍼하지 않습니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자기 남편이 떠나도 분노하든지

'끝까지 고생시키다가 이제는 그냥 먼저 가 버리고 빚만 남겨두고 가냐?' 합니다.

슬퍼 해야 되는데, 슬퍼하지 않죠.

 

그리고 또 그런 상황이 벌어져도 (유산 다툼 등) 계산하게 되는 겁니다.

진짜 슬퍼하지 않고요.

 

그래서 애통하는 것, 슬퍼하는 것.. 이것은 진짜 회개한 사람이 얻는 거고,

이것이 천국의 영성이에요.

 

그리고 또 그런 분들은 하나님의 그 위로의 손길을 경험해요. *마5:4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그래서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은

세상의 보상을 구하기 보다도,

 

내가 어려움을 당하고 슬프고 힘들때

'주님 저와 함께 해 주십시오, 내가 슬픕니다 내가 아픕니다..'

 

그래서 세상에 어디가서도 해결되지 않는 슬픔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풀 수 있는 곳(주님 품)이 생기는 것입니다.

 

'주님, 제 마음을 위로해 주십시오'

 

여러분, 친구가 권면을 해도 욥이 뭐라 그래요?

'다 듣기 싫어, 다 옳은 소리만 하네!'

 

사람은 위로가 안 돼요. 어디 가도 위로가 없는 것입니다.

 

형제들이 위로해 준다 하더라도...

여러분 그 마지막 진짜 위로는 내가 주님꼐 나아가서 주님께서 나를 위로 하셔야 돼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말 내 마음의 깊은 슬픔이 위로를 받지 못합니다.

 

저도, 30대의 여동생을, 아이 둘을 두고 살고 있던 여동생을 갑자기 잃었던 적이 있습니다.

암으로! 근데 그것도 오진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때 제가 어디 가서도 위로를 받을 곳이 없더라고요.

근데 그 때 제가 깊은 슬픔을 깨달았어요.

 

제가 어느 날 깨달았어요. 여동생을 보내고 나서,

새벽마다 제가 자면서 울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때 '맑은 슬픔'이라는 시를 제가 썼어요.

 

근데 그 슬픔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위로를 구할 때는

그 슬픔이 저를 정화시키고, 많은 슬퍼하는 주위 사람들을 보게 만들더라고요.

 

그 전에는 가정에 어려움을 겪거나 사별한 사람들이 봤을 때도

위로하고 같이 눈물을 흘리기는 했는데 (피상적이었고)

그때부터 수준이 달라지더라고요. (깊어졌습니다)

 

근데 그거는 주님께서 나를 위로하실 때만, 진정 위로가 돼요.

 

그러니까 거룩한 목마름으로 사는 사람들은

위로를 세상에서도 구하지 마세요.

 

어떤 남자에게서도 구하지 마세요. 세상에 믿을 남자 거의 없습니다. 예수님 빼고요!

주님께 나가서 위로를 구하셔야 돼요.

 

▲3. 그리고 우리들이 회개할 때, 우리는 <온유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마5:5

여러분, 온유한 마음을 가지게 되면은 어떤 그 마음에 자리가 생기죠?

 

온유한 마음을 가지게 되면 굉장히 그 정죄하고,

그 뭔가를 비판하려고 했던 마음이 갑자기 사라져 버립니다.

 

아 요즘 인터넷에서 댓글 같은 걸 보게 되면 막 무서워요. 보고 싶지가 않아요.

신문에서도 나오고, 정치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보더라도 너무 무섭고.. 뭐 여당, 야당 똑같습니다.

말들이 너무 무서워요.

 

제가 이 시대를 살면서 양심적으로 얘기하는 겁니다.

온유함이 없어요. 그것은 등 뒤에 칼을 품고 있어서 그래요.

 

계속 비판할 준비, 상대편을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 결국 본인이 무너져요.

 

회개하면 내 자신의 죄를 발견하게 되고,

죄를 발견하고 회개한 것을 다 용서함을 받게 되면...

(용서함까지 받아야 됩니다)

그래야 내 마음속에 온유함이 생기면서 남을 판단하는 일들이 사라지고요, 그럼 내가 편해져요.

 

그래서 회개해서 온유함에 이르게 되면, 굉장히 우리가 부드러워져요.

목이 곧은 사람이 굉장히 부드러워져요. 물처럼 유연해집니다

 

'어 저 사람은.. 늘 얘기를 하게 되면.. 아주 그냥 강직하고..

옳기는 옳은데, 만나면 뭔가 불편한 사람들이 있어요.

옳고 의로운데 회개하지 않아서 그래요.

 

회개하면 온유해집니다. 그리고 온유하면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했습니다.

삶의 자리가 넓어져요. 온유한 마음을 가지게 되면, 어디든지 내 삶의 자리가 돼요.

즉 내 편이 수도 없이 많아져요. 가는 곳마다 다 나를 환영합니다.

 

근데 그렇지 않고, 똑똑하고 잘 나고, 아주 예절 바르고 아주 흠이 하나도 없어요.

근데 그가 가면 사람들이 다 비켜섭니다.

 

시댁에 가도 시어머니가 아주 그 며느리의 눈치를 보고,

'우리 며느리 너무 똑똑하고 너무 잘나서, 우리 며느리한테 말 한 번 잘 못 붙였다가는 큰일 나요!'

그러면 그런 여성은 자기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또 마찬가지로 시어머니가 또 그렇게 똑똑하고 훌륭해서 옳고 그름을 따지면

그 말이 맞긴 맞는데, 온 식구들이 다 꼼짝 못 해요.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집으로 돌아가시기만 기다리고

잘 해 드립니다. 왜냐면 빨리 집으로 돌아가시라고!

 

그런데 온유해지면 괜찮습니다. 그냥 며느리를 자기 친딸처럼 대합니다.

그런데 어떤 집은 '며느리를 딸처럼 대하는 시어머니가 제일 무섭다'고 합니다.

 

회개한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도 환영 받습니다.

그래서 '아이 볼 일 없을 때도 언제든지 오십시오!' 하는데,

 

회개하지 않으면 며느리에게도 환영 못 받습니다.

사람들이 지금 너무 다 똑똑해서(온유하지 못해서) 지금 어려운 겁니다.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님이 너무 똑똑하고, 옳고 그름이 분명하면 교인들이 안 와요.

교회가 부흥도 안 돼요. 제가 수 없이 겪어 봤어요. 그래서 땅을 차지할 수 없어요. 5:5

 

여기서 '땅'은 삶의 자리,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 범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천국의 영원한 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온유한 자가 영원한 나라를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다' 그랬어요.

그게 예수님의 품성입니다.

 

▲4. 그리고 우리들이 이 거룩한 목마름을 가지고 회개하고

우리 주님을 닮아 가려고 하는 그 마음을 계속 가지게 되면

우리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마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을 갖게 되면 어떻게 되죠?

악한 것들이, 불의한 것들이 자기 눈에 보이게 됩니다.

 

내 자신의 불의함부터 보입니다.

‘야, 너 계속 세금 부정직하게 내면 되겠나?’

‘남들은 다 그러는데 왜 나만 그래야 하는 거니?’

 

그런 갈등을 끊임없이 하게 되죠.

‘그런데 아 그것이 정말 잘못된 것이구나’ 이런 걸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게 되면,

권력욕, 지배욕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진짜 의로운 마음을 가지게 되면, 권력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보통은 그 반대로 갑니다.

 

내가 의롭지 않기 때문에, 권력욕/지배욕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의로운 것이 아니라, 정의를 외치면서 내가 무엇인가를 휘두르려고 하는 것입니다.

거의가 다 그런 유혹에 빠집니다.

 

사람이 진실로 회개하기 전까지는, 다 정의를 말하고 공평을 말하는데,

실제적으로 그의 삶을 보게 되면, 그것(정의 주장)으로 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의에 주리고 목 마르지 않고, 권력에 주리고 목마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구별이 쉽게 안 됩니다. 회개하기 전까지는!

성령을 받아야 이게 구별이 됩니다.

(자기는 의롭게 행한다면서, 결국은 불의를 행하고, 자기 욕심을 채우는 거죠)

 

그리고 마침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되면,

배부를 것임이요.. 라고 약속했습니다. 마5:6

든든해지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 권력이 없어도..

내가 쫓겨나고 권력이 없어서 짓밟힐 것이라는 생각이 사라져 버립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나라를 내가 사모하고,

또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이 언제든지 나를 도우신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되니까요.

 

▲5.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다’ 마5:7

우리가 거룩한 목마름을 가지게 되면, 긍휼히 여기게 됩니다.

긍휼히 여기게 되면 분별치가 사라져 버립니다.

 

회개하면 긍휼한 마음이 생기게 되는데

그러면 내 분별하는 능력이 초월하게 됩니다. 사람의 분별치를 넘어서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면

공부 못 하는 아들보고 ‘왜 이렇게 공부도 못하느냐’ 이렇게 잔소리하다가

부모가 회개한 다음에는 ‘날 닮아서 그렇지..’ 합니다.

그때 긍휼한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또 남편이 나가서.. 남들은 다 크게 한탕 해서 오는데

우리 남편은 맨날 저러지?

 

그러다가 어느 날 ‘불쌍하다, 해 보지도 못하니까 본인은 얼마나 더 힘들까?’

직장가서 얼마나 힘들까.. 하는 긍휼한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회개하면.. 그런 인간적으로 분별하던 수준을 뛰어넘게, 초월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긍휼한 마음이 생기면, 관대해집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A가 따지고 보면 아주 못됐습니다.

근데 '괜찮아!' 그러고 넘어갑니다.

‘얼마나 살기가 힘들면 저렇게까지 아등바등 할까!’ 하며 관대해집니다.

또는 ‘내가 져주지!’ 합니다.

 

이게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러한 질서를 만들어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것보다 높습니다.

우리는 세상보다 아래가 아니라, 더 높은 곳에서

높은 곳을 향하여 높은 질서(하나님의 법)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Tolerance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긍휼함을 갖게 되면 용서하게 됩니다.

용서는 진짜 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회개하면 용서함이 생기고..

용서는 천국의 질서입니다.

 

‘절대 나는 용서 못 한다’는 사람,

그분은 아직 성령의 은혜로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또 그렇게 되면, 주님께서 ‘나도 너를 용서하지 못한다’ 그러셨잖아요.

‘너희들이 서로 용서하는 것처럼 내가 너희를 용서하겠다’고 하셨죠.

 

▲6.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다’ 하셨는데, 마5:8

회개하면 바로 거룩한 목마름으로 마음이 청결해집니다.

 

그러면 더러운 것이 눈에 보입니다.

더럽고 깨끗한 것이 눈에 드러납니다.

 

‘아 저는 향수 뿌리고 늘 몸을 잘 씻는데요?’

그걸로 해결되지 않는 더러움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들이 많은 경우, 향수뿌리고 또 화장하면서 많은 것을 꾸며야 할 경우에는

아직 회개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더러움을 끊임없이 감추려고 하는 마음 – 회개하지 않아서입니다.

‘안 꾸며도 괜찮아!’ 이렇게 하고 넘어가야 정말 그 분이 회개하고 깨끗해진 분입니다.

 

그런데 이제 마음이 청결하면,

더러운 것들과 깨끗한 것들이 구분되고 보이는데...

또한 나 자신을 정직하게 보게 됩니다.

 

정말 마음이 깨끗해지면,

남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보게 됩니다.

깨끗해졌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내가 깨끗해지지 않았으면, 남만 보게 됩니다.

내 자신을 보기 싫어서,

그리고 그가 마침내 자기의 마음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9

 

▲7. 그리고 다음으로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됩니다. 마5:10

화평이란 샬롬, 헬라어로 에이레네 인데

‘싸움이 없고 전쟁이 없는 평화’를 뜻하는 것만 아니라

‘온전하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온전하다’란, 사회 경제적으로 우리가 온전하게, 평화롭게 되는 거죠.

다툼이 줄어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내적으로도, 내적인 치유가 일어나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평화의 왕, 샬롬으로 오셨어요.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그와 같은 평화를 이루는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의 질서 속에서는

내적인 상처까지 치유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권력은, 내적인 상처의 치유와 상관 없습니다.

무조건 쳐냅니다.

 

또 피를 흘리고, 그 다음에 또 피를 흘리고

그 다음에 복수의 칼이 자기에게 들어와서 또 피를 흘리고..

그것이 인간의 역사이고, 그것이 가인과 아벨의 역사입니다.

오늘 우리의 역사입니다.

 

오늘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이것이 일어나고 있고,

세계역사 속에서도 오늘도 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의 평화, 샬롬, 에이레네는

그런 영혼의 상처까지도 다 회복시키는 평화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되면 마지막에는 어떻게 될까요?

내가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 밖엔 없어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저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저들을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가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리더십입니다.

 

그것이 하나님나라의 리더십입니다.

그것(자진 십자가)이 없으면, 최고의 지도자가 될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목사인 제 자신에 대한 도전입니다.

‘내가 십자가를 질 수 없다고 한다면

내가 어떻게 목사 하겠느냐?’ 그런 마음이 늘 들죠.

그때 또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여러분, ‘평화, 화평을 만든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구나!’

 

정말 주님 앞에 나아가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회개하시고

더 정말 타는 목마름으로, 거룩한 목마름으로

여러분들이 주님을 향해 나아가야 됩니다.

 

▲8.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들의 것임이라 마5:11

 

우리들이 거룩한 목마름으로 주님께 나아가서, 주님을 닮아가고

또 우리가 주님께 회개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추구할 때

마지막에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게 됩니다.

 

우리가 그런 일을 당하면, 믿음이 굉장히 견고해집니다.

여러분, 우리가 회개하고 나면, 가장 근본적인 이 우리 믿음이

아주 굳건해 집니다.

 

그래서 ‘의를 위해서 내가 박해를 받아도 좋다, 박해 받지 뭐!’

그런 마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에서의 죽음, 이와 같은 것이 하나의 현실로 늘 곁에 있어도 좋다..

이런 생각이 들게 됩니다. 자유로움이 생기는 거죠.

 

그리고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일이 이루어질 때는

우리가 천국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의가 눈으로 보입니다.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적인 것이 잠시 있다 가는 신기루와 같은 것이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가 신기루가 아닙니다. 그게 환상이 아니고

이 세상 것들이 환상입니다.

 

권력욕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환상이고 신기루이지..

남을 정죄하고 용서치 않는 것이 환상입니다.

그건 영원한 것이 아니잖아요.

 

교만하고, 탐욕에 사로잡혀 있고..

그것이 어떻게 영원한 것입니까? 영원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그것들은 환상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 만이 영원한 것이죠.

그것이 더 구체적인 것이고, 그것이 살아있는 실체입니다.

 

그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세상이 이렇게 혼란스럽고

그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세상이 지금 평화롭지 않은 것입니다.

 

▲마치는 말

그래서 하나님의 그 나라, 그 질서가 우리에게 임하기 위하여

우리가 기도하는 거죠.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한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광장에 나가서 시위해야 됩니까?

지금은 ‘대한독립 만세’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만세!’ 해야 됩니다.

그래야 이 나라가 잘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질서, 지금 8가지 팔복이 우리에게 임하여야

이 나라가 제대로 되는 것입니다.

 

이 팔복이 이 나라에 영성이 되어야 되고,

이 나라의 갈 길이 되어야 되고

이 나라에 우리가 세워야 할 질서입니다.

 

지금 주장하고 있는 그 질서들이

이것보다 더 훌륭한 것이 있습니까?

 

그 질서는 성경 속에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 이것은 주님 안에 있습니다.

회개한 자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고, 은혜 받은 자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떤 자도 이걸 이룩할 수 없습니다.

지식이 많으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산마루 공동체를 지금 막 시작했는데,

함께 동역하고 싶은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은 30대에 벌써 1억 정도 되는 부서의 책임자였습니다.

10년 사이에 1백억 대가 넘는 매출을 올렸어요.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인센티브와 대접을 받았겠습니까.

 

근데 40세 쯤 되어서 ‘더 이상 나는 내 시간을 이것으로 보내면 안 되겠다.’

주어지는 것은 좋은 자동차, 운전기사, 좋은 집,

그리고 나의 편리함, 통장의 돈.. 그런데 이것들이 나에게 행복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하루 하루 내 남은 인생의 시간이 줄어들어가고 있는데,

이것을 위하여 살고 싶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걸 내려놓고, 뭘 할까 하다가

인간의 권리를 높이는 일을 해야 되겠다..

그래서 인권에 관해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박사를 마쳤는데, 모교인 K 대학에서

총장님이 우리 학교의 인권을 위해 일해 달라고 해서 교수로 청빙했습니다.

지금 10년 정도 그 일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제게 찾아와서 그 얘기를 하더라고요.

‘제가 학회에 갔다 왔습니다.’

‘학회에서 어떤 얘기들이 오갔습니까?’

 

‘며칠 동안 계속해서 논문 발표하고, 저도 발표하고 했는데,

돌아오면서 생각하니까 ..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그 한 마디면 모든 게 다 끝날 터인데, 왜들 그렇게 난리들을 치죠?’

 

그거 하기 싫으니까 맨날 다른 것을 합니다.

즉 그에 대해 글을 쓰고 논문을 씁니다...

 

하나님의 나라, 주님의 말씀 안에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인권은 여러분,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때 인권이 생기는 것이지

 

인권에 관해서 주장하고, 그것 때문에 사람들 잡아가둬서 인권이 생기는 게 아닙니다.

팔복을 가져야 인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교수직을 이제.. 아이들 키우고 있으니까

아이가 대학 들어갈 때 그만 두고.. 공동체에 와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길을 위해서 살겠다고 합니다.

그것이 그의 결론이었습니다.

 

그것이 팔복 안에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이 나라가 정말 잘 되고

우리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임하여야 되고,

그럴려면 내가 거룩한 갈망을 가지고, 거룩한 목마름으로

내가 회개하고, 그리고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거룩한 목마름!,

여러분 그 거룩한 목마름을 가지면 어떤 마음이 생기죠?

 

1) 먼저는, 회개하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 회개하려는 마음... 이 아주 중요합니다.

 

2) 두 번째는 천국에 대한 열망이 생기고

 

3) 또 예수님처럼 거룩하게 살려고 하는 열망이 생깁니다.

 

이 세 가지가 ‘거룩한 목마름, 거룩한 열망’의 전부입니다.

 

그런데 제가 20년 전에 2000년 초에

당시에 하도 목사님들에 대한 비판이 시중에 많았으니까

제 마음속에서 ‘나는 그런 식으로 목사 안 하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제가 목회를 잘못 하기도 했지만, 그래서 우리 집을 다 팔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결심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한 평의 땅도 내 이름으로 갖지 않겠다.

 

**그리고 제 자녀들에게 유산을 일절 물려주지 않겠다.

믿음과 사랑과 교육은 내가 시키지만 재산은 물려주지 않는다.

 

***내가 일생 쓰다가 남은 것은 다 하나님께 드리겠다.

그리고 또 2500CC 이상의 자동차는 타지 않겠다.

 

그래서 지금까지 중고차만 탔지, 새 차는 사본 적이 없습니다.

 

****고 비용의 휴가나 레저, 외식은 하지 않겠다.

그래서 교인들이 가자고 해도, 저는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주 훌륭한 목사가 되려고 스스로 결심했습니다.

여러분, 존경할만 하지 않습니까?

 

아~ 그런데 제가 그 산마루 공동체 터에 처음 갔을 때

‘회개한 자가 거하는 거룩한 땅이 되게 하라’는 음성을 들었는데

 

그 후 제 속에서 회개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나는 너를 위해서 피흘려서 죽었는데, 너는 그 까짓것 가지고 잘났다고 생각하느냐?’

 

얼마 전에 A성도님이 우리 교회를 떠나면서, 제게 몇 가지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저 때문에 떠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당신이 얼마나 자기 의가 살아있는지 아느냐?’

 

아 근데 그게 천둥을 치고, 제 마음을 후벼파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비수에 찔린 것 같더라고요!

 

근데 하룻밤, 이틀밤 지나니까 성령이 제게 임하시는데

‘맞다!’

‘네가 그 동안에 그동안 살아온 것이, 너의 의고,

그것으로 인하여 네게 은혜가 없다!’

 

그래서 제가 ‘A가 주님의 도구였구나!’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자기 의로는 어떤 것도 주의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 의가 깨어져야 됩니다.

 

어떻게 깨지죠?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봐야 됩니다.

 

‘나는 너를 위하여 피를 흘리고, 그것도 너의 그 죄를 위하여 피를 흘리고

너를 속죄하였다. 그런데 너는 내가 뭐 좀 했다고 하는 것을

스스로 내세울 수 있을까?’

 

저는 이것이 저의 마지막 회개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계속 회개의 마음을 가지고 요즘 제가 지내는데

 

그렇게 되니까 자유롭고, 그리고 놀라운 것은 요즘에는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심을 제가 더 실감하고,

그리고 매 순간 기도할 때마다 실시간으로 구름기둥 불기둥이 나타나는 것 같아요.

실시간으로 막 계시가 주어지는 것 같아요...

 

오늘 이 자리도 제가 그래서 온 것이고, 순종해서 왔습니다.

그 인도하심 중의 하나입니다.

 

제가 이 터가 마련되었으니까, 이 땅에 남은 자들을 보내주신다 하셨는데

믿음을 갖고 이 사역을 함께 하실 분들을 보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기도하는데

(노숙자) 형제들이 거기 와서 한 두 주간 머물고 나더니

다시 서울로 내려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산이 좋고, 아름답고 그런데도

그분들이 산마루 공동체를 내려가겠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그랬더니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실패하고 어려움을 겪어도, 서울역에 가면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박탈감을 가지고 있는데,

또 사람에게서 떠나 있고, 산 속 공동체 가니까

외롭고 썰렁해서 못 견디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 제가 이들 노숙자들에게 말씀도 가르쳐주고

밥을 해 줄 수 있는 어머니가 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던 중에 제가 결혼주례를 했습니다.

피로연에서 제가 식사를 하는데, 제 앞에 마침 할머니 한 분이 앉으셨어요.

요즘 할머니들 역사가 크십니다.

 

제가 대화해 보니, 중국선교사 이셨고,

꽃제비들과 중국인에게 팔려간 여성들을 탈출시켜서

그들을 돌보면서 숲속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사시던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공안에 쫓겨서 한국으로 나오신 것입니다.

 

‘제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 저를 따라서 우리 산마루 공동체로 오셨습니다.

그분이 주방을 맡아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보내주셨습니다.

 

또 하나는, 제가 우리 노숙인 형제들을 보면 ‘가정 해체’가 가장 공통적입니다.

그래서 그들 가운데 ‘아버지 학교’를 하려고 합니다.

 

그랬는데 3주 전에, 우리 교회에 낯선 분이 찾아왔어요.

35년 만에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 분이 고위 장교 출신으로 미국에 가 있다가,

이제 마지막 삶은 충성을 좀 하고 살아야 되지 않겠나 해서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오면서 35년 전에 저한테 세례를 받았는데

'목사님을 찾아가야 되겠다' 해서 산마루로 오신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 야전에서 생활하던 군인이니까

여러분은 산을 보면 가서 쉬고 놀 생각을 하지만

장교들은 '어떻게 생존할까?, 어떻게 개척할까?' 이런 것을 생각한다고요.

 

놀랍게도 그 분이, 하용조 목사님 계실 때

<아버지 학교>를 섬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무조건 여기서 우리 공동체에서 계시라고 부탁드리고

또 우리 노숙자들에게 <아버지 학교>를 섬겨주실 것을 부탁드렸습니다.

 

이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한국 전역에 이 민족의 기도의 불길을 퍼뜨리고

또 이 팔복의 영성으로, 거룩한 목마름으로 나아가시는

여성지도자 여러분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래서 마치 언 바다를 깨면서 나아가서 길을 만드는 쇄빙선과 같은

그런 민족교회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잘 감당해 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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