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지기의 자리 (벧전 2:9)
일전에 부모님 산소에 성묘하러 다녀온 일이 있습니다. 벌써 세월이 많이 지나서 산소가 자리를 잘 잡았습니다. 정성스레 심어놓은 잔디가 잘 자라서 가 볼 때마다 마음이 흐뭇합니다.
그런데 성묘 갈 때마다 산소 주변을 돌아보면, 잔디 틈에 참 많은 잡초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뽑고 또 뽑아도 계속 자랍니다. 한 번은 잡초 중에 민들레가 여기저기 비집고 자라고 있었습니다. 눈에 잘 띠기에 제일 먼저 뽑았습니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 클로버도 여기저기 자라고 있었습니다. 보이는 대로 뽑았습니다. 어느새 한 줌 가득 잡초들을 뽑게 됐습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니 민들레도 저 들판에 자기들끼리 모여 피어있으면 참 곱고 아름다운 들꽃입니다. 어찌하다 잔디 한 가운데 피어 잡초취급을 받게 됐습니다. 또 따지고 보면 잔디가 산소 묘역에 서로 가득 심겨져있어서 곱고 아름답습니다. 어찌하다 밀밭이나 채소밭에 자라게 되면 바로 그 잔디가 잡초일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만물이 제자리가 있습니다.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도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괄시받고 쫓겨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마다 제자리가 있습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하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제 구실을 제대로 하고 살려면 제자리를 잘 찾아야 합니다.
영화배우이자 변호사인 “벤자민 스타인”이라는 사람이 [리더스다이제스트] 95년 1월 호에 “실패하는 사람들의 8가지 습관”이란 글을 기고했습니다. 스타인은 그 동안 일과 영화, TV연기에서 재능이 있으면서도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살펴본 결과 그들에게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8가지 나쁜 습관이 있다는 결론을 얻었답니다.
1.자기기만; 2.비생산적인 행동; 3.친구에 대한 홀대; 4.예의 없는 행동; 5.어울리지 않는 복장; 6.부정적인 태도; 7.쓸데없는 논쟁; 8.본말전도
이 8가지 나쁜 습관 가운데 단연 첫 번째는 자기 스스로를 속이는 ‘자기기만’이랍니다. 이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의 가능성이 무엇인지 잘 몰랐고, 또한 자기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잘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엉뚱한 자리에서 그 능력을 허비하다 실패하더랍니다.
아마도 선생님들이 저마다 자기 전공을 살려서 이런 사람들에게 한 마디씩 하셨을 것입니다. 철학 선생님은 “너 자신을 알라”, 국어 선생님은 “네 주제파악을 하라”, 수학 선생님은 “네 분수를 알라”, 지리 선생님은 “네 위치를 알라” 그리고 미술 선생님은 “네 꼬라지를 알라” 하셨을 것입니다. 저는 제자리를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청지기로 삼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로 있는 곳에서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청지기로 세움을 받았으면서 실패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성경에도 이런 사람이 많이 등장합니다. 대표적으로 구약에 저 사울을 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우셨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신약에 저 가룟 유다를 들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로 삼으셨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저들이 왜 실패했을까요? 하나님께 청지기로 세움받은 그 축복의 자리에서 왜 밀려났을까요? 물론 여러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제자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실패는 오늘 우리에게 반면교사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의 청지기로 성공적인 삶을 살려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깨닫게 해 줍니다. 즉 청지기로서 제자리를 잘 알고 그 자리를 잘 지켜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청지기들이 찾아야 할 제자리는 어떤 것입니까?
1. 부르심의 자리
오늘 본문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인들은 택하신 족속이고, 왕 같은 제사장이고, 거룩한 나라고 주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고 존재를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존재가 된 근본적인 이유가 하나님께서 이들을 부르셔서 그 자리에 세우셨기 때문이라고 분명하게 선언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청지기들은 모두가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저마다에게 부르심의 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그 자리를 지켜갈 때 청지기는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고려 때 한 대가 집에 정말 잘난 아들이 있었습니다. 20살도 안됐는데 여기저기서 혼사말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어찌 눈이 높은지 모두 퇴자를 놓았답니다. 그러던 어느 해 이 총각의 아버지가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게 됐습니다. 이제 혼사말이 뚝 끊기고 장가마저 갈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어렵게 살고 있을 때 뒤집 처녀가 따뜻한 마음으로 이 집안을 돌봐주었습니다. 총각도 마음이 열려 이 처녀와 결혼을 약속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 즈음 아버지가 누명을 벗고 풀려나오게 됐습니다. 그리고 복직하게 됐습니다. 그러자 다시 혼사말이 빗발치게 되었습니다. 총각의 마음이 흔들렸고 뒤집 처녀를 버리고 한 부자집 딸과 약혼을 하게 됐습니다.
이로부터 얼마 후 아버지가 이번에는 정말 큰 죄를 범해서 다시 옥에 갇히게 됐습니다. 그러자 그 부자집에서 파혼을 청했습니다. 다시 혼사말이 끊기게 되자 이 총각은 뒤집 처녀 생각이 간절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처녀에게 달려갔으나 단연 거절당하게 됐고 그 처녀는 다른 곳에 시집을 가버렸습니다. 이에 상심한 총각은 깊이 후회하며 자리에 눕고 말았고 그후로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 일을 알게 된 사람들은 “죽어 싸지!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을 못하더니 죽어싸지”라고 말하게 됐습니다. 이후로부터 이 말이 속담이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청지기들이 청지기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부르심 당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상황이 변해서 개구리가 됐다고 해도 처음 부르심을 받았던 올챙이적 생각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흔히 말하는 초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하고 초심으로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부르심의 자리를 늘 지켜가야 합니다.
청지기가 부르심의 자리를 끝까지 지켜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마디로 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을 마음 속에 간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청지기들을 부르실 때 사용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사건적 부르심이고, 다른 하나는 섭리적 부르심입니다.
우선 사건적 부르심이란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인 부르심에 대한 증거를 가지게 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모세와 같은 경우입니다. 모세는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 때 가시떨기나무 사건을 경험합니다. 구체적인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또 사도바울과 같은 경우입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 때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나는 사건을 경험합니다. 강열한 빛으로 눈이 멀었습니다. 구체적인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오늘도 이런 부르심을 받는 사람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부르심에 대한 확신을 계속 간직해 가기가 보다 쉽습니다. 그러나 이런 부르심도 끝까지 지켜가려면 늘 그 부르심의 사건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가 갈라지는 그 엄청난 사건을 경험하고도 척박한 광야 생활 속에서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면서도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건적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도 부르심의 그 자리를 기억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남다른 은혜를 체험했고, 하나님의 놀라운 표적을 통해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도 부르심의 그 자리를 기억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섭리적 부르심이란 하나님의 섭리 속에 주관적인 부르심에 대한 증거를 가지게 되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 객관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귀로 확실하게 들은 말씀도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부르심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청지기들이 이런 섭리적 부르심의 과정 속에서 부르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이 때 이런 섭리적 부르심을 확인할 수 있는 몇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1. 성령의 감동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깨달아집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강렬하게 부르심이라 느껴집니다.
2. 마음의 소원입니다. 계속해서 그 일에 대해 마음 속에서 간절한 소원이 일어납니다.
3. 사랑의 인내입니다. 환경이 열악하고, 상황이 좋지 않고, 오랜 시간이 필요해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내할 수 있게 됩니다.
4. 보람과 의미입니다. 세상이 뭐라 하더라도 그 일 안에서 내가 존재하는 의미를 찾고, 흘리는 땀에 대한 보람을 느낍니다.
이런 것들이 내 안에 계속 있을 때 섭리적 부르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부르심에 대한 확신을 가질 때 부르심의 그 자리를 지켜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르심의 자리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의 자리를 떠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2. 헌신의 자리
오늘 본문의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청지기를 부르실 때 일을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일을 맡기신 것입니다.
마 25장을 보면 소위 달란트 비유가 기록되어있습니다. 14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금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주인이 청지기를 불러놓고 각자의 재능에 따라 달란트를 맡겼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청지기인 우리는 저마다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누구는 다섯 달란트를, 또 누구는 두 달란트를, 그리고 또 누구는 한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이제 그 달란트를 어떻게 관리하여 남길 것인가 그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 과제에 헌신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청지기들에게는 헌신의 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헌신의 자리를 지켜 가려면 두 가지 정신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외길정신이고, 다른 하나는 프로정신입니다.
우선 외길정신이 필요합니다. 외길 정신이란 다른 곳에 한눈 팔지 않고 오직 한 곳만 바라보고 그 길로만 나아가는 정신을 말합니다. 청지기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그 일만 바라보고 오직 그 길로만 나아가는 외길 정신이 필요합니다. 이 외길 정신이 헌신의 자리를 지켜갈 수 있게 해 줍니다.
[메콩강 빈민촌의 물새 선생님]이란 책이 출판되었습니다. 캄보디아의 빈민촌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김연희 선교사 이야기입니다.
김연희 선교사는 대학시절 단기선교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2주동안 캄보디아 빈민촌에서 힘겹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 기간 동안 자신보다 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감사하며 살아가는 아이들을 통해서 감사를 배웠고 그리고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달았습니다. 이 때 젊음의 십일조를 드려야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의 반대와 친구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1년만 봉사하겠다고 다시 캄보디아 땅으로 왔습니다. 너무 힘들고 어려워 울고, 아이들이 안타까워 울어서 늘 눈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물새 선생님입니다.
딱 1년간만 봉사하고 오겠다던 그는 아이들이 눈에 밟혀 그 일을 차마 그만 둘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을 품고 기도하고 가르치다가 본인이 정작 결핵으로 폐에 구멍이 났지만,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망막박리라는 실명의 위기를 넘기면서도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부도 소식을 듣고도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 있는 그녀를 위해 기도하는 아이들의 눈물이 그녀를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청지기는 외길정신으로 헌신의 자리를 지켜가는 사람들입니다.
다음으로 프로정신이 필요합니다. 프로정신이란 어떤 일에 대해 전문적 능력을 갖추고 그 전문적 능력을 부단히 발전시켜 가는 정신을 말합니다.
송병락 교수가 쓴 <이야기 경제학>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골프 인생의 4 단계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1단계는 이제 막 골프를 시작한 사람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만나는 사람마다 골프를 권한다는 것입니다. 골프가 운동 중에 가장 좋고, 건강에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2단계는 어느 정도 골프를 알게 된 사람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만나는 사람에게 골프를 가르치려 한다는 것입니다. 같이 출장을 갔는데 새벽 4시에도 깨워가지고 "골프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고 가르치려고 한답니다.
3단계는 제법 골프를 잘 치는 사람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스스로는 가르치려 하지 않고 만약 누가 물으면 "잘 모르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고 대답한다는 것입니다.
4단계는 골프 실력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누가 물어오면 "나 같은 사람에게서 배우지 말고, 비디오를 보거나 일류 프로에게서 제대로 배우라" 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4단계까지는 아마츄어이고 그 다음은 프로단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프로들에게 "프로의 정신이 무엇이냐?"라고 물으면 "프로는 배우고, 또 배운다", "프로는 연구하고, 또 연구한다", "프로는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라고 답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마추어는 끝까지 헌신할 수 없습니다. 헌신의 자리를 지켜가려면 프로정신이 필요합니다. 프로정신은 늘 배우고 늘 연구하고 늘 연습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헌신의 자리를 지켜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는 지켜가야 할 제자리가 있습니다.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할 때 인생을 실패하게 됩니다. 늘 후회하며 살게 되고 괄시받고 버림받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지켜가야 할 제자리는 우선 부르심의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자리가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의 자리를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세가 호렙산의 그 부르심의 자리를 기억하듯 그리고 바울이 늘 다메섹 도상을 기억하듯 그 부르심의 자리를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지켜야할 할 제자리는 헌신의 자리입니다. 하나님께 헌신해야 하는 자리가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헌신의 자리를 끝까지 지켜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길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프로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끝까지 나의 헌신의 자리를 지켜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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