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론의 양면성 벧전1:15~16, 요일3:3
◑성화론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1. 믿으면, 칭의 곧 의롭다 함을 받는 것처럼
믿으면, 곧 거룩하다 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믿음성화 (자동성화)'로 불러봅니다.
대표적인 구절이 고전1:30절입니다.
고전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위 구절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라고 말씀합니다.
나는 거룩하지 않지만
예수님의 공로를 믿음으로 ‘내가 거룩해짐’을 인정받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요한일서 3:2절을 자의적으로 잘못 해석해서
성도가 죽으면, 예수님처럼 자동적으로 성화되리라고 예측합니다.
▲2. 아울러, 믿어서 의인이 되고, 성도가 되었으면
그 다음부터는 자신이 열심히 거룩한 삶을 추구하며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런 주장을 ‘의지 성화’ (성화에 자신의 의지가 중요함)로 불러봅니다.
빌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구원을 이루어가라고 말씀합니다.
구원을 점점 만들어가라, 완성시켜 나가라.. 라는 뜻입니다.
위 두 가지 방향이 모두 나름대로 성경적이고, 성화론에 있어서 나름 중요합니다.
크게 보면 다 같은 말이지만 (사과를 세 쪽으로 쪼개는 것과 같지만)
그 중 가장 비중이 높은 것은 아래의 ‘하나님 주도 성화론’입니다.
▲3. 하나님 주도 성화론
이것은, 성도가 믿음으로 회개하고 거듭난 후에는,
하나님이 주도해서 성화를 이끌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그 주님의 주도적 이끄심에, 이끌려 가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벧전1:15~16
위 말씀은 마5:48절을 인용한 것인데, 레위기 말씀을 인용한 것도 되죠.
중요한 것은,
언뜻 보면 위 말씀은, 신자들 어깨 위에 아주 무거운 짐을 얹어놓는 것 같습니다.
‘뭐,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하라고? 이게 사실인가?’
성경말씀을 눈 씻고 다시 보게 됩니다.
‘어떻게 내가 하나님처럼 거룩하게 될 수 있는 건가?’
‘하나님은 도무지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를 부과하시는 분이신가?’
그렇게 짐과 부담을 얹어놓으시는 것이, 위 말씀의 원래 의도가 아닙니다.
위 말씀의 원래 의도는, 이것이 성화론의 ‘결론’ 같은 부분인데요.
‘내가 너희를 하나님처럼 거룩하게 만들어 나가겠다’입니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니, 세상에 빛이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열매를 맺으라’ 하시니, 씨와 열매 맺는 나무들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하나님이 뭘 말씀하시면... 반드시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너희가 반드시 거룩하게 될 것이다’ ... ‘내가 너희를 거룩하게 하겠다’
라고 보증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게런티(보증)를 주신 것입니다.
‘내가 살아있는 이상, 또한 너희가 내 백성이 된 이상,
너희는 반드시 거룩하게 될 거야...’ 그 자신감으로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는 거룩할 지어다’ 벧전1:16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는 온전할 지어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5:48
위 말씀을 오해하면 (누가 설명 안 해 주면, 오해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자, 너도 나를 좀 보고 너희 스스로 능력껏 최선을 다해 나처럼 되어보아라"
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이 "태양아, 우주 가운데서 빛을 발하라.
지구야, 형태를 갖추어라. 물들아, 지구로 모여라."
선포하신 것처럼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말씀하신 이것은 영광스러운 선포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선포하심으로써,
성도의 거룩을 보증해 주시고, ‘너희는 거룩해진다’ 라고 자신감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물론 거룩은 시간이 걸릴 수 있으며,
그 과정에 폭풍우와 같은 시련이 있을 수 있고
육체와의 치열한 전투를 겪을수 있지만
그러나 너희는 분명 점점 셩숙하는
<점진적 성화 progressive sanctification>의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당신이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의지적 노력 (이게 필요하죠.
그러나 결정적 요인은 주님의 주도하심에 있죠) 과 아울러
하나님이 당신을 거룩하게 만드시는 것을 유념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마찬가지입니다. 종종 40년, 50년 신앙의 순례길을 완주하신 분들은
공통적으로 ‘내가 잘 살아왔다, 내가 승리해왔다’ 이렇게 고백하지 않고,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것은,
사역도 그렇지만, 성화도...
지나 온 자기 삶을 되돌아보니... 주님이 주도적으로 인도하셨다는 거죠.
그래서 신앙이 성숙한 분들의 고백은
'하나님이 나를 한 눈 팔지 못하게 하신다, 좌우로 치우치지 못하게 하신다' 입니다.
자기 의지적 성화의 추구와 더불어, 성화케 하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기쁨과 희망에 부풀어야 합니다.
▲‘젊은 청년이 목사 안수를 받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목사 안수를 받으려면, 4년제 대학 졸업 후에 3년의 신대원을 거치고
인턴십을 1~2년 거치면... 30세가 되기 전에, 목사 안수를 받습니다.
연로하신 권사님이나 장로님이 보시면
아직 ‘애송이’ 같은데, 목사 안수를 주고 ‘목사님’이 되는 것입니다.
또 젊은 만큼, 여러모로 좌충우돌 하거나, 미숙하고 미성숙한 면을 사실 나타내 보입니다.
그런 어린 목사가 정말 애송이 같지만,
20년 30년이 지나서 환갑 즈음의 목사가 되면,
의젓하고 성숙한 목사가 되어 있는 모습을 점점 보게 됩니다.
과거의 애송이나 풋내기가 아니라, 중견 목사로 탈바꿈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가정을 해 봅니다.
젊어서 목사 안수를 주지 않고, 60세가 될 때까지 기다려서,
그가 중견 목사로 바뀌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중에 목사 안수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가, 실수 없는 성숙한 목사가 될까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그가 철 모르는 때 .. 30세 이전에 목사 안수를 받았으므로
그 후 30년 동안, 나름대로 목사 라는 신분에 걸맞게 살려고
무지 애를 쓴 것입니다. 그래서 60세에 중견 목사가 되는 것이지요.
만약 60세에 목사 안수를 준다고 가정하고
‘앞으로 30년 동안 알아서 잘 살아라’고 한다면,
글쎄 60세에 중견 목사가 될 만큼 성숙되어져 있을 사람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든 것인데, ‘성화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거듭난 신자를, 하루 아침에 ‘성도, 거룩한 무리’로 부릅니다.
여전히 문제가 많고, 아직 미숙하고, 아직 영적으로 어린데도
그들을 ‘성도, 거룩한 무리’로 부르기를, 성경은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의인’이라는, ‘의의 옷’도 입혀 주십니다.
아직 아무 것도 된 게 없는데... 굉장한 대우를 해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 성화, 자동 성화
그러면 신자 입장에선...
이제 자기가 자기 신분에 걸맞게 살려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애를 쓰게 됩니다 *의지 성화
주님이 자기를 의인, 거룩하게 성화된 자, 성도로 인정해 주시니
그 인정에 벗어나지 않게 살려고... 본인 스스로도 (성령의 인도를 따라) 발버둥 치게 되죠.
그걸 하늘에서, 하나님이 지원사격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거룩하게 하겠다.
내가 너희를 하나님처럼 만들어 주겠다’ 하시고,
강권적으로 성도의 삶을 인도해 가시는 것입니다.
물론 그 점진적 성화의 과정에서
환란, 질병, 핍박 등 여러 가지 수단들이 동원되겠지만요!
▲미국 대학교에 ‘조건부 입학’ 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 학생이 우리 대학에서 공부할 자격이 의심스러울 때,
일단 입학을 시켜 놓고, 두고 보는 것이죠.
학교에서 진도를 잘 따라가면...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졸업하는 것이고,
만약 교과과정을 잘 따라가지 못하면... 학생 자격이 취소되는 거죠.
입학도 없던 일이 되고요.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그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거듭나서, 주 예수님을 믿을 때,
천국에 들여보내 주십니다. 일단 조건부 입학으로, 현재 하나님의 나라에.
그러면서 주님은 우리 각자를 지켜보시는 것입니다.
교과 과정을 잘 따라가고, 제자로서 영적으로 계속 성숙되어져 나가면
그는 영원한 천국에 안전하게 들어갈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교과 과정을 잘 따라가지 못하고, 자행자지 한다면,
그의 입학은 취소되어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가룟유다도.. 결국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제자들은, 그들의 조금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Drive 때문에, 하나님의 몰고 가심 때문에,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게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열심 때문에,
나머지 부족한 제자들도, 결국은 천국에 안전하게 들어갔습니다.
▲여러분, 자매님들이 외출하기 전에 30분~1시간 정도는 화장을 합니다.
남자들이 보면, 시간 낭비요, 불필요한 일 같습니다.
그런데도 그 귀한 시간을 들여서, 화장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화장 없이 쌩얼로 돌아다니는 것보다,
30분이 걸려도, 화장을 하고 집을 나서는 것이... 마음이 더 편하기 때문입니다.
성화론이 이와 같습니다.
성도가 성화 과정 없이 사는 것보다는,
성화를 추구하며 사는 것이, 더욱 편하고, 자기에게 유익합니다.
그래서 자원해서, 성화를 추구하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성화 Sanctification 를 특정 사람에게 미루면 안 됩니다.
‘불후의 명작’ ‘불세출의 걸작’들은 읽으면 읽을수록, 바라보면 볼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깊은 감동과 전율, 기쁨을 선사합니다.
그런 면에서 성화된 성도들도 (명작, 명품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땅위에 두 발을 딛고 사는 이상 다들 너나할 것 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존재려니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우리들 사이에 명품, 곧 '성도'가 존재합니다.
보면 볼수록 더 보고 싶은 사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사람,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람,
그를 만나면, 살 힘을 얻고, 용기가 나고, 그의 뒷모습만 바라봐도 저절로 기도가 나오는...
주 안에서 성숙된, 성화된 그런 분이 계십니다. 흔치 않지만 계십니다.
일평생 말씀 강해와 후학 양성을 위해서 애쓰시다가
주님 앞에 갈 날이 가까웠지만,
자신이 좀 더 오래 살아서, 좀 더 후학들에게 자신이 보탬이 되고난 다음에
세상을 떠나시고자 애쓰시는... 그런 성자들도 계십니다.
거기에 조금 더 보탠다면, 가장 큰 사랑으로 사소한 일상을 정성껏 살아가는 사람,
작고 보잘 것 없는 피조물 안에 깃든 하나님의 손길을 찾는 사람,
내게 호의적이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환한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곧 오늘의 성자인 것입니다.
우리 시대 성인은 대단한 기적을 일으킨다거나 특별한 삶을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사명에 열중합니다.
그 무엇도 물리치지 않고, 그 어떤 도움의 기도요청도 거절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존재, 사건, 만남을.. 하나님께로 더 나아가는 계기로 삼습니다.
한 인간 존재가 자신의 영역에 있어 최고봉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겸손할 때,
성자의 모습이 비춰집니다.
신학자가 성자일 수 있지만, 과학자도 성자일 수 있습니다.
한평생 수도만 한 분도 성자일수도 있지만, 한 가정의 가장도 성자일 수 있습니다.
반드시 대단한 업적을 남겨야만 성자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성화룰 추구하며 살아가는 동안.. 2~3년 전보다는 오늘의 내 모습이 더욱 성화되었으면,
그는 성자(성도)인 것입니다.
우리는 성자가 되어 감을, 특졍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미뤄버리면 안 됩니다.
당신은 자신의 구원(구원의 완성)을 남에게 양보하시겠습니까?
'믿으면 구원 받는다'는 구원의 시작입니다.
구원의 완성은, 성화를 거친 후에 이루어집니다.
미국의 대학이나 대학원은, 비교적 입학은 쉽다고 합니다.
그러나 졸업은 쉽지 않습니다. 반드시 학교가 요구하는 학문적 수준을 통과해야
비로소 졸업할 수 있습니다.
신자들이, 천국에 '누구든지 입학'은 했는데,
그렇다고 '아무나 졸업'하지는 못 합니다.
주인은 '잔치에 예복을 입지 않는 사람은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왜 입학은 했는데, 졸업은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본인이 노력을 게을리 했던 것일까요?
아뇨, 그것보다는 입학할 때부터가 의심스러웠던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 회심 없이.. 입학을 해서, 천국 대학 생활을, 남들 흉내 내면서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 점진적 성화의 과정을 거친 성자들을 보면,
언제나 삶이 참 고요하지요.
그들은 재산 유무, 건강 유무, 명예 유무에도 개의치 않습니다.
살아가는 모습이 세상 사람들의 모습과는 많이 다릅니다.
그들은 잔잔하면서도 여유 있고 평화롭지요.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자유롭습니다.
매일 주님이 주시는 평화를 누리며, 평화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치 젖 뗀 아이가 어머니 품속에 쉬는 것처럼.. 그런 평화로운 삶을 삽니다.
매일 요동치는 세상에, 같이 부화뇌동 하지 않습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일3:3
무슨 소망입니까?
'주님을, 주님이 있는 (계신) 모습 그대로 보면서, 자기도 주님처럼, 주님을 닮게 되는 소망'입니다. 요일3:2
주님이 계신(있는) 모습이 어땠기에, 사도요한은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소망을 가지게 된다고
서신으로 설교하는 것일까요?
사도요한은, 변화산에서 변화되신 주님의 모습을 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마17:1
주님의 모습은, 피라미드 같은 큰 건축을 해서 위대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최고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10개나 받고, 노벨상을 받아서 위대한 모습이 아니었죠.
바로 변화된 모습, 거룩한 모습...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고 영광스러워서,
그 모습을 닮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도요한이 요한서신서를 쓸 때, 연세가 90세가 넘었으리라 봅니다.
한 평생을 살고나서 보니까,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권세에서 오는 미, 재력에서 오는 미, 지식에서 오는 미가 아니라는 것이죠.
예수님처럼 깨끗하기를, 죽기 얼마 전의 사도요한은 원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나에게, 요일3:3절과 같은 소원을 품은 적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죽은 후에 일은 아무도 모르지...' 하면서, 아무런 성화의 소망도 없이 사는 것은 아닙니까?
그럼 나는 늙어가면 갈수록, 도대체 무슨 소망을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여전히 젊은 시절부터 가지고 살던 그 세상 소망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요?
아직도 변화, 성숙, 성장되지 못한 것인가요?
♣요일3:2절 해석의 문제
성도가 죽으면 자동적으로 '그리스도와 같이 변화되는',
쉽게 이름을 지어 붙이자면 '자동 성화' 인가요?
오늘날 이렇게 믿고 있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요일3:2절과 3절을, 여러 번역을 비교해 보면서 읽어봅니다.
(현대인의 성경)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장차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예수님이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어 그분의 참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그분처럼 되어' ... 우리도 예수님처럼 영생을 얻어서, 죽지 않을 몸을 입어서
'그 분의 참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까지 가지셨던 그 깨끗한 모습!
예수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마지막 모습에 영화된 모습이 더해진 거죠.)
이렇게 해석하면, 이어지는 요일3:3절과도 문맥이 자연스럽습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3:3
천국에, 우리가 죽을 때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간다면, (예수님이 그대로 가지고 가셨습니다)
성도는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할 것이라는 거죠.
만약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3:2
위 개역개정을, 우리가 '자동성화론'으로 오해하면,
이어지는 3:3절과 문맥이 맞지 않습니다.
죽고 나면 자동으로 성화될 건데, 뭐하러 자기를 깨끗하게 합니까? 그 힘든 일을...
"여러분, '자녀' 라고 얘기할 때는, 아버지와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구원에 있어서 핵심은, 아버지와의 관계가 해결되고,
그 관계가 점점 부유해지는 것을 통해서, 우리의 존재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먼저 되고, A
그 후로는 하나님의 자녀에 걸맞게 살아가는 것이, 그런 변화된 삶이 뒤따르게 되어 있다, B
그렇게 되어져 간다는 것이.. 성경 전체의 흐름입니다. A와 B 성경은 양쪽을 다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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