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의 친밀한 관계 요일3:2~3, 히12:14
존 비비어 / Messenger International 대표
오늘 이렇게 말씀을 전할 수 있게 되어 큰 영광입니다.
오늘 저는 제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저는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음을 믿습니다.
우리는 그날이 다가오고 있고, 그날이 언제 올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며
순결하신 주님처럼 우리를 깨끗하게 합니다.
요일3:2b~3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성경은 거룩이 정말 중요하다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이 진리가 제게는 매우 큰 울림이 됩니다.
왜 거룩함이 중요합니까? 거룩함이 중요한 이유는,
규칙과 규정을 만들어 행동을 통제하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거룩함이 거룩함은, 주님의 소유가 되는 것에 관한 문제입니다.
거룩함은 완전히 구별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저는 아내를 보면서 거룩함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41년 전 일입니다.
리사가 교회 복도를 걸어 내려와서 제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날 그녀는 제 아내로 확정되었습니다.
41년이 지난 지금, 그녀가 제 아내가 더 된 것도 아니고
지금부터 40년 후에 그녀가 제 아내가 될 것도 아닙니다.
그녀는 우리가 결혼한 그날, 제 아내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에 대하여 하나님은 엡1:4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성부 성자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함께 하시며 회의를 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인간을 창조할 것인데 그들은 타락할 것이다.
네가 가서 그들을 위해 죽을 수 있느냐?"
예수님께서 그리 하시겠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세상이 시작할 때부터, 죽임당한 어린 양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위해 갈보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죽으신 사실을 믿는 바로 그 순간 나는 그들을 거룩하다고 선언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위치적 거룩함 positional holiness 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씀하는 또 다른 거룩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행동에서 나타나는 거룩함입니다.
그래서 거룩함에는 '위치적 거룩함'과 '행동적 거룩함'이 있습니다.
제 아내를 예시로 '행동적 거룩함 behavioural holiness'을 설명하겠습니다.
리사와 제가 결혼하기 전에, 리사는 다른 남자친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다른 남자들에게 자기 전화번호를 주기도 했었겠지요.
아마 다른 남자들과 시간도 보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혼 후에는, 그녀는 자신의 위치(신분)에 부합하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아내는 다른 남성들과 더 이상 시간을 보내지 않았고, 다른 남성들과 교제하러 나가지 않았습니다.
전화번호를 다른 남자들에게 주지도 않았습니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위치에 걸맞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위치=신분, '신분적 거룩함'
▲벧전1장을 보면, 사도 베드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벧7:1전1:15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위치(신분)와 일치하는 행동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히12:14절 '...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이제 우리는 모두가 예수님을 보게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계시록 1:7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모든 눈이 심판대에 서신 예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고 계시나요?
'거룩함 없이는 주님을 볼 수 없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 대해 더 설명드리겠습니다.
저는 미국 시민권자입니다. 평생을 미국 시민권자로 살았습니다.
13명의 대통령을 거쳐 왔습니다. 그들의 결정은 제 인생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제 삶을 이끄는 리더십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내린 결정들은 결국 제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렇죠?
하지만 저는 미국 대통령을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미국 대통령의 존재를 직접 접해보지는 못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은 주인 되시는 주님의 통치 아래 있고
주님의 결정이 그들의 삶에 영향을 줍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과 함께 있지는 presence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오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임재해서) 나타내리라' 요14:21
AMP 성경에서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그에게)
나는 그에게 나를 분명하게 보여줄 것이고
그에게 나를 알려주겠다'고 하십니다.
거룩은 단순히 거룩한 행동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은 하나님 앞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주제
Holiness is the doorway into the presence of God
거룩은 모든 성도들이 갈망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의 임재 안에 있기를 사모하는 마음을 갖도록 참조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매일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 살아가지만
또한 성도들 모두는, 위치적 거룩을 갖고 있지만
우리 가운데서 진짜, 대통령실에 들어가듯이 실제로,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은
거룩한 삶을 사는 사람, 행동적 거룩을 삶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이제 히브리서 12장을 다시 봅시다.
'거룩함을 따르라' Pursue holiness 히12:14
'따르라 Pursue' 라는 말은 붙잡을 의도를 가지고 쫓아간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위치(신분)적 거룩함을 의미할까요? No
잠시 생각해 봅시다. 리사는 수요일 아침 성경 공부에 갑니다.
만약 그녀가 방 안에 있는 모든 여성들을 바라보며
'여러분, 저는 존 비비어의 아내가 되기 위해 쫓아가고 Pursue 있으니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라고 말한다면, 모든 여성들은 제 아내를 비웃을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리사, 너는 이미 존의 아내로 41년을 살았어!'
(너는 이미 위치적 거룩을 가졌어!)
그런데 그녀가 성경 공부 시간에
'여러분, 제가 존 비비어에게 좋은 아내가 되기 위해 걸맞게 살고 싶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라고 한다면, 그들은 제 아내를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함을 따르라 Pursue'는 말씀이
위치(신분)적 거룩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적 거룩함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함을 붙잡으려는 의도로 쫓아가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나를 나타내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요14:21
자신을 우리에게 (임재를) 분명하게 보여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내가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고, 주님을 확실히 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은혜를 가져다 줄까요?
고후3:18절 '...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즉 우리가 그분의 임재 안에 있지 않으면,
우리는 주님을 볼 수 없고
그렇다면 우리는 변화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리사를 두고 간음을 저지르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저는 여호와를 경외합니다. 이것은 분명하고 확실한 이유입니다.
두 번째, 제 아내는 저격수입니다. 그녀는 총을 매우 잘 쏩니다.
그녀는 만약 제가 간음을 저지르면, 저를 고통 없이 끝내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이유를 잠시 제쳐두고 말해보죠.
제가 왜 아내가 있는데, 간음하지 않는지 이유는 다른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우리의 침실의 은밀한 대화의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는 어떤 비밀을
제게는 속삭이고, 자기 마음속 깊은 비밀을 제게 나눕니다.
저는 그 순간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부 사이에만 나눌 수 있는 친밀하고 은밀한 대화를 저는 아내와 계속 나누기 원하죠.
그래서 저는 다른 여인과 교제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부부간의 은밀한 대화는 단절돼죠. 몸은 가까이 있어도, 마음은 멀어져 버립니다)
저는 그 은밀하고도 아름다운 시간을, 절대 절대 절대로 잃고 싶지 않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과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이제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리사 비비어와 결혼했음을 법적으로 증명하는 혼인관계 증명서가 있습니다.
그 증명서를 들고 가서, 제가 아내에게 말합니다.
'당신은 법적으로 내 아내야. 당신은 이제 내게 복종해야 해!' 그렇게 말할 수도 있죠.
그렇게 하면서도 저는 여전히 다른 여자들과 사귈 수도 있겠죠.
비록 그런 관계가 오래 가지는 않겠지만, 사람들은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 즉시 사람들이 잃어버리는 것은 무엇일까요?
부부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은밀한 것들을 나누는 친밀한 관계가,
그것으로 끝이 날 것입니다. (부부관계가 서먹서먹 해 지겠죠)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교회에 출석하고, 회개 기도를 하고, 거듭났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세상으로 뛰어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과 간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께서 왜 자기에게, 친밀한 관계를 맺지 않고,
은밀히 말씀하지 않으시는지 궁금해합니다.
성경을 펼칠 때, 그저 평범한 이야기 책처럼 느껴지는 이유를 궁금해 합니다.
그리고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신앙이 굳어져 갑니다.
▲저는 성경을 45년 동안 읽어왔습니다.
여러분들은 제 가족 중 누구에게나 물어보실 수 있습니다.
성경은 제가 세상에서 제일, 가장, 최고로 좋아하는 책입니다.
저는 성경을 펼칠 때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 항상 경외감과 놀라움을 느낍니다.
저는 그 은혜를 절대 잃고 싶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제게 묻습니다. '어떻게 24권의 책을 쓰셨습니까?
어디서 그런 아이디어를 얻으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친밀함입니다.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입니다.
저는 그 관계를 절대 잃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거룩함을 따르는 이유는, 제가 거룩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제가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절대 잃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룩함은 문 door 으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 문 너머에 있는 것이 마음에 듭니다.
그 문 너머에서, 그 문을 지나가서, 여러분들은 주님과 친밀히 교제할 수 있습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주님과 만나서 교제할 수 있습니다.
거룩함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고 싶으시다면,
사도 바울이 말씀한 것을 주목하십시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고후7:1
바울은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합니다. 빌2:12
사랑과 친절이 아니라, 두려움과 떨림입니다.
왜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할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을 경외함이,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기 때문입니다.
거룩함은 우리를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인도하며 우리를 성숙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진짜 두려움입니다.
이사야 33:6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내 보배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주신 이 보배로운 선물은
우리를 그에게 가까이 가게 하며,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게 합니다.
이것이 이사야11:3절에서 말씀하는 바
'예수님께서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워하셨다'는 이유입니다.
귀 기울여 들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워하셨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주님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더 무섭고 떨리는 일입니다.
출20:20절을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내 산으로 인도했을 때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임하셨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무서워서 도망쳤을 때, 모세가 그들에게 말합니다.
출20:20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경외함이 있는지 보시려 임하시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고 죄를 짓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위 20절에서, 하나님은 모순적인 말씀을 하고 계시는 걸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것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하나님은 구별하십니다.
둘은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무언가를 숨기려는 것이 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께 범죄했을 때 그는 무엇을 했나요?
아담은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숨었습니다.
거룩함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임재가 경이로운 은혜가 되지만
사실 범죄한 아담에게는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그것은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여전히 애굽의 노예 근성이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세상의 영향이 남아있다면,
하나님의 임재는 무서운 일로 여겨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도망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숨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자신을 주님께 온전히 드린다면, 전심으로 주님께 헌신한다면,
세상에 대해 미련이 없다면,
하나님의 임재는 여러분에게 즐거움이 되며,
여러분을 변화시키며, 세상에 미련이 있는 사람들과 여러분을 구별하는 은혜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모세가 전한 말씀입니다.
'...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즉 주님의 우리 속에 임재가)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출33:16
디윗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시16:11
기쁨은 우리의 힘입니다.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룩하게 살아갈 때, 거룩함을 좇을 때, 우리는 기쁨을 누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기 때문에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그 기쁨은 우리에게 힘을 주어, 흔들리지 않게 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으며,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도록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주님의 재림이 다가올수록 점점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진리 안에 살며, 진정 거룩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율법주의적 거룩이 아니라요.
저는 여러분이 거룩하게 살아가시기를 권면하고 싶습니다.
온전히 붙들겠다는 마음으로 거룩함을 추구하십시오.
그리고 말씀드립니다. 모두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는 '거룩함에 도달하지 않으면, 아무도 주님을 볼 수 없다'는 말이 없습니다.
존 비비어가 90세가 되면 그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저는 거룩함을 붙잡고 거룩하게 살기 위해 따르고 있습니다'
즉, 거룩은 일평생 추구해 나가는 것입니다. 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온전하게 거룩해졌어요.' 라고 말하는 사람을 제게 알려주세요.
저는 그 사람이 아마 율법주의자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거룩함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경이 거룩함을 추구하라고 말할 때, 거룩함을 붙잡으라고 할 때에는
일평생 거룩하기 위해 살라, 추구하라는 의미입니다.
영광에서 영광으로 나아가는 단계가 있습니다.
점점 통과해야 하는 영광의 단계들이죠.
개인적으로 20년 전에는 스스로 용납할 수 있었던 일들이
지금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 것입니다.
무슨 일일까요?
저는 거룩함을 추구하고 있고,
바라기는 제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더 주님의 마음을 깨닫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 사역의 최우선 목표를 아십니까?
제 최우선 목표는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제가 사역을 시작할 때보다, 이 땅을 떠날 때 주님을 더 사랑하고 싶습니다.
저는 많은 목회자와 사역자들을 보아왔습니다.
그들의 냉소적이고 지친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역을 보았습니다.
직업으로 여기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열정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잃어버린 것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랑을 잃었습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거룩한 경외함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거룩한 경외함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시작하게 합니다.
여러분이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를 맺어야, 상대방을 진실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과 여러분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께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께 축복이 되고 여러분을 강하게 하는 말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주님께 여러분의 삶을 드리지 않았다면
반드시 온전히 드리시기 바랍니다. 자신을 위해 살아왔던 삶을 회개하시고
주님 말씀에 불순종했던 일을 회개하십시오.
주님께 여러분을 온전히 드리고 진심으로 주님만을 섬기십시오.
여러분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주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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