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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직의 헌금적 자세]

by 【고동엽】 2022. 2. 24.

주 제 : 제직훈련 부주제 : 제직훈련(7)
제 목 : 제직의 헌금적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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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직의 헌금적 자세

헌금은 감사의 표현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 대해 전체 생활을 드
리는 감사의 표로서 예배를 통하여 바치는 제물이다. 헌금은 하나님이 주신 모
든 은혜에 대한 감사인 동시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는 신앙 고백의 실제적인
행위이다. 헌금은 주의 은총에 대한 응답으로 드리는 것이다.
헌금은 신앙의 표현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
는 마음이 있다. 이 감사의 마음을 물질로 나타내는 것이 헌금이다. 그러므로
헌금은 아까와하거나 마지 못해 하는 일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드리는 신앙의
표현이다(고후9:7).
헌금은 헌신의 표현이다. 그리스도인은 교회와 사회와 하나님게 대하여 어떤
의무를 다하기 위한 실천 행위의 하나이다. 헌금만이 헌신의 표가 되는 것은 아
니지만 헌금은 헌신을 나타내는데 매우 구체적인 방법이 된다. 헌금은 보답의
표현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았다. 받은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드리는 것이 헌금이다. 그러므로 헌금은 예배의 일부로서 드리는 예배
행위이다. 그러므로 헌금은 예배의일부로서 드리는 예배 행위이다. 하나님의 거
룩하신 일에 참여하는 정신으로 드리는 것이 헌금이다. 제직은 각종 소득이 있
을 때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보답하는 정신으로 헌금해야 한다.

(1) 헌금의 원리(잠3:9)
1) 헌금의 성격적 원리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축복을 받고 그 보답으로 소득의 십분의 일을 드
렸고 (창14:20), 야곱은 벧엘에서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약속하였다.
(창28:22).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려서 봉헌자와 레위인이 함게 먹으며 즐거
워 하였으니(신14:22-29) 친교를 위한 봉헌이었다. 매 3년마다 소산의 십일조
를 드려 레위인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먹어 배부르게 하라 (신26:12) 하였으
니 헌금은 구제 사업과 사회 복지를 위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주어서 그들이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았으니 (민18:
21,6-28) 헌금은 성직자의 보수로 사용되었고, 성전 관리와 종교 행사의 운영과
관리를 위해 헌물되었다(느10:32-39).
예언자 시대에도 헌금과 헌물을 하였고 (암4:4,말3:8-10). 예수 시대에도 헌금
하였고 (막12:17,눅21:1-4, 눅12:21) 초대 교회에서도 구제와 봉사를 위해 헌금
했다.(고후 8:1-5,9:1-15,행24:17,롬15:26-27).
2) 헌금에 대한 바울의 교훈
(1) 기쁜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
"각각 마음에 정한 대로 하고 아까와하면서 내거나 마지못해 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요, 하나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내는 사람을 사랑하신다." (고후
9:6-7) 하였으니 헌금은 자발적으로 전 수입과 헌금 액수와의 비율을 신앙에 의
해서 정하여야 한다. 헌금은 그 자유로운 경제를 솜씨있게 관리하여 기쁜 마음
으로 드려야 한다. (고후9:7,11,13)
헌금은 자신의 소득의 일부를 바쳐서 헌신을 구체화하는데 의의가 있다. "하나
님은 바쳐진 헌금의 액수보다 돈궤에 남겨진 금액을 보고 계신다"는 말이 있다.
두 렙돈을 바침으로 생활비가 제로가 된 가난한 과부를 예수님은 "이 가난한
과부는 누구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 사람들은 다 자기들의 넉넉한 데서 돈을
넣었으나 이 여인은 구차한 데서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기 때문이다."
(눅21:1-4)고 하셨다.
(2) 헌금은 규칙적으로 계획적으로 미리 준비해야 한다 (고전16:2,고후8:
6,9:5) 헌금은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다"(고후9:7) 다른 선한 일과
같이 헌금도 각자가 자기의 기준에서 규율 있게 해야 한다.
헌금은 예산과 계획에 맞추어서 바쳐야 한다. 성소의 성막을 만들기 위해 가져
온 헌금품이 남았을 때에 그것이 중지되어졌다.(출36:5-7). 반대로 예산액이 부
족하면 추가가 재촉되어졌다.(대하36:5-7). 예산 초과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초과는 주님의 축복의 표시이다.(대하31:10). 그러나 여러가지 모금에 즈음하여
이 만한 예산이면 자기의 "가져온 예물"과 "수입"이면 어느 정도의 필요한지라
고 생각할 수 있는 계획성이 필요하다.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격려를
잊지 않아야 한다. (고후9:6) 인색함이 없는 후한 헌금이 되어야 한다. 많은 추
수를 기대하는 사람은 파종에 인색해서는 안됨을 기억하여야 한다.

(2) 헌금의 표준
어느 종교 의식이든 공통적인 것은 노래와 춤과 헌물이다. 신앙심이 있는 사람
은 자기가 믿는 대상 앞에 보은과 감사의 생각을 물질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 바쳐야 하겠는가?

1) 구약의 시대의 십일조
히브리 민족은 하나님 중심의 민족으로 저들의 전수입의 십일조를 성별하여
하나님께 바쳤다. 아브라함은 연합군을 격파하고 전승하였을 때 축복해 주는 살
렘왕 멜기세덱에게 그 얻은 것 중에서 십분의 일을 주었다 (창14:1-20).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도망하다가 오르락 내리락하는 하나님의 사자를
보고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다"(창
28:22) 고 약속하였다.
레위기에는 땅의 십분의 일 곧 곡식이나 나무 과실의 십분의 일이나 가축의 십
분의 일을 곧 곡식이나 나무 과식의 십분의 일이나 가축의 십분의 일도 여호와
의 것 (례20:30-32)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구약에 보면 그 규정이 일정하지 않
아 일년 수확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 (신12:6-19,14:22-27)와
3년 마다 레위인과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를 위해 드리는 십일조 (신14:28-29,
26:12-15)가 있었다.
말라기는 구약 최후의 선지자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십일조와 헌금을 드리지
않는 것은 도적질하는 것이라 (말3:8)고 지적하였다.
2) 신약의 시대의 헌금
예수께서는 단 두번의 십일조를 언급하셨는데, 하나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서이고 (눅18:12) 또 다른 하나는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에 대한 질
책에서이다. (마23:23). 십일조에 대한 예수의 의도를 두고 학자들 간에는 의견
이 있으나 "마땅히 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가난한 과부의 소유를 다바친 연보
에 대해 그리스도께서 칭찬하신 사실(눅21:4)을 기억하여야 한다.
바울은 기독교 공동체의 헌금 행위를 강조하면서 교회와 교회 활동을 지원뿐
만 아니라 멀리 있는 가난한 교회도 후원해야 한다고 하였다.(고후8:1-5,9:12-
13). 복음 전파를 위해서도 가져 올 것을 주장하면서 기뻐 바치는 헌금을 칭송
하고 있다 (고후9:7).
바울은 고린도 교회로부터 금전적 보조 받기를 거절했다. (행 18:3,고후11:7
-10, 고전 9:18) 그러면서도 그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생활하는 것이 기독교 교
인들의 정당한 권리(고전9:14)라고 주장하였다 (고전 9:7).
성경학자들은 교회가 다음 몇 가지 계획을 발전시킬 만한 근거가 신약 성경 안
에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 얻은대로 수입에 비례하는 내는 헌금.
둘째, 정규적으로 주일 헌금.
세째, 처음 작정한 대로 헌금 하기.
네째, 즐거이 하는 헌금.
다섯째,타인의 곤궁을 돌보려는 의무감에서 하는 헌금.
여섯째,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여 온 마음을 다 바치
는 헌금.
이상의 여러 가지 조건과 얻은대로 저축했다가 바치는 헌금을 충족시키는 것이
바로 십일조이다.
3) 십일조 헌금의 필요성
소득의 십분의 일을 헌금하라고 강조해야 할 필요성이 몇가지가 있다.
첫째, 그리스도인은 청지기라는 정신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자기 삶을 그리스도에게 바쳤다는 것이다. 진실한 그리스도의
제자이라면 그 지도와 안애를 받아야 한다.
둘째, 십일조는 성경적 근거가 있을 뿐 아니라 청지기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금할 의무가 있다.
세째, 그리스도인들이 헌금하는 습관을 조직적으로 들이지 않을 때에는 청지기
직분에 심각한 위험을 던져 준다. 교인을 돌보아야 할 교회로서는 교인을 주 안
에서 성장하도록 지도하여야 한다. 십일조 헌금을 역설하면서 주의 하여야 할
점이 있다.
첫째, 받기 위해 낸다는 사상이다 축복은 어떤 보상은 아니다.
둘째, 금전의 십일조만이 제일이 아니다. 청지기는 십일조를 냄으로 책임을
다 한 것이 아니다. 재능과 시간과 노력도 바쳐야 한다.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신다는 (눅12:48).

(3) 헌금의 관리 ( 요 12:5-6)
바울은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2)고 하였으니, 교회 헌금
을 맡은 관리자가 불충성해서는 아무것도 안된다. 가롯유다는 돈을 맡아 자기
유익을 위해 사용한 불의한 청지기이었다.
1)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여야 한다.
교회의 재정을 맡아 다스리는 관리자이면 경제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
러나 싸게 먹이는 것이라든지 싼 물건으로 고집하는 깍쟁이 근성이 아니고 이상
을 어느 정도 달성하는가에 관계된다.
주인이신 하나님께 결산보고가 되도록 돈을 사용하는 것이 경제적인 것이다.
주인의 달란트를 받아 땅을 파고 감추어 둔 종은 한 푼도 쓰지 않았으나 "악
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을 받았다 (마25:26). 어리석은 부자는 많은 소출
을 저축만 하고 사용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으나 경제적이라고 하지 않고 "어
리석은 자"라고 했다. (눅 12:20).
교회에서 재정을 맡은 관리자가 경쟁만을 생각하는 것은 버려야 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여야 한다
(딤전6:17). 재정을 올바르게 사용하여 즐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는가?
" 교회라는 곳은 비용을 들이는 곳이다"고 어떤 신학자가 말했다.
교회는 어떻게 돈을 적게 들여서 운영할까가 아니고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훌륭하게 경비를 사용할까를 생각하여야 한다.
2) 교인의 뜻대로 사용되어야 한다.
교회의 재정은 교인들의 결의 기관인 공동의회에서 결정된다. 그러면 교회
의 재정은 교인 총의인 공동의회에서 결의한 예산안에 따라 사용되어야 한다.
헌금자의 뜻에 반하여 그 이외의 용도에 관리자가 임으로 지출되어서는 안된다.
즉 예산안을 대폭으로 수정함에는 공동의회를 소집하여 갱정예산이 결의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정된 헌금은 용도에만 사용되어야 한다.
재정부원이나 회계는 자신이 헌금을 충실히 하여야 한다. 다른 교인들이 정성
으로 드린 헌금을 취급하는 관리자가 헌금에 충실하지 않으면 그 헌금을 취급할
자격이 없다.
교역자의 생활비는 사례금이나 구호가 아니다. 교역자는 그것을 받을 권리를
가지면 (고전9:1-14)따라서 교회와 신자들은 지급해야 할 의무가 있다. (갈6:6)
인색함이 없이 드려야 풍성한 축복을 받는다 (왕하4:9-10).
3) 헌금은 분명하게 취급되어야 한다.
바울은 관리자로서의 명예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또 헌금자가 안심하고
헌금을 위탁하도록 하기 위해 여려 가지 배려를 했다. 고린도 교회 대외 봉사비
를 모금하기 위해 디도와 다른 한 사람을 추가해서 파견했다.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거액의 연보로 인하여 아무도 우리를 훼방하지 못하게 하려함이니
이는 우리가 주앞에서서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고후8:20-21)고 했다.
예루살렘 교회에 송금할 때도 "내가 이를 때에 너희의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
당하면 저희가 나와 함게 가리라"(고전16:4-6) 고 신중한 한 절 안디옥 교회도
예루살렘 교회에 보낼 구제금을 "바나바와 사울의 손에 맡겨서"보내었다.(행11
: 30) 이렇게 충실한 관리가 보증됨으로 안심하고 헌금을 내게 된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교회의 재정은 지울할 경우 될 수 있는 한 영수증을 받아야 한다.
물품 구입 등은 가능하면 두 사람이 맡아야 한다. 매달 제직회에 보고하며 연말
에는 반드시 감사를 받아야 한다.













 
출처 : 주님의 시선
글쓴이 : juapost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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