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인물 누가
누가
사람을 보면 그 사람 속에 인격이 보입니다. 그 사람속에 사상이 보입니다. 그래서 역사상 아름다운 길을 걸어갔던 사람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누가는 의사입니다.
누가는 성경 66권 중에 두 권을 썼습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누가가 쓴 책입니다. 만일 사도행전을 누가가 기록하지 않았다면 초기 기독교 역사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누가에 대하여 공부하려고 합니다.
누가의 특징이 있습니다.
1.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고 일한 사람입니다.
누가복음이나 사도행전을 쓰면서 자기 이름을 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산에 가서 바위를 보면 자기 이름을 새기어 놓은 것을 많이 봅입니다. 외국 여행 가보면 높은 산 휴게실 벽에 이름들이 적혀 있습니다. 어지럽습니다. 그런데 가장 많이 이름이 한국인 이름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그런 면에 가장 앞장 서 있는 것같습니다. 우리 나라 속담 때문에 그런 것같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누가는 자기 이름을 남기지 않고 훌륭한 책을 두 권 썼습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일한 누가입니다.
2.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입니다.
누가는 누가복음을 쓰면서 이렇게 시작하였습니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눅 1;1-3)
누가는 누가 복음을 쓸 때에 이상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근원부터라고 하였는 데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근원은 하나님입니다. 누가는 언제나 근원부터 살피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근원은 성령의 감동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성령으로만 하는 사람입니다.
3. 충성된 사람입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놀라운 고백을 하였습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구리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니 너도 저를 주의하라 저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딤후 4;9-16)
가장 친한 친구 한 명이 신장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당뇨에 신장이 합병이 되고 나니 치료 불가능 상태입니다. 거의 일년간 하루에 4번을 투석을 하느라고 그렇게 목욕을 좋아 하던 친구가 샤워만으로 살고 있습니다. 하루 네 번 투석을 하자니 어디 갈 수도 없습니다.
나는 가끔 전화만 하다가 지난 목요일 그 친구를 차에 태우고 야외로 나갔습니다. 그리고그가 좋아 하는 갈비를 대접하였습니다. 돌아 오면서 차 뒤에 앉아 침묵을 지키던 그 친구는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친구야! 신장이 이렇게 중요한 것인 줄 몰랐어.처음에는 친척과 친구들이 가끔 전화를 주더니 요즈음에는 무엇이 그렇게 바쁜지 전화 한 마디 없어. 그런데 이렇게 와서 하루를 같이 있어주니까 그렇게 좋다.>
끝까지 함께 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요?
나는 그 친구의 눈물을 자동차 백밀러로 보면서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저 친구 옆에 끝까지 있어 주어야지.>
그러면서 내가 저렇게 아파서 고독할 때 끝까지 내 옆에 있어줄 친구가 누구인가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한번 동지 평생 동지>라고 외치면서도 자기에게 조금만 해가 되면 등을 돌리는 세상입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증거하러 다닐 때 엄청난 무리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바울이 드로아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는 지 창가에 걸터 앉아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두란노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따랐는 지 바울의 제자들이 바울대신에 바울이 사용하던 앞치마나 손수건을 올려 놓고 안수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 동안에 바울을 따르던 사람들에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가버렸습니다.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가버렸습니다.
디도는 달마디아로 떠났습니다.
두기고는 에베소로 심부름을 보냈습니다.
알렉산더는 바울에게 피해를 주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고백합니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누가는 로마 감옥에 바울과 같이 있습니다. 바울은 누가와 함께 감옥에 있으면서 자기 주변에 있던 이들을 하나하나 짚어 보니 기가 막혔던 모양입니다. 끝까지 함께 있는 누가 그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진한 감정을 느끼며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우리는 성경에서 나오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엘리멜렉이라는 남자와 나오미라는 여자가 결혼하였습니다. 행복한 결혼생활이었습니다. 아들만 둘을 낳았습니다. 말론과 기룐이었습니다. 그러나 고향에 흉년이 들어서 부득이 그 땅을 떠나지 않으면 굶어 죽게 되었습니다. 네 식구는 흉년을 피하여 모압땅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이 곳에서 비참한 아픔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나오미는 남편이 이 세상에 없는 동안에 두 아들을 결혼시켜 두 자부를 맞이 하였습니다. 10년 가량 새로운 시절이 흘렀습니다. 청천벽력같은 사건이 또 생겼습니다. 두 아들이 죽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세 과부만 남은 가정이 되었습니다. 남편 생각, 두 아들 생각, 고향생각 모두가 아픔이었습니다. 나오미는 두 자부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습니다. 큰 자부 오르바는 돌아 갔습니다. 그러나 둘째 자부 룻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1;16-17)
이렇게 끝까지 함께 한 룻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 큰 복을 받았습니다.
(1) 일곱 아들보다 귀하다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는 네 생명의 회복자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가 낳은 자로다>(4;15)
일곱은 완전수입니다. 아들 7명을 둔 것보다 이런 자부를 둔 것을 어머니 나오미는 늘 자랑하였습니다.
(2) 수많은 훌륭한 왕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룻은 보아스와 결혼하여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왕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솔로몬을 낳았습니다. 그 후 그 후손에서 많은 왕이 나왔습니다.
(3)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룻의 이름이 기록되는 최고의 영예를 안게 되었습니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낳고>(마1;5-6)
한번 맺은 혈연은 끝까지 가야 합니다.
세상에서 접하면서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끝까지 함께 하는 이가 되어야 합니다. 이용하고 버리는 인간관계가 아니라 서로 끝까지 돌보고 사랑하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누가가 그런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와서 물었습니다.
<누가 내 이웃입니까?>(눅10;29)
예수님은 비유로 대답하셨습니다.
길거리에서 강도만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살려 달라고 아우성쳤습니다. 제사장이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습니다. 레위인도 그를 보고 도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이 지나가다가 강도만난 이를 보고 달려 갔습니다. 기름과 포도주로 상처를 씻었습니다. 그리고 싸매주었습니다.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까지 옮겼습니다. 주인에게 돈을 주면서 말했습니다.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 올 때에 갚으리라>(눅10;35)
길거리에서 강도만난 이를 데리고 가서 치료하여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 오는 길에 더 드는 것은 갚아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끝까지 함께 하는 이가 이웃이라고 말했습니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끝까지 함께 하는 이를 우리는 진정한 의리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어느 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수천 명의 신하들이 임금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단 한 신하가 임금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왕이시여! 제가 일생 폐하를 모셨습니다. 이제 폐하가 먼저 저 세상으로 가시려고 하는 데 끝까지 제가 모시고 싶습니다. 먼저 죽어 폐하를 영접하겠습니다.>
그리고 자살하였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함께 하려는 심정으로 인간관계를 한다면 틀림없이 아름다운 관계가 될 것입니다.
나는 부산에서 무역업을 크게 하시는 장로님과 식사를 하였습니다. 그가 일본과 큰 생선 무 역을 하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같이 모시고 있던 사장이 부도로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회사가 기울자 사원들은 잽싸게 약싹빠르게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장로님은 <내가 책임을 지고 감옥에 들어가면 사장님이 이 회사를 다시 살릴 수 있다. 그러나 사장이 들어가면 회사도 끝이고 나도 끝이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모든 죄를 다 짊어지고 감옥에 갔습니다. 감옥 살이를 6개월 하고 나왔더니 사장님이 회사를 차려 주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 사장님 회사보다 더 큰 회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부산에 경찰서가 6개인데 매 주일마다 아침 일찍 빵과 우유를 가지고 방문하기를 10여년 결석하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일본에 갔다가도 토요일이면 꼭 돌아와 예배를 드리고 월요일 다시 출국하며 본 교회를 지키시는 분이었습니다.
끝까지 함께 하는 이의 심정으로 인간관계를 맺으십시오.
누가와 같이 하면 됩니다. 누가는 끝까지 함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4. 섭리의 사람입니다.
누가는 바울 옆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평생 가시와 같은 병이 떠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모든 면에서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쓸 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빌3;4-6)
바울은 모든 면에 완벽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흠이 있다면 가시와 같은 병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가시와 같은 병은 없애 달라고 하나님께 3번이나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하려 하심이니라.......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7-10)
바울은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가가 옆에 있으면서 바울을 보살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섭리로 사용하신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하게 세계 선교사 바울을 바울되게 하는 데 사용하였던 분입니다. 만남은 축복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나만 장군을 잘 압니다.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저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왕하5;1)
나아만은 국방부 장관이었습니다. 큰 자였습니다. 존귀한 자였습니다. 큰 용사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가시가 하나 있었습니다. 문둥병자였습니다. 불치병이었습니다. 누구도 그에게 감히 접근하지 못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집에서 일하고 있는 하녀가 말했습니다.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왕하5;3)
한 나라 장관이 하녀 말을 들었습니다. 겸손하여졌습니다. 장관은 엘리사에게 갔습니다. 엘리사는 만나 주지도 않고 요단강에 가서 물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사람을 시켜서 한 마디 할 뿐이었습니다. 나아만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났습니다. 너무 건방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참고 요단강을 가보니 너무나 시시한 강이었습니다. 개울같았습니다.
분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왕하5;12)
그러나 종들이 이왕 왔으니 한번 순종하라고 하였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요단강에 7번 몸을 씻었습니다. 나아만은 계집종을 만나서 불치병을 고쳤습니다.
만남이 축복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가는 어떤 사람입니까?
1.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고 일하였습니다.
2.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입니다.
3. 충성된 사람입니다.
4. 섭리의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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