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안에서의 자유 롬8:1~11
◑1. 당신은 자유합니다
▲8:1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1절은 다 밑줄을 그으시면 됩니다.
사탄이 우리를 참소 할지라도, 하나님이 그 참소를 받아 주시지 않습니다.
또한 세상이 우리를 정죄 할지라도, 그 분의 보혈로 우리를 덮어 주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변호해 주실 것입니다.
악한 영적인 세력이, 우리의 마음 가운데 끊임없이 정죄감을 준다 할지라도
성령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마음 가운데 영적인 해방을 선포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참 감사한 것이죠.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나는 정죄받지 않습니다.
(저를 한번 따라 해보세요) "나는 죄의 권세에서 해방 되었습니다!" 아멘!
여러분 이것을 교리적으로, 성경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그 다음이고
먼저 믿음으로 선포하시는 거예요.
'나는 죄의 권세로부터, 사망의 권세를 부터, 저주의 권세로부터 해방되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롬6~8장을 지금 보고 있는데 '성화' 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롬6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해서 얻는 의에 대해서
7장에서는 율법으로부터 자유케 된 성도들의 자유의 상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두 가지 법이 있어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절망하는
그리스도인의 내적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8장에서는
'그렇게 얻은 의와 자유가, 어떻게 실제로 경험 될 수 있는가?' 라는 이슈를
성령님의 임재하심과 인도하심으로 설명하는
아주 중요한.. 성화에 거의 꽃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본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성경 전체에서 로마서 8장이 가장 중요하다.. 이렇게 얘기할 정도로
중요도를 갖고 있는 본문입니다.
그래서 8장에 소제목을 달아본다면 "성령과 성화"
성화의 핵심은 성령님입니다.
8장은, 6장부터 마찬가지였는데, 이미 예수님을 믿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말씀이에요.
그래서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이 나오는데
이 둘은 신자와 불신자를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둘 다 그리스도인 인데, 영적인 사람과, 육적인 사람이 나누어진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적 자유를 얻었는데
왜 자꾸 마음 가운데 죄책감에 빠지게 될까요?
이 죄의식의 문제에 관해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나타나는 두 가지 양상이 있습니다.
-죄의식이 너무 희박한 교인들
-또 한편으론 죄의식이 너무 강박적으로 너무 심각한 교인들이 있어요.
우리가 세상 속에 살아가면서, 세속적인 가치관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교인들은
죄의식이 너무 희박하다 못해, 거의 없다시피 한 분들도 있어요.
그냥 세상에서 풍요롭고 재밌고.. 그런 것이면
오늘날 쾌락주의 가치관이 워낙 압도적인 시대이기 때문에
그냥 그것이 다 좋은 것이고 괜찮은 것이다.. 라고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성령님이 내 안에서 근심 하시는데도
전혀 영적 민감도가 없기 때문에 느끼지를 못 하는 거죠.
그리고는 오히려 영적인 합리화를 합니다.
이것이 나름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술이고
이것이 사실은 하나님이 나의 인생에 부유하게 누릴 수 있도록 주신 복이다..
오히려 내가 이렇게 (부유하고 즐겁게)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라고 까지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날 교인들이 왜 이렇게 세속적인 관점으로 많이 빠지게 되었는가요?
우리 모두는 교회를 다니는 교인들입니다.
그러나 명확하게 얘기하자면, 교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아닐 수 있어요.
그런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도
여전히 세속적인 삶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거룩한 성도'라고 부르기에는 어려운 거죠.
△자 그러면 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죄의식이 희박해져 가는가요?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 의식이 희박해져 있기 때문이에요.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포인트입니다.
그러니까 정반대로 '그래도 내가 교인인데, 윤리의식을 갖고 살아야지..'
여러분, 인간의 윤리 도덕성에 호소를 한다고 해결 되나요? 아니요.
윤리의식을 붙잡으면 죄의식이 올라오게 되어 있어요.
이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보았던 율법주의의 패턴입니다.
여러분, 율법주의적 윤리의식이나 죄의식으로는
절대로 여러분의 영혼이 자유해 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종교인은, 결국 가짜 경건으로, 거짓 위선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윤리의식이나 죄의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의식이, 여러분 안에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과연 나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그 동행하는 삶 가운데 누리는 풍성한 은혜
그리고 예리한 진리의 감각이 살아있는 인생을 살고 있는가요?
이런 하나님의 임재의식이 분명한 삶을 살려면, 예배가 살아나야 돼요.
여러분의 말씀 생활이 살아나야 되고, 기도생활이 살아나야 합니다.
형식적인 신앙생활이 아니라,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그런 신앙고백이 사랑고백이 되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영성이 살아나야만.. 개인도 공동체도, 도덕성이 살아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이 회복되어야만.. 개인뿐만 아니라, 가정도, 일터도, 사회도
온전한 회복을 경험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인간의 4가지 영적인 상태가 있습니다.
1) 타락 전 인간은 죄를 지을 수 있는 상태였어요.
인간은 죄를 지을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에덴동산에서의 아담은,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았지만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도 있는 상태였어요.
2) 타락 후 인간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상태였죠.
그러나 타락한 후에 인간은, 이 죄가 완전히 뿌리를 내려 버렸기 때문에
이제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3) 구원받은 인간은 죄를 안 지을 수 있는 상태
근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저와 여러분은
죄를 안 지을 수 있는 상태가 된 거예요.
죄를 이길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4) 천국에 들어간 인간은 죄를 지을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천국에 들어가면, 죄를 지을 수 없는..
죄와 사망과 저주의 권세가 다 사라진 영역이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1)과 3)은 사실 같은 얘기잖아요.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죄를 안 지을 수도 있는 상태!
그럼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어요.
'우리는 아담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상태인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결코 그럴 수 없는 것은, 아담은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죄를 지은 것이지만
저와 여러분의 경우에는, 이 선택권이 우리에게 다시 주어졌다는 것이,
우리는 죄와 사망의 밑바닥까지 완전 떨어졌던 사람들이잖아요.
그런 우리가 죄를 이길 수 있는, 죄를 거부할 수 있는, 죄를 안 지을 수 있는 상태로
엄청난 반전을 이루게 된 거예요. 할렐루야!
다시금 우리에게 거룩의 가능성이 현실이 된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는 (변화된) 사람들이 된 거예요.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여기서 '새로운 피조물'이 헬라어로 '새로운 창조'라고 돼 있거든요.
아담을 창조하셨던 것처럼
예수 안에서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존재로, 새롭게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는 정죄함이 없다'
라는 1절과 2절이
롬8장 전체의 결론을, 서두에서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는 정죄함이 없다' 라는 것을, 세상 방식으로 오해하시면 안 돼요.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유전무죄 무전유죄 이런 표현을 쓰잖아요.
아무리 죄가 있는 사람도, 최고의 변호인 단을 꾸리면, 있는 죄도 덮어버릴 수 있는 거잖아요.
반대로 아주 죄가 없는 사람도, 상대방이 압박하면,
내가 스스로 변호할 만한 아무 재정적인 능력이 없으면, 이대로 끝나는 경우들이 간혹 생기는 거지요.
그렇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죄가 없다' 는 말은
있는 죄를 없는 것으로 거짓말을 하거나 덮어버린다.. 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죄인 중의 괴수' 라는 것을 철저하게 고백 하였기 때문에
나의 모든 죄를 씻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나를 완전히 죄의 권세로부터 해방시켜 주셨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굉장히 역설적인 것이죠.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진실로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절대로 자기 자신을 정죄하며 사시면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은 다시는 정죄함을 받지 않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에요.
△근데 참 안타까운 것은 무엇이냐면
세상 사람보다 그리스도인들, 교인들이 죄에 대한 감각이 예민하잖아요.
근데 많은 성도들이 이렇게 만나 보면, 정말 마음이 착한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이런 착한 교인들이, 자기 자신을 너무 지독하게 정죄하면서
죄책감을 빠져서 사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내가 복음을 받아들였는데
그 복음이 주는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거에요.
어떤 분들은 신경쇠약에 빠지고, 정신질환에 걸리고
우울증과 자살충동.. 그래서 크리스천들 중에서 자살 하시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어떻게 교인이 그럴 수가 있느냐?
자기 정죄감이 그렇게 무서운 거예요.
자기가 자신을 스스로 정죄하는 거죠.
사탄도 감히 나를 정죄할 수 없어요. 물론 하나님도 나를 정죄하지 않으세요.
그런데 내가 나를 정죄하는 거예요. 그 정죄감만큼 인생을 무너뜨리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착한 마음을, 물론 이것도 상대적인 것이지만,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뭐냐면 '내가 착하게 살아야 되는데.. 착하게 살아야 되는데..' 하는
그 착한 마음이 당신을 구원해주지 못 한다는 거예요.
우리를 구원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신 줄로 믿습니다.
착한 마음이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
그 마음은 약한 마음이 됩니다.
그러나 그 착한 마음 가운데, 그리스도의 보혈이 덮히면
강건한 마음이 될 줄로 믿습니다.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죽음의 법에서 여러분을 해방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죽음의 법을 뛰어넘는다...
죄와 죽음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킨다...
사실 세상에 그 어떤 사람도, 죄의 사슬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없고
율법의 정죄로부터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은 지구상에 있는 어떤 물체도, 중력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과 같은 거죠.
하지만 생명을 주시는.. 영적인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면
중력의 법칙도 깨트리고 창공으로 비상하는 새처럼
우리 영혼을 자유케 해 주신다는 거에요.
△제가 지난주에 뉴욕 뉴저지에서의 집회를 마치고 목요일 밤에 돌아왔어요.
비행기를 제가 오래 타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야 이 무거운 동체가 어떻게 그렇게 오랜 시간을 이렇게 공중에 떠서 갈 수 있을까?'
대단한 일이죠.
미주 노선에 747 여객기.. 이렇게 제가 검색해보니까
비행기 자체 무게가 약 170톤, 그런데 연료를 거의 그만큼 넣더라고요.
거기에다 승객, 화물 이렇게 다 합치면 한 350~360톤이고,
그리고 최대이륙중량은 388톤으로 나오더라고요.
거의 400톤인데, 거의 40만 Kg이죠.
여러분 1Kg 짜리 물체도 공중에 뜰 수 없는 겁니다.
그런데 40만 Kg의 물체가 10시간을 넘게 날아가는 거잖아요. 엄청난 속도로요.
비행기의 원리를 보니까, 땅에서 '중력'이 잡아당기지만
물체가 빠르게 공기와 부딪히며 달려가면 '양력'이 발생합니다. *부양하는 힘
그래서 죄의 문제가 끊임없이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율법의 정죄가 끊임없이 우리의 발목을 잡아요. 이건 중력에 비유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시면
우리 영혼을 하나님의 은혜 창공으로 띄워 주시는, 영적인 양력이 발생하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래서 '내가 이렇게 은혜 가운데, 성령 충만하게 내가 승리하는 삶을 살다니..'
이렇게 내가 나 자신을 보면서도 놀랄 때가 있잖아요.
그것은 성령님이 영적으로 나를 띄워 주시는 힘이 발생하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여러분의 삶 가운데, 복음의 엔진이 멈추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상으로 돌아가거나, 율법으로 돌아가지 마세요.
△또 한 가지는 성령의 기름이 떨어져도 안 됩니다.
내가 지금 신앙생활을 영적으로 잘 하고 있다고
'아 이제 뭐 너무 그렇게 열심히 안 해도 되지..' 약간 느슨하게 이렇게 생각을 하시면 안 돼요.
왜냐면 비행기가 그렇게 고공을 알고 있을 때도
매 순간 중력이 아래로 잡아당기고 있기 때문이죠.
또 앞을 가로막는 (저)항력도 방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엔진의 강력한 힘, 즉 부양하는 양력이 있기 때문에
비행기가 날아가고 있는 것이죠. 양력이 중력과 (저)항력을 극복하고 이기는 거죠.
어떻게 보면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조금 뭐 여유 있게, 편안하게, 느슨하게 살고 싶을 때도 있죠.
성령 충만하게 산다는 것은, 매 순간 내가 영적으로 긴장해야 되고, 힘든 삶입니다.
이렇게 생각 될지 모르지만
여러분, 성령충만하면 죄의 중력으로부터, 율법의 (저)항력으로부터도
자유하는 특권을 누리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그 특권을 누리며 살아야죠.
비행기가 추락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엔진을 돌리고, 계속 기름을 쓰더라도 비행기가 날아가는 것이 축복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성령 충만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여러분 말씀으로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히 채우세요.
우리가 세상에서 많은 노래를 들을 수 있지만
찬양을 많이 들으시고, 말씀 많이 읽으시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시간이 행복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신앙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내가 영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살것이냐
-육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살것이냐 ... 이건 당신의 선택인 거죠.
그게 앞으로 이어지는 8:3~11절의 설명입니다.
◑2. 두번째 나누고 싶은 주제는,
-육신을 따라 살것이냐
-성령을 따라 할 것이냐 .. 입니다.
▲8:5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의 일을 생각하지만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의 일을 생각합니다.
8:6 육신의 생각은 죽음이지만 성령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을 적대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더러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
8:8 육신 안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5절에,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에 밑줄을 그어보세요.
그리스도인 일지라도 육신을 따라 살면, 육신의 생각을 하게 되어 있고
육신의 생각의 결론은 사망이라는 것이죠.
육신을 따라 사는 육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면
하나님께 순종할 수도 없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고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게 아니라, 근심케 하는 사람이 됩니다.
아니 그리스도인 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이것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분명한 신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이런 영적인 특권과 자유를 스스로 빼앗기면서 사는 거예요.
일제 치하 때, 우리 땅 우리 민족의 영역 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주권행사 못 했잖아요.
아무런 자유를 누리지 못했죠.
살아있지만 죽은 것처럼 살아야되는 고통을 겪는 시절이었죠.
올해 8.15 광복절이 77주년이었어요.
이 광복절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자유대한민국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증거되어서
영적인 광복을 경험한 것이, 138년 이 되었어요. *1885~
그러면 과연 우리는 그 수많은 선교사들이, 자신들의 포장된 성공과 건강과 물질을 포기하고
이 땅에 와서 목숨 걸고 복음을 전해줬는데
우리의 믿음의 열조들, 선조들이
정말 구한말에 흑암과 같은 그런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여서, 이 생명의 복음에 자신들의 인생을 걸고
지금까지 왔고, 순교도 마다하지 않아서 여기까지 왔잖아요.
그러면 과연 우리들은, 자유대한민국에서 육신의 자유는 누리고 있지만
한국 교회가 영적인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오늘날 한국 크리스천들이 영적인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요?
△최근에 한국교회에 관련된 자료를 보면서
한국교회가 마이너스 성장을 한 지 올해 2022 로 정확하게 29년째 입니다.
매년 29년째 조금씩 추락한 것입니다. 내년이면 30주년입니다.
한 세대가 무너진 것입니다.
여러분, 한국교회가 부흥 할 때 집집마다 복음을 전하고
마을마다 도시마다 교회를 세웠다고요.
그런 부흥의 행전이 멈추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한 세대가 지났어요.
근데 또 다른 한 세대가 무너지면, 다시 한국교회는 일어나기가 어려울 겁니다.
30년을 비행기가 서서히 추락했는데, 또 다른 30년을 추락한다고요?
그러면 정말 정말 다시는 방향을 반전시킬 수 없는, 반등 시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교회는,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을 양산 하고 있지 않은가요?
세상적인 복음만 선포하고, 영적인 삶에 대해서 도전하지 않는 교회가 되어 있지 않은가요?
마치 고린도 교회와 같은 것이죠. 고린도전서 3:3절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고전3:3
오늘날 한국 교회 부흥회 소식들은 갈수록 안 들리고
대신에 어느 교회가 싸운다, 분열됐다 하더라.. 이렇게 헤게모니 다툼을 하고
또한 도덕적인 문제, 재정문제로 교회가 시끄러운 이야기들, 그 소식만 가득하잖아요.
29년째 마이너스 성장을 해서 교회가 쇠퇴 일로에 있는데
팬데믹으로 인해서 아예 문을 닫는 교회들이 속출하고 있어요.
그리고 제 동기 목사님들 가운데도, 무임 목사들이 갈수록 늘어납니다.
목회자가 되겠다고 헌신했고, 목사안수 까지 받았는데.. 사역할 곳이 없는 거예요.
교회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요.
청년들, 다음 세대가 교회를 떠나가고 있습니다.
요즘은 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에서 '교회 다니는사람?' 손들어보라 그러면
서 너 명 밖에 없는 거예요.
대학교는 더 심합니다. 대학생 100명 중에 질문하는
두 명이 그리스도인 이라고 대답한답니다.
앞으로 몇 년이 지나면 한 명.. 그 다음에는 없어지는 시대가 올 거예요.
우리가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요?
여기 교회 안에 있다 보면, 굉장히 우리가 풍성하게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한국교회가 얼마나 냉각되어 있는지에 대한 체감 온도를 못 느끼게 돼요.
지금 신학교들이 이미 지원율이 다 차지 않아서,
그냥 원서만 넣으면 들어가는 신학교들이 굉장히 많아졌구요.
과거부터 가장 지원율이 높다고 이야기하는 장신대 신대원도, 요즘 경쟁율이 1.3 대 1 입니다.
제가 지원해서 들어갈 때는 6 대 1, 7 대 1,
심지어 5년 재수해서 들어오는 학생들도 있었어요.
전국에서 정말 좋은 분들이 모였어요.
이제 몇 년 안 가서, 장신대 신대원도 그냥 원서만 내면
들어갈 수 있는 학교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제가 지금 이야기 드리는 것은, 이건 슬픈 얘기인데 제가 하나 할게요.
제가 밴쿠버 밴쿠버 온누리교회에서 사역을 할 때
1년에 두 차례 한국의 본교회에서 목회사관학교, 또는 부흥집회가 있을 때
저희가 한국으로 들어왔거든요.
그래서 한번은 제가 양재캠퍼스 수요여성예배에서 설교를 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은혜가 있는 예배였어요. 그래서 예배를 잘 마쳤어요.
그런데 한 권사님이 맨 뒤에서 제게로 달려 나오더니
'목사님 큰일 났습니다. 제 딸이..'
'혹시 따님께 무슨 일이 생기셨나요?'
'제 딸이 목사랑 결혼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집이 덜썩거리고, 큰 일 났습니다)
순간 제가 너무 당황했어요. 그래서 무슨 기도를 해드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나요.
그래서 제가 그분에게 자초지종을 물어 봤어요.
그 사람이 이상한 목사라서, 그러면 이상한 사람이니까
자기 딸이 목사랑 결혼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것인지...
그게 아니고, 그저 목사이기에 결혼을 반대하는 것이라면,
굉장히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그 자리에서 제가 말씀드렸어요.
상당히 제가 젊었을 때였고, 저도 순간 너무 당황했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갈 사람은 돌아가고, 남아서 기도할 사람은 기도하는 시간인데,
그 권사님은 목사인 제게 나아와서,
'목사 사위 될 남자가 자진해서 떨어져 나가도록 기도해 달라'고
강대상 앞으로 나와서, 기도부탁을 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의 자녀가, 목사나 사모나 선교사가 되려고 할 때
'야, 너는 깜(자격)이 안 돼,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니?'
왜 그렇게 얘기하시나요?
내 자녀가 힘든 길로 가지 말라는 거잖아요.
인생의 편한 길, 좋은 길로 가라는 거잖아요.
그러면 내 자녀와 내 가정만 행복해서
다음 세대 한국교회를 어떻게 하시겠어요?
하드웨어가 있고, 교인들만 모여 있으면 좋은 교회가 될까요?
좋은 목회자들이 세워지지 않으면, 한국교회를 그 다음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금 우리 코앞에 닥쳐 있는.. 아니 그 한가운데 영적 현실이에요. 지금 한국교회 현실입니다.
△올 여름 팬데믹 체제가 상당히 완화되면서
많은 교회 청년부들이 수련회를 재개했어요. 3년 만에!
여러 교회에서 저를 강사로 불러주셔서
전국의 여러 도시들을 다니면서 청년 집회를 인도했습니다.
그러면서 '야 이렇게 뜨겁게 예배하는 청년들이 아직까지 있구나, 한국교회에 소망이 있구나!'
제 마음에 드는 생각은, 정말 지금이 한국 교회를 반전시켜야 될 마지막 기회인 거예요.
지금 우리가 이걸 반등시키지 않으면.. 지난 30년을 잃어버렸는데
또 다른 30년은, 반등의 30년이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20~30년 전에는 선교사 콜링 하는 집회를 했지만
지금은 목회자 콜링 하는 집회를 해야 될 때가 된 거예요.
그래야만 한국교회를 살릴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어떤 성도님이, 3년 전에 첫 번째 이메일이 왔는데
그리고 나서 매년 딱 가을 그때에 이메일을 보내십니다.
15살 아들이 갑자기 뇌종양으로 수술을 하게 됐고
수술이 잘못돼서 두 번째 수술을 했고
그리고 양쪽 눈에 시력을 다 잃게 되는.. 실명을 하게 됐어요.
그러니까 그 부모의 마음이, 너무나 그 절망감에 빠지는 거예요.
하나님을 원망하고 '나도 죽어야 겠다..' 이렇게 죽음까지 묵상하게 되고..
여러분 이런 상황이 되면, 대부분은 하나님과 가까웠던 사람도 하나님과 멀어지는 거 잖아요.
근데 최근에 한 집회에서, 이 부부 두 분을 직접 만나게 되었고
갑자기 집회가 끝났는데, 저를 찾아오셨더라고요.
이메일로 대화하다가, 직접 뵙게 된 것이죠.
그 3년이 지나서 18살이 된 그 아들도 보게 됐어요.
그리고는 제가 너무 충격을 받은 거에요.
왜냐면 그 3년 동안, 아들이 실명하게된 사건을 하나님의 경종으로 받아들이고
이 분들이 사회적으로 본인들의 분야에서 나름 최고의 지위를 얻고
모든 풍요로움을 누리면서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살았지만
그때는 그냥 하나님과는 형식적인 관계로, 거리를 두고 살았는데
이제는 3년 전부터, 말씀 앞에 엎드리고, 새벽마다 예배당에는 가서 엎드리고
영적인 크리스천으로 완전히 바뀐 거예요.
이렇게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있을까?
이렇게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이 있을까?
행복한 부부가 되어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 아들이 중고등부에 다니고 있다고 해서
제가 가서 기도를 해 주려고 가서 보니까
그 아들이 찬양팀에서 섬기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너무 밝고 행복한 얼굴로 다윗처럼 예배를 드리는 그 아들!
(아들 왕)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통해서 선한 일을 많이 이루실 겁니다.
나는 하나님 나라의 에이전트입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그 아들을
하나님께서 다윗처럼 다니엘처럼 존귀하게 세우지 않으시겠습니까?
△여러분, 이제 결정하셔야 되는 거예요.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팬데믹 3년의 고통을 우리가 여전히 겪고 있잖아요.
근데 지금 또 다른 팬데믹이 올 수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수많은 자연재해를 겪으면서, 이 지구의 나이가 얼마 안 남은 것은 우리가 보고 있는 거잖아요.
-여러분은 그냥 육적인 크리스천으로 계속 살 것인가요?
-아니면 크리스찬으로 살 것인가요?
이 선택의 갈림길에 우리 모두가 서 있는 것이고
한국교회에도 이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는 거예요.
▲8:9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거하시면 여러분은 육신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8:10 그러나 그리스도가 여러분 안에 계시다면 몸은 죄로 인해 죽으나 영은 의로 인해 살아 있습니다.
8:11 예수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이 여러분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자기 영으로 인해
여러분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
9절에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거하시면' 에 밑줄을 그어 보세요.
성령이 내주하시면, 몸은 쇠할지라도 영은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11절에 설명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망의 권세에서 일으키신 그 부활의 능력이
성령을 통하여서,
죽어 갈 수 밖에 없는, 썩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의 인간의 육신도 살려내신다는 거죠.
죄에 완전히 깊이 빠져 있는 인생이었는데
그 사람이 거기서 일어나 거룩을 지향하며 살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난다는 겁니다. 할렐루야!
이게 부활의 능력의 역사라는 것이죠.
우리는 크리스천입니다. 리틀 크라이스트, 작은 그리스도란 뜻이잖아요.
크리스천이란 이름표가 있는데
우리가 세속에 빠져 살거나, 율법에 치우쳐서 살면
이름 값도 못 하는 거예요.
그러나 이제는, 이 세상을, 이 대한민국의 영적 현실을 반전시킬
영적인 신 인류가 등장을 해야 합니다. 이건 진짜 신인류 인 거예요.
모든 사람이 죄와 사망과 저주의 권세 아래 있는데
이거를 뚫고 나올 수 있는 사람들, 성령의 사람들, 하나님의 사람들!
저와 여러분이 그런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책에도 썼지만 '호모 비블리쿠스'
생각하는 인간, 도구적 인간, 사회적 인간.. 그런 거 말고요.
'성경적인 인간, 호모 비블리쿠스!'
말씀으로 충만한,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한 호모 스피리투스
영적인 인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의 때에 노아를 일으키셨던 것처럼
'하나님, 한국 교회를 반전시킬 수 있는, 구원의 반전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이 선택하셔야 돼요.
-그냥 육적인 교인으로 살다가 간신히 구원받는 인생을 살 것인가?
-아니면 우리 세대가 한국교회 부흥의 마지막을 경험한 세대인데
바톤을 바닥에 떨어뜨릴 순 없잖아요.
적어도 다음 세대에게는 넘겨 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되었든 간에, 이 복음과 성령의 영적인 바톤을
다.음 세대에게 넘겨 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 가슴에 손을 얹으시고요...
'하나님, 받은 은혜와 받은 축복이 너무나도 많은데
헌신은 두렵고, 하나님의 부르심은 달갑지 않고 거리를 두고 있다면
하나님은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다음 세대가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사회가 영적으로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영적인 크리스천으로 결단하게 하여 주옵소서.
말씀을 가까이 하고, 기도의 자리에 엎드리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함께 여러분의 마음의 고백과 결단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우리 가정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다음 세대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한국교회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가운데 새 일을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께 있는 줄로 믿습니다.
다시 한번 주님을 향한 영적인 집중력과 초점이 회복되게 하여 주셔서
복음의 능력, 성령의 능력이
한국 교회 안에 불길처럼 일어날 수 있게 하여 주시고
그것이 교회를 살릴 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를 살리고, 열방을 살리는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 되게하여 주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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