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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데로 가라! (눅 5:4-11)

by 【고동엽】 2022. 1. 22.

깊은 데로 가라! (눅 5:4-11)

 


예수님의 제자들 중 핵심 인물인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등은 어부 출신입니다. 그들은 게네사렛 호수라고도 하는 바다를 중심해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입니다. 게네사렛 호수를 갈릴리 바다, 디베랴 바다라고도 합니다.
이 제자들이 고기를 잡기 위해서 밤새 열심히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그 날은 한 마리도 잡히지를 않습니다. 낚시를 해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가끔이라도 한 마리씩 잡혀 주어야 밤을 새우며 고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마리도 잡히지 않으면 굉장히 지루하고 피곤한 법입니다. 이 제자들이 그물을 밤새 던졌는데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다니 얼마나 지치고 피곤한 밤이었겠습니까? 그래서 허기지고 피곤하고 지친 몸으로 새벽녘에 와서 철수하기 위해서 빈 그물을 씻고 있을 때입니다.
그때 그곳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오셔서 물으셨습니다. "얼마나 고기를 잡았느냐?"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러면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그때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나 얻은 것이 없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한 번 더 던지리다." 그리고 그물을 깊은 곳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이 잡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의 주제를 "깊은 데로 가라"고 했습니다. 깊은 데로 가라. 이 간단한 말씀 속에는 그냥 넘겨 버릴 수 없는 깊은 뜻이 들어 있습니다.

 

첫째는 좀더 "진지해지라"는 말입니다.

 

이 제자들이 밤을 새워 가며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 밤에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를 못했습니다. 그들은 허탈했습니다. 피곤했습니다.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그 밤에 제자들은 인간의 무능을 체험하게 되었고 인간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을 것입니다. 밤새도록 자기들의 경험과 실력과 기술을 총동원을 해서 고기를 잡아 보았지만 웬일인지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를 못했습니다.
이때가 사람들이 가장 갈등을 느낄 때입니다. 이때 사람들은 모두 한계를 느끼게 되고 무능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실의에 찬 모습으로 새벽녘에 와서 고기 잡는 것을 포기하고 빈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생각 같아서는 다 될 것 같은데 안 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주를 쓰면 다 될 것 같은데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 경험과 재주를 믿고 잘 될 줄 알고 일을 시작했는데 그게 아니더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벽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실패를 하고, 실의에 빠지기도 하고, 지치고, 의욕을 잃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자살하는 이도 있고 정신이 돌아버리는 사람도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고기를 잡으려고 밤새 힘을 다 했는데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된다"고들 말하는데 해도 안 되는 것이 있더라는 말입니다.
그때 그곳에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깊은 데로 가서 한 번 더 던져 보라" 하십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말씀을 의지하여 한 번 더 던지리다"하고 던졌더니 어디서 갑자기 고기들이 몰려왔는지 그물 가득히 고기가 잡혀 올라왔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제자들이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러고 보니까 지금까지 우리들이 밤새도록 얕은 곳에서만 놀았구나"하는 깨달음입니다. 좀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위험 부담이 있고, 더 수고를 하여야 하고, 장비도 더 갖추어야 하고, 해서 보다 쉽게, 보다 위험 부담이 없이, 보다 더 값싼 장비로, 돈을 적게 들이고, 고기를 잡으려고 얕은 물가에서만 죽어라고 그물을 던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제자들은 수고는 적게 하고, 땀도 덜 흘리고, 투자도 조금하고, 재주만을 이용해서 고기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더 많이 잡으려고 했고, 횡재를 해보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되었다는 말입니다.

지금 세상에 보면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진실해 보려고 노력은 하지 않고 사람들로부터 인정은 받으려고 합니다. 삶이 뭐냐 하고 깊이 있게 고민해 보지도 않고 깊이 있게 살려고는 합니다. 모두 재주와 꾀와 요령으로 살면서도 출세는 하려고들 합니다. 모두다 얕은 물가에서 고기를 잡으면서도 큰 고기를 많이 잡으려고 하는 모습입니다.
어떻게 도서관 깊숙히 파들어가지 않고서 금을 캐려고 하느냐는 말입니다. 그러고는 누구보다도 더 많이 가지려고 하고, 더 누려 보려고 하고, 더 이겨 보려고 하니 그게 될 일입니까? 그러니까 탈법이 나오고, 불의와 사기가 나타나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이 깊은 데로 가라 하신 것은 좀더 투자하라는 말입니다. 좀더 수고하고 더 땀을 흘리라는 말입니다. 이를테면 좀더 진지해 지라는 말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모두 복을 받고 싶어합니다. 그러면서도 복을 받기 위해서 수고는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땀을 흘리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투자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깊은 데로 가야 고기를 잡는데 적당히, 편하게, 신앙 생활을 하려고만 합니다.

그러니 무슨 고기가 잡힙니까? 성경에서 일관되게 요구하고 있는 사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심은 자만이 거둔다는 것입니다. 울며 씨를 뿌리는 자만이 기쁨으로 거두게 된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그 밤에 주님으로부터 이 점을 깨달았습니다.

 

둘째는 좀더 깊은 곳을 보라는 교훈입니다.

 

제자들이 밤을 세워 수고를 했지만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를 못했습니다. 그때 그곳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듣기에는 예수님의 그 말씀은 현실성 없는 무모한 말씀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누구입니까? 고기를 잡는 데는 전문가들입니다. 평생을 바닷가에서 뼈가 굵은 사람들입니다. 고기를 잡는 일에는 경험이 아주 풍부한 사람들입니다.
얼마 전에 TV에 어떤 어부가 출현을 했는데 그분은 아침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태양을 본다고 합니다. 그리고 살갗을 스치는 바람의 질을 분석한다고 합니다. 바람이 동쪽에서 불면 그 날은 고기가 없는 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날은 출항을 포기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오랜 경험으로 체득한 하나의 기술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오시더니 "깊은 데로 가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이 보기에는 예수님은 고기잡는 데는 문의한입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순종을 합니다. 그리고는 말씀에 의지하여 한 번 더 던져 봅니다. 그랬더니 기적같이 고기들이 그물 가득히 잡혀 올라왔다고 합니다.
제자들이 여기에서 또 한 가지를 깨닫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 앞에서는 나의 지식도, 인간이 지니고 있는 조그만 경험도, 내가 그렇게 믿고 있는 조그만 재주도, 별것이 아니구나 하는 깨달음입니다. 그 동안 내가 그렇게도 의지하고 믿어왔던 겨엄과 재주와 지식이 아주 보잘것이 없는 것임을 비로소 깨달은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 경험과 재주가 있는 한 나는 굶어 죽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지나치게 자기 자신을 과신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권능 앞에 서고 보니까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비로소 좀더 깊이 알고 보니까 자신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보다 더 깊이 순겨져 있는 하나님의 권능을 볼 수 있었습니다. 보다 더 깊이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깊은 데서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비밀을 알고 난 베드로는 비로소 주님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러고는 "나는 죄인입니다." 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왜 교만합니까? 그것은 자신을 몰라서, 보다 깊은 곳을 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본다는 것이 고작 보잘것없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지식과 경험과 재주만을 보니까 그것이 제일인 줄 알고 오히려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깊은 데로 가라" 하신 말씀은 "보다 깊은 곳을 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세상을 보십시오. 세상에서 무엇보다 값이 있는 것들은 한결같이 깊은 데서 나옵니다. 생수는 길바닥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깊은 땅속에서 흘러 나옵니다. 금은 보석은 자갈 밭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보면 깊은 산속, 돌 속에서 나옵니다. 진주는 개천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보다 깊은 바닷속에서 나옵니다.

우리의 삶의 영적 보화도 모두 깊은 자리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은헤를 보십시오. 어쩌다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깊은 신앙 생활 속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어부가 고기를 잡을 때도 얕은 물가에서는 큰 고기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입고 또 그 하나님의 형상을 항상 새롭게 회복하는 데는 쉽게, 편안하게, 형식적인 신앙으로는 안 됩니다. 영혼 깊은 자리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을 만나고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입고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제자들이 허기진 아침에 두 번째로 깨달은 것입니다.

 

셋째는 "보다 더 용기를 가지라"는 교훈입니다.

 

어부가 보다 더 큰 고기를 잡으려면 더 멀리 나가고, 더 깊은 곳을 찾아가서, 큰 파도와 싸워가면 그물을 던져야 합니다. 그래야 큰 고기를, 보다 많이 잡아 올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조그만 배를 타고 나가서, 낡아빠진 그물을 가지고, 얕은 물가에서 고기를 잡는다면 밤새 왔다갔다한다고 고기가 잡힙니까? 그러니까 수고는 수고대로 했는데도 고기도 못 잡고, 언제나 가난을 면치 못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을 보면 꼭 이런 분들이 있습니다. 언제봐도 째째하고, 용기도 없고, 물가에서만 10년, 20년씩을 뱅뱅 돌다 세월 다 보내고, 좀더 깊은 데로 들어가라고 해도 용기가 없어서 용단을 못 내리고 주저주저하며 살아가는 이가 있습니다.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어부도 용기가 있어야 큰 고기를 많이 잡을 수가 있습니다. 사업가도 용기가 있어야 큰 생각을 가지고 큰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학자도 용기가 있어야 넓은 학문의 세계에 들어가서 큰 학문의 맥을 세울 수가 있습니다. 복음 전도자도 용기가 있어야 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할 수가 있고, 남들이 꺼리는 곳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고, 위험과 핍박이 더 거센 곳을 찾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깊은 곳으로 들어가라"고 하신 것은 용기를 가지고 날마다 더 깊이 있게, 더 진지하게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즉 이 말씀은 용기 있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이고, 핍박이 더 거센 곳으로 들어가서 용기 있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일행이 용기있게 그물을 버려 두고 주님을 따라 나섰던 것입니다.
고기를 잡으려면 깊은 데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더 많은 고기를 잡으려면 더 진지해야 합니다. 더 수고해야 하고 더 깊은 곳에, 관심과 뜻을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깊숙히 숨겨져 있는 영적인 보화를 찾아낼 수 있고 그래야 그것으로 나의 내면의 빈 공간을 채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 마음속에는 기쁨이 자리를 잡게 되고 만족이 찾아오고 감사함이 솟아나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깊은 데로 들어가는 생활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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