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지기 생활(2) -시간을 아끼라! (엡 5:15-21)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시간의 제약을 받습니다. 사람은 시간 속에서 태어나, 시간 속에서 성장하고 살아가다가, 마침내는 시간 속에서 어느 날 죽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모두 각자가 다르게 하나님으로부터 시간을 배당받아서 태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50년의 시간을 받아 태어나고, 어떤 이는 70년의 시간을 받아서 내어납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는 90년을, 또 어떤 이는 100년의 시간을 받아 세상에 태어납니다.
사람이 그 바다온 시간만큼 세상에서 살고 나면 그 다음에는 모두 죽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받아 가지고 온 시간이 얼마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의 끝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모르지만 그 시간의 끝이 내일인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 그신간의 끝이 모레인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1년 밖에 남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이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들도 그 시간이 언제인지 알 수가 없을 뿐이지 이렇게 살다가 언젠가는 죽을 것입니다. 그렇게 죽을 때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게 되는데 그때 하나님은 이렇게 물으신다고 히브리 사람들은 말합니다. "너는 내가 준 시간을 가지고 세상에서 어떻게 살다 왔느냐?"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시간을 맡은 청지기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을 잘 관리해서 사용하고, 소중히 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은 인생을 아무렇게나 마구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인생을 누구보다도 알뜰하게 잘 운영하면서 살아간 사람은 마지막에 가서 보면 대부분 아주 만족하게 종말을 맞이합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 마지막에 너무나 허무하게 가 버립니다. 또 아주 심각한 후회와 아쉬움이 많은 채로 눈을 감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두 시간이 많을 때 너무 허비해서 그렇습니다. 또 어떤 이는 태어나서 늘 폐만 끼치며 살다가 마지막에는 장례 비용조차도 없어서 구차하게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들을 잘못 사용해서 그렇습니다. 선용하지를 못하고 관리를 잘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신 짤막한 우리 인생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관리해야 하는가를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시간들을 잘 관리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본문에서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세월을 아끼라는 것입니다.
본분 "(엡5: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엡5:16) 세월을 아끼라 "하였습니다.
낭비는 왜 생깁니까? 아직 많이 남았다고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시간이 많으면 낭비되는 시간도 많습니다. 여러분, 수험생들을 보십시오. 시험날이 1주일 앞으로 다가오면 정신이 없습니다. 1분 1초가 아깝습니다. 잠자는 시간이 아깝습니다. 그래서 잠자는 시간을 줄입니다. 밥먹는 시간이 아깝습니다. 그래서 밥 먹으면서도 책을 봅니다. 시간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내 인생의 시간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다는 생각을 하고 산다면 그 시간들을 그냥 허비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무료하게 낮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아침 늦게까지 늦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하루 해를 그냥 목적 없이 보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시간을 아끼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시간은 "카이로스"라는 말로서, "하나님이 정하신 때"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기로 정하신 시간"이 카이로스입니다. 그리고 아끼라는 말은 "엑사골조메노"이라는 말로서, "뜻 있는 시간을 사들이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낭비되는 시간이 없게 하라"는 뜻이고, 더 쉽게 말하자면 "시간을 아끼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새벽에 하루를 시작해야 합니다. 하루를 하나님게 드리는 기도로 시작하고 저녁에 잠자리에서 기도로 마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는 인생이라면 그날 하루를 엉망으로 살지는 않습니다.
하루를 하나님께 기도로 시작하면서 맡기고, 학교 생활을 시작하고, 직장으로 나가 일하고, 일터로 나가서 일을 시작하는 생활, 이것은 가장 이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입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사는 생활,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에게만 주어진 복된 생활입니다.
그래도 새벽 기도가 힘든 일이기는 합니다. 목회를 하면서도 이 새벽기도가 가장 힘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참 좋은 시간입니다. 모두들 잠자고 있을 때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가 새벽의 그 시원한 공기를 쏘이며 교회로 가다 보면 "이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축복이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시작이 성스러워야 합니다. 그래야 진행도 성스럽고, 과정도 성스럽고, 생활도 성스러운 것입니다. 서양인들은 아침에 일어나 사람을 만나면 첫마디를 "굿 모닝"으로 시작합니다.
"좋은 아침" 얼마나 신선하고 산뜻한 첫 대화입니까? 기독교의 문화는 사람들을 매사에 진취적이게 만들어 주고, 긍정적인 의식을 갖게해주고, 좋은 정신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러니 그 하루가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내뱉는 첫마디의 말은 "굿 모닝"과는 그 뜻이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사람들이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첫 번째 하는 것은 하품입니다. 그 다음은 기지개입니다. 그리고 하는 말은 "아이, 죽겠다."입니다. 굿 모닝과는 그 뜻이 비교가 되질 않고, 상대가 되질 않습니다. 철학이 다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시간을 맡은 청지기들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시간을 잘 관리하고, 선용할 책임이 우리들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선용하고 아껴야 할 사명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 성령 충만하라는 것입니다.
18절을 보면 "(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여기 보면 술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성령과 술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술은 마시면 취합니다. 술의 맛은 마시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취하는 데 있습니다.
사람이 술에 취하게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납니까? 내 정신과 의지와 감정이 모두 술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이것이 술의 힘이고 위력입니다.
사람이 술에 취하게 되면 술은 내 것을 모두 빼앗아 갑니다. 그때 나는 술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조종을 받게 됩니다. 그때는 내 정신이 내것이 아닙니다. 나의 의지는 이미 술이 장악해 버립니다. 그래서 점잖던 분도 실수를 하게 되고, 말이 많게 되고, 혼돈을 일으키게 됩니다. 술에 충만해져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술 취하지 말고 성령에 취하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성령에 감동되어서 충만하게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하면 술에 취한 것과 똑같은 현상이 일아납니다. 술에 취한 사람이 술의 지배를 받듯이 성령이 충만하게 되면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그때는 내 생각이 아닙니다. 나의 모든 것은 성령이 주관하여 나는 완전히 성령의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면 마는 성령의 뜻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에 충만한 상태입니다.
사실 맨 정신의 내 의지나 내 중심은 아주 보잘것이 없습니다. 나약하고, 무능하고, 그래서 실수하고, 조금만 어려운 문제에 부딧혀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얼마나 보잘것이 없습니까? 조그만 일에 울고, 웃고, 좋아하고, 슬퍼하고, 또 조그만 이해 앞에서 다투고, 갈등하고, 얼굴 붉히고, 소화를 못하고, 안절부절하고 그럽니다.
왜 이런 일들이 자꾸만 내 속에서 일어나는가 하면,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성령의 힘을 받지 못하고 순전히 보잘것없는 내 힘만 가지고 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금 마음속에 불평이 많고, 불만이 많고, 갈등이 많고, 원망이 많은 분들은 자신을 향해서 한번 물어 보십시오. 아마 모르긴 해도 그 가슴 속은 앙상하고 빈약하기 이를 데 없을 것입니다. 말로는 은혜를 말하고 사랑을 말하지만 그것은 입으로 말하는 것일뿐 그 가슴 속에는 감사나 기쁨이나 이해의 능력이 전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상태로는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효과적으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속에 온갖 그늘진 것들이 서리게 됩니다. 그 상태로라면, 80년을 살고, 90년을 살아도 그 인생은 아주 보잘것없을 것이고, 사뭇 얼룩진 자국들만 선명하게 그려져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겨은 성령 충만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충만의 개념은 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이때가 가장 힘이 있을 때입니다. 부부 사이나 친구 사이의 관계가 가장 좋을 때가 가장 행복할 때이고, 바로 성령이 충만할 때입니다. 그때는 우리들이 전적으로 성령의 도움을 받게 될 때입니다.
그때는 보잘것없고, 무능하고 무지한 나의 빈약함에 성령의 힘이 합해져서 그 힘에 의해서 나는 힘이 있는 사람으로,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사려가 깊은 사람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성령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아주 든든한 배경이고 빽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배경이나 빽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저는 어렸을 때 농부의 아들로 자랐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특별한 자신감 같은 것은 지녀 보지를 못하고 자랐습니다. 그저 평범한 소년으로 그냥 자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반에는 경찰서장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별로 잘생기지도 못했고, 공부도 잘하는 편이 못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언제나 자신 만만했습니다. 언제나 용기가 있었고, 자신감에 넘쳐 있었고,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나서서 자기 할 일을 다 했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그 배경 때문이고 아버지의 빽 때문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배경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둘도 없는 배경이고 빽입니다. 그 성령에 인도만 받으면 거기서 힘이 주어지고, 용기가 주어지고, 자심감이 주어집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사도 바울, 스데반 같은 사람들은 모두 이 성령의 배경 때문에 한 시대의 위인들로 살아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효과 있게 선용하려고 하면 성령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하나님을 찬양하는 생할을 하라는 것입니다.
19-20을 보면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시간을 효과적으로 선용하는 방법이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축복 가운데 하나는 "찬양하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의 주변에는 항상 찬양이 서려 있습니다.
이사야는 환상 중에 하늘 문이 열리면서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곳을 보았는데, 그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선 스랍들이 찬양하는 소리를 들었습니 . 그런데 그 스랍들이 부르는 찬양의 소리가 문지방을 흔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구약 시대에도 찬양대가 있었습니다.
성경 이곳 저곳을 보면 찬양하라는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세상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자꾸만 찬양을 하라고 하시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찬양이 인간의 삶에 매우 큰 유익을 주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체 조직을 보면 그 근원이 마음입니다. 여기서 모든 것이 시작되고 출발됩니다. 여기서 생각이 나오고, 기도와 노래와 감사와 기쁨이 나옵니다. 동시에 여기서 분노가 유발되고, 시비가 조성되고, 갈등과 원망이 생겨납니다. 여기가 정상이면 감사와 기쁨과 즐거움이 나오고, 여기가 비정상이 되면 갈등과 원망과 시비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무엇보다도 마음이 정상이 되고 건강해야 합니다. 그래야 삶이 정상적이 되고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이 마음을 건강하게 해주는 데 가장 좋은 약이 바로 찬양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찬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감정이 있는 존재입니다. 그 감정이 아주 잘 조화된 상태에 있으면 그것이 건강으로, 즐거움과 감사한 생활로 자연스럽게 연결이 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세상을 살되 언제나 가슴이 뜨거운 채로 살아야 합니다. 가능하면 가슴이 차가워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 문명의 꽃이라고 하는 컴퓨터를 보십시오. 그 속에는 수많은 기억 장치들이 들어 있고, 고도의 일 솜씨를 발휘하고, 사람이 할 일을 아주 손쉽게 해 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컴퓨터에게는 가슴이 없습니다. 그래서 컴퓨터는 아주 유능하지만 기계일 뿐입니다.
또 사찰의 대웅전의 불상을 보십시오. 언제나 보면 싱글벙글입니다. 애를 낳지 못해서 고뇌하는 마음으로, 백팔 번뇌의 고뇌스런 마음으로, 백배를 하고 천배를 해도 그 불상은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 없고, 고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불상에게는 가슴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위대한 존재입니다.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아른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주어진 시간을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지옥의 삶을 살 수도 있고 천국의 삶을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서 즐거움으로 가득찬 삶을 살 수도 있고, 번뇌로 가득 찬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거기서 인생의 모든 기쁨과 감사함과 즐거움이 유발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 이 세상에 태어날 때 하나님으로부터 시간을 배당 받아서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주어진 시간이 다 되면 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그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불과 몇 달 남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몇 달이 아니고 오늘 이 설교가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분이 혹시 있을지도 모릅니다.
단 한 달을 살다 간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시간은 아주 요긴하게 잘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주어진 시간을 맡은 우리 청지기들의 사명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하나님께 가게 되면 여한도 없을 것이고, 하나님께도 아주 떳떳한 삶이 될 것입니다. 금년 한 해의 시간은 이렇게 알뜰하게 살아갈 수 있는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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