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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지기 생활(3)-사회 생활! (롬 12:1-2)

by 【고동엽】 2022. 1. 22.

청지기 생활(3)-사회 생활! (롬 12:1-2)

 


오늘 우리는 참 좋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이 발전하다 보니까 생활하기가 얼마나 편리한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옛날 정승의 생활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임금님의 생활보다도 훨씬 좋은 생활을 하며 우리는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선 오늘날은 생활이 편리해져서 좋습니다. 오늘 얼마나 살아가기가 편리해졌습니까? 오늘은 인스턴트 시대입니다. 배가 고프면 뜸을 들이고 밥을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김치를 담그고, 장을 담그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슈퍼에 가서 사다가 뚜껑만 열면 금방 먹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빨래를 하고 짜느라고 힘쓸 필요도 없습니다. 세탁기가 다 해결해 줍니다. 참 좋은 시대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습니다.
또 이 시대는 계절의 한계를 극복한 시대입니다. 어느 계절의 과일이라도 원하기만 하면 사시 사철 어느 때를 막론하고 먹을 수가 있습니다. 옛날 임금님도 누리지 못한 일을 우리는 누리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엏게 편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문화가 가장 많이 발달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세계 구석 구석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순간 순간 보고 들을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농촌에서 사나 산속에서 사나 그곳에 TV만 있으면 세상 돌아가는 것을 한눈으로 훤히 내다볼 수가 있습니다. 지구촌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그런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또 물질도 풍성해졌습니다. 이제는 우리 민족도 살 만해졌습니다. 먹는 문제를 걱정하지 않고 얼마나 즐기며 사느냐를 신경 쓸 정도가 되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발전되고 편리해지고 풍요로워졌습니다. 그래서 생명도 전에 비해서 많이 연장되었고, 삶의 질도 굉장히 좋아졌습니다. 우리들은 지금 이런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이렇게 좋아지기는 했는데 우리들이 상대적으로 잃은 것도 굉장히 많습니다. 시대가 발전해 가다 보니까 상대적으로 아주 빈곤해지는 것이 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정신의 빈곤 현상입니다. 세상이 풍요로워지고 발전되어 가는데도 정신적인 여유는 더욱 없어지고, 사람들이 웬일인지 모르게 더 초조해지고 조급해졌습니다.
물을 부은 후 3분이면 먹을 수 있는 라면을 먹으면서도 그 3분도 제대로 기다리지 못해서 라면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모습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3초만 기다리면 저절로 열리고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을 더 빨리 닫으려고 단추를 눌러대는 것도 다른 사람 아닌 우리들 자신의 모습입니다. 좀 참고 진득하게 기다리지를 못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요즘 세상에는 자기 분을 이기지 못해서 그만 자살해서 죽어 버리는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분을 이기지 못해서 그만 상대방을 상하게 해서 죽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신 병자들이 자꾸만 늘어 가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어떤 청년이 공중 전화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다가 어떤 여자가 너무 전화를 오래 사용하니까 그만 홧김에 한 대 때렸는데, 그 여자가 죽어 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사람들의 마음은 어쩐지 불안합니다. 아파트 문을 잠그고 내려왔는데 내려와서 한참 가다가 생각해 보니까 내가 문을 분명히 잠갔는지 불안합니다. 그래서 다시 올라가 보면 분명히 잠겨 있는데 웬일인지 나도 모르게 의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확인을 하고 나서야 마음을 놓고 길을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이 시대는 문화가 많이 발달되고 물질도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워져서 좋기는 한데 그 대신 정신적인 소양은 갈수록 빈곤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굉장히 메마르고 황량해졌습니다.

그런가 하면 윤리나 도덕도 굉장히 빈약해졌습니다.
생활이 향상되고 문화가 발달되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이 개인주의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장유 유서라든가 젊은 이나 어른의 구별이 아주 모호해집니다. 나 외에는 모두에게 무관심합니다. 부모와 동거하기도 싫어합니다. 그래서 대가족 제도가 파괴되어 갑니다. 모두 개인주의의 생활로 분산되어 갑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특징입니다.
또한 가치관도 흔들리게 됩니다. 옛날에 중요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오늘에 와서는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생활 환경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런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며 또 이런 시대에 우리들이 할 일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같은 시대를 살변서 그냥 시대에 편승해서 살아간다면 아무런 할 일이 없게 됩니다.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뭔가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시대에 삶의 표본이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참그리스도인이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지기가 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그런 것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댈르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그리스도인들은 그 시대를 살되 생각하면서 살고, 분별력 있는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시대를 살면서 다음의 몇 가지를 행하며 살아가야 되겠습니다.

 

첫 번째는 자기 훈련을 위해서 힘쓰는 일입니다.

 

본문을 보면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세대는 무엇보다도 자기 훈련이 너무나 부족한 세대입니다. 그래서 모두들 자기 통제가 안 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자기를 효과적으로 다스리기가 아주 어려운 시대입니다. 그래서 보면 가정들이 너무 쉽게 파괴되고 있스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너무 쉽게 갈라지고 있습니다. 형제간의 관계도 너무 쉽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부부간의 관계도 너무 쉽게 갈라서고 청산되고 맙니다.
좀 생각하고, 손해도 좀 보고, 때로 후퇴도 해 보는 자기 훈련의 모습은 보이질 않습니다. 모두들 기준이 없이 자기 편리한 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풍조이고 모습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냥 편승해서 이 시대를 살면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 자기 훈련을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부단히 훈련시키고, 채찍질하고, 갱신시켜 나가야 합니다. 자꾸만 게을러지려고 하는 자신을 훈련시켜야 합니다. 속에서 타오르는 욕망을 통제하고 절제시키기 위해서 훈련시켜 나가야 합니다. 자꾸만 주장하고 싶은 마음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는 훈련해야 합니다.
또한 방종하고 싶은 나 자신의 마음을 자꾸만 훈련시켜 억제해 나가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나는 조금도 손해를 보지 않고 이익만 보겠다는 이기적인 자신을 훈련시켜서 남의 처지도 이해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나 자신을 그냥 놔 두고 내 생각대로 살아가다 보면 나도 별수없이 이 세상의 풍조에 그냥 휘말려 살아가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라인홀드 니버라고 하는 윤리신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의 본성 속에는 죄성이 잠재되어 있고, 죄의 근원도 잠재되어 있다. 그런데 이것들이 어떤 계기가 되면 분출해서 사람으로 하여금 방종하게 한다." 사도 바울도 그런 고민을 했기에 고린도전서 9:27에서 말하기를 "내가 내 몸을 쳐 복종케 하노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자기 훈련입니다. 이런 훈련이 없으면 이 시대는 실수하기 아주 쉬운 시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지기들로서 자기 훈련에 힘써야 합니다.

 

두 번째는 청결해지기 위해서 힘쓰는 일입니다.

 

우리들이 지금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데 우리들이 신앙 생활을 하는데는 한 가지 분명한 이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예수님의 인격의 수준까지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신앙 생활을 하는 이유는 예수의 인격을 닮아가고, 성품을 닮아가고, 그의 완전을 닮아가기 위해서입니다. 그 닮아가는 과정이 바로 신앙 생활입니다.
본문을 보면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곧 "더럽히지 말고 살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신자들에게 권면하기를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존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지금 세상을 살면서 특히 청결해야 할 세 부분이 있습니다.

첫째는 정신의 성결입니다.
사람이 정신이 타락하게 되면 모든 것이 타락하고 맙니다. 이것은 모든 불행의 근원이 됩니다. 사람이 정신이 병들게 되면 가장 먼저 나타나게 되는 현상이 양심이 무디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마땅히 고민해야 할 때도 고민이 없게 됩니다. 양심의 아픔이 없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큰 비극입니다.
엊그제 어느 모임에서 황산성 변호사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분 말씀이 지난번에 부모를 무참히 살해한 박한산이라는 젊은이를 불쌍히 여겨서 변호를 자처해 나섰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젊은이를 만나 이야기하는 가운데 의심의 여지가 없을 만큼 100% 범인이라는 것을 직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 젊은이는 계속 범죄 사실을 부인하고 있으며, 이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부모를 그렇게 무참하게 살해하고서도 인간적인 고뇌나 고민 그리고 아파하는 모습조차 없었고 아주 분노가 느껴질 만큼 뻔뻔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변호를 포기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신의 성결입니다. 이것이 사람을 사람되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시대를 살면서 정신의 순결을 지키고 영적인 성결을 유지해야 하니다.

 

둘째는 물질 앞에서 성결하는 일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특히 물질로부터 자기를 다르리는 일이 무엇보다도 어려운 때입니다. 그래서 보면 이 물질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것 때문에 온갖 갈등을 일으키고, 관계가 악화되고, 탄식하게 되고, 후회하게 되고, 보다 소중한 것을 상실하게 되는 일드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사람은 물질 앞에서 성결할 때 가장 힘이 있고 참자유함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어떤 택시 운전사는 손님이 놓고 내린 돈뭉치를 주워 들고는 밤새 자기와 싸우느라고 밤잠을 설쳤다고 고백했습니다. 돌려 주자니 아깝고, 가지려니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고 그렇게 밤새 고민을 하다가 용기를 내서 돌려 주고 나니까 세상에 그렇게 기쁠 수가 없더라고 합니다. 사람이 물질 앞에서 성결하게 살면 누구보다도 평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셋째는 성적인 문제에서도 성결해야 합니다.
오늘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훈련시키는 데 가장 어려운 것이 앞서 말한 물질적인 문제와 이 성적인 문제라고 합니다. 이 성의 문제는 아주 무서운 마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마약과 함께 한 사회를 소리 없이 망가트리는 원인이 됩니다.
우리 나라도 이제는 이 성적인 타락 현상이 어느 나라에 못지않게 깊이 파급되었습니다. 이제는 청년들이 문제가 아니고 중학생들이 가장 위험한 세대로 대두되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중학생들 가운데는 나이나 몸은 어린데 이미 경험적으로는 어른이 되어 버린 경우가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리만큼 많다고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영화를 보나 잡지를 보나 선정적인 모습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리고 우리들이 모르는 사이에 이 시대의 그늘진 곳에서 나타나는 부정적인 모습들은 얼마나 심각한지 모릅니다.
이제는 옛말이 되었지만, 소련 공산당에서 자본주의 사회를 적화하는 방법론 가운데 5대 전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5대 전술을 보면 무력으로 통일하는 것이 아니고, 무력을 증강하는 정책도 아닙니다. 그것은 다음의 다섯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청년들을 타락시키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종교를 멀리하게 하라는 것이고, 세 번째는 정신을 혼란시키라는 것이고, 네 번째는 사치풍조를 조장시키라는 것이고, 다섯 번째는 성에 탐닉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자유분방한 자본주의 사회는 어느 날 소리 없이 총한 방 쏘지 않고서도, 무력하게 주저앉아 버리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입니까? 그 전술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지금 우리 사회가 이 다섯 가지 전술에 모두 깊이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 다섯 가지 작전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자라나고 있는 청소년들이 여기에 무분별하게 빠져 있으니 그 앞날이 얼마나 어둡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세상 풍조를 따르지 말라."

 

세 번째는 우리들이 지금 할 일은 기도하는 일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세상을 정결하게 살아가려면 어떤 힘의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그 힘은 바로 기도의 힘입니다. 나만 이런 힘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한창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 힘이 필요합니다. "내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세상을 몰라."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어느 날 어린 줄로만 알았던 아이들에게서 굉장히 놀란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지금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의 깊은 마음을 알고 나면 우리들이 너무나 무심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그것이 만능의 무기일 수는 없습니다. 나도 생각 없이 세상을 살다 보면 또 생각 없이 빠져 버릴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세상의 허영을 쫓고 싶은 헛점을 다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들의 가슴 속에는 모두 허영적인 요소들이 다 들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효과적으로 잘 훈련되지 않으면 우리들도 별수없이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나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나라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가장 큰 사명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지기들인 것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덕유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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