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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마음도 정직해 질 수 있을까? (시 7:1-17)

by 【고동엽】 2022. 1. 27.

어떻게 하면 마음도 정직해 질 수 있을까? (시 7:1-17)

 

 

지난 주간 말레이시아 한인교회 부흥회를 인도하고 왔습니다. 말레이시아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생활 수준도 높고, 주거 환경도 좋고, 은퇴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어느 날 “주님, 말레이시아가 참 살기 좋은 곳이군요?” 하였더니 ‘여행이니 그렇지!’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행과 거주하여 산다는 것은 엄청난 차이입니다. 한국도 여행을 하고 가는 사람은 참 좋은 곳이라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 여기서 사는 우리에게 힘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얼마나 살기 힘들면 자살율이 세계 1위이겠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많은 어려운 일들을 겪지만 가장 힘들고 두려운 일은 억울한 소문의 희생자가 되는 것입니다. 시편 7편을 쓴 사람은 무고한 고소로 인하여 생명에 위협을 느낄 상황까지 이르러 하나님께 탄원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시 7:1-2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 건져낼 자가 없으면 그들이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그런데 보통 억울한 일을 당하면 미주알 고주알 전후 사정을 설명하려 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반응도 “도대체 무슨 일인데.” 하고 관심을 갖습니다. 그러나 시편 7편에는 억울한 사정에 대한 어떤 설명도 나오지 않습니다.
시편 기자는 오직 한 가지만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우리가 주목해 볼 일입니다.
3-5절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 원수가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하고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하소서
한 마디로 “하나님은 아시지 않습니까?” 하는 말입니다.
우리도 세상을 살다보면 억울한 일을 만나고 사람들이 다 죽이려 달려드는 것 같은 상황을 만날 때가 있는데, 그 때 이 시편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시지 않습니까?” 하고 기도할 수 있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또 하나님이 심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8절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
억울한 일을 당해 본들은 아시겠지만 억울함을 풀어보려고 하면 할수록 억울함이 풀리기는 커녕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꼭 필요하다면 법에 호소하는 수도 있지만 법정을 통하여 꼭 진실이 가려지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벽한 심판자입니다.
11절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죄에 대하여 분노하시고 결국 심판하신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오래 참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분노하심을 무시하다가는 큰 일이 납니다. 하나님께서 칼을 가신다고 했습니다.
12절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하나님께서 칼 가시는 소리가 들리십니까? 그러나 마음에 조금이라도 걸리는 것이 없는 사람은 두려워 할 것 없습니다. 차라리 억울한 것이 낫습니다.

이것이 시편 7편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설교 준비를 하면서 중심 메시지는 분명히 깨달았는데도 마음이 시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은 다 아시지 않지요?” 하고 담대하게 기도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시편 기자는 9-10절에서 하나님은 마음을 살피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9-10절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정말 자신의 마음 조차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세상은 겉으로 정직하면 됩니다. 그것도 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릅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의를 호소하려면 겉으로만 정직해도 안됩니다. 마음이 정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겉은 멀쩡한데 마음이 정직하지 못한 자를 얼마나 엄히 다루시는지를 성경에서 너무나 많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 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예수님께서 유독 당시 종교지도자들에게 엄격하셨던 이유는 바로 그들의 이중적인 마음이었습니다.
마 23: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초대 교회에서도 사도 바울이 그토록 조심하라고 당부한 것은 겉과 속이 다른 성도가 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딤후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실제로 목회하면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사람이 마음이 정직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겉은 멀쩡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숨이 막합니다.

다윗이 충신 우리야를 죽이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였습니다. 그 후 1년 정도 다윗은 아무런 죄 값을 치루지 않은 채 편안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가장 야비하고 사악한 위선의 탈을 쓰고 지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왕으로 공의를 집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죄는 간음죄 살인죄 만 아닙니다. 마음은 사악하고 탐욕적이고 음란하였으면서 겉으로는 성군인 것처럼 지낸 위선의 죄가 가장 큰 죄였습니다. 어느 날 나단 선지자가 한 부자가 가난한 자가 사랑하며 기르는 유일한 암양 새끼 한 마리를 빼앗아 손님을 대접하였다는 말을 듣고 사무엘하 12장 5절에 보면 다윗은 정말 분노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이것을 보면 다윗 자신은 자기 스스로를 의롭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가 “당신이 그 사람이라.” 지적할 때, 다윗은 꼬꾸라졌습니다. 그리고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고 고백하였습니다. 성경을 보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셨다고 했습니다.
삼하 12:1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시며 얼마 역겨워 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우리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마음이 정직해지는 것을 신앙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정직하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방패가 되십니다. 마음이 정직한 자는 항상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17절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반면에 조금이라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큰 일입니다.

영적 일기를 쓰라 하니 사람들에게 마음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마음을 감추고 사는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국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에 오신 주님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만 감춘다고 감춘 것입니까?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는 평소에는 안 보이는 것이 그 때는 다 드러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단 1분만 서 있어 본다면 마음을 감추고 살지 않을 것입니다. 다윗의 심정을 100%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의 삶의 축복과 능력은 감추고 억누르는 생활이 아니라 나타내는 생활입니다.
인간의 승리는 대부분 억누르는 것입니다. 속으로 찡그리고 겉으로 웃었으면 이겼다고 생각합니다. 성질이 나오는 것을 힘써 누르고 죄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속으로 감추었으면 이겼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도 이렇게 믿는 정도라면 예수 믿는 것이 힘들고 참 기쁨을 모르고, 육신의 병도 생깁니다. 겉으로 겸손한 척합니다. 겸손을 꾸밉니다. 머리를 많이 숙입니다. 그러나 속은 머리를 듭니다.
유교의 공자는 수신(修身)을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계속 함양하고 억제하는 것으로서 이것이 성공해야 성인(聖人)이 됩니다. 안타깝게도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이런 유교식으로 사는 성도가 많습니다. 그는 매사에 조심하고 또 조심합니다. 이런 신앙생활이 율법적인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는 마음을 드러내고 또 드러냅니다. 조금도 억누르지 않고도 문제가 없습니다. 과거에는 감출수록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드러낼 수록 좋습니다. 전혀 두려움이 없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정말 그럴 수 있겠습니까?
예,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면 됩니다.
계 3:20『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우리의 생각에 예수님이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곧 24시간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집안을 치우지 못하고‘치워야지.’생각만 하다가 심방 오시면 금방 치워집니다.
집을 여니 집이 치워지는 것입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을 열면 주님이 오시고 우리 마음은 정리됩니다.

삭개오는 마음이 얼어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불의하게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그로인하여 괴로움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일에 대하여 누구에게도 당당했습니다. 더 가혹하게 했습니다. 그의 마음이 얼어붙어서 잘못을 조금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변했습니다.
눅 19:8『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누가 이렇게 하라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까? 그랬다면 그는 그를 죽이려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조차 그에게 그의 악행에 대하여 한마디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삭개오로 하여금 자신의 죄에 대하여 를 깨닫게 했습니까? 예수님께서 함께 하셨던 하루 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24시간 바라보게 되면 우리에게 삭개오와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저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하고 마음에 영접한 후, 다시는 죄를 짓고 싶지 않았고, 또 실제로 죄를 짓지 않게 될 줄 알았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큰 죄를 짓고 살았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정말 더럽기 짝이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저는 마음으로도 죄짓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좌절이 오는 것이 제 마음에 있는 죄가 해결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욕심, 교만, 정욕, 불순종 등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이기심, 판단, 정욕, 교만, 자랑, 나태함, 죽고 싶은 생각! 죽이고 싶은 생각! 슬픈 생각 자기 연민, 온갖 음란한 생각! 저는 저 자신에 대한 심한 좌절감에 빠져 실족할 뻔 했습니다.
저는 요한일서 5장 18절 말씀을 읽고 절망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여러분은 겉으로는 존경받는 목사이지만 마음으로는 죄를 품고 사는 내적 고통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얼마나 괴로워서 몸부림치면서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나는 과연 예수님을 바로 믿는 것인가? 나는 정말 거듭났는가?”
그런데 저는 요즘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음을 깨닫습니다. [도무지 이길 수 없는 마음의 죄]를 이기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97년 5월13일 일기를 보았습니다.
‘오늘은 깊은 좌절의 날이다. 또 넘어졌다. 나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정결함을 얻고, 승리할 수 있을까?
정결함을 얻는 것이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된다는 말씀을 의지해 본다! 나는 너무 뻔뻔하지만 믿음으로 고백해 본다.‘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정결함이다! 나는 죽고 예수님만 내 안에 사신다! 나는 실패하지만, 예수님 안에서 승리한다!’이렇게 고백하니 나의 마음은 슬프고 낙심스럽지만, 내 영은 승리를 노래한다! 사단은 물러가라! 지금도 예수님은 나의 왕이시다.
나의 육신과 사단은 내가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의 믿음은 나에게 여전히 예수 안에서 승리를 고백하라고 한다.’

이 일기를 읽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복음을 깨달았지만 실제 삶에서는 계속하여 넘어지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예수님을 마음에 왕으로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말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을 24시간 바라보려 하면서 주님이 저와 함께 하심이 믿어지고, 마음에 죄가 자리잡지 못하는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요일 5:18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나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교회 게시판을 조금만 살펴 보아도 마음까지 정직하게 하시는 주님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매일 매순간 기도와 대화를 통해 예수님께서 내 마음에 항상 임재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반복되는 죄와 넘어짐과 무너지는 삶이었는데, 주님 만을 24시간 바라보면서 죄에서 풀려나고 일어서고 세워지는 삶으로 변화되어 감사합니다. 지난 1주일 동안은 자녀들과 아내와 제가 거의 24시간 함께 있었습니다. 전 같았으면 하루하루가 힘들고 짜증내고 화내기 일쑤였을 것인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녀들과 24시간 함께 있는 것이 즐겁고 행복합니다. 아내와 함께 지내는 이 시간들도 행복하고 평안합니다. 아내가 요즘 제가 많이 변한 것 같다고 합니다.”.
(지난 해 말 실직하신 분의 고백입니다)

“예수님을 생각에서 놓지는 순간 불평이 찾아오고 미움이 슬며서 생기는 것을 발견합니다. 예수님 제가 한 순간도 마음에서 생각에서 주님을 놓지지 않도록 저 좀 꼭 붙잡아 주세요. 어제는 동생과 좀 다투었습니다. 그런데 예배가는 도중 주님이 사랑받은 자처럼 하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화가 났던 동생의 모습이 주님 앞에 있는 제게도 있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이제는 마음 속에 주님이 원하시지 않는 감정들이 머물지 못하고 떠나가는 것을 봅니다.”

누가 자신의 마음이 정결하며 정직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 사람이야말로 거짓의 두목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정말 마음에 왕으로 영접하면 어찌 마음에 죄와 악을 품고 살 수 있겠습니까?
마음도 정직해질 수 있을까? 우리의 노력으로는 안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정말 마음에 영접하면 예수님께서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마음이 정직하면 세상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이 시간 정말 예수님을 마음에 왕으로, 주님으로 영접하기를 원하는 분은 가슴에 손을 얹고 기도합시다.

♪ 정결한 맘 주시옵소서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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