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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순종하는 사람들 (엡6:1~4)

by 【고동엽】 2021. 12. 3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에베소서 6:1-4)

자라는 아이들의 몸 안에는 「성장판」이라는 게 있다고 합니다. 성장판이란 뼈의 성장을 일으키는 세포를 포함한 연골판인데 성장을 담당하는 부위라고 합니다. 성장판은 손목이나 팔꿈치, 어깨, 발목, 무릎, 대퇴골, 척추에 자리 잡고 있으며 숟가락, 발가락에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성장판이 사고나 충격으로 다치게 되면 성장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관심은 자신이 전도해 세운 교회들이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13을 보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고 했고, 15절에서는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는지라”고 했습니다.

두 구절의 뜻은 예수님처럼 예수님만큼 자라가는 것입니다. 문제는 아이들의 성장판에 문제가 있으면 자라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사람들도 그 신앙과 생활에 문제가 있으면 성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들이 바른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해, 교회다운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면에서 교훈하고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님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 부모는 자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종은 주인을 어떻게 섬길 것이며, 주인은 종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교회 일군은 교회를 어떻게 섬겨야 하며, 사회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며, 부부관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 구체적이며 실천적인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본문은 자녀들이 부모에게 해야 할 도리와 자세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교훈의 시작은 “자녀들아”로 시작됩니다. 자녀란 부모가 낳은 자식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 부모 없이 태어난 자식은 없습니다. 부모와 이별했느냐, 사별했느냐는 별 개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부모가 나에게 잘해주고 엄청난 유산을 물려주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반대로 부모라고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경우도 잇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우가 어떻든 부모와 자녀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무엇을 얼마나 해 주었느냐로 결정되거나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그 피를 받아 태어났다는 사실로 성립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부모자녀 관계도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내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피를 나눈 일이 없지만 신앙을 물려주었고 그를 양육했기 때문에 아들이라고 불렀고 디모데는 바울을 아버지처럼 따르고 순종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영적 지도자와 스승도, 그리고 나를 낳아주진 않았지만 길러주고, 키워주고, 사랑해준 그 분도 부모인 것입니다.
바울은 바로 그 자녀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 주 안에서 순종하라
1절을 보면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했습니다. “주 안에서”라는 것은 바울 신앙의 대주제입니다. 바울이 쓴 편지 안에 153편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바울은 주 안에서 부름 받았고, 사도가 되었고, 주 안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주 안에서 일했고 순종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행동규범은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주 안에서 해야 합니다. 성공도, 출세도, 돈을 버는 것도, 결혼도, 자식을 낳는 것도 주 안에서라야 합니다. 순종의 경우도 주 안에서의 순종이 있고, 주 밖에서의 순종이 있습니다.

악을 강요한다든지 범죄를 명령하는 경우라면 순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자녀에게 부모가 예수를 믿지 말라고 명령한다면 순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부모님을 예수님께로 인도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는 것이 자식이 할 수 있는 최대의 효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내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명령은 거역하고 육신의 부모를 따르는 것은 잘못이기 때문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부자의 정, 부부의 고리는 이 세상에 있는 동안만 유효합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면 그곳은 새로운 진리가 지배하게 됩니다.

영원한 천국은 씨족, 혈연, 지연, 학연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부끼리 만나 껴안을 일도 없고, 헤어졌던 가족이 만나 대성통곡 할 일도 없습니다. 전혀 새로운 질서가 지배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누리고 느꼈던 그런 감정이나 인연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 인연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녀의 도리는 순종하는 것입니다. 악이나 범죄를 제외하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도리이며 효도입니다.
순종이란 무엇입니까? 하라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하라는 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명하는 대로 받고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신명기 28장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받는 복과 불순종 했을 때 받는 저주가 어떤 것인가를 자세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1-)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며”라고 했고, 2절을 보면 “네가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을 네게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복의 내용이 3절 이하에 열거되어 있습니다. 성읍에서도, 들에서도, 네 소생도, 토지소산도, 짐승도, 그 새끼도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도, 전쟁에서도, 자연도 온통 복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조건은 단 하나「순종」입니다. 그러나 15절 이하를 보면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로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면”이라고 했고, 그 결과가 16절 이하에 열거되고 있습니다.
“성읍에서도 들에서도 저주를 받고 광주리도 떡반죽 그릇도 소생도 토지소산도 짐승과 그 새끼도 들어와도 아가도 저주를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저주의 조건 역시 간단합니다. “불순종하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6:3을 보면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해도 복을 받고 부모에게 순종해도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2. 공경하라
1절에서는 순종하라고 했고, 2절에서는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헬라인들은 신에게 부모에게 헬라의 법을 공경했다고 합니다. 세 가지 중 하나에게 불손하거나 거역하거나 존중하지 않으면 시민 취급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순종보다 중요한 것은 공경입니다. 공경하는 마음이나 행동 없이 순종하는 것은 노예가 취하는 행동과 같기 때문입니다. 순종은 하라는 대로 하면 됩니다.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하라면 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그러나 공경은 순종하면서 높이고, 따르고, 존경하고, 받들고, 섬기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0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섯 번째 계명이 20:12에 나와 있는데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화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했습니다. 부모 공경은 제5계명입니다.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 입니다. 말로 공경해야 합니다. 윗사람이나 스승, 부모에 대한 용어나 칭호는 공손하고 경칭이어야 합니다.

예컨데 “우리아빠 그 사람이 말야”, “우리 어머니 그 여자가”, “박목사 그 사람”, “박목사 그 친구” 이런 용어를 거침없이 쓰는 것은 공경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질로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신앙, 정신, 물질을 물려줄 책임이 있습니다만 신앙이나 정신은 물려주지 않고 물질만 물려주면 그 자식은 그 물질관리에 실패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자식은 잘살고 부모는 연로해 경제능력이 없어졌을 경우 부모를 공경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의 명령이고 도덕 윤리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1950년대 효도가라며 부르던 노랫말 가운에 이런 가사가 있었습니다.

“소가 아파 누우면은 소침쟁이 찾아가고
늙은 부모 병들어도 약 한 봉지 없구나”

요즘 노랫말로 바꾸면 이런 가사가 될 것입니다.
“내 자식이 아파하면 병원으로 달려가고
개가 아파 낑낑대면 동물병원 쫓아가고
늙은 부모 아파해도 꼼작도 안하누나”

용돈도 드리고, 생활비도 드리고, 자주 찾아뵙고, 위하여 기도해 드리고… 이것이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 자세인 것입니다.

1910년 한일합병이 되던 해 원산에 펜윅이라는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펜윅 선교사가 제자들에게 무 한개씩을 주면서 밭에다 거꾸로 심고 오라고 했습니다. 밭으로 간 세자들은 하나같이 무를 바로 심고 돌아왔지만 전치규라는 제자만 거꾸로 심고 돌아왔습니다.

펜윅은 전치규를 동역자로 삼고 일생동안 함께 일했습니다. 신양성경도 함께 번역했고, 선교일도 함께 했습니다. 순종을 중요한 조건으로 본 것입니다.

영락교회 김응락 장로님은 6.25때 순교한 순교자입니다. 1947년 경제도 어렵고 나라도 어려울 때 기독공보가 운영난에 빠지게 되자 한경직 목사님이 김장로님을 불러 기독공보 경영을 맡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때 김응락 장로님은 측근들에게 “밑지는 것 뻔한데 목사님이 맡으라니 순종할 수 밖에 없다”며 기독공보를 맡았습니다.

훌륭한 장로님이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부모님을 섬기고, 순종하고, 공경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시대는 부모도, 스승도, 어른도 없습니다. 존경, 공경, 효도가 없습니다.
가정에서 자녀를 키울 때도 좋은 학교에 들어가야 한다. 대학에 들어가야 된다. 성공해야 한다. 돈벌어야 한다는 말은 수없이 반복하지만 신앙을 가르치고, 효도를 가르치고, 인격을 가르치는 것은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그 결과 패륜, 탈선, 반윤리가 판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레위기를 보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막을 만들고 그 안에 여러 가지 기구들을 비치했습니다. 그런데 성막과 모든 기구하나하나에 전부 기름을 발라 성별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곳 이였기 때문입니다.

어떤 집사님은 새로 집을 짓고 이사를 하는 날 방마다 들어가 손을 대고 기도를 했습니다. “이 집은 주님 모신 거룩한 곳입니다. 이 집이 주님을 찬양하는 곳이 되게 하시고 주님 모신 가정과 방이 되게 해 주소서”라며 기름 바르고 기도한 셈입니다.

우리 가정이 주님 모신 가정이 되게 합시다. 부모에게 불순종하고 불효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효성을 다한다는 것은 믿을 수 없습니다. 사람을 미워하고 담쌓고 사는 삶이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는 것도 믿기 어렵습니다. 가정 붕괴를 막는 길은 가정을 신앙의 토대 위에 세우는 것입니다.

가정은 가족들이 모여 사는 둥지와 같습니다. 둥지가 흔들리면 그 안에 있는 새들도 함께 흔들리게 됩니다. 가정이 흔들리고 깨지면 가족도 함께 상처를 받게 됩니다.

케임브리지대학 교수였고 유명한 설교가로 명성을 날렸던 모건박사가 결혼 후 신혼살림을 차리고 아버지를 초청했습니다, 아들 집에 온 아버지는 이 방, 저 방을 다 둘러보고 난 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집이 참 좋구나. 하지만 이 방, 저 방 아무리 둘러보아도 네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인지 사탄에게 속한 사람인지 알 수가 없구나”라고.

깜짝 놀란 모건은 이 방, 저 방, 이 구석, 저 구석을 살펴 본 후 아버지의 말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부부가 마음을 가다듬고 방마다 왕이신 그리스도를 노시고 있다는 표가 나도록 그림, 벽장식들을 다시 했습니다. 예수 냄새가 풍기는 집으로 바꾼 것입니다.

하긴 예수님 사진 걸어 놓고 그 밑에서 싸운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십자가 걸어놓고 십자가 밑에서 육탄전을 벌인다면 저긴 더 이상 예수 가정도, 교회도 아닌 것입니다.
순종하는 그리스도인, 예수 모신 가정, 효도하는 자녀, 말씀으로 세운 교회가 되게 합시다. 아멘.

출처 : 여호와닛시♥
글쓴이 : 주님의숲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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