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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평안하라 건강하라 (막5:25~34)

by 【고동엽】 2021. 12. 31.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여자가 제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짜온대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찌어다"
(마가복음 5:25-34)

12년 간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한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고 고침 받었다는 것이 본문의 줄거리입니다.
레위기 15장을 보면 혈루증을 유출병이라고 했습니다. 유출병이란 피나 고름 같은 것이 몸 밖으로 흘러나오는 병입니다. 본래 피는 사람의 몸 속에 연결된 크고 작은 혈관을 통해 흐르도록 되어있습니다. 피가 흐르도록 힘을 불어 넣는 펌프질은 심장이 합니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혈관의 길이를 10만 킬로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피가 혈관을 정상적으로 순환하지 못하고 몸 밖으로 흘러나오는 병을 혈루병 혹은 유출병이라고 합니다.

레위기 15장은 유출병을 생리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생리적인 유출병은 모을 씻는 것으로 해결이 되지만 병리적 유출병은 씻는 것으로 되지 않고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여자의 경우 유출이 있는 기간 동안 침상도 부정했고 앉는 자리도, 만지는 것도 부정해 졌습니다. 그래서 그 때마다 몸을 씻고 옷을 빨고 정결을 위해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본문의 어떤 여인은 12년동안을 혈루증으로 고생했던 여인이었는데 예수님 만나 그 지긋지긋한 만성병을 고친 것입니다.
과학하는 사람들이나 의사들은 병이란 병원이나 의사가 고치는 것이지 예수 옷자락 만진다고 고쳐 지느냐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과학이나 의학의 한계를 인정한다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황우석 교수가 줄기세포 만드는 일에 성공했다해서 세계적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구라파의 학자들은 이미 줄기세포 배양 이론을 이미 다 가지고 있었지만 그 것이 미칠 윤리적, 신학적 파장 때문에 발표를 하지 않고 있었다고 합니다.

줄기세포 배양을 통해 만성병이나 불치병을 고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이 지으신 완전한 인간을 만들 수는 없는 것이 과학의 한계인 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12년 긴 세월을 고생했습니다.
25절을 보면 열 두해를 혈루증으로 앓았다고 했고 26절을 보면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 졌다고 했습니다.
이곳 저곳 찾아 다녔지만 고치지 못했고 재산도 다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고통이란 길어도 짧아도 힘든 것이지만 그러나 그 고통이 길수록 견디는 것이 어렵습니다.
상상을 해 보면 12년 길고 긴 세월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그 여인의 삶이 얼마나 힘든 삶이었을 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거기다 넉넉지 못한 재산까지 다 없어졌습니다.
사람을 괴롭히는 몇 가지 조건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질병입니다.
병원에 가보면 병원마다 환자들로 초만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생로병사는 인간이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합니다만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예방의학이 발달하고 도처에 종합병원이 있고 의원이 있고 제약회사가 있지만 여전히 병은 사람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둘째는 실패입니다.
승승장구 성공가도를 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패의 쓴 잔을 마시며 아파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사업, 진학, 결혼, 취업실패등 실패는 종류가 많습니다. 실패로 자포자기 하는 사람, 모든 걸 포기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 사회를 향해 화풀이 하는 사람 등 실패를 대하는 자세도 여러 가지 입니다.

셋째는 사람입니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가 주인을 괴롭혀 못살겠다든지 동물원의 원숭이가 사람을 괴롭혀 죽겠다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고 사람 등살에 견디지 못하고 사람 때문에 가슴아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본래 하나님은 아담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여기신 하나님은 하와를 창조하셨고 둘이 사랑하며 사이좋게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뱀이 아담부부사이에 끼어들면서 서로 핑계대고 원망하기 시작했고 아름답던 부부금슬이 깨진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할 짓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됩시다.
힘이 되어주고 의지가 되어주고 위로가 되어 줍시다.

사람은 동물과 달리 언어를 가진 존재입니다. 우리는 그 말로 주님을 찬양하고 기도하고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그 말로 형제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이끌어 줍니다.
위로하는 말, 칭찬하는 말, 격려하는 말을 힘씁시다.

2. 믿고 손을 댔습니다.
27절을 보면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라고 했고 28을 보면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고 했습니다.
레위기 14장을 보면 나병에 걸리면 일단 격리되어야하고 접촉을 하면 안 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15장을 보면 유출병(혈루병)에 걸리면 역시 사람을 만지거나 접촉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심지어 침상도 앉은 의자도 부정해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은 다른 사람을 만질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겐 믿음이 있었습니다.

관행이나 관습이나 율법이 나를 막아도 나는 예수님을 만져야 산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위대한 것은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내가 고침 받게 된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9:27이하를 보면 앞을 못보는 두 맹인이 길 가시는 예수님을 향해 소리 지른 기사가 나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주여 그러하오이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30절을 보면 “그 눈들이 밝아 진지라”고 했습니다.
믿었고 믿은 대로 된 것입니다.

이런 기사는 성경전체에 수도 없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어야하고 우리들의 간증이 되어야 합니다.

3. 능력이 나갔다고 했습니다.
30절을 보면 “예수께서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아시고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고 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무리가 에워싸 민 것이라“ 고 대답했습니다.
그 여자는 몰래 손을 댔지만 예수님은 그녀가 누구이며 왜 왔으며 왜 손을 댔는가를 알고 계셨습니다.

시편 139:1-4를 보면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며 내 혀의 말도 다 아신다”고 했습니다.
나는 주께서 나를 모르시계거니라고 생각하지만 주께서는 나를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주께서 나를 더 잘 아시는 것입니다.

왜 나를 그토록 잘 아십니까?
첫째 나를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시편 139:13을 보면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오장육부, 사지백체, 세포, 혈관, DNA 하나님이 지으셨고 모태안에 내가 조성되도록 섭리하신 것도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43:1을 보면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내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절로 생겨났다는 것은 유물론이고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것은 창조론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둘째는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즉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능력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3:15를 보면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고 했습니다.
시편 145:1을 보면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시는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 다윗이 읊은 시입니다. 그는 자신을 왕으로 노래하지 않고 하나님을 왕으로 노래했습니다. 마태복음 2장을 보면 별을 보고 찾아온 동방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 계시냐”고 했습니다.
왕은 전권을 가지고 행사합니다.
하나님은 왕이십니다. 신하는 왕을 높이고 그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아멘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신념과 신앙은 다릅니다. 신념은 내가 된다 할 수 있다는 마음을 품고 나 자신을 세뇌하고 마음먹은 족으로 훈련하고 이끄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신념은 꺾이고 좌절될 수 있지만 신앙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합니다.

빌립보서 4:13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신념입니다. 그러나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잇다는 것은 신앙인 것입니다.

3. 믿음대로 되었습니다.
34절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 지어다”라고 했습니다.
그 여인이 믿은 대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옷자락만 만져도 내 병이 고침 받는다는 믿음, 그 믿음대로 능력이 나갔고 그 순간 그녀는 구언을 받은 것입니다.

그녀에게 주신 주님의 은총은 “평안하라 건강하라”였습니다. 평안은 영혼을 향해 주신 축복이고 건강은 육신을 향해 주신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녀는 혈루증 고치기 위해 예수님 만나고 구원받고 평안 얻고 건강까지 얻은 것입니다.

본래 그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옷자락을 만질 때 생각은 오로지 혈루증을 고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믿음 때문에 세 가지 선물을 받게 된 것입니다.
세 가지 선물이란

첫째 구원입니다.
구원은 전인적 사건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혼도 구원받고 육신도 구원받고 환경도 구원받는 것이 전인적 구원입니다. 그녀는 영혼도 육신도 질병도 다 고침 받는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둘째 평안을 받았습니다.
몸 밖으로 피가 흐를 때마다 얼마나 불안했겠습니까? 얼마나 고통스럽고 초초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 만나는 순간 그 모든 고통과 불안이 달아나버리고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요한복음 14:27에서 주님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1:28을 보면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 지어다”라고 했습니다.
평안은 하나님의 선물이고 은혜의 결과 입니다.
이 여인의 경우 주를 믿었기 때문에 병도 고치고 평안도 얻게 된 것입니다.

셋째 병에서 놓였습니다.
34절을 보면 “병에서 놓여 건강할 지어다”라고 했습니다.
그동안 병의 포로가 되어 붙잡혀있던 그녀가 병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죄의 포로, 질병의 포로, 감정의 포로에서 누가 나를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까?
누가 나의 불안 걱정 염려를 거두고 평안과 건강을 줄 수 있습니까?
평안히 가라 건강하라고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 가능합니다.

예수님 만나는 사람마다 평안을 얻었고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12년 된 병이냐 38년 된 병이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내 믿음입니다.
주님의 옷자락 만지는 신앙, 그러면 내가 고침 받는다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이 믿음으로 구원받고, 이 믿음으로 평안하고, 이 믿음으로 건강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 : 여호와닛시♥
글쓴이 : 주님의숲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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