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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지금부터 영혼까지 (시121:1~8)

by 【고동엽】 2021. 12. 3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편 121:1-8)

시편 121편은 작자 미상의 시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전에 예배하러 올라 갈 때마다 이 노래를 부르며 올라갔습니다. 예루살렘은 해발 800미터 고지대에 자리잡고 있는 정치, 문화, 종교 중심지였습니다. 그 당시 성전의 위치는 예루살렘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성전으로 가려면 계속 올라가야 했습니다.

올라가는 사람들 눈에는 언덕이 보이고, 산이 보이고, 건물도 보였습니다. 그러나 산이나 언덕이나 건물이 자신들을 도울 수 없다는 것이 시편 121편의 서두인 것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사회학자들은 인간을 사회적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 뜻은 사회생활, 사회관습, 사회적 관계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군가를 돕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군가를 돕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처음엔 아담만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여기신 하나님께서 배필로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하와를 만드신 방법을 주목해야 합니다. 아담을 만드실 때처럼 흙으로 만드시고 그 코에다 생기를 불어넣어 여자가 되게 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을 잠들게 하신 후 그의 갈비뼈를 취하여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하셨습니다(2:24). 아담은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하와를 가리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 즉 여자라 칭하리라”고 했습니다. 한 몸을 이루라,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이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한 몸이기 때문에 함께 살아야 합니다.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이기 때문에 헤어지면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함께 사는 사회적 존재, 관계적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마이클 거리언이 쓴 글에 의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있으면 그들의 뇌는 차츰 사랑에 빠져들도록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고 체취를 맡게되면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강하게 분비되어 두 사람을 하나로 묶어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년쯤 지나면 호르몬과 뇌의 화학작용이 변하기 시작하여 상대방의 결점을 알아내고 화를 내기도 하고 짜증스러워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혼해 애 낳고, 나이 들고, 웃고, 울고, 다투고, 헤어지고, 히히덕 거리고, 소리지르며 살아가는 것이 부부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이 싫고 아내가 싫어 헤어졌다하더라도 그 사람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싫고 사람이 싫어 수녀가 된 여인이 있었습니다. 수녀원에 들어가면 사람 만나지 않고 고요한 묵상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들어갔습니다만 그러나 거기도 사람이 있었고 문제가 있었습니다. 절에 가도, 수녀원에 가도 사람은 있기 마련입니다. 사람은 사람과 더불어 사는 존재입니다.

어떤 여인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병으로 교포여자와 결혼해 뉴욕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딸은 결혼 후 남편따라 지방도시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50세 후반을 넘어서자 외롭고 쓸쓸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재혼할 형편도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개를 한 마리 키워보라고 권유해 개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약간 귀찮은 점은 있었지만 키우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놀아주고 밖에 나갔다 돌아오면 뛰어오르며 반겨주고. 어느날 저녁 식사 후 9시 뉴스를 보고 있는데 곁에 앉아있던 개가 눈을 감고 졸고 있었습니다. 순간 문득 “내가 개 바라보고 개한테 위로를 받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떠오르면서 그렇다면 나는 개친구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런 자기 모습이 처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 뒤 3년쯤 키우다가 병으로 개가 주인곁을 떠났습니다. 얼마나 섭섭하고 불쌍하고 아쉬운지 엉엉 울었습니다. 100만원 드려 오동나무 관을 사고 전문업체에 맡겨 장례식을 치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 보니 죽은 개가 불쌍하기도 하고 밉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죽은 개가 눈에 아른거렸습니다. 그러면서 사람이 사람을 의지하고 살아야지 말도 못하는 개를 의지하고 살았구나라는 반성과 함께 생활태도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열심히 교회나오고, 여전도회 참석하고, 교회봉사하고, 고아원 찾아가고, 교도소 찾아가고, 장애자시설 찾아가고. 그러면서 자기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사람하고 놀고, 이야기하고, 친해야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과 주고 받는 우정, 교제, 사랑은 허실하고, 허약합니다. 쉽게 금가고, 쉽게 깨집니다. 그래서 시편 121편의 시인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들고 도움을 청하고 교제하겠노라” 노래를 부른 것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천지 지으신 여호와 나의 하나님 영원 무궁히 지키시리로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천지 지으신 여호와 나의 왕이여 영원 무궁히 지키시리로다”
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도움을 청하고 교제를 구해야 하는 지 본문 속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겠습니다.

1.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지키신다는 것은 우리를 해하고 넘어뜨리려는 원수와 위험과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지난해 12월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인도, 태국을 휩쓴 지진과 해일참사는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뉴스를 보던 사람이 혀를 차며 “거긴 예보도 없었나요.”라고 했습니다. 예보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연구소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국방부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땅이 갈라지고 바닷물이 밀려오는데 누가 그것을 막아낼 수 있겠습니까?

본문 3∼8절 사이에 “지키신다”는 단어가 여섯 번이나 반복됩니다. “너를 지키시는 자”가 “너를 지켜주신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지키시느냐입니다.

1) 3절을 보면 “너로 실족치 않게 하시며”라고 했습니다. 실족이란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실패나 실수를 일부러 즐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인생을 살다보면 실패가 있고 돌이키기 힘든 실수도 있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실족하지 않도록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2:31∼32절을 보면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하라”고 하셨습니다. 마귀가 베드로를 뒤흔들어 넘어뜨리고 실족하게 하려하지만 주님께서 친히 기도하시고 붙들어 주심으로 다시 일어서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나무를 심으면 주변에 버팀목을 세워 나무가 흔들리지 않도록 해줍니다. 그래야 나무가 제대로 부리를 박고 자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버팀목입니다. 넘어지지 않도록, 내 인생의 뿌리가 흔들려 뽑히지 않도록 붙들어주십니다.

2) 졸지 않고 지키십니다
3절을 보면 “졸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했고 4절에서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졸고 자는 것은 생리현상입니다. 피곤하면 졸고 때가 되면 잠이 오는 것입니다. 물론 습관적으로 조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는 졸립니다.

여기는 교회다 고로 나는 졸립니다. “설교는 졸립다. 지금은 설교시간이다. 고로 나는 졸고 있다.”라는 자기 암시에 걸린 사람들은 그 시간만 되면 졸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졸 때와 깰 때 잠잘 때와 일할 때를 구별짓지 못하는 사람은 성공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파수꾼이 졸면 전선이 무너집니다. 골키퍼가 졸면 그 팀이 패합니다. 기도의 불침번을 서야 할 사람들이 졸면 사단의 군대가 쳐들어옵니다.

마태복음 13:24이하를 보면 일꾼들이 어느 날 밭에 나가 씨를 뿌렸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다시 나가 보았더니 곡식과 함께 가라지(잡초)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원수가 와서 사람들이 잠자는 틈을 타 가라지 씨를 덧뿌리고 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영적으로 조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성경 멀리 하는 것, 기도 멀리 하는 것, 교회 봉사 멀리 하는 것 모두 다 영적으로 잠자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하나님은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우리를 지켜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피곤에 지치면 쉬어야 하고 졸리면 주무셔야 하는 나약한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시편 46:1에서 시인은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 힘, 큰 도움이라”고 했고 91:2에서는 “나의 피난처, 요새”라고 했습니다.

1970년대 미국 하버드 대학 의학박사였던 알렉산더 리프(Alexander Leaf)는 건강장수의 비결을 찾기 위해 러시아 남부, 파키스탄 북수, 에콰도르의 안데스 산맥 등을 찾아다녔습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평균 90세 이상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 곳을 방문하면서 리프박사가 발견한 것은 그들이 젊게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즐겁게 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훈련하고 나이를 먹는 다는 사실을 부정적으로 받아드리지 않는 생활 태도가 그들에게 건강장수의 원인이 됐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하나님이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나를 지키신다는 신앙이 있습니다. 그 신앙만 있다면 넘지 못할 산이 있겠으며 건너지 못할 강이 있겠으며 오르지 못할 언덕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지키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신뢰합시다. 모든 것을 맡깁시다.

2.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얼마동안은 사람도 나를 지켜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히는 못합니다. 그런데 7절을 보면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라고 했고 8절을 보면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내 육체도, 소유도, 건강도 생명도 영혼도 모든 것을 다 지키십니다. 언제까지 지키십니까?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십니다. 어떻게 지켜주십니까?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지켜주십니다. 낮의 뜨거운 해도 밤의 추운 달도 해하지 못하도록 자연재해까지 지켜주십니다.

여행 안내자를 가이드라고 하고 경호원을 보디가드 세큐리티가드라고 합니다. 대통령 경호실이 하는 일은 철통같이 대통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2∼3주전부터 일정과 장소를 점검하고 지키는 것이 경호팀이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허점이 있습니다. 영원히 지킬 수는 없습니다. 천재지변 인재도 다 지키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영원한 경호자이십니다. 내 영혼도 지키시고, 내 소유도 지키시고 내 생명도, 가정도, 자녀도, 내 꿈도 가는 길도 지켜주십니다.

낮에도 밤에도, 동에서도 서에서도, 산에서도 바다에서도, 집에서도 집밖에서도, 등성이에서도 골짜기에서도 지키십니다.
지금부터 영원히 영원히 아멘.

출처 : 여호와닛시♥
글쓴이 : 주님의숲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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