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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뒤에 계십니다(출 14:10-20 )/ 박조준 목사

by 【고동엽】 2021. 12. 27.

하나님이 뒤에 계십니다.

출애굽기 14:10~20

 

 

 

인류역사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450년 동안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나오게 된 것은 정말 극적이요 감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이 날이 있기까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얼마나 고통을 당했습니까? 얼마나 무고를 겪었습니까? 얼마나 눈물로 부르짖었습니까? 이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되고, 택한 백성이 당하는 고통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이처럼 놀라운 역사를 행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나 광야의 문턱에 들어섰을 때입니다. 저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과,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명백하게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낮에는 마치 연기가 솟아오르는 것 같은 구름기둥이 뜨거운 햇빛을 가리워 주었습니다. 밤에는 활활 타오르는 불이 기둥을 이루어 어두운 밤을 밝혀 주었고 밤의 싸늘한 한기를 막아 주었습니다. 이것 자체가 초자연적인 위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낮에는 구름기둥이 움직이는 대로 행진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한번도 가 본적이 없는 초행길이었습니다. 그것도 광야에 이미 다가서 있는 길도 없는 길을 가야만 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는 굉장한 모험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저희의 동행자처럼 여겨져서 외롭지 않게, 불안하지 않게 행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이스라엘 민족의 인도자가 되었기 때문에 초행길이요 험한 길이었지마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안배를 받는 한 두려울 것도 없었고 염려되거나 불안해 할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출애굽기 13장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시편 121편의 말씀처럼 "낮의 해가 너로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하신 대로였습니다.

 

감격 속에 해방되어 자유를 얻게 된 이스라엘 민족은 뒤에서 쫓아올 애굽군대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유에 대한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 때 이처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실을 보여 주신 것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큰 위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너무나 분명했고 하루만이 아니라 매일 매일 계속되었습니다.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그런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과 늘 함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항상 같이 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그만을 의지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며,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기쁨과 형통의 낮이나, 슬픔과 고통의 밤에도 변함없이 우리와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이 부족해서 때로는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 사실을 의심하고 괴로워 할 때가 있습니다. 해는 언제나 빛나고 있지만 어떤 때 구름이 해를 가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 우리는 태양이 없어진 것처럼 생각해서 '하나님이 나를 잊으셨나?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나? 아니면 하나님이 어디 먼 곳에 가셨나?"하고 생각 할 때가 있습니다. 애굽 속담에 "태양빛이 언제나 내린 쬐이면 사막을 이룬다"는 말이 있습니다. 의미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구름 기둥이나 불기둥을 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주신 말씀을 보니까 19절에 "이스라엘 진 앞에 행하던 하나님의 사자가 옮겨 그 뒤로 행하매…"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상징하던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그 위치를 옮겨갔습니다. 언제나 이스라엘 민족 앞에 보이던 것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가서의 말씀처럼 "내가 그를 찾아도 만나지 못했노라" 한 대로 하나님을 찾아도 만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조금 전만 하더라도 모든 것이 밝기만 하고, 모든 일이 잘 되었었습니다. 우리의 힘이 용솟음침을 느끼며 살았었습니다. 승리하고 또 승리하면서 하나님의 산에 올랐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평안히 거하리라고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앞에 어두움이 닥쳐왔습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이 앞에 있었는데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해 줄 수 있는 그 무엇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어떤 때는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이 이루어지는 것 같지 않고, 낭패로 돌아간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우리가 굳게 믿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처한 환경과 조건하고는 너무 반대의 것으로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도 캄캄한 곳에서 깊은 탄식을 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셨습니까?

 

하나님이 그의 백성인 우리를 버리셨습니까?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길이 다 하셨습니까? 하나님의 허락하심과 약속이 영구히 폐하여 졌습니까? 절대로,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왜 안보이십니까? 하나님이 어디 계십니까? 하나님이 우리 뒤에 계십니다. 왜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의 뒤에 계십니까?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애굽왕 바로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떠나게 되자 그 막대한 노동력을 상실한 것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을 향해 길을 떠난 이스라엘 민족의 뒤를 기병들로 하여금 뒤쫓게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다시 잡기 위해 쫓아오는 애굽기병대의 요란한 마차소리, 말들의 울음소리, 군대의 함성은 이스라엘 민족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앞에는 홍해가 가로 막혀 거센 물결만 넘실거리고 있었습니다. 이 엄청난 물결의 위력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었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의 진로는 캄캄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마 이스라엘 민족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하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표적을 찾았을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해 주시지 않으신다면 저희들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 민족 앞에 하나님이 계신 증거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시간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가운데 혹시 앞길을 밝혀 줄 빛이 없는 분은 안 계십니까? 길을 인도해줄 별 하나도 보이지 않고 캄캄한 처지에 있는 분은 안 계십니까? 전혀 장래가 보이지 않는 답답한 자리에 있는 분이 계십니까? 앞으로 가야할 길이 전혀 보이지 않는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세요. 낙심하지 마세요. 당황하지 마세요. 이런 때에 믿음을 가집시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떠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버리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잊으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의 약속을 어기시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신뢰심을 더 강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잠깐동안 그 얼굴을 가리우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찾아도 만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을 따르는 열심을 더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잠깐 자리를 옮기신 것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고 더 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가까이 계십니다.

 

오늘 주신 말씀 1절을 다시 한번 보세요.

 

"이스라엘 진 앞에 행하던 하나님의 사자가 옮겨 그 뒤로 행하매 구름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서 멀리 떠난 것이 아니라 가까이 계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실제는 더 유익한 길로 그들의 보호를 담당하고 계셨습니다. 더 이상 그들 앞에 태양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 뒤에서 큰 방패가 되어 지켜 주신 것입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 뒤에 호위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 사실을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할 때가 있습니까? 그때도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한정된 경험과 의식으로는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나놓고 보면 우리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해서 한숨지으며 주님을 찾아 헤매 인 적이 있지만 그때도 우리와 함께 계셨구나 하는 사실을 발견하고 감사하게 될 때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내가 목이 말라 하나님을 찾던 바로 그때, 하나님이 나를 떠나신 것 같아 안타깝게 부르짖던 바로 그때가 주님이 나에게 가장 가까이 계셨던 때였음을 간증하게 될 날이 온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가까이 계십니다. 앞에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 뒤에 계셔서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하나님이 왜 뒤에 계십니까?

 

하나님의 사자는 구름 속에 자기를 감추인채 이스라엘의 뒤에 계시며 칼을 빼들고 이스라엘을 잡으려고 좇아오는 바로의 군대를 향해 "너는 감히 더 이상 진격하지 못한다. 내 택한 자들을 건들지 못한다"고 하시며 이스라엘 민족의 뒤에서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두움의 방패를 들고 바로의 군대 앞에 가리우므로 저들은 앞을 볼 수 없고 더 이상 진격할 수 없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과 함께 하셔서 포악한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사무엘상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범죄 하여 원수나라 블레셋에게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기는 치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은 전 민족에게 이방 신들을 없애고 하나님만 섬기라고 선포해 온 국민이 그대로 했습니다. 이것을 지켜본 사무엘은 미스바에 모여 국민적인 회개운동을 펴기로 했습니다. 이 정보를 입수한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전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해 갑자기 공격을 해 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그들은 나아가 블레셋과 싸우게 되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해서 그들은 어지럽게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을 쳐 물리치는 승리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강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도우셨으므로 승리하게 된 것입니다. 사무엘은 너무 감격해서 돌 하나를 가지고 미스바와 센사이에 세우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입니다.

 

이 사건을 생각할 때 이것은 옛날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만이 아니라 오늘도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얼마든지 일어나는 감격적인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 앞에 즐거움을 줄 것이 없어도 살아 계신 하나님은 우리 뒤에 계시면서 원수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보호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을 것이다" 이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보이시지 않습니까? 뒤를 돌아보세요! 우리 뒤에 계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앞에서 빛나는 하나님을 뵐 수 없을 때 낙심하거나, 의심하거나, 맥빠지지 말고 뒤를 돌아보시면 거기 우리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뵐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선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무 너무 좋으신 분이 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민족에게도 좋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교회에도 좋으신 분이십니다. 과거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히 좋으신 분이심을 믿습니다. 여러분 개인 개인에게도 좋으신 분이 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떠나신 적도 없으시고, 우리를 버리신 적도 없으십니다. 저는 기쁨을 통해서도 축복을 받았고, 슬픔을 통해서도 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길은 언제나 선하시고, 흠이 없으시고, 완전하십니다.

 

여러분, 혹시 앞이 어두우시면 뒤를 돌아보세요.

 

정오의 햇빛같이 빛나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발견하게 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멀리 계시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뒤를 돌아보면 분명히 하나니은 거기에 계십니다. 어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신 하나님은 오늘도 마찬가지로 축복하시며 영원히 변함이 없으십니다.

 

사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때로 위치를 바꾸시는 것은 더욱 주님의 임재를 가까이 느끼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표적이 늘 고정되어 있다면 평범한 일로 여겨질 가능성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무지개가 언제나 하늘에 있으면 언약의 표시로 감격스럽게 바라보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그 손을 바꾸셔서 그의 자녀를 여러 가지 방면으로 축복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 앞에서 도우십니다. 때로는 우리 뒤에서 도우십니다. 때로는 우리에게 보이게, 때로는 우리에게 보이지 않게 도우십니다. 모양은 다르나 그 목적은 언제나 같으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찾아오시기 때문에 주님의 방문이 매번 감격스럽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이 우리 앞에서 뒤로 그 위치를 옮기신 것은 얼마나 지혜로운 처사인지 모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민족의 앞에 있던 불기둥이 뒤로 옮긴 것은 정말 잘된 것입니다. 왜요? 홍해의 깊은 곳을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담대한 믿음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눈앞에 증거가 분명할수록 그 믿음은 적은 것입니다. 기쁨을 크게 맛볼수록 신뢰의 여지는 작아지게 마련입니다. 믿음은 캄캄한 자리에서 큰 일을 하게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도 꼭 보고야 믿겠다고 고집하는 도마에게 나타나서 다 보이신 후 믿음을 고백하는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사라들은 더욱 복되도다"고 말씀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제 바다의 한 가운데로 내려가는 일을 해야 할 순간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깊은 곳으로 내려가려면 믿음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두려움 없이 바다 한 가운데로 내려갔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높이 들 때 홍해의 물이 쫙 갈라져 통로를 내어 주었고 앞에 불기둥이 보이지 않는데도 이스라엘 민족은 조용히 바다 속으로 행진해 갔습니다. 바닷물 벽이 언제 무너질는지 알 수 없는 아슬아슬 한 길을 걸어갔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뒤에 계시므로 이스라엘 민족의 믿음은 더욱 커졌습니다.

 

가령 욥의 경우를 보아도 그의 모든 소유와 자녀들을 잃지 않았다면 그런 훌륭한 믿음의 소유자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에게서 없어졌을 때 드디어 욥은 한층 더 빛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솔로몬은 풍성한 가운데 많은 잠언을 말했고, 무수한 노래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고난 중에서 "그가 나를 죽이실 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 하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풍부 속에서 솔로몬이 노래한 것과 고난 속에서 욥이 간증한 것은 비교도 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 믿음의 승리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 뒤에 계십니까? 구름기둥 불기둥이 왜 뒤로 옮겨갔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보이는 것을 따라가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최고의 안내자로 삼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곧 이스라엘의 안내자가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믿음이 이만큼 성장했습니다. 보이는 것만 따라가던 사람이 말씀만 듣고 따라가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길을 얻어야 하며 가장 확실한 증거의 말씀을 좇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 뒤에 계셨습니까?

 

사실 이스라엘 민족이 바다에 도달했을 때 앞에서 인도할 인도자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이제 망설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홍해를 향하여 나아가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양쪽에는 물의 벽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길을 잃을 염려도 없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 뒤에 계셨습니까?

 

이스라엘 민족 뒤에 따라오는 대적의 눈을 가리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이 애굽사람을 보면 두려워 떨며 소리쳤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련한 그의 자녀들이 옛 상전을 다시 보지 않게 두 사이를 막아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크신 자비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죄도 그렇습니다.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끼끗하게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뒤를 좇아오느 죄악 사이에 막아서 계십니다. 이 밤에 이스라엘의 대적인 애굽사람들이 가까이 오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는 그 싳들이 쌓인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어떤 환경 속에서도 평안을 누리는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뒤에서 우리 대적 마귀를 막아주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무릇 너를 치려고 제조된 기계가 날카롭지 못할 것이라. 무릇 일어나 너를 대적하여 송사하는 혀는 네게 정죄를 당하리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가 없느니라"했습니다.

 

끝으로, 이사야 52장 12절 말씀을 읽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 행하심,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 호위 하시니리" 이 말씀은 주께서 자기 백성들을 바벨론에서 이끌어 내신 후에 이들이 더 이상 세상에 속하여 따르지 않을 때 주께서 이들과 함께 하심을 나타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2001년 마지막 주일을 보내면서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주신 일에 대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앞에 보이시던 하나님이 보이시지 않으셔도 우리를 떠나 멀리 가신 것이 아니라 우리 뒤에 계시며 호위하심을 믿습니다. 지금까지 도우신 하나님이 다가오는 새해에도 도와주시고, 함께 하시고, 인도해 주실 것을 믿으며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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