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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계획은(빌 2:12-18 ) / 박조준 목사

by 【고동엽】 2021. 12. 27.

하나님의 계획은

빌립보서 2:12~18

 

 

 

오늘 우리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 두 번째 말씀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 이 말씀을 생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모든 인간이 마음속 깊이 갈망하는 소원이 무엇인 것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대로 사람은 범죄 하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우리 자신도 모르는 동안에 잃어버린 영광을 되찾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일정하게 될 때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고 마음에 흐뭇함과 삶에 대한 보람과 긍지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30여년동안에 100만 이상의 우리 동포가 미국에 이민을 갔습니다. IMF를 맞아 아무런 대책이 없이 미국과 캐나다에 가서 불법 체류하면서 지내시는 분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은 세계적으로 볼 때 어느 민족보다 생활력이 강해서 세계 어디에 가도 강한 집념을 가지고 이국 땅에서 생활해가고 있습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외국 땅에 사는 사람이 제일 많은 나라가 중국입니다. 그런데 외국에 가서 사는 나라 수가 가장 많은 나라는 한국입니다.

 

지금 세계 170여개국에 한국교포가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계에 제일 많이 선교사를 보내고 있는 나라가 미국인데 세계에게 제일 많은 나라에 선교사가 가있는 나라도 한국입니다. 어쨌든 우리 한국 사람은 어디가나 아주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오랜 이민 역사를 가진 유대인이 미국에 처음 갔을 때는 채소가게, 생선가게, 구두수선, 세탁소 같은 것으로부터 시작했는데 이제는 보석상을 위시해서 미국금융계를 주름잡고 대학교수, 의사, 변호사 유명한 정치인의 많은 부분이 유대인입니다. 우리 한국 교포들이 이제는 그 뒤를 따르고 있는데 벌써 1.5세 중에도 훌륭한 의사, 검사, 변호사, 판사, 교수들이 배출되고 있습니다. 이민 1세도 짧은 이민 역사 속에서도 상당히 많은 분들이 미국 사회에 정착하고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 민족은 정말 강한 민족이요 대단한 민족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먹고 살아가는데는 별로 걱정할 것이 없게 되었는데 그 다음이 살아가는 보람입니다. 성경에 보면 사람의 사는 것이 가산이 넉넉한데 있는 않다고 했는데 그 말씀이 너무 옳습니다. 의식주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사는가? 이것이 우리가 세상에서 살면서 부딪치는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살기는 사는데 의미 없이, 보람없이, 외롭게, 마음이 상해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에 필요하지 않은 존재다"라고 생각하여 되는대로 살아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버지로 삼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삶의 의미가 완전히 다릅니다. 주안에서 거듭나 새 사람이된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억누룰 수 없는 정열이 솟아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사랑은 다른 사람의 문제를 나의 문제처럼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도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셨가 하는 사실을 보여 주신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 사랑을 받은 우리도 이와 같은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게 되고 여기서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에 뛰어들어 봉사하는 그 힘이 어디서 옵니까? 주님의 사랑이 마음에 불타기 때문입니다. 억제할 수 없는 힘이 솟아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참된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인정하게 되면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나님을 위한 아름다운 일들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삶의 자세를 가진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이 직면하고 있는 어려운 문제에 동참하게 되고 즐거운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기자신이 필요한 존재임을 느끼며 자신의 존귀함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은 새로운 자기 가치를 부여할뿐더러 이것을 위해서는 희생적인 봉사를 기쁜 마음으로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 말씀은 우리가 기대 할 수 있는 기도의 보상을 요약한 것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사람은 보다 크고 아름다운 꿈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인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7절이하에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다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 7:7-11)"

 

이 말씀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인 우리를 손해 시키는 일이 절대로 없으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의 자녀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하신 기대와 소원이 얼마나 크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가장 섭섭해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존재 의미를 무시할 때입니다.

 

구약 열왕기상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엘리야는 그 당시 이방여인 이세벨과 결혼하여 이방신 바알과아세라를 숭상하는 선지자를 후원하는 아합왕과 대결하고 하나님을 섬겨야 할 아합왕이 바알신 선지자를 후원하는 악한 일에 정면대결하고 그 땅을 저주했습니다. 3년반동안이나 비 한방울 내리지 않는 재앙을 당하게 된 아합왕은 회개할 생각은 하지 않고 엘리야를 만나 죽이려 했습니다.

 

아합왕을 만난 엘리야는 바알신 선지자와 대결을 제의했습니다. 참신과 거짓 신을 판결 짓자는 제의 였습니다. 갈렘산에서 참신 하나님을 힘입어 승리한 엘리야는 바알신 선지자들을 한 칼에 죽여 버렸습니다. 얼마나 통쾌한 일입니까?

 

그런데 이세벨은 입에 칼을 물었습니다. 엘리야에게 사람을 보내서 '내일 이맘때 네 목이 바알선지자들 처럼 달아 날줄 알라'는 전갈이 없습니다. 이 전갈을 받은 순간 엘리야는 이세벨의 표독함을 알기 때문에 두려워 호렙산이 있는 쪽으로 도망했습니다.

 

그리고 로뎀나무밑에서 하나님께 억지를 부렸습니다.

 

"여호와여 이제는 넉넉하오니 내 생명을 취하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자기 자신의 존재의미를 완전히 무시했습니다. 그러다가 로뎀나무 밑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때 천사가 찾아와서 엘리야, 포기 상태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을 어루만지면서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의 물을 일어나 먹고 마시고 힘을 내라고 했습니다.

 

엘리야가 일어나 먹고 마시므로 탈진상태에서 헤어 나와 음식의 힘을 얻어 40주야를 걸어 호렙산에 이르렀습니다. 거기 굴속에 있는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떻게 여기 있느냐?"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이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지금 나만 혼자 남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내 생명을 찾아 죽이려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 무서운 지진, 훨훨 타는 뜨거운 불이 자나간 후 세미한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야, 너는 아직 할 일이 있다. 너는 지금 혼자인줄 생각하지만 아직도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자가 7천이 있어"

 

이것은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하려고 생명을 걸고 싸워 보지만 결국 모든 사람이 권력과 금력 앞에 무릎을 꿇고 마는 모습을 볼 때 호렙산 굴속에서 억지를 부리는 엘리야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 할 구가 있습니다. 그래봐야 무슨 소용있나? 내 존재 의미가 도대체 무엇인가? 거인 같은 권력이나 금력은 나를 향해 비웃습니다. 이런 때 마귀는 속삭입니다. "너 혼자 그래 보야 소용없어. 그저 그렇게 그렇게 좋게 좋게 살아. 세상을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여러분, 이런때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니까? "너 하나님의 사람아, 너만 혼자 남은 게 아니다. 아직도 이 땅에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악에게 무릎꿇지 않고 진리 위해 사는 사람이 많이 있다. 어서 힘을 얻고 일어나라. 네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이 이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히 듣지 못하면 정말 우리의 참된 믿음을 지키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권력이 우리를 위협합니다. 금력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이런때 우리의 할 일은 우리의 존재의미를 재확인하는 일입니다. 이 세상이 다 썩은 것 같고, 다 죄악에 물든 것 같고, 다 권력에 야합한 것 같고, 하나님의 사람은 눈을 비기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직도 네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너 혼자가 아니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이 음성을 들을 때 나 자신의 개인적인 무의미와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고 좌절하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시 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꿈이 있는 한 절망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꿈이 있는 한 포기란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 너무 너무 귀한 말씀입니다.

 

열분, 하나님은 그의 자녀인 우리를 향하신 뜻이 계십니다.

 

계획이 계십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의 역사를 통해서 증명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세워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인 우리가 이 인간에 사는 세계 모든 방면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살며 일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알아보려면 인간의 나라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인간의 나라는 모두 내적으로 불안하고, 병적으로 권력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아집과 권력욕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세워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권력의 아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합니다. 이거 참 정치하시는 분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표현입니다만 정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볼 때 여당이던 야당이던 국민을 위해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것보다는 뼈다귀 하나 놓고 으르렁 대는 개들처럼 보입니다. 권력에 지나치게 집착하다 보면 이런 추잡스러운 일들이 얼마든지 벌어 질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나약한 영상의 배를 채우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지배하며 이용합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존엄성을 침범하면서 자기의 권력을 유지하려 하기 때문에 언제나 불안정하고 공포에 싸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도 바로 대접하지 못하는 불행에 바지고 맙니다.

 

그와 반대로 하나님의 나라는 자기자신의 긍지와 자존심이 기초를 이룬 사회입니다. 개인의 존엄과 가치가 받아 들여 지는 사회입니다.

 

그러면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이 이 땅위에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이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사람들의 공동체를 말합니다. 주안에서 새로 지음을 받은 사람의 삶은 세상에서도 그 모습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개인생활에서나 사회생활에서 자신의 삶의 가치를 높게 하려는 자세는 존경해야만 할 일입니다.

 

싹이 트는 것이 씨앗의 본성인 것처럼, 자기 자신을 다른 이를 위해 내어주는 것은 사랑의 본성입니다. 따라서 다른 이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존중히 여기는 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 나라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주는 거룩한 유기체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내가 사는 것이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이 땅위에 사는 사람을 모두 귀하게 대한 말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 치고 천하고 무가치한 사람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우리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해서 그런 것뿐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는 귀한 사람, 천한 사람을 갈라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이 기도 속에는 모든 인류가 인종과 종교,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계급에 관계없이 서로가 서로를 존경하며 대하게 되는 날을 고대하며, 구원받는 사람의 수가 날마다 늘어나고, 교회가 번성할 것을 위해서 기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를 범한 사람을 대했을 때에도 그를 모독하거나, 멸시의 눈으로 보시거나, 천대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주님은 한 사람의 영혼의 존귀함을 인정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기본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그림자가 되어야 할 교회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초대교회때 이런 부조리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야고보서 2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돈많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더러운 옷을 이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 올 때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 보라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동상 아래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고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 한 법을 지키면 잘 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고 경고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사람을 꼭 같이 대하시는데 사람은 사람을 차별하는 경우가 교회 안에서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거 조심해야 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기 스스로 대접을 받으려 하는데 이것은 교회가 어떤 곳인지 몰라서하는 무식한 행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안에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 모두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들어 쓰시지 못할 만큼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은 하나님에게 있어서 없어서 안될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가정의 자녀들 중에 쓸모 없는 자녀가 있습니까? 밖에서 볼 때는 이렇게 저렇게 볼 수 있을는지 몰라도 그 부모가 자녀를 대할 때는 하나 같이 소중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 있는 우리가 각자에게 맡겨진 책임을 바로 감당하지 못하면 그 만큼 하나님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의 책임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따라서 우리가 다른 사람의 소중한 가치를 인정하고 서로 존경하며 대할 때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를 통해서 세워지고 있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세상 사람이 보는 누에 보잘 것 없이, 보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한가지가 사실은 중요한 것입니다. 내년 우리 나라에서 열리게 되는 2002 월드컵을 위해서 지금 준비하는 일에 바쁘고, 금년을 '한국방문의 해'로 정하고 외국 관광객 유치에 힘쓰고 있습니다. 이런때 우리 국민 하나 하나가 비록 작은 일이라도, 말 한마디라도,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손님들에게 사랑과 친절로 대해주면 이 나라를 위해서 크게 봉사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사랑과 친절은 국제적인 언어입니다. 사실 우리가 외국말을 몰라도 사랑과 친절을 나누는데는 아무런 장애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 한사람 한사람에게 소원을 두고 역사 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꿈을 통해서 전달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은 가능성이 있는 영감에 넘치는 생각이나 놀라운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귀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집시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입니다. 이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영광스럽고,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가치를 인정하고 높여 주십니다.

 

우리도 이웃에게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받아들이고 우리 안에 있는 가능성을 개발시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꿈이던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발적으로 십자가를 지는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나를 따르려면 너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하셨습니다. 적극적인 삶의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실현하려는 우리는 값비싼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 대가가 무엇이니까? 십자가입니다. 그러면 그 보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위해 아름다운 일을 했다는 자부심입니다. 우리가 면류관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쓰려면 먼저 겸손의 골짜기를 걸어가야 합니다.

 

희생 없는 성공이란 없습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이란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분 한분을 향하신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런데 이 계획을 이루는데는 반드시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끝으로, 하나님의 계획의 마지막은 무엇입니까?

 

성공입니다. 성공이 무엇입니까? 성공은 항상 이기며 실패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공이란 "내가 목표한 것이 예정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지도 않습니다. 사람이란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습니다. 목표했던 것이 이루어 질 수도 있고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계획을 성실하게 따르면,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 긍지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것이 성공입니다.

 

저는 아무 것도 시도하지 않고 성공하기보다는 위대한 일을 시도하다 실패하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계획의 일부를 이루기 위해 나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서 감당해, 하나님 앞이나 사람 앞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 성공적인 삶을 살아 가시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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