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행복의 이유
요한계시록 21장 1-7절 - 주일설교
< 슬픈 사람들과 함께 하십시오 >
미국에 사랑과 이해심이 많은 한 한인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어느 날 식당에 갔는데 웨이트리스의 서비스가 너무 엉망이었습니다. 메뉴판을 던지듯이 놓고 가더니 조금 있다가 식사도 툭 놓고 그냥 가버렸습니다. 식사가 끝난 후, 팁도 놓지 않고 가려는데 마음이 이상한 기운에 이끌려 흔히 놓는 액수보다 3배나 많은 팁을 놓고 식당을 나섰습니다.
그때 그녀가 따라 나오면서 말했습니다. “손님! 돈 놓고 가셨어요.”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팁으로 놓은 거예요.” 그녀가 다시 물었습니다. “왜 팁을 이렇게 많이 주나요?” 목사님이 대답했습니다. “왠지 오늘 자매님의 얼굴이 어두운 것 같아서 자매님을 유쾌하게 해주고 싶었어요.” 그 말을 듣고 그녀는 자신의 퉁명스러웠던 태도를 사과하면서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알고 보니까 바로 전날에 남편과 이혼한 여자였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 퉁명스럽습니다. 그 말은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가끔 보면 너무 경우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 교만과 질투와 열등감에 사로잡혀서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때로는 너무 살기 힘들어서 순간적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경우에 어긋한 사람을 대할 때 “무슨 사연이 있겠지. 조금 더 이해하자!”는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며칠 전에 배가 아주 고팠을 때, 마침 지갑이 없었습니다. 돈이 없으니까 먹을 것을 사 먹을 수 없었습니다. 먹을 것을 사먹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배가 더 고팠습니다. 그런 배고픈 상황이 오래 계속되면 도둑질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굶는 상황에 처하지 않은 것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배가 고픈데 그 배를 채울 수 없는 것처럼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운 일은 없습니다.
반면에 어떤 분은 배는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족과 깊은 갈등관계 때문에 눈물로 매일을 지내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떤 분은 상담하겠다고 찾아와서 한참 동안 울기만 하다가 “이제 괜찮아요!”하고 그냥 갑니다. 얼마나 힘들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그래도 “이제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 이미 그 상황을 이긴 것입니다. 그처럼 우리는 힘든 상황을 믿음으로 이겨낼 줄 알아야 합니다.
가끔 보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겉으로는 편안한 모습을 하고 긍정적인 말로 오히려 남에게 기쁨을 주려고 노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모습처럼 아름답고, 매력적인 모습은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진실한 믿음을 가진 모습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만나도 좌절하지 말고, 가진 것은 별로 없어도 자기 삶을 긍정하면서 하나님께 헌신하고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며 살 때 그 모습을 통해 믿지 않는 사람도 믿고 싶은 생각이 들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영생을 얻은 가장 뚜렷한 표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영생의 능력이 밖으로 표출되어 내 이웃에게도 삶의 의욕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생을 가진 사람은 ‘사는 능력’도 커지지만 ‘살려주는 능력’도 커집니다. 우리는 예수님 믿고 ‘나 사는 능력’만 커지지 말고 ‘남 살려주는 능력’도 커져야 합니다. 그처럼 언어, 표정, 태도, 자세 등을 통해 남을 살려주려고 애쓰는 믿음이 천국을 예비하는 참된 믿음입니다.
<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
인생은 짧습니다. 어느새 세상을 떠날 날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때 떠나든지 우리는 천국에 기쁘게 입성할 수 있도록 더욱 사랑하고 헌신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랑과 헌신이 있어야 죽을 때도 환하게 미소 지으면서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마지막 순간이 정말 중요합니다. 때로 힘든 상황이 있어도 마지막 승리가 보장되고 천국 소망이 확실하면 우리는 어떤 상황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제 1차 세계대전 때 미국에 사는 한 부인의 외아들이 백혈병에 걸렸습니다. 병세가 심해지던 어느 날, 아들이 조용히 물었습니다. “엄마! 죽음이 뭐예요?”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병실을 잠깐 나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데니스의 질문에 잘 대답할 수 있는 지혜와 평안을 주세요.” 그때 하나님께서 엄마의 마음에 평안을 주셨습니다. 병실로 돌아갔습니다.
다시 아들이 죽음이 뭐냐고 묻자 엄마가 말했습니다. “데니스! 네가 밖에서 놀다가 지쳐서 집에 들어와 그냥 쓰러져 잘 때 다음날 보면 네가 이층 침대에서 자고 있었잖니? 어떻게 그런 일이 생겼지?” “그것은 밤에 아빠가 슬며시 저를 안아서 이층 침대에 올려놓은 거잖아요.” “맞았어! 그런데 죽음도 그와 비슷해! 우리들이 살다가 잠들면 가장 힘센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를 안아 천국에 이끄는 것이 죽음이란다.”
그 얘기를 듣고 얼마 후에 데니스는 엄마 손을 붙잡고 편안하게 천국으로 갔습니다. 믿는 사람이 이 땅에서 불행하게 살아도 가장 행복한 존재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 천국의 꿈과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천국 소망이 소중한데, 그러면 앞으로 우리가 가게 될 천국은 어떤 곳일까요?
1.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곳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사람들은 대개 새 것을 좋아합니다. 새로운 집에 이사만 가도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지면 그것을 바라만 봐도 감동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이 주는 감동은 그 외적인 모습에만 있지 않고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 깊은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희망입니다. 지옥은 어떤 곳일까요? 지옥은 희망이라곤 전혀 없는 곳입니다. 영원히 깰 수 없는 악몽 속에서 후회와 괴로움을 안고 지내는 곳이 지옥입니다. 반대로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영원한 꿈과 희망이 넘치는 곳입니다. 그 상황을 본문 1절에서는 “바다가 없다.”고 표현합니다.
바다는 분리와 이별을 상징하는데, 천국에는 어떤 분리와 이별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먼저 천국에 간 사랑하는 가족 및 친구와 감동적인 재회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그 동안 성경을 통해서 흠모했던 사람들도 직접 만나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 그리고 베드로와 바울도 만나는 엄청난 축복이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가장 사모했던 예수님을 만나 뵙는 극치의 행복이 있게 될 것입니다.
개에게는 특이한 본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주인이라는 사실이 그 본능 속에 입력되면 개는 자기의 생명을 다할 때까지 주인만 바라보며 삽니다. 진실한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면 우리 영혼에 주님 사모하는 마음이 입력되고, 평생 주님을 사모하며 살게 되는데, 그러다가 주님을 만나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천국이 진짜 천국이 되는 이유는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고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하지 않으면 무슨 재미가 있습니까? 에버랜드에 아무리 재밌는 놀이기구가 많아도, 그 놀이기구를 혼자 탄다면 결코 재미있지 않습니다. 그처럼 아무리 즐거운 세계가 펼쳐져도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하지 않으면 그 즐거움과 재미가 외로운 사람에게는 오히려 외로움을 더 느끼게 만듭니다. 가끔 재밌는 영화를 혼자 보려고 오는 사람을 보면 조금 불쌍한 느낌이 듭니다.
그처럼 천국에 갔는데 주님이 없다면 천국조차 별로 즐겁지 않을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아담이 독처하는 것을 불쌍히 여기셔서 하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에덴동산에 두신 후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천국이 왜 좋은 곳입니까?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할 일도 없고 주님이 우리와 함께 영원히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항상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진실한 성도에게는 가장 좋은 일이 아직 오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체험했던 가장 행복한 때보다 더 행복한 때가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어떤 환경에서도 믿는 사람답게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2. 아름다움과 행복이 넘치는 곳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그 천국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모습이면 ‘신부’라고 표현했을까요? 그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으니까 사도 요한이 ‘신부’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미국에 한 시각장애인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봄꽃, 가을나무, 겨울눈, 여름바다 등의 아름다움을 어머니의 말로만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10살 때 개안수술을 했습니다. 수술 후, 몇 주 만에 붕대를 풀자 앞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창문 곁으로 가서 숨이 멎을 듯한 아름다움에 취해서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왜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말해주지 않았어요.” 그때 엄마가 말했습니다. “말해주고 싶어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방법이 없었단다.”
우리가 천국에 가면 그 소녀와 똑같은 심정이 될 것입니다. 숨이 멎을 듯한 아름다움에 취해서 온 우주를 바라보다가 사도 요한을 만나서 물을 것입니다. “요한 사도님! 요한계시록에서 조금 더 자세히 묘사를 해주지 그랬어요.” 그때 사도 요한이 말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싶어도 인간의 말로는 천국을 다 묘사할 수 없었네.”
그처럼 천국은 아름다운 곳이고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 기쁨이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그처럼 천국에서 기쁨이 영원히 지속된다니까 어떤 분은 심각하게 묻습니다. “목사님! 천국에서 영원토록 무엇하고 지내지요? 혹시 지루하지는 않을까요?”
또 어떤 분은 골프를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목사님! 천국에도 골프장이 있을까요?.” 골프 치는 분들은 이 세상에서 골프처럼 재미있는 스포츠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골프 치는 재미를 천국에서 누리는 즐거운 삶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 땅의 재미나 즐거움 때문에 천국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날, 골프를 좋아하는 한 청년이 환상 중에 지옥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지옥에도 골프장이 보였습니다. 그때 그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서 지옥의 인권도 개선되었구나! 그래서 지옥에도 골프장이 생겼구나!” 그래서 그는 편한 마음으로 주일마다 교회는 가지 않고 골프만 치다가 죽어서 지옥에 갔습니다.
그런데 지옥에 가보니까 골프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옥 문지기에게 따졌습니다. “아니, 지난번 환상 중에는 분명히 지옥에도 골프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왜 없습니까?” 그러자 지옥 문지기가 말했습니다. “그때는 지옥 선전 기간이었네. 잔말 말고 들어와!” 그 청년처럼 이 세상의 잠깐의 기쁨 때문에 천국의 기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큰 문만 좋아하면 천국 상급과 행복의 크기는 점점 작아지지만 좁은 문으로 들어가면 행복의 크기와 천국 상급은 점점 커질 것입니다.
3. 슬픈 눈물이 영원히 없는 곳
본문 4절 말씀을 보십시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이 본문을 자세히 보면 단순히 “천국에는 눈물이 없다!”고 하지 않고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라고 했는데 그것은 무엇을 전제로 한 말입니까? 그것은 천국에 간 백성들이 그곳에서 펑펑 울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말입니다.
왜 천국에 가서 눈물을 흘릴까요? 고생하다 주님 만난 감격 때문에 흘릴 것입니다. 그처럼 서럽게 눈물 흘리는 우리의 눈에서 주님은 어머니처럼 눈물을 닦아주실 것입니다. 이 땅에서 눈물 많이 흘리는 것을 너무 서러워하지 마십시오. 눈물을 아는 사람이 눈물을 모르는 사람보다 훨씬 인생을 진지하게 살 수 있고, 그런 상황에서 주님 만났을 때 주님 만나는 감격과 행복은 더욱 클 것입니다.
< 천국을 위해 이겨내야 할 것 >
그처럼 천국의 유업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본문 7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이 말씀을 보면 천국은 그냥 얻어지는 값싼 배급품이 아니라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무엇을 이겨야 합니까? 먼저 불신을 이겨야 합니다. 불신은 모든 불행의 근원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불신입니다.
또한 자신을 이겨야 합니다. 자신을 이기는 것은 말은 쉽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도 이겨야 합니다. 의지를 가지면 성령님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특별히 3가지 유혹을 잘 이겨내야 합니다.
1) 성적인 유혹
오늘날 도처에 이 성적인 유혹이 깔려 있습니다. 조금 번화한 곳에 가면 거의 매일 아침 자동차 유리창에는 “오빠! 전화해!”라는 유인물이 놓여 있습니다. 컴퓨터 이메일을 체크하면 하루 50통쯤 되는 메일 중 한두 개는 이상한 것입니다. 그런 성적인 유혹을 이기고 자기를 깨끗하게 지킬 때, 하나님은 그 깨끗한 그릇에 은혜를 넘치게 부어주실 것입니다.
2) 게으름의 유혹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잘 살고 싶어 하면서도 일하는 것은 싫어합니다. 그러나 게으른 사람이 잘 살 확률은 지극히 적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대박 찰 확률은 쪽박 찰 확률과 같고, 벼락부자 될 확률은 벼락 맞을 확률과 같다.” 게으른 사람은 핑계거리만 찾고 거짓말할 궁리만 찾다가 결국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나 부지런한 사람은 거짓말을 잘 할 줄도 모릅니다. 그래서 부지런하게 살다가 결국 성공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이겨야 할 것은 영적 게으름입니다. 여름 휴가철이 되거나, 연휴가 되거나, 주일에 비가 오면 목회자들은 ‘날씨 따라 변하는 성도’ 때문에 염려를 합니다.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날씨가 추우면 육신적으로는 집에 편히 있고 싶습니다. 그때 교회에 나오면 그것은 날씨를 이긴 것이 아니라 자기를 이긴 것입니다. 결국 날씨나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어떤 존재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잠언 16장 32절 말씀을 보면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성공은 성을 빼앗는 성공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일은 바로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일입니다. 그처럼 자기를 잘 다스릴 때 세상도 잘 다스릴 수 있는 영적인 능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3) 거짓 선지자의 유혹
요새 신기한 모습과 신기한 얘기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신기한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성경이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 더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 이상으로 알려고 하면 이단에 빠지게 됩니다. 가끔 보면 교회 예배나 모임은 등한시하면서 이상한 모임에 숨어서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태도를 주의해야 합니다. 특히 “누가 봤다! 누가 들었다!”는 말은 더욱 주의 깊게 들어야 합니다.
왜 그런 신기한 이야기에 끌립니까?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순진한 사람이 사기를 잘 당한다고 합니다. 물론 그런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자기 마음속의 욕심이 사기를 당하게 만드는 측면도 있습니다. 누군가 땀도 없이 일확천금을 주겠다고 하면 차라리 일확천금을 안 가지겠다고 해야 하는데 일확천금을 노리다가 사기를 당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지나치게 믿지 마십시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고 오직 사랑의 대상입니다. 사람은 믿는 대상이 아니라 믿어 주는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지나치게 믿지 말고 오직 힘닿는 데까지 사랑해주십시오. 그처럼 목회자도 지나치게 믿지 마십시오. 그저 힘닿는 데까지 사랑해주십시오. 그런 마음을 가질 때 내가 가진 문제를 남 탓으로 돌리지 않게 됩니다. 그처럼 자기를 이길 때 하나님은 천국을 유업으로 주실 것입니다.
< 성도의 행복의 이유 >
이제 무엇보다 천국 소유를 가장 삶의 목표로 삼으십시오. 오늘날 사람들의 신앙심이 왜 약해졌습니까? 천국 소유의 꿈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천국 얘기는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천국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개 이 세상에서 살기 힘들고 희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사업이 망하고, 중병에 걸리고, 가정이 파탄 나서 별로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세상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개 천국을 좋아합니다.
사이비 교주에게 넘어가는 사람들도 대개 이 세상에서 별로 희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세상에서 그런대로 살 만한 사람들은 천국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대개 천국 얘기를 싫어하고 심지어는 교인들도 천국 얘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경제 얘기, 가정 얘기, 건강이나 자녀 성공과 같은 얘기들만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 성공에 최종 목표를 두면 삶이 얼마나 허무하게 되는지 모릅니다.
세상은 천국이 아닙니다. 잘산다고 천국이 되지 않습니다. 요새 미국이 얼마나 경제적으로 힘든지 모릅니다. 국민소득이 많으면 낙원이 될 것 같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은 하루 평균 몇 십 명, 연간 2만 여명이 총에 맞아 죽습니다. 과학과 경제, 그리고 문화가 아무리 발전해도 세상에는 여전히 전쟁과 지옥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천국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더욱 천국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천국 소망을 가지면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축복의 약속이 이 땅에서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가장 행복한 천국의 축복이 약속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최선을 다해 헌신하면 이 땅에서도 가장 복된 삶이 펼쳐질 것입니다.
1995년에 있었던 삼풍백화점 사고 때, 한 변호사는 3명의 딸을 한꺼번에 잃었습니다. 욥의 가정을 연상케 하는 슬픔이었지만 그는 곧 절망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다음해 11월, 유족 보상금으로 받은 6억 5천만 원과 자신이 갖고 있는 부동산을 처분한 7억을 더해서 도합 13억 원을 큰딸이 다녔던 맹아학교에 장학금으로 내놓았습니다. 지금 돈으로 말하면 아마 40억도 넘는 돈일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힘이 생겼습니까? 그에게 천국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최대의 약속과 보상과 축복의 실체는 바로 ‘천국 소망’입니다. 그 소망이 있으면 어떤 고난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또한 어느 누구보다도 사심 없이 헌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새 여승훈 선교사님이 초임선교사로서 상당히 어렵습니다. 현재 매달 필요한 금액의 50% 정도만 후원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번에 선교사 훈련학기 마지막 등록을 해야 하는데 2200달러(220만원)가 필요합니다. 교회 선교 예산도 거의 바닥이 나서 그 문제로 간절히 기도 중입니다. 그 필요한 물질이 채워질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고 감동이 되면 헌신도 해주십시오. 그래서 천국 소망과 기쁨이 넘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후원문의 - mission316@hanmail.net (요삼일육선교회) >
천국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행복한 곳입니다. 그 천국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설레고 기분이 상쾌해지는 느낌이 들어야 합니다. 그런 느낌이 있다면 때로 삶에 고통이 있어도 그것은 순간의 에피소드로 끝날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될 약속의 자녀입니다. 바로 그것이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가지게 하는 성도의 행복의 이유입니다. 항상 천국 소망을 가지고 매일의 삶에서 승리하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 이한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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