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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고난의 본

by 【고동엽】 2021. 12. 14.

13.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고난의 본

2004년 4월 4일



베드로전서 2장 18-25절

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베드로전서·후서는 사도 베드로가 박해를 받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쓴 편지입니다. 당시 많은 기독교인들이 받은 박해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위로와 격려가 필요했습니다.

베드로가 이 편지를 쓸 때는 포악한 네로 황제가 다스리던 시기로, 네로는 로마를 새롭게 건설할 목적으로 멀쩡한 도시에 사람들을 시켜 일부러 불을 질렀다가,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기독교인들에게 그 죄를 덮어 씌웠습니다. 화가 난 시민들은 닥치는 대로 기독교인들을 잡아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수만 명의 기독교인이 죽었습니다. 사도 바울과 사도 베드로도 이때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본문 18절을 보면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 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주인이 너그럽든지 까다롭든지 사환들은 범사에 주인들에게 순종하라고 교훈하면서, 19절 이 하에서는 고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 중에 애매한 고난이 있습니다. 특별히 잘못한 것도 아니고 실수한 것도 아닌데 억울하게 당하는 고난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우리는 그 이유를 잘 모르지만 하나님은 다 아신다는 것 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고난의 이유를 다 알 수 없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는 애매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고난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고,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 입니다. 지금은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지만 고난이 나에게 유익이 되고, 축복이 되며,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고 믿으며 그 슬픔을 잘 견디면 은혜가 될 줄 믿습니다.

이어서 본문 20절은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 슨 칭찬이 있으리요”라고 묻습니다. 깊이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고난은 우리의 죗값입니다. 자신이 알고 범했든지 모르고 범했든지 죄에 대한 대가를 그대로 받는 것 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하나님의 심판의 법칙을 따라 우리가 고난을 당하는 것 입니다.

우리가 예전에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지 못한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것을 생각하면 나는 죽어 마땅한 인 간이고, 어떤 고난을 당해도 마땅합니다. 그러므로 내게 상처를 준 그 사람으로 인해 슬퍼하지 마십시오. ‘모든 고난은 내 죗값’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깊이 생각해 보면, 사실 죄 가운데 사는 사람에게 오는 고난 은 축복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이 말을 듣지 않고 잘못 된 길로 가도 그대로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따끔하게 매를 때려서라도 바르게 가르쳐야 할 것 입니다. 그것이 그 아이에게 축복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죄 가운데 사는 인생들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고난을 주십니다. 그것이 우리 에게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여태껏 살아오는 동안 그만큼 죄를 지었으면 되었으니 이제는 죄를 그 치고 우리의 여생을 주님의 뜻대로 살게 하시려 함입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든지 죄로 인해 받는 고난은 부끄러운 고난입니다.

이러한 고난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받으신 고난을 우리가 받아야 하는 것임을 본문 20절 이하는 가르쳐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란 어떤 고난입니까? 첫째, 죄로 인하여 받게 되는 고난이 아닙니다. 둘째, 애매한 고난이 아닙니다. 셋째, 오직 구원을 위해 받는 고난입니다.

예수님은 출생의 순간부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까지 일평생 고난의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이 고난당하신 것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영광 보좌를 버리고 이 세상에 오셔서 고난을 받으신 것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 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 가운데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모두 구원하고자 하는 뜻을 이루기 위한 것 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마지못해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라, 자원하여 기쁨으로 십자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그때 십자가를 지지 않겠다고 생각 하셨다면, 하늘의 천사들을 동원하여 원수들을 멸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메시아가 와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를 구원하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거짓이 될 것 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욕한다고 해서 욕하지 않으셨고, 때리고 침을 뱉는 자들을 향해 “두고 보자”라고 위협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저 잠잠히 고난을 받으시고, 모든 것을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본문 24절은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이사야 53 장 5-7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 선지자는 주님이 오시기 700여 년 전에, 마치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까지 고난 받는 모습을 눈으로 보듯 구체적으로 예언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시기 위해 묵묵히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의 사랑의 극치를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위대한 사랑은 위대한 희생을 통해 이루어지는 줄 믿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본문 20-21절에서 말합니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예수님이 본을 보여 주신 그 발자취를 따라 우리도 선을 행함으로 받는 아름다운 고난 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할 것 입니다.

 

태국의 기독교 역사는 200년이지만, 교회는 2천 개 정도에 불과합니다. 태국 교회는 왜 부흥 되지 않았을까요? 박해가 심해서일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박해가 없었기 때문에 태국에는 순교자가 없습니다. 순교자가 없는 교회는 절대로 부흥하지 않습니다. 오 예수를 믿어도 고난은 받지 않겠다는 사람, 구원은 받아도 십자가는 절대로 지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 고난을 두려워하고 고난을 피하는 교회, 순교자가 없는 교회는 부흥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이만큼 부흥한 것은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과 같은 순교자 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는 일보다 더 선하고 의로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이를 위해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도 어떠한 핍박이나 고난이 와도 두려워하지 마십시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살고,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담대히 고난을 받으면,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위로와 평강이 우리 삶에 넘칠 것 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장차 주님 앞에 섰을 때 면류관 상급이 예비 되어 있을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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