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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by 【고동엽】 2021. 12. 3.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2006년 9월 1일


누가복음 15장 11-24절

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 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여러분이 성경을 읽을 때 항상 가장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본문 말씀이 보여 주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를 찾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깨달을 때 우리의 믿음이 성장합니다.

 

탕자의 비유는 모든 성도들이 다 아는 내용입니다. 탕자의 비유를 통해 알 수 있는 하나님은 첫째, 사랑이 많고 좋은 아버지입니다.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는 큰 부자입니다. 많은 하인을 거느리고, 집은 대궐 같았을 것이며, 모든 것이 풍성해 부족함이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한 완전하신 아버지이십니다. 이런 아버지를 섬기는 아들은 얼마나 복됩니까!

저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친구들을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릅니다. 친구들이 아버지에게 혼날 때, 그런 아버지라도 있다는 것이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난 후로는 세상 아버지에 대한 부러운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지 알고 난 후에는 세상에 부러운 것이 하나도 없어졌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얼마나 좋은지, 하루 종일 “아버지” 하고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깊은 은혜의 시간을 가지면서,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나를 사랑하고 품어 주시는지, 그리고 가면 갈수록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지, 저는 아무 불만도 없고 오히려 그분의 은혜가 과분할 뿐이었습니다. 아 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은 좋은 아버지이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독생자까지도 아끼지 않고 내주셨습니다. 로마서 8장 32절은 전하기를 “자기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라면 아까운 것이 하나도 없으십니다. 아들까지 아끼지 않고 내주신 하나님이 뭐가 아까워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주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하나님과 좋은 관계 속에 살 면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은 늘 우리의 좋은 아버지가 되어 주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모든 것을 허락해 주시는 아버지입니다. 철없는 아들이 돌아가시지도 않은 아버지의 재산을 미리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의 그런 요구를

허락해 재산을 나누어 줍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 기도할 때 욕심에 눈이 멀어 얼마 나 철없는 기도를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허망한 기도는 마치 철없는 둘째 아들의 요구와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믿음이 작은 사람, 성경을 잘 모르는 어린아이 같은 이에게도 잘 응답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맹인에게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막 10:51)라고 물으셨습니다. 맹인이 눈뜨고 싶다고 말하리라는 것을 예수님이 모르셨겠습니까!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 주고 싶어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실 때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인간 스스로 선악과를 먹을 수도 있고, 먹지 않을 수도 있는 선택권을 처음부터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피조물 인 인간을 친구 대하듯 하시고, 인격과 모든 것을 존중해서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문제는 선악과를 따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으나, 먹으면 정녕 죽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수도 있고, 불순종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길은 축복의 길이 되고, 어떤 길은 지옥으로 가는 길이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선택하지만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신명기 1장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받는 축복이 언급됩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살지 않을 때 받는 벌이 얼마나 큰지도 자세하게 설명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대로 살 때는 복을 받았지만 말씀을 저버릴 때는 죽음을 맞았습니다.

성경은 정확 무오합니다. 심는 대로 거둡니다. 그런데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은 ‘혹시 예외가 있겠지’라고 생각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삽니다. 믿음이 없고 확신이 없어 탕자와 같은 행동을 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주님의 말씀대로 됩니다. 재산을 탕진한 탕자는 돼지 먹이는 쥐엄 열매로도 배를 채우지 못하고 주려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생명을 떠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은 축복을 멀리하는 길이요, 저주받는 길입니다. 요행을 바라고, 하나님을 시험해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은 기다려 주시는 아버지입니다. 누가복음 15장 20절은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라고 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방탕한 아들과 같은 우리가 죄 가운데 빠져 허덕일 때에도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죄 가운데 있는 죄인들이 돌아오기를 바라고 기다리십니다. 더 이상 고생하지 말고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넷째, 하나님은 아들을 절대로 버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시는 아버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눅 15:4~?) 고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에는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다 신령하고 장성한 신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육신에 속 한 자입니다. 그래서 교회에도 시기와 분쟁이 있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고, 때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못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저버릴 때는 징계하시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로 버리지 않고 멸하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타락하자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리 고 120년 후 남유다도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고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그래도 결국에는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구 원하셨습니다. “너를 흩었던 나라를 진멸하여도 너는 진멸하지 않겠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택함 받은 백성을 결코 멸하지 않으십니다.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인지 모릅니다.

 

다섯째, 하나님은 아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다 받아 주시는 아버지입니다.

아들이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 하겠나이다”(눅 15:20-21)라고 말하였음에도 아버지는 들은 척하지도 않고 너무 좋아서 얼마나 잘해 주시는지 모릅니다.

저와 여러분이 죄를 범할 때는 하나님이 마음 아파하시지만,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올 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날마다 회개해야 합니다. 죄를 짓는 순간마다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것이, 교회로 돌아오는 것이 바로 사는 길입니다.

과거를 묻지 마시기 바랍니다. 혹 과거가 좋지 않은 사람이 교회에 오면 더 존중하고 칭찬하십시오. 어거스틴이 얼마나 타락했었습니까! 그의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로 삼십 대가 되어서야 회심하고 돌아와서는 그 시대의 성자가 되었습니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되어도 돌아오십시오.

예수님의 우편에 있던 강도는 얼마나 늦었습니까?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 하소서”라며 회개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돌아왔을 때, 주님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23:42-43). 회개하고 돌아온 순간, 살아납니다.

어떤 사람이 방탕한 짓을 하다가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수십 년간 옥살이를 하다가 가족과 남남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감옥에서 예수님을 믿고 변하게 되었습니다. 모범수로 형기가 단축된 그는 감옥에서 나오기 전에 집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나를 용서하고 받아 준다면 집으로 가겠다. 나를 받아 준다면 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자기 집 근처에 다다르자 마음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런데 창밖에 보이는 자기 집 나무에 노란 손수건 수백 개가 리본으로 묶여 달려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회개하기만 하면 다 받아 주시는 아버지입니다. 이 믿음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돌아오고, 마귀에게 속지 않습니다.

 

여섯째, 하나님은 아들이 진심으로 회개하면 은혜와 복을 주시는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기뻐하며 목을 끌어안고 제일 좋은 옷과 가락지를 주고 잔치를 벌였습니다. 누구든지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오면 죄 사함을 받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저주를 속량 받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천국 백성이 됩니다.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회개를 어정쩡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진심으로 철저히 회개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이 가장 먼저 성령을 받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경험이 없으면 회개를 덜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왔다고 해서 누구나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평생 교회에 다니지만 죽어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을 저는 봤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죄 사함 받고 의롭다 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했음에도 세상에 나가면 또 넘어지기도 합니다. 하나님 앞에 눈물로 회개했는데, 또 죄를 범합니다. 회개하지만 죄책감으로 인해 자꾸 넘어집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심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는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주어지는 “내가 네 죄를 사했노라”라는 사인(sign)은, 우리가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을 때 주시는 선물인 성령으로 나타납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서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전합니다.

우리가 철저히 회개할 때 하나님의 가슴이 뜨거워져 축복을 부어 주십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사 43:25).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 들은 마치 컴퓨터에 입력되어 있던 정보들이 포맷되듯 모든 죄들이 완전히 도말되어 없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마치 이 세상에서 한 번도 죄를 범하지 않은 것처럼 해주십니다.

 

우리는 바르게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회개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회개하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둘째, 회개하지 않고 완악함을 유지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쌓을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 도다.”(롬 2:5)라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셋째, 회개는 빨리 할수록 좋고, 늦을수록 상처가 깊고 고난이 많습니다.

넷째, 멸망하는 사람은 마음이 완악해지게 되어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신 것은 그를 완전히 멸하시기 위함입니다(출 14:8).

다섯째,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은 반드시 회개합니다. 택함 받은 백성의 확실한 증거는 반드시 회개가 있다는 것 입니다.

우리는 탕자의 이야기를 통해 결론을 얻습니다. 깨닫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 에 자세히 기록된 이유는 결과를 보여 줌으로 우리가 고생하지 않고 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말씀의 교훈을 내 것으로 삼으십시오. 하나님의 자녀는 탕자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온 사람에게는 축복의 길과 살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온 전한 회복을 주실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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