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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아리따운 소녀(왕상 1:1-4) / 지용수 목사

by 【고동엽】 2021. 11. 26.
심히 아리따운 소녀
열왕기상 1:1-4

오늘 주님의 말씀이 떨어질 때 여러분의 마음이 시원함을 경험하고 뜨거워짐을 경험하고 담력도 얻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윗”하면 우리는 골리앗을 생각하게 됩니다.


거구 골리앗 대장 앞에 서 있는 왜소한 다윗, 막대기 하나와 물맷돌을 갖고 싸운 그 어린 소년 다윗이 이제 늙어서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않다고 본문 1절에 말씀하십니다.


다윗은 100전 100승하는 대단한 장군이었습니다. 음악에도 천재였습니다. 수금을 잘 다루는 특별한 은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찬송을 많이 지었고 또 영적으로 힘이 있어 그가 수금을 타며 찬송을 하면 귀신이 떠나갔습니다. 그는 왕으로서도 통치를 굉장히 잘 했습니다. 그는 가슴이 넓어서 자신의 정적인 사울 왕도 품어주었습니다. 사울 왕이 죽었을 때는 슬퍼하며 울었고, 자신은 남유다 출신이지만 북 이스라엘까지도 품어주어 통일 왕국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큰사람이었습니다.


우리 한국에도 가슴이 넓은 지도자들이 많이 나오기를 원합니다.


서울에서 대통령이 나와도 온 겨레를 품어야 하고, 영남 지역에서 대통령이 나와도 전국을 다 품어야 하고, 호남 지역에서 대통령이 나와도 전국을 품어야 나라가 통일이 되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 가슴이 한없이 넓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와 이스라엘을 통일시킨 것입니다. 그는 헤브론에서 7년 반, 예루살렘에서 33년, 약 40년간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는 나라를 성공적으로 다스린 왕 중에서도 뛰어난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싸우면 백전백승하는 왕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서 그렇게 되었지만 다윗은 사람으로서 굉장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많아 늙으니 옷을 많이 입어도 따뜻하지 않고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않습니다. 신복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꺼벙한 왕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사람입니다.


“다윗 왕이 나이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라는 본문 1절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보십시오.


“○○○이 나이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기분이 어떻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다 늙습니다.


촛불을 켜놓고 창문을 여니 바람이 들어와 촛불이 꺼질 듯 꺼질 듯합니다. 그래서 창문을 닫으니 불꽃이 확 살아납니다. 촛불이 꺼지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그러나 그 촛불은 결국 타서 없어지고 맙니다.


암이 생긴 사람이 그것을 빨리 발견하여 수술을 해서 회복되었습니다. 다행한 일입니다. 그러나 결국 죽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달리다가 아찔한 순간에 브레이크를 잡아 살았습니다. 1초만 늦었어도 죽었을 텐데 살았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그러나 그것도 잠시고 결국 죽습니다.


촛불이 중간에 꺼지지 않아도 결국 타서 없어지듯이, 사람은 태어나면 인생의 시간이 자꾸자꾸 단축되어 늙고 마지막에는 죽음 앞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청년도 잠깐입니다.


시편 110편 3절에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해야 됩니다. 목회를 하든 성가대원으로 봉사를 하든 부엌에서 봉사를 하든 무슨 일을 하든 즐거이 해야 됩니다.


새벽 이슬 같은 청년들이 주께 나온다고 말씀하시는데, ‘새벽 이슬 같은 청년’이 얼마나 좋습니까? 새벽 이슬은 은혜를 가리킵니다. 청년도 은혜가 덮어주어야 아름답습니다. 은혜가 없으면 청년도 더럽고 추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청년을 새벽 이슬 같다고 한 것은 청년의 때가 잠깐만에 지나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새벽 이슬은 잠깐만에 없어집니다. 청년의 때가 화려하고 좋지만 잠깐만에 중년이 되고 장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번 지나온 그 인생, 그 시점은 다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저는 가끔 소년의 때가 그립습니다. 그러나 다시는 소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한 번 흘러간 강물은 다시 내 곁에 오지 않습니다. 내 몸이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한 번 스쳐간 강물을 따라 그 물에 설 수가 없습니다.


인생의 세월이 흘러가는데, 한 번 흘러가면 끝입니다. 또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모릅니다. 그래서 시편 90편 10절에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활을 쏘면 날아가듯이 세월도 금방 날아갑니다. 새해가 시작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6월입니다. 내일 모레면 성탄절입니다. 오늘 생일을 맞이했는데 내일 모레면 또 생일이 다가옵니다. 그러다 죽는 날이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만일 아담 이후로 지금까지 천 년 이천 년 동안 사람이 계속 살았다면 이 지구촌은 사람으로 콩나물 시루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천 년 이천 년 계속 살아 있는 사람은 이 지구촌에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사람은 흙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흙에서 나는 것을 좋아하고 흙에서 나는 것을 먹고 땅을 좋아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본질입니다. 사실 전쟁을 하는 것도 모두 땅 때문입니다. 그리고 죽으면 땅에 묻혀 남는 것은 흙뿐입니다. 우리의 단단한 뼈도 흙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저도 흙이 되는 것입니다. 인공 위성이 발사될 때 뒤의 것은 다 차버리고 좍 올라가듯이, 우리가 천국에 갈 때 육신은 떨어뜨리고 영혼만 좍 올라갑니다. 할렐루야! 물론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는 우리의 육신도 부활되지만 그 때까지는 흙인 우리의 육신은 떨어뜨리고 영혼만 올라갑니다.


믿지 않는 자는 흙을 떨어뜨리고 지옥으로 갑니다.


사람은 영과 육(몸) 두 가지 존재입니다. 영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몸은 흙에서 왔기 때문에 흙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영과 육이 함께 있으면 살고 분리되면 죽는 것입니다.






이제 다윗은 곧 영과 육이 분리되어 육은 썩고 영만 하늘로 올라가게 됩니다.


우리도 그 날이 곧 옵니다. 그러니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 안 됩니다.


그런데 다윗의 일생이 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일생도 모두 기록됩니다.


그리고 천사가 기록하지 않고 사람이 기록하지 않아도 우리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하면 존경받는 대통령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카터 대통령’하면 정직한 대통령이 생각납니다. ‘클린턴 대통령’하면 그 나름대로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루를 잘못 살아도 그것이 그 사람의 이미지가 될 수 있습니다. 하루를 잘 살아도 그것이 그 사람의 선한 이미지가 될 수 있습니다.


하루 하루가 얼마나 중한지 모릅니다.


책을 쓰다가 잘못 된 것은 찢어서 휴지통에 넣을 수 있는데, 인생의 책은 찢어버릴 방법이 없습니다. 내가 어디에서 한 것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 용서는 받지만 사람들의 기억에서는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일생이 아름답고 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언젠가는 주님 앞에 서야 하고 죽음의 강을 건너야 하는데 그때 후회하지 않는 하루하루를 젊을 때나 중년의 때나 살 수 있기 바랍니다.


나이 오십이 넘었으면 욕심을 버리고 주님 맞을 준비를 잘 하라고 어느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정말입니다. 내일 모레면 우리도 다윗처럼 가게 되는데, 늙어서 때가 묻으면 추합니다. 늙으면 존경 받아야 합니다. 늙어서 손가락질을 받으면 태어나지 않는 것보다 못합니다. 젊어서는 조금 실수해도 괜찮지만 늙어서는 귀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앞으로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 왕은 늙도록 부하고 존귀했습니다. 끝까지 신복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칼을 뽑아 들고 전쟁터에 나갔던 다윗 왕이었습니다. 그의 카리스마, 그 권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허약한 노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신복들은 변함없이 그를 사랑했습니다. 그 신복들이 모여서 의논을 했습니다.


“우리 왕께서 저렇게 추위를 타시니 어떻게 할까? 좋은 방법이 없을까?”


신복들이 의논 끝에 아주 예쁘고 건강한 어린 처녀를 구해 왕의 품에 두자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말하자면 인간 난로를 두자는 것이었습니다.


신복들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지나친 충성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이것은 의학적 처방입니다. 프레드릭 대왕도 몸이 쇠약할 때 의사의 처방에 따라 아주 건강한 처녀를 품고 자서 건강을 회복한 적이 있답니다. 여러분도 난로 중에 최고 난로는 인간 난로라는 것을 아시고 부부간에 서로 의지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다윗 왕의 신복들은 전국에서 건강한 어린 처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또 그 처녀는 왕의 사랑도 받아야 하니 아주 빼어난 미인을 찾았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자라나신 나사렛에서 11. 2km 떨어진, 헐몬산의 동남쪽에 위치해 있는 수넴은 미인 촌으로 소문나 있었습니다. 수넴은 농토가 비옥하고 수풀이 우거져 있는 마을로 미인이 많았습니다. 우리 나라도 남쪽에는 잘 생긴 남자가 많고 북쪽에는 잘 생긴 여자가 많아 남남북녀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유다 나라의 최고 미인들은 수넴에 가장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아비삭이라는 처녀가 최고로 아름다웠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심히 아리땁다고 표현했는데, 다른 아름다운 어떤 처녀와도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미인이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미인이 다윗 왕의 난로가 되고, 또 다윗 왕을 봉양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주석가들은 다윗 왕을 타락시키기 위해 악한 신하들이 처녀를 다윗 왕의 품에 맡겼다고 해석하는데, 그것은 무리한 해석입니다.


당시는 선한 남자라도 지위가 높으면 많은 여자를 거느리고 사는 것이 인정되던 때입니다. 그래서 다윗에게는 이미 처들과 후궁들이 있었으니 죄를 더 지을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솔로몬 왕은 처와 첩이 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니 다윗 왕을 타락시키기 위해 처녀를 궁중으로 끌어들였다는 것은 무리한 해석입니다. 그저 왕의 건강을 돕기 위해 아비삭을 궁중으로 불러들인 것입니다.


다윗 왕이 힘이 넘치던 젊을 때나 힘이 없어 기진맥진하는 늙을 때나 변함없이 다윗 왕을 사랑했던 신복들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왕이 되어도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게 됩니다. 그러나 다윗 왕이 늙어 힘이 없게 되자 다윗 왕을 배신하고 아도니야에게 붙은 요압 장군을 비롯한 몇몇 사람은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 때 죽임을 당합니다. 젊고 강할 때는 붙어 있다가 늙고 힘이 없어지면 배신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런 자들, 배신하는 자들은 아주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왕 되신 예수님을 섬기는 마음이 변함 없어야 합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일에 변함이 없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힘있고 잘 될 때는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가 어려워지면 교회를 버리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잘 될 때나 어려울 때나 변함없이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귀히 여겨 주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24절에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이런 아름다운 충성이 여러분과 제 가슴에 타오르기를 바랍니다.






다윗 왕의 궁궐에 들어간 아비삭은 이제 그 당대 모든 아가씨 중에 가장 영예로운 여자가 되었습니다. 아비삭이 그런 여자가 된 것은 심히 빼어난 그의 아름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비삭보다 더 좋은 것, 더 큰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 주님의 아비삭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슴에 있는, 하나님의 어깨와 어깨 사이에 있는 하나님의 귀염둥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비삭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대한민국에서 주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분이 누구일까? 우리 주님께서 심히 아리땁게 보셔서 주님의 가슴 한복판에 두는 분이 누구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교우들 모두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기 바랍니다.


다윗의 아비삭은 행복하면서도 불행합니다. 왕의 여자가 된 것은 최고 여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비삭은 다윗 왕과 동침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딸처럼 사랑하고 새끼 양처럼 품고 자면서도 부부 관계를 하지 않으니 아비삭은 일생 남자를 모르는 여자가 된 것입니다. 아마 아비삭을 부러워하는 여자는 없을 것입니다. 왕의 여자가 된 것은 부러움을 받을 일이겠지만, 남자와 함께 살지 못하니 여자로서는 복이 없는 여자인 것입니다. 아비삭은 울기도 많이 했을 것입니다.


사람이 잘 나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면 좋기도 하지만 좋지 않은 일도 따라오는 것입니다. 외모가 너무 뛰어나 어떤 상을 받으면 영광이 되기도 하지만, 좋지 않은 일도 따라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비삭은 좋은 것만 있습니다. 영광만 있습니다. 나쁜 것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 다윗의 아비삭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비삭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주님께 사랑 받는 아리따운 신부, 하나님의 신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외모는 상관 없습니다. 우리 용모는 하나님께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사무엘아, 이새의 아들 중 내가 택한 자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 말씀대로 베들레헴에 가서 이새의 아들들을 청했습니다. 키가 훤출하고 잘 생긴 이새의 장자 엘리압을 보는 순간, 사무엘은 생각했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실 자가 여기에 있구나.’


사무엘이 좋아하며 엘리압에게 기름을 부으려 할 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압에게 기름 붓지 말라.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나는 그 중심을 보느니라.”


이새의 여덟 아들 중에 제일 크고 잘 생긴 엘리압을 하나님께서 버리셨기 때문에 그는 왕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가 버림을 당한 것은 그의 마음이 아름답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해 여덟 아들 중에 마음이 가장 아름다운 다윗, 제일 작은 코흘리개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이새의 여덟 아들 중에서 뿐 아니라 당시 이스라엘 모든 청년 중에서 마음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다윗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보십니다.


시편 139편 1절, 2절에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통촉한다는 말은 꿰뚫어 본다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12장 25절에도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셨을 때 바리새인들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왜 이러한 말을 하는지 그들의 속마음까지 아시는 예수님, 그들의 생각까지 아시는 예수님께서 그들을 책망하신 말씀이 12장 25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과 제 마음을 다 꿰뚫어 보고 계십니다. 여러분과 제 마음을 다 알고 계십니다. 욕심을 품은 마음, 어떤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 음란을 품은 마음을 사람들에게는 속일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속이지 못합니다.


우리 마음을 아름답게 예쁘게 잘 간직하면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고 우리를 품에 안아 주십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어떤 마음을 가장 예뻐하실까요?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의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빌립보서 2장 5절에 말씀하십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우리의 마음은 좋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을 품지 말고 우리 주님의 마음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 같으면 어떻게 생각하실까?’를 늘 생각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생각이 그러하면 그 위인도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깨끗하면 깨끗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거룩하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겸손하면 겸손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음란하면 음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마음에 쏙 드는 예쁜 마음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는 하나님께 우리의 생활, 우리의 행동을 잘 보여 드려야 됩니다.


사무엘상 2장 3절에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니엘서 5장을 보면 하나님의 저울에 불합격한 벨사살 왕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벨사살 왕이 귀인 일천 명을 초청하여 잔치를 배설하고는 하나님의 전에서 하나님을 섬길 때 쓰는 금 그릇을 가지고 와 그것으로 술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금, 은, 동, 철, 목, 석으로 만든 우상들을 찬양했습니다.


그 때 왕궁 촛대 맞은 편 벽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 글을 썼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글을 본 벨사살 왕의 안색이 변하고 무릎이 맞닿을 정도로 떨렸습니다.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벨사살 왕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저 글자를 읽고 해석해 보아라.”


아무도 그 글을 읽지 못했습니다.


왕이 더욱 번민하며 그 나라의 모든 박사와 술객들을 불러놓고 말했습니다.


“저 글을 해석하는 자에게 내가 상을 내리고 이 나라 셋째 치리자로 삼으리라.”


그래도 그 글을 읽고 해석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때 왕의 어머니 태후가 와서 다니엘에게 물어보면 알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초청되어 온 다니엘이 그 글을 읽고 해석했습니다.


“왕이여, 왕은 느부갓네살 왕의 아들로서 왕의 부친이 겸손할 때는 하나님께서 왕의 부친을 세워 주셨지만, 왕의 부친이 교만할 때는 짐승처럼 만드신 것을 아시면서도 어찌 이처럼 교만하셨습니까? 그것을 아시는 왕께서 어떻게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그릇으로 술을 마시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우상을 찬양한단 말입니까? 저 글은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인데 ‘메네’는 하나님께서 이미 왕의 시대를 끝냈다는 뜻이고 ‘데겔’은 왕의 행동이 하나님의 저울에 불합격되었다는 뜻입니다. 오늘로 이 나라는 끝이 나게 됩니다.”


다니엘의 말대로 그날 페르시아 왕이 와서 벨사살 왕을 죽이고 그 나라를 빼앗았습니다.


그래서 다리오가 왕이 되고 다니엘이 총리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동을 달아보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과 행동이 아름다운 사람을 예뻐하십니다.


사람도 행동이 아름다운 사람을 귀히 여깁니다.


아르헨티나의 골프 선수 로버트 빈센죠는 국민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는지 우상처럼, 영웅처럼 귀히 여김을 받으며 사랑을 받는답니다. 그가 그렇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골프를 잘 해서뿐 아니라 그의 생활이 아름답기 때문이랍니다.


한번은 골프 대회에서 1등을 하여 많은 상금을 받은 그가 인터뷰를 한 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동차를 타려고 하는데, 한 여인이 울면서 다가왔습니다.


“제 딸이 병으로 죽어 가는데 돈이 없어서 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발 도와 주세요.”


그때 빈센죠 선수는 상금으로 받은 엄청난 액수의 수표를 꺼내어 사인을 한 후 그 여인에게 주며 말했습니다.


“이것으로 따님의 치료를 받도록 하십시오.”


며칠 후 빈센죠 선수가 클럽 하우스에서 식사를 하는데 여 종업원이 와서 말했습니다.


“로버트 빈센죠씨, 당신이 속았습니다. 며칠 전 당신에게 엄청난 돈을 받아간 그 여자는 사기꾼입니다. 그 여자를 추적해 보니 그 여자는 결혼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아픈 아이도 없었습니다. 당신은 사기꾼에게 사기를 당한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과 제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당장 그 여자를 찾아가서 돈을 빼앗아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뭐라고요? 그 여자에게 죽어가는 아이가 없다고요?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군요. 죽어가는 아이가 없다니 참으로 감사하군요.”


빈센죠 선수의 너무나도 선한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분도 더러 계시겠지만, 저는 그 글을 읽을 때 가슴이 찡했습니다.


‘나는 그런 선을 행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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