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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6:1-6 기다리는 자

by 【고동엽】 2021.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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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6:1-6 기다리는 자

세기16:1-16 말씀으로 기다리는 자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같이 나누겠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록펠러는 젊었을 때 친구의 권유로 광산을 하게됐습니다.

그런데 광산에서 금이 나오지 않아서 망하게 됐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까지 가게되니까 록펠러는 자살이라는 선택을 하게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황량한 광산에 엎드려서 울면서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나에게 보여달라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분명히 하나님이 때가 되면 열매를 얻게 해주겠다.

그러니 깊이 한번 파보라는 마음에 들림이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록펠러는 더 깊이 계속 파 내려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망한 것이 왜 저러는가 손가락질을 했지만

록펠러는 계속 파내려 갔더니 금이 아닌 검은 액체가 나왔는데 그것이 석유였습니다.

그래서 록펠러는 석유 재벌이 됐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큰돈을 벌게 되는 록펠러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이 창12장에서 하나님께서 너의 자손을 하늘에 별같이,

바다에 모래같이 주고, 또 너를 통해서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얘기하셨지만

10년이 지나도 아무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얼마나 낙심이 되고 힘들었겠습니까.

그때 아내 사라가 생각해 보니 자기가 늙어서 못 낳지 남자는 날수 있으니까 자기의 종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주면 하갈을 통해서 낳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하갈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잉태했습니다.

그랬는데 하갈이 잉태하고 나니까 옛날에는 종으로 살던 하갈이 배가 불러오니까

배자랑을 하고 다닙니다.

그래서 주인 사라의 말도 듣지 않고 오히려 주인을 멸시하고 함부로 했습니다.

그래서 주인 아브라함에게 가서 얘기했더니 당신 종이니 당신 마음대로 하라고 해서

사라가 하갈을 쫓아냈습니다.

그랬는데 그 아들을 낳고 이스마엘이라고 했는데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86세였습니다.

그런데 17장에 보면 99세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낳고 난 이후에 13년 동안이나

아브라함이 답답하도록 응답하지 않고 기다리게 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이 이삭을 주는 때는 25년이 지나야 되는데

그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방법으로 낳은 아들이 이스마엘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면 내 때를 맞춰서 내가 좋을 때를 맞춰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할 때 우리에게는 이스마엘이라는 열매가 맺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도 이스마엘은 중동의 아랍민족의 조상입니다.

수천년이 지났는데도 많은 문제가 개입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BC2200년 사람이고 예수님이 오시고 또 2000년이 지났으니까

4,000년 전에 일어난 일이 지금까지도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따라 기다리지 못하고 내가 무엇인가를 해버릴려고 하면

큰 아픔이 온다는 사실을 알고,

오늘 본문을 통해서 어떻게 우리가 왜 이렇게 기다리는 자가 되어야 하는지 본문을 보겠습니다.

 

먼저 창16:2-3절을 보겠습니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치 아니하였으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사람 하갈을 가져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한 지 10년 후이었더라.

 

첫 번째 내가 하려고 하면 실수하게 되니까 기다려야 합니다.

지금 여기에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생산치 못함을 알고 머리를 썼습니다.

자기가 늙어서 못나니까 하갈을 주면 낳지 않겠는가 생각을 하고

하갈을 준 때는 10년 후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마엘이 아니고 이삭을 줘야되는데 하나님프로그램 속에는 25년이 지나야 됩니다. 그런데 하브람이 10년쯤 되니까 한계가 왔습니다.

아브람과 사래의 한계는 10년입니다. 하나님은 25년입니다.

25년을 기다리지 못하고 10년만에 만든 열매는 골치 아픈 열매가 나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다듬고 만드시는 기간이 있습니다.

그 기간안에는 우리도 기다려야 합니다.

그 기간을 못기다리고 무엇인가를 만들면 실수하게 됩니다.

 

지금 여기 사래는 나는 못나니까 젊은 여자 하갈을 주면 낳을 것이다 라는 생각은

사래의 실수였습니다.

그래서 하갈이 임신하고 나니까 사래는 무시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내가 하려고 하면 실수하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가 차매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때와 내 때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믿음 있는 사람입니다.

믿음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믿음 있는 사람이냐면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는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믿음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때에 하나님이 역사해 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내 시간표와 하나님의 시간표는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빨리 그 일을 끝내고 신속하게 벗어버리고

아무런 문제없이 편안히 잘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그것이 신앙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진정한 신앙은 하나님의 프로그램 안에서 내가 살아가는 사람이 진정한 신앙입니다.

우리는 내가 좋으면 좋다고 생각하는데 진정한 신앙은 내가 좋은게 아니라

하나님이 좋아야 진정한 신앙입니다.

그것은 곧 기다리지 못하면 절대로 그것이 되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과거를 가만히 뒤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내 뜻대로 됐는가 하나님의 뜻대로 됐는가, 내 시간대로 됐는가 하나님의 시간대로 됐는가,

내 마음대로 됐는가 하나님의 마음대로 됐는가를 가만히 뒤돌아보면 그것은 곧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들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하려고 하면 실수하게 되니까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시편 40편을 보시기 바랍니다.

시40:1-2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라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다윗이 자기가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기가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자기를 끌어 올렸다 말하고 있습니다.

기가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린 것은 기다림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인격을 믿지 못하면 기다리지 못합니다.

믿음이란 것은 하나님의 인격을 존중히 여기고 기다릴 줄 아는 것이 진정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우리는 보통 나에게 문제가 생기면 금방 예언하는 사람한테 가서

언제 해결되는가 물어 보고 다닙니다.

그래서 거기서 언제쯤 해결된다고 하면 하나님 말보다

그 사람 말이 더 기뻐서 콧노래를 부르고 다녀요.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앞에 문제를 두시는 것은 나를 정말로 아름답게 빚고

다듬어서 축복하실려고 그 문제를 나에게 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문제 안에 있을 때 만들어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그것이 힘들어서 빨리 해결하고 빨리 편해지려고 자꾸 헛된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자기 발을 기가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반석 위에 두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는 내가 할려고 하면

실수하는 것을 기억하고 기다리고 기다리는 자가 돼야 합니다.

기다릴때는 하나님의 인격을 믿은 만큼 기다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는 부분만큼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며 인정하고 믿음며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왜 내가 하면 실수하니까 그렇습니다.

사래는 자기가 머리를 써서 했지만 그것은 실수였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내가 하려고 하면 분명히 실수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다려야 되는데 그것이 삶에서 항상 그렇게 돼야 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여러 가지 문제속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창16:4-5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잉태하매 그가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 그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나의 받는 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두 번째 내 생각대로 하면 멸시받게 되니까 우리는 기다려 됩니다.

여기에 하갈은 자기가 아브람과 동침한 이후에 잉태한 지를 알고

사래를 멸시하고 있는 걸 볼수 있습니다.

사래 입장에서 보면 자기의 종이었는데 자기가 임신하지 못하니까 하갈을 줘서 임신하도록

만들어 줬는데 하갈이 임신을 하고 나니까 사래를 배로 밀고 다닙니다.

그러면 사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얼마전만해도 종이 주인의 손만보고 복종했을텐데 이제는 주인사래나 하갈은 똑같아 졌습니다. 하갈은 아브람의 씨를 받아 잉태했으니까 사래를 무시하며 그 불룩나온 배로 사래를 미니까

 

사래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러니까 5절에사래가 내가 받는 욕은 당신이 받는 게 옳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상 이 문제는 누가 시작을 했습니까.

사래 자신이 시작했거든요. 멸시받을 짓을 자기가 해놓고

이제는 아브람에게 당신이 받는게 옳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6절에 아브람은 그대의 여종은 그대의 수중에 있으니 준에 좋은 대로 하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래가 하갈을 쫓아 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내 생각대로 하면 멸시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기다림이란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더 많이 느끼고 그것을 완전히 믿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대로 있는 것이 기다림입니다.

내가 이룰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실 때까지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에 실상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에 증거입니다.

아직은 없지만 있을 거라고 알고 믿고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문제는 있을 때 내가 만들어 집니다. 문제가 없는데 내가 만들어 질 것 같습니까?

문제가 있을 때 기다리면서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문제가 있을 때 기다리기 보다는 빨리 해결하려 합니다.

빨리 해결하면 내가 안만들어 집니다. 그런데 내가 그 문제안에 있을 때 내가 만들어집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나에게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여러분들이 하나님이라면 사랑하는 자식에게 어떻게 해야 겠습니까?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지 않겠습니까? 좋은 길이 무엇입니까? 기다리게 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다리는 것은 믿음 없는 사람이 하는 것이고,

능력 없는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능력있으니까 문제생기면 당장에 해결하고 풀어버리는 사람을 능력자요 믿음있는 자요

괜찮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실상 하나님편에서 보면 그 사람은 엉터리입니다.

그 사람이 만들어 질 것 같습니까. 안만들어 집니다. 그 다음에 또 문제가 오면 어쩌겠습니까. 사래와 똑같은 짓을 합니다. 그러면 또 실수하게 되고 또 멸시받게 됩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이 나에게 지금현재 이 시점에서 무엇을 원하시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고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배워가는 것이 우리앞에 있는 문제이고 기다림입니다.

기다림이라고 하는 것은 신앙 생활에 결정체입니다.

그것이 있으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나를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다림이라는 것은 너무나 귀한 신앙의 결과라는 것을 알고

더욱 하나님의 뜻가운데 기다리고 기다리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생각대로 하면 멸시받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박국2: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하박국이 못기다리니까 하나님이 하박국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다리라고 하면 답답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편에서 보면 그 기다리는 때에 만들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아브람에게도 이삭을 줄 때까지는 25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아브람에게 1년만에 이삭을 낳았다고 하면 나중에 이삭을 바치라고 할 때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셨다고 하는 것을 깊이 깨달았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삭을 하나님에게 드릴 수 있었던 것은 늦게 받았기 때문에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기다리는 동안에 아브람이 만들어 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앞에 있는 문제가 빨리 해결되고 쉽게 해결돼서

아무 걱정없이 편안하길 원하지만 그것은 믿음 있는 신앙자세가 아닙니다.

해결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인격을 믿고 내 생각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언젠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 라고 믿고 따라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녕 응하리라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멋지게 작업할 때에

하나님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삶에서 늘 배워야 하나님을 고백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삶에서 못 만나면 헛된 신앙생활만 하게 됩니다. 겉에는 신앙생활 하는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분하고 관계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생각대로 하면 멸시받게 되니까 기다려야 되는데 모세도 그랬습니다.

 

모세는 40년 광야생활을 이끌어 가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세에게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조금 가다보면 물이 없다고 불평하고 먹을 것이 없다고 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 모세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럴때마다 모세는 하나님에게 갔습니다. 하나님 이거 어떻게 합니까?

문제가 생길때마다 모세는 하나님에게 갔을 때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역사하셔서

40년 세월동안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도 모세같이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에게 달려가서 하나님에 의해서 문제를 풀려고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창16:15-16입니다.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의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 이라 하였더라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을 때에 아브람이 86세 이었더라.

그 다음에 창17:1절 보세요.

아브람의 99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그랬습니다)

 

세 번째 내가 이룰려고 하면 답답하게 되니까 우리는 기다려야 됩니다.

하갈이 하브람의 아들 이스마엘을 낳은 때가 86세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17:1에 보면 아브람에 99세때에 하나님이 나타납니다.

13년동안 하나님은 아무말씀도 안 하셨습니다.

이스마엘을 낳은 댓가를 치르게 한 겁니다.

이스마엘을 낳은 댓가는 13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야 그것이 해결됩니다.

아브람이 이루려고 하면 답답하게 만드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어떤 문제를 풀고

내가 어떤 뜻을 이룰려고 하면 하나님은 답답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을 낳는 그것은 곧 큰 아픔의 씨를 잉태한 것이었습니다.

그 아브람에게 86세에 이스마엘을 낳았지만 하나님의 때는 99세였다는 것,

아브람이 이삭을 낳아야 하나님이 인정해주고 하나님이 그때부터 역사하게 됩니다.

그런데 99세에 나타났습니다. 이제는 임신기간 10달을 배려하셔서 100세 때에 낳게 됩니다. 17:1절에 너는 완전하라고 하십니다.

13년동안 아무말씀도 안하시다가 13년 후에 나타나셔서 완전하도록 고쳐라하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왜 말씀하지 않으신 이유가 여기에 나와 있습니다.

만드시는 기간이었다는 겁니다.

아브람에게는 이 13년이란 세월이 있어야 온전해 지고 이삭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의도 안에서 기쁨으로 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할 때는

하나님의 손에 그 시간이 들려져 있습니다. 내 시간표 따라 하나님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시간표대로 우리는 움직여서 내가 이루려고 하면 답답하게 되니까

우리는 내가 하지 말고 히브리서 10장을 보시겠습니다.

 

히10:34-36

너희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내가 이루려고 하면 답답하게 되니까 우리는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루려고 하면 답답하게 되니까 우리는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입다는 사사시대 사람입니다. 길르앗이 기생을 통해 낳은 아들입니다.

길르앗은 큰 용사입니다. 그런데 본 부인의 아들들이 입다를 쫓아냈습니다.

입다는 쫓겨나 돕 땅에 거하면서 계속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암몬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하니까

길르앗의 장로들이 입다에게 와서 자기들의 대장이 되어 달라고 도움을 청합니다.

언제는 쫓아냈는데 이제는 와서 무릎을 꿇고 있는 장로들을 보면서

입다가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하나님 멋져! 했을 겁니다.

내가 기다렸더니 하나님이 이렇게 작업하시는구나 했을 겁니다.

쫓겨났을 때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때 입다는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때가 차매 장로들이 와서 대장이 되어 달라고 얘길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이루는 것은 하나님에게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내가 이루려고 하면 답답하게 되기 때문에

내가 하지 말고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면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하시는가를 만나므로

말미암아 내 신앙이 한단계 한단계 성장하는 귀한 역사를 이루것입니다.

기다리는 것은 신앙을 완성해 가는 단계인 것입니다.

우리는 문제 때문에 답답하게 생각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그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이 나를 기다리게 만들어서 나를 다듬고 계시는구나 라고 하는 것을 꼭 기억하고 우리는 날마다 기다리다가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는가를 만나서 고백할 수 있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기다리는 자가 돼야 합니다. 왜냐하면

첫 번째 내가 하려고 하면 실수를 하게 되니까 그렇습니다.

두 번째는 내 생각대로 하면 멸시를 받게 되니까

세 번째 내가 이룰려고 하면 답답하게 되니까

절대로 실수하고 멸시받고 답답하게 되지 말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그 기다림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만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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