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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2,922편)〓/소망 설교

유1:1-7 주님의 부탁(지혜롭게 사는 사람돼라)

by 【고동엽】 2021.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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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1:1-7 주님의 부탁(지혜롭게 사는 사람돼라)


유1:1-7까지 말씀으로 주님의 부탁이라는 제목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요즘 낙엽이 지고 열매가 떨어지니까 그것을 줍느라고 사람들이 바쁘더라구요.
은행나무는 잎이 노래야 됩니다. 단풍나무는 붉게 물들어야 됩니다.
그런데 소나무는 초록색 그대로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단풍나무에 노랗게 또 아니면 파랗게 있으면 안됩니다.
또 은행나무에 빨간 나뭇잎이 붙어 있으면 안됩니다.
자기옷을 자기가 입고,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단풍나무에는 붉은 잎으로 물들되 더 붉어지고 아름답게 물들어야 됩니다.
또 은행나무는 노랗게 물들되 더 노랗게 물들어야 됩니다.
노랗게 물들면 그것을 갖다가 책갈피에 꽂기도 하고,
약 만드는 사람이 가져갈 정도로 노랗게 잎이 물들어야 됩니다.
그런데 소나무는 다른 색으로 물들면 안됩니다. 그대로 초록을 유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각기 나무마다 특성이 있어서 그 특성 그대로 있어야 되고,
노래질려면 더 노래져야 되고, 붉게 물들나무는 더 붉게 물들어야 되고,
소나무처럼 초록은 누렇게 된다거나 빨갛게 되면 안되고
더 초록색으로 더 건강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야 됩니다.
그 나무에 그 잎으로 달려서 더욱 더 충실하게 되어가야 될 나무가 되는 것이
나무로서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내가 현재 처한 위치 속에서,
환경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 안에서 자족하고 만족하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너무나 귀한 일인 것을
오늘 본문에서 유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유다는 사랑하는 자들아! 라고 하면서 배교자는 심판이 있을 테니까 그들을 볼 때 경계하고 넘어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옛날 주님 살아생전에는 안 믿었던 유다가 자기가 변화되어서 자기가 처한 위치 속에서 절대로 배교자는 심판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넘어가지 말라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고 부탁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날마다 부탁을 하고 우리를 깨우쳐서 무엇인가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무엇인가를 잘 이루도록 주님이 우리에게 날마다 부탁합니다.
그런데 그 부탁한 얘기를 우리는 날마다 듣고 그 부탁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너무나 귀한 일이고 귀한 신앙생활인 줄 압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간절히 부탁하는가 본문을 통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첫 번째 유1:1-2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입은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2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 지어다


주님이 무얼 부탁하고 있는가?
첫 번째는 자신이 누구인지 빨리 알라고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1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의 형제 유다라고 말합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입니다.
그런데 유다는 예수님 살아 생전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유다는 자기는 예수님 살아 생전에는 예수님이 미쳤다고 잡으러 다닌 사람중에 한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현재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야고보의 형제 유다라고 얘기합니다.
여기에 이 야고보는 야고보서를 쓴 야고보입니다. 그 형제 유다가 부르심을 입었다 그럽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자기는 부르심을 입은 자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부르신 것을 진실하게 받아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었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사랑을 얻은 사람인줄 알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었다.
우리 하나님이 지켜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하나님이 한걸음 한걸음을 역사하셔서 지금 부르심을 입었고
그것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얻었고 지키심을 입은 자라고
편지에 독자들의 지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 그것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다,
또 지키심을 입은자다 라고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다는 옛날에는 자기는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으로만 알았지
그 예수가 그리스도인줄은 전혀 몰랐던 사람중에 한 사람이 유다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전혀 다르게 자기를 종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편지를 받는 사람들은 부르심을 입은 자라고 편지하고 있습니다. 알라는 것입니다.
자기도 전에는 자기가 누군지도 몰랐고 예수님이 누군지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편지를 받은 사람에게도 너희들이 어떤 위치에 있느냐 하면서 설명을 하고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많기를 원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다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했고,
그 다음에 편지를 받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가르쳐 주면서 편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지금 무엇을 얘기하냐면
내가 내 자신이 누구인지를 빨리 알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모릅니다.
자기를 모르고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라고 착각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부부지간에도 마찬가지고, 부모자식, 친구지간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왜 갈등이 생기냐면 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괜찮고 상대방이 틀리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하고 나하고도 나를 모르니까 주님하고 갈등이 생깁니다.
나를 올바로 알면 지금 유다와 같이 이런 얘기를 합니다.
유다는 자기를 종이라고 합니다. 종은 권리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종은 자식을 낳아도 주인 것이 됩니다. 모든 일을 해도 잘했다고 칭찬듣지 못합니다.
아무리 많은 일을 해도 절대 주인이 밥 차려 주지 않습니다. 종은 권리도 없습니다.
이름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자기를 안 것입니다.
자기를 알고 나니까 다 보이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내가 누구인가는 실제로 가봐야 합니다.
내가 현재 어떤 상태로 어디 있고, 어느 형편 속에 있는가 하나님이 나를 보실 때
어떻게 보실까를 아는 사람이 정말로 귀한 것을 안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를 모르고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자기만 옳다고 자기 주장만 합니다.
저도 예전에 그랬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항상 내가 하나님 앞에 누구인지 현재 하나님이 나를 보실 때
어떤지 이것을 우리를 알라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것은 실제로 내가 가보기 전에는 모릅니다.
그래서 권면을 할 때도 초보자는 무조건 권면해서 따라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안 따라 오면 속상해서 힘들어하고 그래요.
그런데 조금 해본 사람은 아무리 끌어도 안 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면 세월이 약이겠지 하고 놔두어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가 그 속에 들어가서 실패도 해보고 아파보고
막히는 곳이 나오면 틀림없이 돌아옵니다.
자기가 경험하지 않은 것은 절대로 안 따라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경험할 때까지 자기를 알 때까지 놔둬야 합니다.
그래서 영적인 일이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육적인 일 같으면 말 안들으면
내가 가서 해 버리면 됩니다. 그러나 영적인 일은 절대 그렇게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내가 바뀌어진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내가 나를 들고 있으면서 나를 몰라요.
그러면서 상대방만 뭐라고 해요. 아닙니다.
상대가 말을 안 듣는 것이 아니라 아직은 시간이 덜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삶에서 제일 먼저 내가 누구인지를 알라고 하는 주님의 부탁입니다.


롬1:6-7
6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7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로마서 1장에 교회가 어떤 신앙생활을 해야 되는가를 말하면서
제일 먼저 누구인가를 가르쳐줍니다.
6절은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었다고 말해주고 있죠.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은 자다 라고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성도로 부르심을 입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이런 식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
우리 주님에게 네가 누구인지를 빨리 알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지체가 높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에게 찾아오고 싶지만 낮에 오면 지위가 있어서 부끄러워서 안되고,
궁금은 하니까 아무도 안보는 밤중에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거듭남을 얘기했습니다.
니고데모는 어떻게 부모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옵니까? 라고 묻습니다.
영적으로 거듭난다는 것을 니고데모는 모른 겁니다.
세상적으로는 괜찮은 사람이었지만 영적으로 거듭나지 못해서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주님이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고 난 다음에 향품을 가져올 때
이 니고데모가 옵니다. 니고데모는 자기가 누구인지를 그때는 알고 가져온 것입니다.
그때 얼마나 가슴이 찡했을까요. 나를 살려주신 우리 주님이 돌아가셨지만
내가 누구인지를 알았기 때문에 많은 향품을 가지고 올 수 있었던 겁니다.


우리도 누구인가? 날마다 집에서 내가 누구고, 교회에서 내가 누구고, 가정 안에서 내가 누구고, 학교에서, 사업체에서, 다른 사람속에서 내가 누구이고 어떻게 보이고 어떤 존재인가를 아는 사람이 되야 합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은 정말로 귀한 것을 안 사람입니다.


날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으라고 주님이 부탁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빨리 빨리 알아서 내가 처한 위치속에서
지혜롭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 유1:3-4
3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 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옛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두 번째 믿음을 지킬려고 힘써 싸우라는 주님의 부탁입니다.
3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그러면서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를 쓰려는 필요를 느꼈다고 얘기합니다.
왜냐면 가만히 들어온 이단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옛적부터 경건치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려는 사람들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한 자이었다고 얘기하면서
우리 안에 이런 이단들이 많이 들어 왔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지키려고 힘써 싸우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올바로 하려고 하면 유혹하는 말, 사람, 환경등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올바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면 시험지가 자꾸 옵니다.
하나님의 부탁을 이루려고 하지 않고 좋은 것이 좋다고 신앙생활 하면 안 건드립니다.
그런데 올바로 가려고 하면 건드립니다. 옆에서 적당히 해라, 꼭 그렇게 해야 하냐,
그래서 되는 것이냐, 네가 너무 과한 것 아니냐 그럴 때 아하~ 나를 넘어뜨리려는 구나 하고
절대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대로 가면 다시 못 일어 섭니다. 기기묘묘하게 넘기려 합니다. 시험지도 오구요.


유다는 자기가 전에 넘어간 것입니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겁니다.
자기 자신에게 속아봤고, 믿음을 지키려고 싸워보지도 않았고, 예수님을 미쳤다고 생각했고,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자기는 그래도 세상을 지혜롭게 산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유다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기가 엉터리라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도 믿음을 지키려고 힘써 싸워보니까 많은 유혹도 있었고, 시험지도 있었고, 어려움도 있었고, 환경, 조건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계속 이기고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3절에도 사랑하는 자들아 부르면서 자기가 겪은 모든 얘기를
간절하게 경계로 부탁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을 지키려고 하면 여러 가지 유혹도 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넘어뜨리려 하는 것도 있고, 또 하나님이 나를 달아도 보십니다.
잉어를 잡으려면 생새우를 끼워서 넣습니다. 꼬리부터 끼우니까 새우가 막 움직이더라구요. 30Cm넘는 잉어가 그것을 문다고 합니다.
속에 바늘 들어 있는데 잉어는 모르고 새우를 덜컥 물면 찌가 입속에 턱 걸려서 잡히는 겁니다.
우리가 이렇게 걸리면 안됩니다.
우리가 올바른 신앙생활 하려면, 육신적으로 좋은 것을 주면서 그쪽으로 오라고 유혹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믿음을 지키려고 힘써 싸우라는 주님의 부탁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딤전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한 내용입니다.
디모데는 에베소교회에서 목회를 바울대신 담당하고 있을 때입니다.
이때 디모데는 나이가 젊어서 여러 가지 힘든 일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디모데는 믿음을 지키려고 힘써 싸워서 에베소 성도들을 잘 이끌어 간 사람이
이 디모데입니다.


우리도 날마다 믿음을 지키려고 나하고도 싸우고, 세상과도 싸우고, 마귀하고도 싸워야 합니다. 디모데와 같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승리하라는 주님의 부탁을 잘 이루어 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세 번째 유1:5-7
5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세 번째 지난 잘못에서 교훈을 삼으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유다는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생각나게 하려냐면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다 멸했다 그랬습니다.
광야에서 믿지 않은 자를 광야에서 다 멸했습니다. 심판을 했다는 것입니다.
6절에 보면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심판했다는 것입니다.
7절에 소돔과 고모라도 엉뚱한 짓을 해서 성읍을 심판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백성을 심판하고 천사를 심판하고 성읍을 심판했다고 과거의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합니다.
이 말은 잘못하면 심판 당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과거를 통해서 교훈 삼으라고 여기다가 써놓은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지난 삶이 올바로 잘 살아집니까? 실수할 수 있습니다.
잘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의 잘못이 문제지 과거의 잘못은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잘못을 통해서 나중에 잘하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도 지난 과거의 잘못이 없었다고 하면 성경을 못 깨달았을 겁니다.
그런데 과거의 실수가 있었기 때문에 성경 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저는 잘못한 것이 도리어 잘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잘못된 것이 잘못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것을 교훈 삼아서 올바로 가면 잘못이 더 좋은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알라는 주님의 부탁입니다.
지난 과거의 잘못은 그 잘못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시려고
하신 것인지를 알아 버리면 그 사람은 너무나 귀한 것을 얻은 사람입니다.


유다도 예수님 살아생전에는 엉터리중에 엉터리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과거의 하나님의 심판을 예로 들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사람을 하나님이 심판했지 않느냐.
그러니 너희들도 지난 과거를 다 회개하고 뒤돌아 교훈 삼아 올바로 하라고
부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과거를 거울 삼아서 7절에 거울이 되었느니라 했습니다.
거울은 나를 비춰볼 수 있습니다.
나의 지난 잘못을 비춰보고 나서 올바로 가면 좋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부탁은 지난 잘못에서 교훈삼으라는 부탁인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욥기22:22-23
22 청컨대 너는 그 입에서 교훈을 받고 그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
23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고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버리면 다시 흥 하리라.


우리 주님의 교훈을 받고 그 말씀을 마음에 두라는 말씀입니다.
옛날에 하던 것에서 돌아오면 하나님이 흥하게 만든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항상 말씀을 마음에 두고, 교훈을 받아 드리라는 겁니다.
지난 과거의 잘못을 교훈삼으면 그것 때문에 다시 흥하게 하나님이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기대가 있고 많은 것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못 보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야 됩니다.
그 속으로 내가 들어가려면 지난 과거를 교훈삼아야 됩니다.
지난 과거에 내가 어리석은 짓을 했다고 하면 그 어리석은 짓을 지금 안 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 내가 과거의 어리석은 짓에서 돌아서면 지금에 대한 축복을 해 주십니다.
그러니 지난 잘못에서 교훈 삼으라는
주님의 부탁을 다 이루어 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욥기 22장은 엘리바스가 욥에게 하는 말입니다.
욥아! 너 뒤 좀 돌아 봐라. 그 말입니다. 욥은 그때 아직 바뀌지 않은 때라 내가 뭘 잘못했냐고 대듭니다. 엘리바스가 바른 말을 해줘도 욥은 계속 자기가 옳다는 속에 있습니다.
나중에 가면 욥은 고개를 숙입니다. 그 만큼 끈질기거든요.
하나님의 부탁을 못 알아듣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삶을 살려고 하면 주님의 부탁을 듣고 빨리 알아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난 잘못에서 교훈 삼으라는 그 주님의 부탁을 잘 알아들으면
지난 과거의 잘못은 나에게 득이 된다는 것입니다.
에디슨도 5만번의 실패를 하고 1나 성공해서 발명왕이 됐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행착오를 통해서 발전을 합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 주님이 부탁합니다.
첫 번째는 자신이 누구인지 빨리 알라고부탁하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느 상태인지,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고 계시는지를 알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믿음을 지킬려고 힘써 싸우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지키려고 사람, 사건, 형편, 처지에도 믿음을 지키려고
날마다 나 자신과 싸우고, 마귀와 싸우고, 환경과 싸워서 이기는 자가 되고,
세 번째 지난 잘못에서 교훈을 삼으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지난 과거의 잘못에서 귀한 교훈을 찾아서 지혜로운 삶을 살라고 하는
주님의 부탁을 늘 기억하고,
우리 삶이 하나님 앞에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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