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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8:10-22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도망하지 말고)
창28:10-22까지의 말씀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강원도 원주쪽에 문막이란데가 있습니다. 거기 보면 쌍느티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는 두 나무지만 멀리서 보면 한 나무같이 보입니다.
그 모양이 두 나무가 마치 한 나무같이 보여서 많은 사람들이 보러온다고 합니다.
특별히 부부간에 갈등 있는 사람들이 거기를 온다고 합니다.
두 나무가 하나가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고
그 나무는 천년이나 되는 오래된 나무라고 합니다.
그런데 두 나무가 서로 가지 뻗고 하려고 많은 그런 과정속에서 두 개가 서로 뻗다보니까
겹쳐져 가지고 나무가 많이 죽고 하는 과정을 거쳤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가운데 있는 부분은 나무는 덜 자라고 가에만 둥그스름하게 자라서
한 나무같이 보인다고 합니다.
두 나무가 한 나무같이 보이는 그대가지 얼마나 많은 시행 착오와 실패와 싸움과 아픔이 있었겠느냐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도 남녀가 결혼하면 2-30대는 서로 주도권 잡으로고 싸운답니다.
그다음엔 40대는 그것이 안되면 이혼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50대에 가면 이해를 합니다.
그리고 60대에 가면 감싸줘서 둘이 완전히 하나가 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둘이 서로간에 계속 다투구 아프고 힘들고 어떤 과정을 통과하다 보니까 실패하는 과정속에서 둘이 생각이 점점 똑같아져서 하나가 돼서 별로 싸우지 않고
불쌍한 마음이 되어서 서로 하나가 되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동행해 가야 되는데 조금가다 힘들면 안따라 가버려요. 조금가다가 일이 생기면 안간다고 뻣띠고 합니다.
하나님이 또 사탕을 주면 또 따라가구요 그러다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안따라가고 해서 그런 과정속에서 실패하고 아픔속에서 한참가다보면 동행해서 가다보면 나중에
하나님이 왜 이렇게 했는가 하는 부분을 이해를 하고 나중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됩니다. 부부도 마찬가지고 바로 하나가 되는 그런 속에 많은 갈등과 시행착오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도망가지 않고 버리지 않고 끝가지 동행을 해야 되는데
오늘 여기에 본문은 야곱이 에서의 장자의 축복을 대신 아버지로부터 도둑으로 받아가지고
지금 하란으로 도망가고 있는 그런 과정에 일부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야곱이 해가 저서 누워 자는데 하늘에 사닥다리가 놓이더니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락 내리락 하늘 걸 봤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내가 여호와다 내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너 할아버지의 하나님 너의 아버지의 하나님이다. 너의 누운땅을 너에게 주겠다.
네 자손이 띠끌같이 많아 질 것이다.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를 함께하고 더나지 아니할 꺼다라고 하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깜짝놀랐습니다.
지금 야곱은 개나리 봇짐하나 짊어지고 형을 피해서 도망가는 속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니까 16절에 보면 잠에서 깨어서 아하 하나님이 여기도 계시구나 라고 두려운마음이 들었습니다.
내가 알지 못했구나 그렇게하고는 너무너무 감사해서 서원을 3가지를 하게 됩니다.
우리집으로 나를 평안히 돌아오게 해 주신다고 하면 내가 하나님을 잘 모시고 살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곳을 하나님을 경배하는 장소로 섬기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에서 10분의 1일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라고
이렇게 서원을 해서 바로 이시점부터서 야곱과 하나님이 동행을 하는 일이 시작이 돼서
나중에 이스라엘이 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야곱이 되는 것을 우리가 볼수가 있듯이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앞에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질 때
하나님과 동행하는 속에서 우리가 피한다든지 도망간다든지가 아니고 끝까지 동행해서 가다보면 하나님이 우리가 해야할 일을 가르쳐 주시고 우리가 해야할 일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결론이 아주 귀하게 하나님앞에 인정받고 끝날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될 것인지 오늘 보겠습니다.
12-13절보겠습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또 본족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첫 번째로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돼야 되는데 첫 번째 절박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과 끝까지 동행해야 됩니다. 먼저 만남이 있어야 됩니다.
자 야곱은 여기서 어떻게 하나님을 만난것입니까
10절에 보면 야곱은 브엘세바에서 떠나서 하란으로 향해 가고 있습니다.
지금 이삭입장에서 보면 결혼시키려고 가는 것이고 야곱 입장에는 지금 도망가고 있는겁니다. 에서를 피해서 도망가고 있는데 11절에 보면 한 곳에 이르렀는데 해가 졌습니다.
거기서 자려고 돌을 취해 베게하려고 누웠었는데 꿈에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락 내리락 하늘 걸 봤습니다.
그리고 13절에 보면 또 본즉 하나님이 뭐라고 얘기하시냐면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다. 너 지금 누운 땅을 너에게 주겠다.
지금 야곱은 도망간 처지로 형편없는 처지에 있는데 제일 첫 번에 약속을 누운 땅을
네 자손에게 주겠다. 아직 결혼도 안했고 그걸만한 게재가 아직 못됩니다.
지금 야곱은 완전히 절박한 상황속에 있습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는 네 자손에 티끌만큼 되어서 편만하게 될 것이다.
자 땅을 준다 자손을 준다 그다음에 15절에 보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어디를 가든지 이끌겠다. 그리고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동행해 주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야곱에게 하나님이 이렇게 절박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 자신이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 속에서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야 됩니다.
그 환경을 통해서 어려움을 통해서 힘듬을 통해서 절박한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상황이 전혀 다르게 됩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해 가지 못하냐면 우리가 하나님을 못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삶속에서 자꾸자꾸 하나님을 만나야 되는데 내 일이 잘되고 평안하면
하나님을 잘 못만남니다. 잘 안느껴집니다.
그러나 완전히 힘들고 어려운 절박한 상황속에 들어가면 하나님을 빨리 빨리 느끼게 됩니다.
그때 바로 우리는 제일 중요한 것이 시작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절박한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야만 내가 하나님을 절대로 돌아서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과 동행해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삶에서 만나다고 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합니다.
삶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만남니까? 내가 밥을 먹다가도
또 어디를 가다가도 하나님 하신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또 이렇게 하시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네 라고 느끼는 것이
그것이 곧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절박한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하나님과 끝까지 배반하지 않고 동행해 갈 수 있습니다. 야곱은 이런 절박한 상황속에서 만났기 때문에 중간에 조금씩 도망가려고 하지만
결국에는 창46장보면 하나님이 애굽으로 내려가라 그럴 때 하나님도 같이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야곱이 하란에 가면 야곱이 하란 갈때 하나님이 똑 같이 동행해 주십니다.
하란서 20년간 있을 때도 하나님이 동행해 주셨습니다.
야곱과 하나님은 똑같이 간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려올때도 하나님이 따라서 내려옵니다. 야곱도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도 야곱과 늘 함께 하시면서
약속하신대로 동행해 갔던 겁니다.
내 생각이 많을 때는 하나님을 멀리했었고 야곱도 약간 실패도 하고
세겜에 머물고 숙곳에 머물고 약간 멀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곧바로 디나강간사건을 통해서 동행하도록 만듭니다.
자꾸자꾸 벧엘에 와야되는데 벧엘에 안오니까 찾아서 벧엘에 오도록 만들고
그런 하나 하나의 과정을 거쳐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야곱이 아닌
이스라엘로 바꿔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케 하려고 계속해서 하나님이 이끄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박한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 그때 우리는 정말로 귀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감당해간다 하는 것을 우리는 꼭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쉬운 처지 속에서 하나님을 못만나면 처음엔 쉬운 것 같지만 나중가면 흐트러져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야곱에 절박한 상황속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이것이 야곱이 정말로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애굽에 들어가서 3가지 일을 하는데
하나님의 귀한 도구가 됩니다. 야곱은 바로를 손들고 축복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드셨고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하게 만드셨고 12아들을 축복해서 12지파의 시조가 되게 하는 분이 하나님인데 야곱이 그 만큼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변한 겁니다.
그런데 그 변한 것이 어떻게 변했느냐는 것입니다.
절박한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봤기 때문에 그것이 밑천이 돼서 어느 환경에 가도 그 만난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고 조금 다른데로 가다가도 금방 하나님이 부르시는구나 금방 깨닫고 다시 하나님과 동행하고 다시 하나님과 동행하다 보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잠시 한눈팔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하나님과 동행해 가야 합니다. 부부지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지간에도 서로 정말로 위험하고 힘든 어려움속에서 둘이 연대관계를 맺어서 서로 만나고 이해했더라면 계속해서 동행해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렵다고 보면 다 이혼해 버려요. 어렵다고 보면 동행하려고 않고
이핑계 저핑계 대가지고 다 흩어버리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우리 시편 91편을 보시기 바랍니다. 시편 91:8-11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자 지금 여기보면 위험한 속에서도 너를 지켜주신다 그랬습니다.
손을 붙들어서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할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시인도 절박한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이런 말을 섰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박한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만난다는 거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가장 귀한 조건이 된다는 거 그것이 바로 시작이 된다는 거 원인이 된 다는 거 우리는 꼭 기억해야 될 줄 믿습니다.
다니엘이라고 하는 사람은 정말로 힘들고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랍니다.
처음에 아직은 어려서 전부 거기에 있는 바벨론의 진미를 먹고 우상섬기는 먹으라고 할 때 다니엘은 절대그러지 않습니다.
뜻을 정하여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뜻을 정해서 그 우상의 진미를 먹지 않습니다.
채식을 먹습니다. 열흘만 시간을 주라고 해서 열흘만 먹었는데 하나님이 역사를 했습니다.
진미를 먹은사람 얼굴보다 훨씬 좋게 만들어가지고 하나님이 우뚝 다니엘을 세웠을 때
다니엘이 그 절박한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그 다음에 그 다음에 보면 사자굴속에 들어가도 전혀 두려운 마음이 없고
온전히 하나님만 붙들고 있다가 크게 뒤집어져 버리는 사람이 다니엘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절박한 상황이라면 그때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을 깨닫고 하나님을 이해하고 날마다 도망하지 않고 끝까지 동행해 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자 그 다음 두 번째는 16-17절입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두 번째는 하나님을 보는 눈을 새롭게 가져서
끝까지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지금 야곱은 바로 처절한 아픔속에서 도망가고 있는 속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서 하나님이 뭐라고 약속을 해줬습니다. 16절에 야곱이 잠이 깼습니다.
와 여기에 하나님이 계시네. 개나리 봇짐하나 짊어지고 지금 들판에서 자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바로 여기 계시구나 라고 깨닫게 된겁니다. 그래서 내가 알지 못했구나 깨닫고 17절에 보면 이에 두려워서 이곳이 다른 곳이 아니라 아하 이곳이 곧 하나님의 전이요
이곳이 곧 하늘의 문이구나 여기가 하늘의 계시구나라고 하는 걸 깨달았습니다.
야곱의 눈이 새롭게 바뀐겁니다. 바로 야곱이 새롭게 눈이 바뀌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계속해서 동행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 진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볼 때 하나님을 오해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내 입장에서 볼 때는 성가시게 생각합니다. 왜 꼭 그걸 지키라고 하는 지.
왜 그렇게 하라고 하는지 내 입장에서 보면 오해가 되어지고 힘들고
어려운 조건으로 넣은 분같이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절대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지금 처절하게 개나리봇짐 하나 짊어지고 가는 야곱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서 야곱의 눈 관점을 바꾸려고 이런 말씀을 해 준것입니다.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시려고 자기위주의 욕심쟁이를 하나님의 도구로 만드시려고
눈을 뜨게 한 것이다 이말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보는 눈이 새롭게 떠져서 하나님과 끝까지 동행해 갈 수 있는 자가 돼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우리앞에 어떤 하나님의 제스쳐가 보이면 그것은 우리의 관점을 우리의 시야를 우리의 목표를 우리의 내 목적을 바꾸라고 하는 제스쳐인줄 알아야 됩니다.
야곱은 18절에 보면 아하 하나님이 여기계시구나 18절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베게하였던 돌을 가지고 기둥을 세우고 벧엘이라 벧엘이라하는 말은 하나님의 집이다란 말입니다. 벧-집이다 엘-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집이다 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원래 그성은 루스라고 하는 성입니다.
이걸 벧엘로 불렀던겁니다. 왜 하나님이 계신곳다 이거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절박한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면 눈이 바꿔집니다. 관점이 바꿔집니다.
우리의 인식이 바꿔집니다. 이렇게 새로운 눈을 가져야만 하나님과 계속해서 동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바뀌는게 아니라 내가 바뀌어야 돼요.
부부지간에도 그렇거든요 부부지간에도 한사람이 바뀌면 다른사람은 바뀝니다.
둘이 똑같으니까 싸움니다. 문막에 있는 쌍느티나무가 제일 처음에 두 나무가 하나가 됐겠습니까 서로 따로따로 컸을겁니다. 그런데 두 나무가 점점커집니다.
커지면 어쩝니까 두 나무가 겹치는 영역이 있었을 겁니다.
이 나무는 이쪽으로 뻗으려 하고 저나무도 이쪽으로 뻗으려고 하고
어쩝니까 서로 싸우지 안겠어요.
싸우다 보니까 많이 꺾여지고 아 싸워봤던들 별거 아니구나 그러구 그쪽으로는 많이 안자랐을 겁니다. 햇빛이 많이 안들어니까 덜 자랐을 것이구 그러다보니까 나중에 이쪽으로는 안자라고 이쪽으로만 자란거에요. 양쪽으로만 자란거에요.
그러니까 겉에서 보니까 어떤나무가 된게요. 두 나무가 한나무가 된거에요.
부부지간에도 겉에서 볼때는 두 부부가 둘이 서로 볼때는 웃고 하니까 다른사람이 볼때는 괜찮은 것 같지만 속을 보면 썩어 있는 사람 많거든요.
우리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렇단 말이에요. 하나님과 동행해 가는데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내가 이루려는 듯이 있습니다.
이것이 만나고 상충되고 깨지고 하는 과정을 거쳐서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쳐서
하나님이 움직이는게 아니라 내가 새로운 눈으로 바꿔지면 둘이 하나가 돼서
계속 동행해 가다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 그래서 엡4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랬습니다.
이렇게 새롭게 눈을 가져서 하나님과 동행해 갈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므낫세라고 하는 유다 왕은 처음에는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므낫세왕은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앗수르쪽으로 포로로 잡혀가게 만들었습니다. 가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겠습니까?
그렇게 하다가 다시 귀환을 시켜서 다시 왕을 딱 올려놨습니다.
그때 므낫세가 아하 그분이 하나님이시구나 내가 이제야 알았다
그분이 하나님이시구나 그렇게 눈에 새롭게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우상섬기지 않고 말년에는 하나님을 온전히 섬겼던 왕이 이 므낫세왕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조건은 바로 내가 바뀌는 겁니다.
내가 관점이 바뀌어야 하나님과 끝까지 동행하지 내가 관점이 바뀌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하고 깨진다는 거죠. 부부지간에도 마찬가지요.
우리는 다른사람하고 관계에도 마찬가지에요. 동행한다고 하는 것은 목표가 똑같아야 됩니다. 생각 관점이 똑같아야 됩니다. 그래야 한곳으로 계속해서 똑같이 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보는 눈을 새롭게 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끝까지 우리는 동행하는 자가 돼야 될 것을 오늘 여기서 다짐하고 이번 주간에도 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것을 늘 가슴속에 두고 시험지가 올때도
그 시험지를 잘 봐서 하나님과 동행을 잘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세 번째 21-22절입니다.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10분 1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자 하나님과 끝까지 동행하는 자 세 번째는 하나님을 전보다 더 잘 섬겨서
끝까지 하나님과 동행해야 됩니다. 지금 야곱은 아하 이곳이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님의 전이요 하나님의 문이구나 라고 베게돌을 세워서 기름을 붓고 벧엘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리고는 야곱이 서원을 합니다. 뭐라고 서원을 하느냐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지켜주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시고 평안히 아비집으로 돌아오게 하신다고 하면
21절에 여호와께서는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이 말은 내가 당신을 하나님으로 모시고 살겠습니다.
여호와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고 살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을 경배하는 장소로 인정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잘 섬기겠습니다. 그다음에 하나니이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10분의 1일
내가 반드시 하나님에게 드리겠습니다. 10분의 1 십일조를 드리겠습니다.
십일조라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것으로 인정하는 고백의 실천이 십일조인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이 모든 소득은 다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을 잘 섬기겠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것이 바로는 안되지만 많은 시행착오와 문제와 아픔과 뺏김과 깨짐을 통해서 나중에 이 모든 것들이 다 실천됩니다. 하나님과 계속해서 동행해 갔습니다.
하나님을 전보다 잘 섬기므로 바로 이 야곱은 이스라엘이 됐고 그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원하는 속으로 아까 말씀드린대로 애굽에 가서 귀한 일을 감당하게 되는 그런 이스라엘이 된 것을 우리는 늘 기억을 하고 바로 우리도 마찬가지로 끝까지 하나님과 동행하려고 하면 내가 하나님을 전보다 더 인식하고 알고 깨달아서 그분이 원하는 대로 더 잘 섬겨서 우리는 끝까지 동행해 가는 그런 사람이 되야 됩니다.
고전6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고전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성령의 전일줄 알고 바로 값으로 산 것이 됐으니까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 전보다 하나님을 잘 섬겨서 끝까지 어떤 일속에서도 버리지 않고 도망가지 않고 쉬어 버리지 않고 끝내버리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런 우리모두가 돼야될 줄 믿습니다. 그래야 이땅에 태어난 이유를 이루고 간다 이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잘아는 오네시모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네시모는 제일 처음에 빌레몬이라고 하는 사람 자기 주인입니다. 오네시모는 종입니다.
주인의 집에서 도둑질해서 도망갔습니다. 그러다가 바울을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복음을 계속 듣다가 사람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변하고 정말고 동역할 수 있는 그런 위치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바울을 도와서 많은 일을 하고 그리고 하나님을 잘 섬겼을 것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과 동행해서 사는 삶을 아마 살아갔을 것입니다.
오네시모는 처음에는 도둑으로 잘 못했지만 자중에 바꿔져서 하나님을 전보다 더 잘 섬기는 사람으로 만들어져 나중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고 바울의 귀한 옆에 돕는 조력자로서
그 일을 잘 감당해 갔던 사람이 오네시모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내가 덜 변하고 내가 관점이 덜 바뀌어서
하나님과 늘 동행하지 못하고 같이 가는 시간보다는 따로 떨어져 가는 시간이 있었다고 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좀더 더 잘 섬겨서 하나님을 인정하므로 말미암아 동행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고 동행하는 시간이 많아지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어 지다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우리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정돈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끝까지 동행해 가야됩니다.
그러려면 첫 번째 절박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됩니다.
그 상황속에서도 낙심하고 좌절하면 안됩니다. 그속에도 분명히 하나님계십니다.
하나님을 그때 만나야 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을 보는 눈이 새롭게 변해야 됩니다.
그래서 내 관점이 바뀌어야 됩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을 옛날보다는 더 잘 섬겨서 끝까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에게 더 발견되어 지고 하나님에게 인정받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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