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지고 가는 근육질 성도 렘12:1~5
◑하나님의 도우심 + 내 순종의 걸음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 대한 기대가 큽니다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바라고 하나님을 믿는 것일까요?
시편 127편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까닭은
우리 힘만으로는 세울 수 없는 집을 세우고 싶기 때문이며,
우리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우리의 성을
하나님이 지켜 주셔서 어려움을 당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집을 세워 주시고
우리의 성을 지켜 주시는 분일까요?
▲내가 기대한 만큼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집은 무너지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성은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집도 무너지고,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의 성도 흔들릴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시편 127편의 말씀이 틀린 것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틀릴 리는 없습니다. 그러면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내 순종의 걸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집을 세우시고 우리의 성을 지켜 주시는 방식이
우리의 생각과 좀 다르시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하나님은 성도들의 집을 직접 세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집을 세워야만 무너지지 않는지를 알려 주셔서,
무너지지 않는 집을 세우는 능력을 주셔서,
우리 스스로 무너지지 않을 집을 짓게 하시며,
우리의 성을 직접 지켜 주시기보다는
우리에게 성을 지킬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주셔서
우리의 삶과 인생의 성을 능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보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고, 비행기가 우리 집 대문 앞까지 오지 않습니다.
내가 비자를 얻고, 비행기 표를 사고, 인천 공항까지 가서
비행기에 타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고난이 많은 이유
앞서 ‘하나님의 도우심’ +‘내 순종의 걸음’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순종의 걸음으로 살면 삶이 평탄한가요? 예, 물론 평탄합니다.
그러나 꼭 그렇지는 않은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예레미야의 질문
렘12:1~4에, 하나님께 대한 예레미야의 질문이 있는데, 제가 좋아하는 내용입니다.
그 질문 내용은 우리들의 보편적인 궁금증을 대변한 질문인데
그것은 ‘왜 의인이 고난을 당하고, 악인이 오히려 형통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을 할 때 예레미야는,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 같아 보입니다.
<자신>은 나름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고 있는데
이렇게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고 있고,
<세상의 악인들>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뜻과는 정 반대로 사는데
도리어 형통하니... 예레미야로서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의 답변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강 물이 넘칠 때에는 어찌 하겠느냐? 렘12:5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정말 시원하고 통쾌한 하나님의 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위 말씀을 정말로 좋아합니다.
의인이 고난을 당하는 까닭은 하나님이 안 계셔서 그런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모르셔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의인을 사랑하지 않으셔서도 아니고, 하나님이 무능하셔서도 아니라
의인은 말과 경주하여도 이기고,
요단 강 물이 넘치는 것과 같은 무섭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능히 이겨 살 수 있는
강한 사람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대답이셨습니다.
너무 편안하게만 하면 점점 사람은 약해지기 때문에
하나님은 정말 사랑하시는 당신의 자녀들을 강한 사람으로 훈련시키시기 위하여
가끔 혹독한 시련과 어려움을 통하여 저들을 훈련시키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동의
이와 같은 사실을 우리는 롬5:3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바울은 하나님이 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는 자신에게
가끔 환난을 주시는 줄을 알았습니다.
믿음이 없다면 환난 중에 무너지겠지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으니 환난 중에도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편 기자의 동의
시편 기자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하나님을 믿는 의인이 환난 중에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밖에 없습니다.
그러는 동안 인내함이 생기게 되었고
인내하다보니 고난과 역경에 대한 내성이 생기게 되었고,
그와 같은 내성이 점점 쌓여 결국에는 소망하는 일들을 스스로 이룰 수 있는
강한 사람으로 연단되게 되었다는 것이 바울의 경험 적인 고백이었습니다.
또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할 시험 밖에는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도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당하는 시험과 환난은
모든 것이 끝나는 심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강한 사람으로 연단하고 훈련시키시기 위한
하나님의 의도라는 것입니다...
(중략)
◑십자가 지고 가면서.. 근육이 붙어야
십자가 안 지고 세상으로 나가도 죽도록 고생..
십자가 지고 가도 고생..
정답은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그래도 가볍다 입니다. 마11:30
십자가를 지면서, 단련이 되어, 영적 근육이 붙어야 하겠습니다.
▲십자가 짐 안 지면, 대신에 세상 짐 지우십니다.
여러분, 조금 부담스럽게 교회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스스로 짐을 지고, 부담을 가지고 신앙생활과 헌금생활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와 같은 부담을 감당할 힘과 능력을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주실 줄 저는 믿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기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와야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십자가를 내 팽개치고 부담 없이 예수님을 따르는데
점점 길들여지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스스로 지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강제로 지우십니다.
교회에서 십자가(사명)를 지려하지 않으니까
세상에서 십자가(환란)를 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억지로 지는 십자가보다 스스로 지는 십자가가 더 좋습니다.
꽤 부리지 말고 십자가를 지고 주를 좇는 교인들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기둥과 같은 일꾼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렇게 십자가 지다 보면, 근육이 붙고, 내공이 생깁니다.
운동을 많이 하면 할수록, 근육이 강해지고, 힘든 육체 노동을 할 수 있듯이,
영적으로도 근육이 붙어야 합니다.
이렇게 근육이 붙고, 내공이 쌓인 성도는
말과 경주해서 이기는, 요단의 창일함 가운데도 살아남는,
예레미야와 같은 사람이 됩니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대들보’, ‘기둥’(계3:12)과 같은 사람이 되는데요...
▲대들보와 기둥의 역할도 필요합니다.
집을 지으려면.. 흙도 필요하고, 판자도 필요하고, 못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대들보도 있어야 하고, 기둥도 있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대들보는 중히 여기시고, 못과 판자는 하찮게 여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대들보만 가지고는 집을 지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둥과 대들보가 없으면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집을 짓기 위하여
대들보와 기둥과 역할을 감당할 사람들을 미리 준비해 놓으십니다...
'◑추천인 명설교편◑ > 김동호목사 명설교 (155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습관적인 신앙을 부정하지 말라 잠4:20~21 (0) | 2015.02.26 |
---|---|
신앙인들의 보편적 착각 살전5:19 (0) | 2015.02.26 |
쓰면 늘고, 안 쓰면 줄어든다 눅9:37~43 (0) | 2015.02.24 |
싸우지 않고 늘 이기는 사람 이삭 창26:19~22 (0) | 2015.02.24 |
쓴 커피의 맛, 낡은 옷의 멋 잠20:29 (0) | 2015.02.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