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대 역사가들
출처-antiyesu.org/티모시 프리크, 피터 갠디 저,
승영조 역(자료제공회원:전동주)
필론(BC 15?-AD45?)은 예수가 살았다는 시대에 활동한 유명한유대인 작가이다.
그의 저술은 오늘날까지도 약 50권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는 역사와 철학, 종교를 다루었고, 본디오 빌라도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전해 준다---
그러나 메시아 예수의 도래에 대해서는 언급한 것이 전혀 없다.
필론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티베리아스(이스라엘 북부 도시)의 유스투스는 가버나움(Capernaum : 가파르나움, 갈릴리 바닷가의 마을) 인근에 살았던 유대인인데, 가버나움은 예수가 머물렀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그는 모세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당대까지 이르는 역사를 기술했지만, 역시 예수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플라비우스 요세푸스(37?- 100?)라는 인물이 남아 있다.
그는 사도 바울과 동시대 사람이었다.
그는 2권의 유명한 역사책을 남겼다.
<유대 전쟁사>와 기념비 적 작품인 <유대 고대사>가 그것이다.
이 2권의 책은 그리스도교인이 나타난 첫 세기의 유대 역사에 대해 가장 중요한 정보를 전해 주는 책이다. 기대한대로, 적어도 이 책에서만큼은 우리가 찾던 증거를 마침내 발견한 것처럼 보인다. 요세푸스는 이렇게 썼다
이 무렵에 예수가 살았다. 그는 현명한 인간이었다 ---
그를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는 놀라운 업적을 이루었으며, 새로움을 열망하는 사람들의 교사였기 때문이다.
그는 많은 유대인과 많은 그리스인을 감화시겠다. 그는 메시아였다.
우리 사회의 요인들이 그를 고발한 탓에 빌라도가 그를 십자가형에 처했을 때에도, 처음부터 그를 사랑한 사람들은 결코 그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않았다.
거룩한 예언자들이 미리 말했듯이, 그리고 그가 이미 수많은 기적을 일으켰듯이, 사흘째 되는 날 그는 다시 살아나서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따서 그리스도교인이라고 부르는 무리들은 이날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
또 요세푸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기적을 행하는 자’가 빌라도 앞에 끌려왔을 때, 빌라도는 예수가 ‘범죄자나 선동자나 자칭 왕이 아니라 은혜를 베푸는 자’라고 결론지었다.
예수가 빌라도의 병든 아내를 기적적으로 치료해 주자 빌라도는 예수를 풀어 주었다.
그러나 유대인 제사장들이 나중에 빌라도에게 뇌물을 바치고, ‘모든 유대 전통을 무시한 죄’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해 달라고 청원했다.
예수가 기적적으로 부활했다는 그리스도교인들의 주장에 대해, 예수의 시체를 제자들이 훔쳐간 후 부활했다고 거짓말을 한다는 반론이 제기되었는데, 그 점에 대해 요세푸스는 시체를 훔쳐 갈수가 없었다고 썼다. ‘그의 무덤 둘레에 로마인 30명과 유대인 1천 명이 지키고서 있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요세푸스가 남겼다는 이 기록은 수백 년 동안 그리스도교인 역사가들이 예수의 역사성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해 왔다---학자들이 좀더 비판적으로 문헌을 점검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앞 기록과 이 예수부분의 기록의 문체가 완전히 다르다.
신이 개입해서 갑자기 자기가 쓰던 문투가 저렇게 다른 사람 문투로 바뀐것인지는 증명되지 않았다.
오늘날 진지한 학자들은 앞서의 기록이 실제로 요세푸스가 쓴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훨씬 후대에 추가된 기록이라는 사실이 명백히 확인되었던 것이다.
이 문헌학적으로 확실히 확인된 첨필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앞서의 기록은 요세푸스의 문체와 전혀 달랐다.
또 그 기록만 문헌에서 제거하면 요세푸스의 원래 주장은 일관성을 갖게 된다.
초기 교회사에서 가장 양심적인 학자 가운데 1명으로 간주되는 오리게네스는 3세기 초의 글에서, 요세푸스는 예수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으며,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도 믿지 않았다고 기술했다.
나아가서 요세푸스는 어떤 유대인 메시아도 믿지 않았다고 오리게네스는 기술했다.
요세푸스는 사실상 친로마파 유대인이었다. 동족 유대인들은 그를 매국노라고 여기며 증오했다. 그래서 그는 유대 지방을 떠나 죽을 때까지 로마에서 살았다.
로마에서 그는 두 황제의 후견을 받으며 로마귀족이 되어 부유하게 살았다.
요세푸스는 여러 명의, 자칭 유대인 메시아를 언급한다.
그들에 대해 그는 전혀 찬사를 바치지 않는다.
그가 글을 쓸 당시에는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 유대 민족을 해방시킬 거라는 유대인의 오랜 믿음이 강박증에 이를 정도였다.
요세푸스는 스스로 ‘고대의 신탁’ 이라고 일컬은 그런 믿음에 대해 나름대로 해석을 가했는데, 그것이 신성한 예언임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동족 유대인들이 그것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의 기록에 따르면, 이 세계의 왕으로 도래할 거라고 예언된 자는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재위 69-79)였다!
그리고 베스파시아누스는 유대 지방에 머무는 동안 황제로 선포되었다고 그는 기록했다.
같은 책에서 그렇게 썼던 요세푸스가 문체를 바꿀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든 철학적 신념을 뒤엎고, 자신의 정치적 처세술도 죄다 포기하고 느닷없이 예수를 숭배하는 글을 썼다는 것은 도무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치자.
그러면 우리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예수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역사적 증거를 찾고자 했던 초기그리스도교인들이 그런 결정적인 증거를 놓쳤을 리 없다.
그러나 그들은 요세푸스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요세푸스를 처음 언급한 것은 4세기 초의 유세비우스 주교였다.
로마 교회 선전자였던 그는 앞서의 구절이 추가된 요세푸스의 책을 느닷없이 제시했다.
바로 이때부터 요세푸스는 예수의 역사성을 증언한 자가 되었다.
<탈무드>
유대인 역사가의 저술 속에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증거가 없다.
그런데 때로 예수라는 인간에 대한 약간의 역사적 증거를 제시하기 위해 동원되는 몇몇
구절이 <탈무드>에 담겨 있다.
그런 구절은 분명 그리스도교인들의 위조가 아니다.
그것이 어떤 구절인지 살펴보자.
이런 가르침이 있었다 :
유월절 전야에 그들은 예수Yeshu를 매달았다.
예수가 주술을 행했으며, 이스라엘 백성을 미혹케 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랍비들은 이렇게 가르쳤다 :
예수에게는 다섯 제자---마타이, 나키아, 네처, 부니, 토다---가 있었다.
랍비 엘라자르 벤 다마가 독사에 물렸을 때, 케파르 소마의 한 남자인 야곱이 예수
벤 판데라의 명을 받아 그를 도우러 왔다.
내가 한때 세포리스의 거리를 걷고 있을 때, 나사렛 사람인 예수의 제자들 가운데 1명을 만났다.
‘예수Yeshu’는 ‘여호수아Yehoshua/Joshua’의 축약형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예수를 가리키는 그리스어 ‘이에소우스Iesous’는
여호수아를 번역한 말이다.
그렇다면 <탈무드>의 예수에 대한 구절은 복음서의 예수에 대한 이야기일까?
그러나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다섯 제자만 언급되어 있다는 사실을 덮어두더라도,
이 구절이 우리가 찾고 있는 증거가 아니라는 다른 근거가 있다.
‘나사렛 사람인 예수Yeshu the Nasarene’ 라는 말은 특별한 용어가 아니다.
나사렛 사람이라는 것은 유대인의 한 종파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지 ‘나사렛 출신’ 이라는 뜻이 아니다. 예수는 너무나 흔한 이름이어서, '홍길동',존''식으로서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아주 많았다.
당시 예수라는 이름으로 랍비행세를 한 랍비는 수십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세푸스는 헤브라이어로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적어도 10명은 언급했다.
혹시 그 중 1명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그리스어로 번역될 수 있다 할지라도, 헤브라이어로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는 사실을 지울 수는 없다!
<탈무드>의 이 구절을 깊이 연구한 학자가 인정하듯이 위 구절이 수많은 예수Yeshu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한 것이라 할지라도 예수가 역사적으로 존재했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이 구절은 너무 늦게 씌어졌기 때문이다.
옛 기록을 기초로 삼았다 할지라도. <탈무드>가 씌어진 것은 AD 200년 이후이다.
그리고 기초가 된 옛기록이 있었는가의 여부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아무튼 위 구절에서 예수와 동시대인으로 나오는 랍비들이 살았던 시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가 살았다는 시대와 족히 200년 차이가 난다.
즉 예수 시대의 예수가 아닌 예수가 죽은 후 200년이 지나서 활동한 예수들을 언급한 것이다.
<탈무드>에도 도움이 될 만한 기록은 없는 것 같다.
그럼 우리는 다시 어디서 증거를 찾아봐야 할까?
우리는 예수의 역사성을 주장하는 모든 잠재적 증거를 살펴보았다---
기이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앞에서 언급한것 외에는 역사적 증거로 제시된 것이 전혀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증거는 그리스도교인들의 증언뿐이다.
바로 그것이다!
과연 그렇다면 그들의 증언은 역사적 자료로 간주될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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