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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시126:1~6

by 【고동엽】 2024. 11. 22.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시126:1~6        

 

◑시126: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꿈 꾸는 것 같았도다’

'이게 도저히 현실일 수가 없어!'

'이건 우리가 노력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야!'

 

그들이 포로에서 돌아왔는데, '유다의 포로'도 아니고, '이스라엘의 포로'도 아닙니다.

'시온의 포로'라고 1절에 말씀하고 있어요.

 

'시온의 포로'는 뭐냐면, 시온산의 성전을 잃고 배회하던 자들이

성전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이 '시온의 기쁨' 즉 '성전의 기쁨'입니다.

이 기쁨으로 지금 성전의 계단을 올라가며 찬양을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방의 철책선 근처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은, 근처에 교회가 없습니다.

그래서 내무반 한 쪽에서, 믿는 신자들끼리 몇몇이 모여서 자기들끼리

약식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다가 근무가 교대되어, 철책선에서 후방 사단본부로 내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몇 달 만에 드디어 예배드리러 교회당에 들어선 군인들의 얼굴에는

정말 ‘꿈 꾸는 것 같도다!’ 라는 환희와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이와 비교될 수 없이 바벨론 포로에서 70년만에 귀환해서, 성전을 다시 짓고

그 성전으로 올라가는 당시 성도들의 기분이 정말 ‘꿈꾸는 듯’ 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배드리러 교회당에 나올 때는, 이런 기분이 필요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기억’입니다. 그 은혜와 감격을

기억을 잘 하는 사람이.. 신앙생활을 열심히 잘 하는 것입니다.

 

 

◑2절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는..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풀려난 때인데,

신약적으로는, 우리 모두가 죄인에서, 마귀의 포로에서 해방된 때를 뜻합니다.

 

‘우리 입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여기서 ‘찬양’이 뜻하는 바는.. 원어적으로 ‘함성’을 뜻합니다. *ringing cry

너무 좋아서 와~ 하고 함성을 지른 것을 의미합니다. joyful shouting(NASB)

 

지금 본문은 순례자들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그들이 예배드리러 가면서, 과거에 포로에서 돌아온 때를 회상하면서

그 기쁨의 함성과 감격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기 주어는 '이방인들'입니다.

이방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라고 칭송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칭송은 다음 구절인 3절에 나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면.. 이방인들도 하나님을 칭송하고 찬양하게 됩니다.

교인들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게 아니라, 안 믿는 세상 사람들까지도 찬양하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 개인, 또는 가정에, 또는 공동체에.. 하나님의 큰 역사, 큰 일이 나타나면

세상 사람들까지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게 이런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까?  막2:12, 계11:13 등

 

 

◑3절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1~2절은 과거의 회상이라면

3절은 현재입니다.

그리고 5~6절은, 미래의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씀하는 '큰 일'이란, 포로가 돌아오는 일을 뜻합니다.  :1, :4

그렇다면 5절과 6절에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가 뜻하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렸느냐면, 문맥상

'큰 일' 즉 '포로 귀환'을 위해서.. 누군가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렸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포로 귀환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이루어진 큰 역사였지만,

거기에 성도들의 눈물어린 기도가 축축히 스며 있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미래에도 마찬가지라고 제시합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귀환민들이, 다시금 찬란한 다윗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눈물로 씨를 뿌리는 것이 비결이다' 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를 봐라. 눈물로 씨를 뿌린 결과, 우리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일이 생기지 않았느냐!'  :2

 

 

◑4절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남방 시내들’이란 네게브 사막 지역에서

건기가 끝나고 우기가 되면 갑자기 폭우가 올 때, 평소에 걸어다니던 길들이

빗물이 불어 큰 강물을 이루는 것을 뜻합니다.

 

아직 남아 있는 포로들이 있는데.. 그들이 조금씩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넘실대는 강물처럼 ‘대량으로 많이’ 함께 돌아오게 해 달라는 기도의 요청입니다.

 

 

◑5절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우리는 살다보면, 눈물을 흘리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는 것만으로 끝내 버리면 안 됩니다.

우는 시간에는.. 반드시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의 씨앗입니다.

왜냐면 기쁨의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입니다.

그때 그 눈물이 수분이 되어서, 말씀의 씨앗이 더욱 잘 자라고 싹을 틔울 것입니다.

 

▲잠언 20:21 '처음에 속히 잡은 산업은 마침내 복이 되지 아니하느니라'

눈물 없이 뭔가 술술 잘 풀리고 일취월장 하는 것은.. 진정한 복이 되지 못합니다.

 

토마스 카알라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형통할 때 그 형통을 끝까지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일까?

반대로 아주 역경을 당할 때, 그 역경을 끝까지 버틸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일까?

 

역경을 끝까지 버틸 수 있는 사람이 100명이라면

형통해서 끝까지 버틸 수 있는 사람은 1명 정도이다’

 

무슨 말입니까? 풍요로운 세상 물결이 막 쏟아져 들어올 때

죄가 쏟아져 들어올 때, 쾌락이 쏟아져 들어올 때

신앙생활이 흔들리지 않을 사람은 100에 1명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가난, 어려운 역경을 버티고 이기는 편이 훨씬 쉽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참 말입니다.

 

거룩하게 사는 것, 말씀대로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성도들이 그렇게 살도록 도움 주는 길을 열어놓으셨어요.

그것은.. 역경과 고난을 통해서.. 눈물로 씨를 뿌리게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절대로 편한 길이 아닙니다.

만약 편하다고.. 교회가 잘못 가르친 것이 있다면, 그런 지도자는

나중에 심판대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눈물의 가시밭 길을 걸어가는 길입니다.

어떻게 거룩하게 사는 길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어떻게 내가 헌신하는 일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라고, 순종, 헌신하라고.. 눈물의 길을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눈물 없이는 어렵습니다!

 

▲눈물이라고 해서 연약하다는 인상을 받지 마십시오.

흔히 우리는 눈물은.. 연약하다는 인상을 받기 쉽습니다. 약함의 상징으로 봅니다.

 

아닙니다. 눈물은 강함의 상징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눈물 흘리는 자는 강합니다.

왜냐면 본문에서 '눈물'은 기도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 눈물의 기도의 씨를 뿌리는 자를 뜻합니다.

진정한 기도의 골방은, 항상 눈물로 축축히 젖어있는 곳입니다.

 

성도가 살다가 난관에 부딪히고 사면초가를 당하더라도

눈물로 기도하는 성도는.. 반드시 그 상황을 극복하고 오히려 역전시킵니다.

그래서 ‘눈물’은 오히려 강한 자의 상징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살다가 실패하고 쓰러진 자도,

기도의 골방으로 들어가서, 말없이 흐느낄 때

주님께서 그의 약함을 다시 강하게 해 주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강해집니다.

이것이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작업입니다.

 

▲눈물로 말씀의 씨를 뿌렸던 목회자

한국교회 초기 때, 감리교에 이용도 목사님 이란 분이 계셨습니다. (1901~1933)

많은 후배 목회자들이 닮고 싶은 귀감이 되는 목사님이십니다.

그 목사님이 쓰신 일기를 읽어보면,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모릅니다.

 

1931년 3월 16일 월요일 일기입니다.

"아 오늘 저녁 집회를 인도하는데 나는 괴롭다. 나의 등에는 땀이 흐르지 않았다.

나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지 않았다. 땀 없음. 눈물 없음.

이는 나에게 괴로운 일이다.

 

땀에 젖음, 눈물의 아픔이 나의 기쁨이요 만족이다.

육이 편하여 나는 기쁘지 못한 자로다.

십자가의 고통을 당함이 나의 영광이요 복이요 기쁨이로다"

 

이용도 목사님의 짧은 일기를 읽어보면,

'아 이용도 목사님은 설교 준비도 이렇게 하고 설교를 이렇게 했구나' 하는 것이

딱 가슴에 와 닿게 됩니다.

 

저는 그동안에 설교하면서, 등에 땀이 흐르고, 눈물을 쏟지 못 하는 설교를 한 적이

얼마나 많았나요...

 

그러면서도 교인들이 은혜 받았다는 말에 스스로 도취되어 지냈던 날들이

얼마나 많았던가요.

 

그리고 그때부터 이런 기도를 제가 드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말씀을 준비 할 때 눈물을 주십시오.

눈물로 말씀을 준비하게 해 주십시오!'

이것이 저의 개인적인 기도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설교도 눈물로 하는 설교와, 눈물 없이 하는 설교는 완전히 다릅니다...

 

 

◑6절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여러분, '울며 씨를 뿌리는 자' 와 '기쁨으로 곡식단을 거두는 자'

이 둘 중에 누가 천국에서 더 큰 상급을 받을까요?

 

지금 한국나라와 한국교회가 번영의 열매를 거두고 있다면,

거기엔 반드시 지난 세대의 눈물로 씨를 뿌리는 시기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 천국에 가서는, 기쁨의 열매를 거둔 우리 세대가 상급을 받을까요,

아니면 눈물의 씨앗을 뿌린 지난 세대가 상급을 받을까요?

 

이 점을 생각하노라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번영의 열매가

결코 ‘영원한 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반대로, 지금은 번영의 열매를 누리지 못하더라도

‘눈물로 씨앗을 뿌리는 자’가.. 나중에 천국에 가서는 더 큰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

그럼 나는 오늘날 무슨 ‘눈물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가요?

 

그리고 오늘날 ‘눈물로 씨앗을 뿌리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장차 천국에 가서 ‘기쁨으로 거둘 단’을 생각한다면,

지금 현실에서 내가 비록 힘들게 산다 하더라도.. 크게 낙심치 말아야 합니다.       주1)

 

지금 현재 경매시장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는 그림이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이라고 한다. 모든 미술작품 중에 최고가로 거래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고흐는 살아생전에 단 한 그림도

그런 고가를 받고 팔아보지 못하고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거의 끼니나 월세를 해결할 정도의 값만 겨우 받고서, 자기 그림을 팔았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참으로 억울하고 안타까운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천국에 가서 무슨 큰 보상을 받는 일은.. 아마 없을 테니까요!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고,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면..

반드시 천국에서 기쁨으로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니.. 기쁨의 그날을 기대하면서

오늘도 눈물로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우리는 어릴 때 우리의 부모 세대, 믿음의 선배 세대들이

얼마나 어려운 가운데 눈물의 기도를 드렸나 하는 것을

어려서 직접 우리 눈으로 본 기억이 생생합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예수 한 번 잘 믿어 보자!' 오직 이것 하나 때문에

집도 땅도 고향도 다 버리고 피난을 떠나 왔던 사람들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예요.

집도 땅도 고향도 다 버리고 보따리 하나 짊어지고 피난을 떠났습니다.

그 목적은 '신앙생활 제대로 한 번 하고 싶어서' 였습니다.

 

북녘 땅에서는 예수 제대로 믿을 수 없을 것 같기에

그렇게 피난생활을 떠났던 분들이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입니다.

 

지금 우리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그 추운 겨울에 난방도 안 되는 그 차가운 예배당 마루바닥에서

금식하고 그렇게 밤을 새며 기도하던 분들..

 

고개만 숙이면 그냥 닭똥같은 눈물이 뚝뚝뚝 떨어지는 그런 기도의 모습이

지금도 우리 눈에 생생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눈물로 기도했던 그 기도의 제목 중에 하나가 자녀들이었어요.

자기 자녀들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냥 하나님 앞에 나가서 눈물로 자녀들을 위해 기도한 거지요.

 

지금 우리가 이렇게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부모세대, 우리의 믿음의 선배 세대의 눈물의 기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렵습니다.

우리도 자식을 위해서 기도합니다만, 눈물로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릴 적에 보았던 그때 그분들의 그 눈물의 기도가

지금 우리 세대에서는 말라버린 것 같아요...

 

▲여러분 중에는 '목사님, 저는 눈물이 안 나는데 어떻게 해요?'

이런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눈물의 회개를 드리고, 눈물의 기도와 눈물의 순종이 필요한 건 알겠는데

도대체 눈물이 안 나는 걸 어떡합니까?'

 

이때는 '주님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가질 때만 비로소 우리에게서 눈물이 터집니다.

 

우리가 울 상황에 몰려서 우리가 울면.. 하나님도 우세요.

여러분 이 사실을 정말 아십니까?

 

과거에 제가 말할 수 없는 억울한 일을 만나서

목회도 그만두고, 다 그만두고 떠나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하고서 내가 무슨 목회를 한다고 할 수 있나?'

 

(하나님이) 제가 목회도 계속 하게 하시고, 제가 억울한 것을 풀지도 못하게 하시고..

그때는 진짜 정말 죽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터져나온 기도가 '나 죽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죽었습니다!'

정말 그때는 그 기도밖에 안 나왔어요.

 

그런데 참 놀랍지요. 그런 정말 엉터리같은 기도의 고백인데도

평강이 오더라고요.

제가 죽었다고 고백하니까!

 

미운 것도 없어지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도 다 사라지고,

목회를 다 그만두겠다는 마음도 다 수그러들고.. 놀라운 평강이 왔습니다.

원망도 다 없어지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 생각지도 않은 기도를 또 드렸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주십시오!'

 

아니 내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는데.. 현실은 아직도 살아야 돼요.

그러면 제가 어떻게 살아야 되나요? 주님의 마음을 주세요!

주님의 마음 없이 정말 나보고 뭘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그러고는 고꾸라져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몰라요.

내가 왜 이렇게 우는지 제 자신이 모를 정도로.. 그렇게 정말 격하게 울었어요.

 

그렇게 울다가 깨달아졌습니다. 주님의 마음이!

제가 '주님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했잖아요.

그래서 주님의 마음이 부어진 거죠. 그래서 심히 울었던 거죠.

 

저는 주님의 마음이, 그렇게 애통함이 많은 줄은 과거에 몰랐어요.

예수님을 영접 했지만, 주님의 마음은 정말 몰랐어요.

 

'말할 수 없는 탄식'이라고 성경은 표현하고 있는데,

정말 그렇더라고요.

 

여러분, 여러분의 배우자를 위해서, 여러분의 자녀를 위해서,

또 우리 교우들을 위해서, 우리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한국 교회를 위해서

주님의 마음을 한번 구해 보세요.

주님의 마음을 달라고 간구해 보세요.

 

주님의 마음이 임하면, 안 울고 배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모르니까, 메마른 기도밖에 드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땅이 굳으면, 콘크리트 처럼 딱딱하게 굳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런 땅에 물을 아무리 줘 봐야, 곡식이 자랄수 있는 땅이 못 됩니다.

그냥 다 물이 흘러가 버립니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괭이, 망치로라도 그 굳어버린 땅을 깨뜨려야 되는 거지요.

여러 번 괭이질을 하면 그 돌덩어리처럼 딱딱한 그 땅에 균열이 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물이 그 조그만 틈새로 들어갈 수 있지요.

 

거기에 괭이질을 더 하면, 그게 잘게 부스러지기 시작하는데

그러면 거기에 씨를 심으면, 거기서 씨가 뿌리를 내리고 싹이 납니다.

 

우리 마음에 심령이 딱딱하게 굳어져 버리니까, 눈물도 안 나는 거예요.

회개를 해도, 기도를 해도, 순종하려고 해도.. 눈물이 없는 거지요.

 

눈물이 없는 씨뿌림은, 기쁨의 단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매일 영성일기를 써 가면서, 예수님을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매일 예수동행 일기를 쓸 때마다, 제 굳어진 마음의 심령이 깨트려집니다.

 

1시간 기도하자고 제가 그렇게 권하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그 1시간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밭이 부스러지는 시간입니다.

그러면 말씀의 씨, 하나님의 약속의 씨가 내 속에 떨어져서 자라게 됩니다.

 

여러분, 울면서 기도할 수 있다면, 눈물의 회개가 있다면, 눈물의 순종이 있다면

여러분은 절대로 망할 사람이 아닙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눈물의 기도가 회복되고, 눈물의 회개가 회복되고

눈물의 순종이 회복되기를 축복합니다!

 

.........................................

 

 

주1)

저희 (유기성 목사) 부친이 늦게 여주읍에서 교회를 개척하셨습니다.

당시에 교회 개척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모르셨던 것 같아요.

 

교회를 개척 하시면서 겪었던 어려움은 말할 수가 없었고

거기에다 예배당까지 건축을 해야 되었기 때문에

정말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보내시면서, 그 무거운 짐을 감당을 못 해서

저희 어머님이 무거운 병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일찍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여주 라는 곳은 그런 아픈 기억이 있는 곳입니다.

장남으로서 그 모든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았던 저는,

여주란.. 생각 하기도 싫고, 정말 그곳은 가고 싶지도 않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근데 세월이 많이 지나서, 그 여주에서 부흥회를 해 달라고 요청이 오는 것입니다.

저는 몇 번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못 간다고 그러다가

꼼짝없이 이제는 여주로 가야 될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주지방 연합집회 부흥회'를 인도하러 가게 되었어요.

가면서도 마음이 참 복잡하더라고요.

 

근데 부흥회 기간 동안, 강사인 저를 접대하는 일을 담당하신 목사님이 계셨어요.

그분의 차를 타고, 숙소와 교회와 식당을 오고 갔는데

그 목사님이 누구냐면, 저희 부친이 개척한 그 교회의 현재 담임목사 이셨습니다.

 

그래서 차 안에서 그 교회의 사정과 형편을 들었습니다.

지금은 그 지방에서 제일 큰 교회가 되어 있더라고요.

 

그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 마음에 참 묘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 땅은 우리 가족에게는 눈물의 땅입니다.

 

사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하면서 개척하셨나?'

당시 저희 자녀들은 아버님 목사님, 또 여주라는 곳이 원망스러웠던 곳이었습니다.

 

근데 세월이 많이 지나서 지금은, 그로 인해서 얼마나 놀라운 열매가 맺어지는 것을

보고 나니까 제 마음에 그 상처가 씻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후로 요즘에는 여주 땅을 보면 과거의 그런 느낌이 안듭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곳인지요...

 

 

여러분 눈물의 순종을 해야 될 때가 있습니다.

도망가고 싶어 도망갈 수 없고,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안 하고 싶어도 안 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린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눈물의 순종이지요. 눈물로 순종하는 거지요.

 

근데 반드시 하나님께서 기쁨의 단을 거두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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