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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헌신설교 36편

주님을 향한 진정한 헌신 눅20:41~21:4

by 【고동엽】 2024. 3. 27.

주님을 향한 진정한 헌신              눅20:41~21:4

※재미있는 본문만 아니라, 전체 성경을 가르치려는 도전입니다.

빨리 읽으실 분은 ▲20:45절부터 읽으시면 됩니다.

 

▲본문의 정황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마침내 도착을 하셨고, 그 다음에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깨끗하게 하는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눅19:45~48

그러면서 눅20장이 시작되는데, 여기에는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과 
예수님 사이에 있었던 논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까지 3개의 논쟁을 살펴봤습니다. 

1) 첫 번째는 권위의 문제,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가?  20:1-8
그 권위는 누가 당신에게 주었는가?' 라는 질문을 했고,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반문을 통해서 그들을 부끄럽게 만드셨습니다.  

(*그 다음에 '소작인 비유'를 말씀하시죠. 이것은 논쟁은 아니죠. 20:9~19) 

 

2) 두 번째 논쟁은 세금 논쟁입니다.        20:20-26
로마 총독의 손을 빌어서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해서 
세금과 관련된 질문을 던졌습니다.   

3) 세 번째 논쟁은 당시에 종교 귀족들이었던 사두개인들과 부활에 대해 논쟁,  20:27-40
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활과 관계되는 혼란스러운 질문을 던졌을 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는 내용들을 지금까지 이렇게 살펴봤습니다.  

4) 오늘 우리가 살피는 말씀은  누가복음에 기록된 마지막 논쟁인데,          20:41-47
'율법사들의 외식'을 지적하신 내용입니다.

 

오늘 설교의 주안점은, 율법사들의 외식도 문제이긴 하지만, 

연이어지는 '두렙돈 드린 과부'와 율법사를 비교해 보면서,              21:1-4

주님을 향한 진정한 헌신이 무엇인지를 상고해 보는 것입니다.           

 

본문 4번째 논쟁의 가장 큰 차이는,

지금까지 세 번의 논쟁은 종교지도자들이 먼저 질문을 했습니다. 
그들이 질문을 하면, 예수님께서 답을 하셨죠. 

그런데 오늘 본문인 네 번째 논쟁은, 예수님이 먼저 질문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질문하시고, 그들은 오히려 침묵하게 되는 내용들이 
본문 20:41~44절까지 기록됩니다.   

그리고 20:45~21:4절까지는 두 부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논쟁을 마무리하면서, 
-예수님께 책망을 받았던 한 부류의 사람 (서기관), 
-예수님께 칭찬을 받았던 한 사람이 나옵니다 (두 렙돈 그린 과부).

그래서 이 전체 말씀을 통해서 저희들이 한 번 더 
'예수님을 향한 진정한 헌신이라는 건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오늘 말씀을 살피려고 합니다.  

▲20:41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그리스도(헬라어)라는 말과, 메시아(히브리어)는 같은 말이죠.
뜻은 똑같이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세우신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뜻이죠.

41절에 보면, 당시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누구라고 이해를 하는가 하면 
'다윗의 자손이다' 라고 이해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 말씀의 근거가 뭔가 하면, 삼하7:12절 이하를 보시면,
소위 '다윗 언약'으로 불리는데, 
여기 보면 '다윗이 나중에 죽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 다윗의 씨를 세워가지고 
다윗이 죽은 이후에도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겠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삼하7:13절 '그(다윗의 후손, 결국 그리스도)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이 말씀은  솔로몬을 통해서 1차적으로 성취가 됩니다. 
근데 아시는 것처럼 남유다는 바벨론에게 망하게 됩니다. 
이 때 유대의 경건한 사람들은 고민하게 된 거죠. 

'그러면 하나님의 이 약속은 어떻게 되나?' 
분명히 다윗에게 '그 후손이 정말 하나님의 집을 세울 거고, 
하나님은 그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지금 나라는 망했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다윗을 향해 주신 약속의 말씀은 어떻게 되나?' 
여기에서 소위 '메시아 대망사상'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사야도 뭐라고 예언했습니까?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날 것이다'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죠.  사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고 결실을 해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세울 것이다'
그런 이새의 후손이 등장하게 될 거다.. 라고 예언했죠.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 '하나님이 세우실 구원자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거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다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이라고 사람들이 이해를 하고 있다.    주1)

 

 

그런데 예수님이 던지는 질문은 뭔가 하면, 
'과연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이, 
하나님이 세우실 구원자를 올바로,  충분히 묘사한 것인가?'  
에 대해서 예수님이 질문을 던지신 겁니다. :42

▲20:42 '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43 내가 네 원수를 네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당시 사람들이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 이렇게 이야기하면 
다윗에게 강조점이 갈 수 있죠. 

여러분, 경북 영주에 이황과 관련된 '소수서원'이 있습니다.
한국 최초의 서원(한학 기숙학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황의 후손'이라고 말을 하면, 그 후손에게 초점이 맞춰지기보다는 
위대한 조상 이퇴계에게 초점이 맞춰집니다.  *이황의 호가 '퇴계 退溪' 

그러니까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다'라는 말은, 자칫 잘못하면 
관심을 다윗에게 맞추게 되고,
그리스도가 가지신 그 영광스러움에 대해서는 오히려 간과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본문 42절에 시110:1절 말씀을 예수님이 인용하십니다. 
'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시110편은 예수님 당시에 가장 대표적인 '메시아 예언'과 관계되는 시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무려 33번 인용됩니다. 

그러니까 당시에, 가장 대표적인 '메시아 예언시'로 이해되었던 
이 시110:1절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예수님은 먼저 강조를 하십니다. 

여러분 지금 예수님과 논쟁을 할 때는, 
예수님이 직접 인용하신 시110: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되'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여호와'를 직접 표기하기보다는 간접적으로 표현하죠.
유대인들의 그런 스타일대로 예수님이 말씀하시죠. 
그래서 '주(원래는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되' 가 된 거죠.
'The LORD said unto my Lord'

그런데 두 번째 나오는 이 '내 주 my Lord'라는 분은 누구냐? 
'바로 그리스도를 뜻한다' 라고.. 이것은 당시 유대학자들이 대부분 동의했죠.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시죠. 
'그리스도라는 분이 도대체 어떤 분이시길래, 
다윗이 내 주라고 표현을 했을까?'  
(다윗의 후손인 그리스도를, 어째서 다윗이 '내 주'라고 부르느냐?)

 

43절은 뭔가 하면 '하나님이 구원사역을 그분에게 맡기셨다'는 겁니다. 
'내가 네 원수를 네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20:44절 '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라'

결국 이 말씀은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다' 라는 것을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시110:1절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일 뿐만 아니라, 그분은 누구시냐? 
그분은 바로 신적인 존재이다. 다윗이 '내 주'라고 불렀던 신적인 존재이다.. 라는 거죠.  

정리 하면, 본문 눅20:42~44절까지의 핵심은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일 뿐만 아니라 
그분은 신적인 기원을 가진  하나님과 동등됨을 가진 영광스러운 분이시다.. 라는 것을 
예수님께서 지금 이 종교 지도자들에게 도전을 하시는 거죠. 

그런데 누가복음은, 바로 이렇게 영광스러운 신적인 권위를 가진 이 예수님이 
바로 그의 아들이 될 것이다.. 라는 겁니다.          주2)

 

그분이 바로 우리들을 구원하도록 하나님이 세우신 그리스도,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단순히 육신적인 '다윗의 자손'이라는 기원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그분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즉 신적인 영광과 권위를 가지신 분이시다 라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당시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도전을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그냥 우리한테 던지는 질문은 바로 이겁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계십니까? 또 어떤 분으로 섬기고 계십니까?  
예수님께서는 바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바로 성자  예수님이시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그분의 그 영광과 권세를 성도들이 바로 알고 
그분을 겸손히 섬기는 자들이 되어야 된다는 거죠. 

저는 요즘 예수님에 대해서, 우리는 예수님을 좀 다정하고 친근하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격의없게 표현하다 보니까 
자칫 잘못하면 우리가 잊어버리는 사실이 무엇이냐? 
'예수님께서 얼마나 영광스러운 분이신가?' 하는 것을 간과하기 쉽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논쟁을 마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누구냐? 

그는 다윗의 자손일 뿐만 아니라,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광과 권세를 가졌고 
다윗이 내 주님이라고 불렀던 존재다..' 라고 그들을 향해 도전하셨습니다. 

▲20:45 '모든 백성이 들을 때에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20:46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그런 다음에 이어지는 45절부터 예수님께서 초점을 약간 바꾸시죠. 
모든 백성이 들을 때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시는데 
46절 핵심은 뭔가 하면 제일 마지막입니다. 
'서기관들을 조심해라 서기관들을 계속 주의해서 살펴서, 그들처럼 살지 말라'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 서기관은 누군가요? 
서기관은, 원래 뜻이 '기록자'입니다. *Scribes, 또는 teachers of the law

 

서기관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이 성경을 기록(필사)하고 보관하는 일입니다. 
당시는 요즘같이 복사본이 쉽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옛날에는 이 성경을 일일이 다 필사를 해서, 사본을 만들어 보관했습니다. 
그 일을 맡았던 분들이 서기관들입니다. 

그러니까 율법, 선지서 등 구약성경을 바로 기록하고 보관하는 책임을 맡았었죠.
그러다 보니까 자연히 바로 율법의 최고의 학자들이 되었습니다. 

 

율법과 관계되는 최고의 학자였고,  
나중에 이분들은 특별히 예수님 당시에 서기관은 율법을 수호했던 사람입니다. 
율법의 전문가일 뿐만 아니라, 율법을 수호해낸 
그 당시에 사람들로부터 최고의 존경을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멸망 당했습니다. 
바벨론 다음에 페르시아에게 또 짓밟히게 됩니다. 그 다음은 헬라가 정복하게 됩니다. 

헬라는 알렉산더 대제가 세웠던 나라입니다. 
그런데 알렉산더 대제는 나라만 정복하는 게, 그의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정복한 땅을 헬레니즘이 꽃피는 나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알렉산더가 가졌던 비전이었습니다. 

그는 일찍 죽었지만 그의 후계자들을 통해서 바로 헬라가 정복했던 나라에 
헬레니즘의 문화가 꽃피도록 그들은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했습니다. 

그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 유대인에게는 가장 강력한 도전이었습니다. 
바로 이 헬라의 거센 압력, 하나님 백성의 독특함을 인정하지 않고, 
이스라엘도 역시 헬라의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법을 인정하지 않고, 성전에 돼지 머리를 갖다 놓고 섬기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신앙의 순수성을 지켰던 사람들, 
특별히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정확하게 연구하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해석해서 
백성들의 신앙을 바로 잡아주었던 인물들이 누구냐? 바로 이 서기관들이었습니다. 
학사 에스라를 그 기원으로 보죠.

역설적으로 그 시대에 제사장들은, 헬라와 타협을 했고, 로마와 타협했습니다. 
그러나 평신도적인 배경을 가졌던 이 서기관들은 
율법의 전문가로서 철저히 성경을 연구해서 
헬라화의 거센 세속화의 압력에서부터 지켜내었던 인물들이 바로 서기관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그들이 백성들로부터 존경과 지지를 받았겠습니까? 
그래서 시장에서 서기관들을 만나면, 평범한 사람들은 반드시 목례를 해야 됩니다.  

또 회당에 가면 강단 위 제일 첫 번째 자리는 서기관들만 앉을 수가 있었습니다.  
또 잔치집에 가면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는, 언제나 이 서기관들이 차지하도록 되어 있었어요. 

여러분 지금 이 서기관들, 그러니까 예수님 당시에 가장 신앙이 좋았고 
역사를 통해서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냈던 이 서기관들이 
지금 예수님을 통해서는 책망을 받고 있죠. 

여러분, 책망의 내용을 한번 보시면   :46
'스톨레'는 서기관들이 입는 정복입니다. 
서기관들이 입는 긴 옷 long robes 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서기관을 상징하는 옷이었어요. 

그들은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한다'는데, 대부분 영어 번역은 love, 
그들은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너무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이 정말 바른 사람들은 
'하나님을 높이는 게 중요한가? 아니면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는 게 중요한가?'  
말할 필요가 없죠. 

그들은 말로는 하나님 높인다고 했지만, 
그들의 중심은 사람들에게 특별 대접받는 것, 
사람들에게 높임과 영광을 받는 것에 도취되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죠. 
그걸 예수님이 책망을 하신 겁니다. 

▲20:47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을 높일 뿐만 아니라, 그 표시 중에 하나가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돕는 거였잖아요. 
그런데 이 서기관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켜버렸다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정말 어려운 분들한테 성경이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권위와 지식을 사용해서 
정말 무거운 헌금을 강요하거나,  

그리고 고대에는 대부분 글을 잘 몰랐습니다. 문맹사회였죠.
그가운데서 서기관은 대표적인 식자층이었어요. 

그래서 과부는 법적인 권한도 없었기 때문에, 
유산과 관계되는 모든 것들을, 아마 이 서기관들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위임받았던 서기관들이 조금만 장난치면, 
과부에 물려져야 할 유산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과부의 과산을 삼켰다'고 하신 거죠. *변호사가 중간에서 수작 부린 거와 같죠.

그러면서도 '외식으로 길게 기도했다' 
그들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길게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당시의 서기관들을 책망을 했습니다. 

여러분 율법의 수호자였던 그들이, 왜 이렇게 변질이 됐습니까? 
화려한 과거, 화려한 학벌, 화려한 지식을 가졌던 사람들이 
왜 예수님으로부터 이런 책망을 받는 인물로 변질이 되었겠습니까? 

다른 거 아니죠. 여러분 그들이 이 명성과 학위에 도취되어서 
바로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보잘것없는 인간인가 하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들은 많은 것을 배워서.. 남은 가르쳤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그들은 부자의 친구들이 되기를 원했어요. 
이 세상에 인기 있고, 이 세상에 소위 가진 자들의 친구가 되기를 원했지, 
그들은 약한 자들을 돕는 사람이 되기를 그들은 거절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부터 이런 책망을 받게 되었던 거죠

저는 여러분  한국 교회 가운데도 저는 이것이 깊이 만연되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로마서 같은 성경을 보면서, 저도 나름 성경연구를 하면서 
제일 절망하는 것은 뭔가 하면 
'정말 공부 열심히 하는 지식인들이 과연 겸손해질 수 있을까?' 

다른 말로 하면 '지식인들이 과연 자기 자신을 바꿀 수 있을까?' 

지식인들의 일반적 경향은, 세상을 바꾸려고 시도하지, 자신을 바꾸려고 시도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 시대에 가졌던 서기관들의 하나의 한계였죠. 

저도 나름 청년들을 섬겼고, 또 청년들은 참 배움에 대한 욕구가 강렬합니다. 
그들을 제가 섬기면서, 항상 제 마음에 가졌던 초점과 강조점 이것이었습니다. 

과연 인간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신을 고칠 수 있는 힘을 가지기보다는, 
남을 판단하는 능력,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욕망에 그들은 사로잡히지, 
자신을 고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볼 때는, 이것은 거의 불치병에 가깝습니다. 

여러분 저는 우리 한국 교회의 지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유념해야 한다고 봅니다.
어쩌면 저 같은 사람이 대표적이겠죠.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들의 변질이, 우리들 가운데 일어나지 않도록...   
나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여러분 정말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리고, 
여러분 남을 바꾸려고 시도하기 전에, 
자신을 살필 수 있는 은혜! 

가르치기 전에 나 자신을 먼저 살피고,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부자들과 잘난 자들의 친구가 되려고 하지 않고, 
가난한 자들의 친구가 되고, 가난한 자들을 돕고 섬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이거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정말 예수님을 믿고 성령이 우리들 가운데 역사하실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서기관과 대조되는 두 렙돈 드린 과부

 

여러분, 이 서기관은 책망을 받았죠. 그런데 대조되는 칭찬 받은 사람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21:1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장소를 바꾸셔서 
당시 헌금하는 여인들도 들어올 수 있었던 여인의 뜰, 
그 여인의 뜰까지 여인들은 성전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안쪽은 못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여인의 뜰, 거기에 헌금함이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그곳에 가셨고, 헌금 드리는 사람을 지켜보셨는데 
먼저 부자들이 헌금을 넣는 것을 보셨습니다.   21:2

두 번째는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셨습니다. 21:2

두 렙돈은 얼마쯤 될까요? 
하루 일당을 10만원으로 계산하면, 두 렙돈은 1,500원입니다. 

한 렙돈은 데나리온의 128분의 1입니다. 
두 렙돈은 64분의 1이죠. 
한 데나리온 하루 일당을 10만 원으로 계산하면, 두 렙돈은 1,500원이 조금 못 되죠.

유대인들의 자료에 보면, 헌금으로 인정되는 마지노선입니다. 
그릴 수 있는 제일 작은 헌금을 드린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의 평가입니다.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21:3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1: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여러분 성전에서 있었던 사건 중에 유일하게  
예수님이 칭찬하셨던 사람이 바로 이 과부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한 과부가 1500원 헌금을 했을 때 
일반인이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과부가 살아가는 데는 그가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헌신했기 때문에 
주님은 그가 가장 많은 것을 드렸다고 칭송을 해 주셨습니다. 

그 과부가 1500원을 벌기 위해서, 
(오늘날로 치면) 폐지나 빈 병을 오래도록 주웠을 수도 있었습니다.
늙은 과부였다면, 별다른 직업이 없었을 테니까요.

저는 참 이 말씀을 대할 때마다 가슴이 참 뭉클해요. 
여러분 참 이 과부가 어떤 마음으로 헌금을 드렸겠습니까? 

'하나님, 남들이 볼 때 내 삶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삶입니다.' 그러면서 아마 그는 감사를 했겠죠.  

또 '저는 변함없이 주님을 신뢰합니다' 하는 그 신뢰. 
또 '하나님, 제가 가지고 있는 비록 작은 것이지만, 제가 주님께 드리겠습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하는 그 헌신!

여러분, 감사, 하나님에 대한 신뢰,  헌신이 그 두 렙돈 속에 담겨져 있었겠죠. 
여러분 오늘 말씀의 마지막 도전입니다. 

여러분의 예배,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태도는 
서기관들의 태도에 유사합니까? 
아니면 두 렙돈을 들였던 과부의 헌신에 유사합니까? 

이 본문은, 저한테 목회자로서 숙제입니다. 
'어떻게 하면  성공한 사람들이 여전히 하나님 앞에 겸손할 수 있을까?' 
저는 이것이 제 삶의 가장 큰 숙제입니다. 

어떻게 하면 서기관처럼 화려한 과거, 화려한 학벌,  
수많은 돈으로 둘러싸여져 있는 성공한 사람들이 
과연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출 수 있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약한 자들을 겸손히 섬길 수 있을까? 
즉 진정 경건해질 수 있을까?          

여러분 정말 우리는 남한테 큰 소리치기 전에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 살피며 고쳐갈 수 있는 사람으로 살 수 있을까?
과연 연약한 자들을 차별하는 게 아니라, 그분들을 진심으로 도울 수 있을까?  

또 한 가지, 과부와 같은 사람들은
정말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합해도 1500원밖에 없는 
이 가난한 사람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가 가진 것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들...

약하지만 이런 믿음의 본이 되는 사람들을, 과연 (리더로) 세울 수가 있을 것인가? 

△본문의 두 렙돈을 드린 과부 외에도, 성경에 보면, 예수님의 칭찬을 받은
사회적 약자인 과부들이 꽤 종종 등장합니다.

누가복음 서두에 과부 안나가 등장합니다. 
아기 예수님을 안고 너무나도 기뻐했던 안나가 등장합니다. 

눅4장에, 예수님의 첫 설교, 나사렛 회당해서 설교하실 때 
예수님은 엘리야를 대접했던 사렙다의 한 과부를 칭찬하십니다.  눅4:26

눅7장에, 예수님은 나인 성으로 들어가시는 길에, 한 과부의 죽은 독자를 살려주십니다.
앞으로 나타날 부활의 영광을, 불쌍한 과부를 사용하셔서 예수님은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눅18장에 기도에 대해서 교훈하실 때, 한 과부가 포기하지 않고 
재판장에게 매달리는 이야기에서, 우리에게 기도에 대한 교훈을 주셨고, 

주님이 성전에 있던 지도자들, 장사치들을 모두를 비판하셨지만, 
그 성전에서 유독 칭송했던 한 과부! 본문의 두 렙돈을 드렸던 과부죠.

이 말씀은 무엇이죠? 
우리의 삶이 아무리 낮은 자리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주님 앞에 부한 자가 될 수 있고, 
믿음의 본이 되는 사람으로 우리들이 세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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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그 예가, 눅18:38절을 보면, 
예수님이 여리고에 가셨을 때 한 맹인이,  
그 앞에는 사마리아에 있는 나병 환자들이 예수님을 보고 뭐라고 외쳤느냐 하면,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들이 외친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결국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세우신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라는 뜻이죠.

그래서 본문 41절을 통해서 예수님이 지적하시는 것은 
지금 사람들은 성경에 근거해서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거는 성경적인 타당성이 분명히 있습니다. 

 


주2)

천사가 와서 예수님의 탄생을 모친 마리아에게 알릴 때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바로 그 아이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고 불릴것이다' 눅1:32

여러분 성경에서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는 것은 
지극히 높은 분과 동등한 분이라는 뜻입니다. 
 
마리아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라고 했을 때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능력이 너를 덮으면 
나실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면서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눅3:22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신적인 권위, 신적인 영광을 무엇으로 표현하셨느냐? 
바로 '아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눅20:13절에 예수님께서 
당시 종교 지도자들을 책망하는 비유를 주실 때에도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면 그들이 그는 존대할 거다'  

여러분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바로 하나님의 아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여러분 그분이 바로 우리들을 구원하도록 하나님이 세우신 그리스도,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단순히 육신적인 '다윗의 자손'이라는 기원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그분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즉 신적인 영광과 권위를 가지신 분이시다 라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당시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도전을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 이게 오늘날 우리에게는 쉬운 표현이지만,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또한 누가복음이 길게 설명하시는 겁니다.)


천사가 와서 예수님의 탄생을 모친 마리아에게 알릴 때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바로 그 아이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고 불릴것이다' 눅1:32

여러분 성경에서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는 것은 
지극히 높은 분과 동등한 분이라는 뜻입니다. 
 
마리아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라고 했을 때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능력이 너를 덮으면 
나실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면서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눅3:22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신적인 권위, 신적인 영광을 무엇으로 표현하셨느냐? 
바로 '아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바로 하나님의 아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여러분 그분이 바로 우리들을 구원하도록 하나님이 세우신 그리스도,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단순히 육신적인 '다윗의 자손'이라는 기원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그분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즉 신적인 영광과 권위를 가지신 분이시다 라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당시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도전을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 이게 오늘날 우리에게는 쉬운 표현이지만,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또한 누가복음이 길게 설명하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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