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가 되어 행26:13~15
◑본문 설명
바울은 지금 아그립바 왕의 요청으로, 베스도 총독이 개최한 청문회장에서
자기를 변증하고 있습니다. 바울에게 자기 변증는, 주님을 증언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청년 시절에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교회를 짓밟는 선봉대장 역할을 자임했던 것은
당시 모든 유대교인들이 다 그렇게 행하였기에,
바울은 단지 청년 엘리트로서,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을 다한 결과였습니다.
그러므로 청년 사울은 자기 행동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는 커녕
오히려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 청년 사울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주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는지를
밝혀 주고 있습니다.
26:13절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청년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213 킬로미터나 떨어진 다메섹의 그리스도 인들까지 색출하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향해 가다가, 바로 그 길 위에서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 길은 특별한 자격을 갖춘 특권층만 이용가능한 특별 도로가 아니었습니다.
그 길은 누구든지 왕래할 수 있는 일반 도로였습니다.
이를 테면 그 길은, 일상의 삶의 길이었습니다.
그때의 시각은 정오, 낮 12시였습니다.
낮 12시라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는 시각 이기도 하고
하늘의 햇빛이 가장 눈부신 때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때 주님께서 하늘로부터 햇빛 보다 더 밝은 빛으로
바울과 그의 일행을 둘러 비추셨습니다.
그 빛으로 인해 모두 땅바닥에 꼬꾸라진 가운데,
주님께서 유독 청년 바울을 지적하시어,
당시 그의 이름인 '사울'로 그를 부르시면 말씀하셨습니다.
26:14절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우리 말 '가시채'라고 번역된 헬라어 켄트론 은, 무슨 식물이 아니라,
끝 부분에 뾰족한 금속이나 뼈 조각이 부착된 소몰이 용 막대기를 의미합니다.
소가 말을 듣지 않으면, 농부는 그 막대기로 소를 치면서 소를 부립니다.
그래도 소가 말을 듣지 않고 뒷발질을 하면서 반항 하면 할수록,
그 소는 농부에게 심한 매를 맞고 고통만 가중됩니다.
주님께서 청년 바울에게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 하느냐?'는 질문과 함께
'네가 나에게 반항하면 할수록, 네 고통만 더 심해질 뿐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26:15절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주님의 그 말씀에, 청년 사울은 '그렇게 말씀하시는 당신이 대체 누구시냐?' 고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고,
주님께서는 청년 사울에게 '나는 네가 박해 하는 예수라'고 대답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다 잠든 한 밤 중이거나,
동트기 전 미명에, 아무도 모르게 청년 사울에게 임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청년 사울이 깊은 산 속의 수도원이나, 기도원에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정오의 길 위에서
세상 모든 사람이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는 낮 열두 시에
일행과 함께 동행 중인 청년 사울에게 임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일상의 삶에 몰두하고 있는 청년 사울에게 공개적으로 임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때 청년 사울이 몰두하고 있었던 일상의 삶이, 어떤 삶이었습니까?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짓밟는 것이었습니다.
그 청년 바울에게 주님께서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그 말씀은, 청년 바울에게 충격이었습니다.
자신이 그동안 그토록 부정해 왔던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 라는 사실 자체도 충격이었지만
자신이 그동안 예수님을 박해해 왔다는 사실도 충격이었습니다.
청년 바울은 그동안 예수님을 직접 박해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청년 바울은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을 직접 뵌 적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아예 예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의 박해 대상은 '예수님을 메시아'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서야
바울은 그리스도인 누군가를 해치는 것은,
곧 그 사람을 사랑하시는 주님을 해치는 범죄 행위 임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바울은 그 날 낮 12시 이후로, 다시는 사람을 헤치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후 일평생,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는 그의 고백 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빚진 마음으로, 사람을 섬기고 일평생 살았습니다.
사람을 섬기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을 사랑하시는 주님을 섬기는 길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온갖 시련과 고난을 무릅쓰고, 지중해 세계를 3차례나 누비고 다녔던 것도
죽음의 혼란이 도사린 예루살렘 행을 위해, 자기 목숨마저 아까워하지 않았던 것도
모두 복음으로 사람을 섬기기 위함이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바울이 자신을 불러주신 주님에 응답하기 위해서
사람을 살리는 삶에 몰두할 때,
주님께서 당신의 사랑과 생명으로 바울을 더 강하게 붙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고전1:5절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바울이 자신을 불러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사람을 섬기는 삶에 몰두할수록
바울의 심경 속에는 주님의 위로와 격려가 더 넘쳐났습니다.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바울이 사람을 섬기는 삶에 몰두한 것은,
그 사람을 사랑하시는 주님을 섬기기 위함이었는데,
어떻게 주님께서 그 바울을,
당신의 사랑과 생명으로 더 강하게 사로잡아 주시지 않겠습니까.
행2:15에 의하면, 오순절에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주님의 영이 임하신 시각은 '제3시' 오늘 날의 시간으로는 아침 9시였습니다.
아침 9시라면 하루 일과가 시작되는 시각입니다.
바로 그 시각에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임하셨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주님을 버리고 줄행랑을 칠 정도로 이기적이기만 했던 제자들도
바로 그날 아침 9시부터, 사람들을 섬기는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사람들을 섬기는 삶을 살아갈수록
주님께서 당신의 생명과 사랑으로, 그들의 삶도 더 강하게 붙들어 주셨던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직계 제자들도, 바울도,
주님께서 자신들에게 임하심과 동시에
아침 9시에도, 낮 12시에도 시간을 따지지 않고 사람을 섬기는 삶을 밤낮으로 살았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당신의 생명과 사랑으로, 그들을 더 강하게 붙들어 주심으로
그들을 격려해 주셨고,
그들은 그 주님을 힘입어 더더욱 사람을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주님의 부르심 → 인간의 응답 → 주님의 격려 → 인간 응답 확장의
선순환이 계속 이어진 것입니다.
그 믿음의 선순환 속에서
제자들은 세상을 살리는 주님의 통로로 살 수 있었습니다.
◑교회 봉사자들의 간증
올 한 해 동안 '교회를 위해 수고한 봉사 격려의 밤'이 지난 화요일 밤에 열렸습니다.
그날 모든 봉사 자들을 대표해서, 3분의 교우님들이 간증을 했습니다.
그분들의 동의를 구하고, 이 시간에 해당 간증을 함께 시청하시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4부예배 전후로 주차안내 봉사를 하고 있는 24교구의 김아셀 입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것은,
제가 그토록 기도하고 간절하게 바랬던 사람을,
이 교회에서 봉사하면서 만나가지고 결혼해서, 지금 신혼 세 달 째가 됐어요.
그래서 그 이야기를 좀 하려고 이 자리에 올라왔습니다.
저는 지난 10월 3일 개천절에 결혼을 했는데,
결혼식이 다 끝나고 이제 신혼여행 가려고 인천공항 가는 기차 안에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제가 왜 울었냐면, 사실 저희 엄마가 저한테
'아셀아, 우리는 올 하객이 없는데 결혼식 하지 말자' 그랬었거든요.
그런데 그 결혼식에 3~4백 명 되는 분들이 오셔서
저희 부모님, 그리고 아내의 부모님한테
'아유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애 키우느라고 애 쓰셨어요. 축하드려요.' 하는 말씀을
직접 듣게 해드릴 수 있어서, 그게 너무 기뻤어요.
그리고 사실 '제 결혼식에 저희 아빠가 올까?' 하는 염려가 있었거든요.
근데 그랬던 아빠가 결혼식 하는 3시간 전부터 와서 기다리고,
그 과정에 다 참여해 주시고, 끝날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 주지 않으셔 가지고
너무 감사해서 눈물을 흘렸어요. (아마 몸이 아프신 듯)
그리고 가장 컸던 거는, 인천으로 가는 그 기차 안에서
저한테 사랑한다고... 제가 그토록 30년 동안 기다렸던 그 한 마디를 해주더라고요.
그래서 그게 너무 감사해서, 인천으로 가는 기차 한 시간 동안 정말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제가 지금 올해로 서른 이거든요.
서른인데, 이십 년 동안은 부모님이랑 떨어져 살았고요.
그 이십 년 중에 십 년은 독립해서 혼자 살았거든요. 그래서 좀 외로웠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어른들이 좀 무서웠어요.
부모님이랑 매일매일 교류했어야 되는 시기에 떨어져서 살았고 외롭게 지내서
이런 관계를 맺는 게... 특히 저보다 연장자랑 관계를 맺는 게 너무 어려웠거든요.
근데 그런 저한테, 주차 팀에 계신 분들이 쉽게 다가와 주셨어요.
그 분들이 저를 되게 궁금해 해주셨고, 관심 가져 주셨고, (물론 우리 자매보다는 덜 해요.)
그래도 뭐 간식 있으면 간식 있다, 과일 있으면 과일 있다 먹어라,
힘들면 쉬어라, 그리고 더우면 덥다, 추우면 춥다... 이런 이유로 많이 저를 챙겨 주셨어요.
그리고 있는 그 자리를 정말 묵묵하게 지켜 주셨어요.
사실 이게 별 큰 일은 아니었는데, 저한테는 굉장히 중요했던 일이었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모습을 닮아가려고 하시는 분들 때문에 제가 회복 됐거든요.
교우님들의 믿음에 대한 수고와 노력이 없었으면
아마 저희 커플도 없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주차팀 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계신 모든 교우님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가 맡은 봉사를 해 오셨고
그 봉사가, 자신이 갖고 있는 믿음을 지키려고 했던 걸 알기 때문에
그리고 그걸 위해서, 지난 세월 동안 얼마나 애쓰신 지 알기 때문에
제가 그 모습 때문에 하나님을 깊이 만났고, 변화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들은, 제가 부모님을 다시 이해하고
특히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요.
저는 세 달 전에 결혼 했고요. 저희 아버지는 30년 전에 결혼했는데
이제 결혼을 하고 나니까, 아 그렇게 커 보이던 아빠도,
'그때는 그냥 서른 살 청년이었네, 청년이었겠네, 힘들었겠네...'
그리고 지금까지 절 키워오면서
왜 저희 가정에서 아빠라는 자리에 있으면서
그 고단한 세월을 믿음으로 버텨 오셨다는 게 얼마나 큰 일인지
그리고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제가 많이 깨달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믿음이, 이제 앞으로 나의 결혼 생활을, 그리고 나의 개인적인 생활을
충분히 밑바탕이 되어져야 한다는 것도 많이 깨달았고요.
그리고 '이런 신앙 생활이 나의 대에서 끊기면 안 되겠구나. 대를 이어가야 겠구나'
하는 걸 정말 많이 깨달았던 한 해였습니다.
지금의 와이프를 주차 봉사에서 만나서, 일 년도 안 돼가지고 결혼한 거에는
하나님한테 감사드릴 부분이 정말 많죠.
근데 오늘 특히 감사를 드리고 싶은 건, 이런 믿음 생활을 하시는 교우님들을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의 큰 계획입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통해서, 그것을 제 입으로 직접 고백할 수 있는 것도 참 감사드립니다.
교우님들, 그 믿음을 지금 세월 동안 지켜오셨고,
그리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각자의 가정을 세우시고
교회를 이끌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저는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이제 겨우 2년 6개월 된 초신자입니다.
저에게 그런데 이렇게 간증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을 허락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수요일 저녁에 주방에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봉사 기간이 1년 6개월 남짓 되어서, 주방 봉사계에서는 그리 내세울 만한 경력은 아닙니다.
거기 제 주된 직무가, 주로 바닥 청소와 설거지,
그리고 콩나물 또는 파 다듬기,
간혹 고 난이도의 임무인 '간 보기' 정도가 주어지기도 하지만
여간해서는 신경 쓸 일은 없이, 힘만 쓰면 되기 때문에
이보다 더 정신적인 평안을 누리는 봉사가 있을까 싶습니다.
네 물론 이것은 저에게 국한된 이야기이고요.
수요일 저녁에 주방에 여덟 분이 더 계신데,
다른 분들은 이제 메뉴 선택에서부터, 딱 제 시간에 상차림이 완성될 때까지
세심하게 신경쓰실 일이 참 많습니다.
제가 주방 봉사를 하면서 매번 놀랍게 여기는 게, 바로 이 시간 맞춤 입니다.
그러니까 1년 6개월 동안 횟수로는 70번쯤 되는데
단 한 번도 늦거나, 혹은 너무 이르지 않게,
딱 제 시간에 맞춰서 상 차림이 완성되는 참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놀라운 것은, 저희의 환상적인 팀웍 인데요.
'어쩜 이렇게 딱 알맞게 인원이 구성되었나' 하는 겁니다.
저희가 5명은 음식 조리를 담당하고 있고, 또 4명은 설거지를 담당하고 있는데요.
음식 조리와 설거지도 각 역할 별로 필요한 소질이 조금씩 다른데
꼭 맞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어서, 정말 적재적소 라고 하는 말을 실감케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 상상 그 이상의 맛을 보여주는 음식 조의 그 손맛,
그리고 또 설거지 조의 신속하고 깔끔한 처리 능력에
서로 경의를 표하며, 또 감사하며, 매주 수요일 저녁 주방을
칭찬의 도가니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 칭찬의 힘 때문일까요? 주방에 있을 때는 어떤 일도 전혀 힘들지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 번째 놀라움 인데요. 안타깝게 이것은 유통 기한이 좀 짧습니다.
주방에 들어서면 생성이 되었다가, 수요성경공부가 시작되면 곧 소멸 되곤 해서
불시에 찾아온 그 피곤함이 제 눈꺼풀 위에 털썩 주저앉을 때
제가 이걸 여간해서 이겨내지 못하고 꾸벅꾸벅 할 때면
'내가 이러려고 주방 봉사를 시작했나?' 하는 자괴감에 잠시 빠지기도 합니다.
네 여기까지는 제가 그동안 주방 봉사를 하면서 느꼈던 가벼운 소회이고요.
이제부터 본론 입니다.
어느 여름 날이었습니다. 전등도, 또 에어컨도 켜지 못해서 어둡고 후덥지근한 식당 2층에서
식탁을 열심히 땀 흘리며 닦고 있는데, 권사님 한 분이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막내가 여기서 혼자 하나님을 만나고 있었구나!' 라고요.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주일예배의 시간 만큼이나 주방 봉사가 좋았던 진짜 이유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당신의 사랑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선택한 곳이 바로 이 곳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요.
보잘 것 없는 저에게 천사와 같은 분들을 보내주셔서
아낌 없는 사랑을 받게 해 주셨고,
또 가진 것 없는 제가 '3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라는 행인을,
그 분들을 또 대접할 수 있게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고 계신 분들을 매주 만날 수 있고,
또 그 분들을 보필하는 일에 정성을 쏟을 수 있는 것 또한 크나큰 기쁨이었습니다.
제가 뒤늦게 신앙을 갖게 되어서, 모든 것을 머리로 판단하려고 드는 저에게
이제 마음에 신앙의 자리를 또 마련하게 해주셨고,
또 몸으로 행하는 신앙의 의미 또한 깨닫게 해주셔서
그런 주님의 세심한 배려를 생각하면, 지금도 다시금 또 마음이 뜨거워 집니다.
제가 수련회에 갔을 때, 이제 친구들에게 또 말했는데요.
'새로 일을 시작하게 되더라도 주방 봉사는 계속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하는
저의 기도가 이루어져서
매주 수요일 저녁, 여러분을 계속 오래 토록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도 믿음 생활을 참 늦게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련(질병)을 통해서, 제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 시간 이 자리에 서게 됐습니다.
제가 주님의 은혜를 입고 우리 교회를 나온 지도 벌써 5년이 다 되어 갑니다.
세상에서 허랑방탕하게 살아가던 저를,
주님께서 지방의 조그만한 교회에 다니는 친구를 통해
서울의 우리 (100주년 기념) 교회로 저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뭐 하나 잘난 것 없이 완고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죄와 사망의 구렁에서 헤매고 있던 저를
주님께서 육체의 시련을 통해 두 번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저의 몸은 죽다가 살아났고, 죽을 뻔한 상황이었지만
그 은혜로 말미암아 저의 마음이 누그려뜨려지고, 주께로 돌아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강서구에 살던 저를, 멀리 대구에 살고 있는 친구를 통로로
백주년 기념교회로 불러주신 주님의 은혜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비롭고 감사한 마음이 북받쳐 오릅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시103:1~5
저는 시편 103편의 이 말씀을 묵상하며, 늘 감사하며,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요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 하리라 아멘!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송가를 부르며 주님을 찬양합니다.
제가 우리 교회에 온 건 2012년 4월이고
봉사를 시작한 건 그해 연말이었습니다.
매 주일 설교를 통해 주시는 말씀은, 저의 믿음의 양식이 되었으며
9월에 시작된 사명자 반은, 그때까지 끊지 못했던 술을 끊는 계기가 되었고,
봉사를 시작한 이후에, 또한 한편으로는 어려웠지만
예수님이 그리스도 이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그 분을 믿고 그 분의 삶을 좇아살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해 주셨습니다.
그 은혜로 말미암아 원예가꿈부 에서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고
저보다 먼저 수고해 오신 집사님 권사님 들을 원예에 대해 알게 해 주셨고
양화원 묘역의 풀을 뽑고 청소하면서, 거기 안장된신 선교사님들을 더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고,
그 선교사님들을 통해 역사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2015년부터 팀장을 시켜 주셨는데, 그 즈음에 주님께서는
육체의 시련을 통해 또 한 번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믿음 생활을 했지만, 너무나도 분주하고 바쁘게 살던 저에게
주님께서는 암 선고를 통해, 저의 영혼을 연마시키는 은혜의 시련을 주셨습니다.
물론 암발병의 모든 원인은 저 자신에게 있었지만
주님께서 암을 통해 저의 믿음 생활을 되돌아 보고 점검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셨고
저를 살리는 도구로 사용해 주셨습니다.
항암 치료를 받으며 저의 몸은 힘이 들었지만
가쁜 숨을 내쉬면서 화단에 물을 주고
주일에 주방에서 설거지 하는 시간은
저에게 이제까지 살아왔던 어떤 시간보다 즐겁고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아멘
끝으로 지금까지 저를 도와주시고 사랑해 주신 104구역, 109구역 식구들께 감사드리며
늘 한결 같이 사랑의 마음으로 함께 하고 계시는 원예가꿈팀, 주일 주방봉사팀원 모두에게
감사드리며,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차량 안내 봉사는, 자동차를 몰고 오는 사람을 섬기는 봉사입니다.
주방 봉사는, 교회 식당에서 식사하는 사람을 섬기는 봉사이고,
양화진 원예가꿈봉사는, 양화진을 찾아오는 참배객들을 섬기기 위한 봉사입니다.
차량안내봉사 팀의 김아O 형제는 4부예배를 전후해서, 주일 오후에 사람을 섬깁니다.
주방봉사팀의 송연O 자매는 수요일 저녁에 주방에서 사람을 섬깁니다.
원예가꿈팀의 박동O 집사님은, 시간이 있으면 아침부터 나와서
양화진의 꽃에 물을 주면서 사람들을 섬입니다.
위 세 분의 간증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 분들의 삶 속에는
사람을 섬기는 가운데 자신을 붙들어 주시는 주님의 격려를 확인하면서
그 주님을 힘입어, 더 더욱 사람을 섬기는 믿음의 선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공통점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믿음은 선순환 이라는 것입니다.
2천 년 전에 주님을 부정하던 청년 바울을 불러 내신 주님께서는
주님을 부인하던 우리도 불러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심령 속에 이미 영으로 임해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그 구원의 은혜를 정녕 믿는다면
우리 모두 아침 9시에도, 낮 12시에도, 저녁에도
무슨 일을 하든, 결과적으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몰두하는 주님의 참된 제자들이 되십니다.
그때 주님께서 당신의 짧지 않은 손으로, 우리를 더 강하게 붙들고 격려해 주실 것이요,
우리는 그 주님을 힘입어 더 더욱 사람을 섬기는 믿음의 선순환이
우리 삶 속에서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그 선순환을 통해, 어둠과 혼란과 증오와 분노로 뒤덮힌 이 세상은
주님의 사랑과 생명으로 충만한 주님의 외양간으로 회복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에 기반한 믿음의 선순환과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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