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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할 수 있는 시험
고린도전서 10:10-13
여러분 영화를 좋아하십니까? 저는 시간이 있기만 하면 좀 많이 보고 싶지만은 여의치가 못해서 영화구경을 많이 못합니다. 제가 좋아 하는 영화는 서부활극입니 다. 총도 쏘고 마차가 벼랑 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그리 고 말을 타고 다니다가 막 쓰러지고 그런 좀 복잡하게 전개되긴 합니다만은 제가 좋아하는 이유는 세가지가 있습니다. 서부활극은 아무 리 복잡하고 총알이 비오듯 탁! 그저 벼랑에서 떨어지고 그런것 같아도 주연배우는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절 대로 안죽게 되어 있으니까 안심하고 보세요. 두번째는 선한 사람은 안죽습니다. 악한 사람만 죽습니다. 상 선보랑입니다. 선이 반드시 이깁니다. 그것이 주제입니 다. 또하나는 해피엔드입니 다. 복잡하게 얽히고 많은 문제가 있어도 끝에 가서는 그 보고나면 기분이 시원합 니다. 통쾌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서부활극이 아닙니다.
여러분 역사를 볼 수 없겠습니까? 현재에 문제되 는 것은 바로 이 역사가 한 편에 서부활극 드라만 같은 그런 역사로 볼수 있느냐는 거예요. 정말로 이 역사가 서부활극 같이 그렇게 전개 되고 있는 겁니까? 여기에 의심이 있어서 문제입니다. 그렇게만 믿을 수 있다면 얼 마나 좋겠습니까? 여러분이 만약 드라마의 주연배우 같 이 그렇게 역사속에 설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서 있 다고 믿습니까? 그렇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해 피엔드, 결정적미래 보장된 생명 이 얼마나 아름다운 얘 깁니까? 총 주제가 어떤걸 봐도 주제는 똑같습니다. 그와같이 이 테마가 오늘 역사속에 또 현실속에 구체화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여러분 시험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나름대로 생각합니 다. 먼저는 시험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저 기도하는걸 보아도 소원하는걸 보아도 나나 내 자녀나 간에 무사태 평, 그저 무사안일, 만사형통 그것만 바랍니다. 그것은 잘못입니다. 그래가지고는 생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생명에 선청장도 없습니다. 아무상에도 못씁니다. 그런 줄 알면서도 시험이 없기를 바랍니다. 마치 자전거를 가르칠때 어린아이들 뒤에서 붙잡습니다. 붙잡고 한참을 나가다가 손을 놓아야 됩니 다. 이 손을 놓지 못하면 이 얘는 자전거를 못 배우고 맙니다. 이 가운데도 자전 거 못 배운사람 많아요. 너 무 귀하게 키우느라고 발 다 칠까봐, 손 다칠까봐, 넘어질 까봐, 무릎 깨질까봐.... 그 렇게 걱정한 나머지 자전거 못 타는 사람 많아요. 불행 이죠. 또한 시험에 대한 편 견이 있습니다. 그것은 좋 은 환경만이 축복이라고 생 각하는 거예요. 그건 축복 이라고 생각하고, 그건 시험 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있 습니다. 좋은 환경은 사실 은 더 큰 시험입니다. 또하 나는 시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것이 시험입니다. 이거 위험한 것이예요. 일이 잘 되고, 평안하고 그럴때에 이 건 시험이 아니고 오로지 축복이라고만 생각하는데서 문 제가 됩니다. 반대로 어려 운 일을 당하면 병도 들고, 사업도 실패하고, 배신도 당하고, 직장도 떨어지고 .... 뭐 어쨌든 어려운 일을 당하 면 이건 시험이라고 생각합 니다. 그또한 문제가 있는 것이예요. 오히려 어려운 일을 당했으므로 더 큰죄에 빠질수는 없습니다. 거기서 악한 행위가 중단됩니다. 무력해 집니다. 그런고로 생각을 고치기에 따라서는 가장 중요한 생의 출발이 됩 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여건만 당하면 이게 시험당했다 생각을 하구요 또 어떤때는 악한 사람에게 시험이 있는줄 알고 죄 지었 을때만 시험있는줄 알아요. 그래서 간혹 이런 넌센스도 있습니다. 어느 권사님이 교인 가정에 심방을 갔습니 다. 근데 그 부인이 수술을 세번을 받았습니다. 같은 병인데 잘못 되어가지고 수 술을 세번이나 받았어요. 이 권사님이 가서 뭐라고 기 도했는줄 아세요. 죄가 얼마나 많으면 남은 한번도 안 받는 수술을 세번이나 받았노? 회개하게 해 달라고 이래 기도했더랍니다. 그러니까 이 시험당했다고 시험당 했다고 기도하는데... 기도를 다 끝난다음에 가만히 생각 하니까 이 기도받은 교인이 참 마음이 아프고 괴롭거든요. 그래 나는 죄가 많아서 이렇게 당하고 할 수 없이 입을 열었어요. 나는 죄가 많아서 수술 세번 받았수다. 당신은 무슨 죄가 많아서 아들 딸 하나도 낳지 못하고 남의 집 대를 끊어놓은거요? 장군멍군 해버렸습니다. 그 래 문밖으로 도망갔어요.
혹이라도 누가 어려운 일 당 했을때 아 그거 시험당했다. 죄 때문이다. 착각하지 마 세요. 그런거 아니예요. 동 시에 선한일이 있을때 일이 잘될 때에 마치 이거는 축복 이요 이거는 시험이 아닌것 처럼 생각하는거, 그것은 비 성서적 교리입니다. 보세요. 욥기는 죄없는 의인이 고난 당하는 그 고난에 대한 서사 시입니다. 왜 내가 이런 고 난을 당해야 하는거죠. 그 걸 몰라서 계속 묻고 대답한 내용이 바로 욥기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성경 전체가 의인의 고난을 말해 주는 겁 니다. 의인의 고난에 대한 해답입니다. 그런고로 시험 을 당했다고 해서 그가 죄인 이라고 그렇게 생각해도 안 되고, 또한 일이 잘 피었다 고 해서 그가 자동적으로 마 치 의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 은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됩 니다. 그런고로 시험을 생 각할때 Whoever, Wherever, Whenever, Whatever 어느때든지 누구 에게든지 어떤일이든지 시험 은 있습니다. 보세요. 여러 분 어린애를 낳았다면 얼마 나 좋은일입니까? 축복된 일입니까만은 그 어린애가 시험이 될때가 있구요. 성 공이 얼마나 좋은일입니까만 은 성공이 시험 될때가 있어 요. 여러분 그런사람 보았 어요. 일이 잘되고, 출세하 고, 모든일이 아주 잘 될때 하나님 앞에 가서 밤을 새워 가며 하나님! 내가 지금 위 험한 시간에 있으니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해 주세요. 그 렇게 기도하는 사람 보았습 니까? 이런 사람은 보고 죽 을래도 없어요. 일이 잘되 면 자기가 잘해서 잘되는줄 알지 뭐 그저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내가 일이 잘 됐다 그렇게는 생각하지 이것이 시험의 길이요 위험한 벼랑 에 섰다고는 생각을 안해요. 거기서 넘어지는 것이예요. 또한 건강은 다 복인줄로 알 지만 건강이야 말로 시험이 지요. 재능도 시험이지요, 바로 얼마전에도 어떤 잡지 에 보니까 그런 말이 있습디 다요. 어떤 사람이 큰 범죄 를 했어요. 범죄의 원천이 예요. 이 사람의 아이큐가 160이라는 거예요. 그걸 기 사는 이렇게 말해요. 머리 좋은게 문제라고... 하기야 그렇죠. 아이큐 90이하가 되면은 범죄하는 일이 거의 없어요. 머리회전이 잘 돌 아가는것 그래서 거짓말 하 고, 그래서 사기치고, 그래서 죄짓는 거예요. 머리 좋은 것 큰 시험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고로 모든 사람에게 어떤 경 우에든지 무엇이든지 시험이 될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생각할 것은 예수께 서도 시험을 당하셨어요. 죄없는 예수님도 시험을 당 하시고 그것도 40일 금식기 도 하고나서 시험을 당했어 요. 마귀에게. 그렇다면 누 가 시험을 당하지 않는단 말 입니까? 어디에 시험이 없 다는 말입니까? 시험의 완 충지대에 없습니다. 어디나 시험은 있다.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 다. 문제는 시험이냐? 시 련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꼭같은 사건인데 그것을 감 당하는 사람에 따라서 시험 이 될수도 있고, 시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읽 어도 성경은 이것을 하나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험을 통하여 우리는 모르 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건 을 통해서야 깨닫게 됩니다. 나 자신을 깨닫게 되고, 하 나님을 깨닫게 되고, 또 이 웃에 대해서 이웃의 고마움 도 알게 됩니다. 때로는 알 고도 행치 않은 일이 있었습 니다. 이제 행하게 됩니다. 내가 못하는 것 시험을 통해 서 하게 만듭니다. 꼼짝못 하게 하고 하게 만듭니다. 또하나 내가 끊지 못하는것 하나님이 끊게 만듭니다. 내가 버리지 못하는 것 버리 게 만듭니다. 선과 의를 지 향하지 못할때 하나님께서 나를 그 길로 강제성을 띄워 서 강권적으로 인도합니다. 이것이 시험입니다.
하나님 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 다. 바로 그것이 시험입니 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야 될 것은 그 깊은 뜻을 미 처 깨닫지 못하고 현재적으 로 고민할때 현재적으로 번 민하고, 현재적으로 의심할 때 문제는 여기에 깊은 믿음 을 요구하십니다. 야고보서 1장 2절 이하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너 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 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 내를 만들어 내는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 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 조금 도 부족함이 없게, 완전무장, 완전한 인격, 믿음에 도달하 게 하기 위해서 시련은 있 다. 그런고로 시험을 만나 거든 기쁘게 여기라. 왜요? 저 앞에 있는 유익함 이것을 믿고 이 약속을 믿고 기쁘게 여기라. 내용의 골자는 여 기에 있습니다. 너희 믿음 의 시련이, 그랬습니다. 초 점은 믿음에 있습니다. 믿 음의 시련, 믿음을 시험하는 거에요. 믿음을 강하게 하 는 것이요. 믿음을 온전케 하는데 시험에 주제가 있다 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 다. 여러분 시험을 임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으면은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모든 시험이 겨냥하는 방향은 뭐냐? 우 리에게 뭘 주자는 것이냐 하 면 일차적으로 겸손을 주자는 겁니다. 겸손하게 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 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겸손해야 깨달을 수 있고, 겸손해야 진실할 수도 있고, 겸손해야 하나님의 은혜 앞 에 은혜의 사람 될 수 있습 니다. 모든 복 가운데 기본 적인 복이 겸손입니다. 여 러분 다 알지 않습니까? 교만하면 아무 소용 없어요. 공부도 소용없고, 재산도 소 용없고, 건강도 소용없어요. 오로지 겸손이요. 그런고로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든 지 나로 겸손하게 만든다고 할때 우리는 이것을 아파해 선 안됩니다. 그것이 근본 적인 복이기 때문이에요. 이것이 기초가 다져지고 그 다음에 모든 은혜를 받게 되 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시험을 통해서 나를 겸손하 게 만듭니다. 그런고로 나 는 오로지 겸손한 마음으로 이 시험에 대처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하나는 믿음이올시 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았다. 하나님은 선하 신 분이다. 하나님은 선하 신 분이다. 그에게 능력이 있고, 그에게 지혜가 있고, 그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하는 것, 이 믿음, 조금도 의 심이 없어야 됩니다. 그리 고 한가지 중요한 것은 자기 반성이올시다. 모든 시험이 시험되는 것은 내 욕심때문 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됩니 다. 여러분 잘 아시지 않습 니까? 내가 식욕이 없는데 음식이 시험이 됩니까? 내 가 욕심이 없는데 교만이 시 험이 됩니까? 내가 명예에 대한 욕심이 없는데 남들이 나를 뭐라고 하든 그게 무슨 시험이 되겠습니까? 모든 시험은 정욕에 뿌리를 둡니 다. 그래 야고보서 1장 14 절에 말합니다. “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것은 자 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았 느니라” 욕심, 우리가 지금 어려운 것도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 그래요. 아직도 우리 마음 깊은곳에 있는 깊이 뿌 리박은 욕심을 버리지 못한 탓에 사건을 시험으로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도록 됐다는 것이요. 깊이 생각해야 됩 니다. 스스로 버려야 합니 다. 내 욕심을 버릴때까지 하나님은 이 시험을 거두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은 미쁘십니다. 그래서 내 존재를 아시고, 내 허물도 아시고, 내 부족함도 아시고, 나의 감당 능력 감당할 능력 이 어디까진지 다 아십니다. 그런얘기가 있드만요. 국민 학교 학생들 가르쳐 낳고 시 험을 칠때 여러분 시험을 딱 봐서 전부가 성적이 나빠져 도 시험 잘 못낸거예요. 전 부가 100점 맞아도 시험 잘 못낸 거예요. 이 평가방법 입니다. 그래서 10%가 100 점 맞고, 10%로 0점 맞고, 그리고 나머지가 중간이고 이게 시험 문제를 잘 낸거예 요. 정도에 맞게 내야지 모 두가 다 100점 맞아도 잘못 낸거예요. 모두가 다 0점 맞아도 안되는거죠. 우리 선생님들은 그 학생들이 아 는 수준을 딱 알아서 거기에 맞도록 시험문제를 내는 거 예요. 그걸 잊지 말아야 돼 요. 이래서 이 시험을 통해 서 자신을 알고, 또 향상되 고 그러지 않습니까?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그가 아십 니다. 내가 어느정도 감당 할 수 있는지 그분이 아십니 다. 그런고로 우리는 원망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원망하지 말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에 있는동안 원망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성경을 읽을때는 원망할 이유가 없어요. 도대체가... 아 니 아침마다 만나를 주지요 생수를 주지요 비록 광야에 산다고는 하지만 아 놀고 먹 으라는데 뭘 원망을 하누. 원망도 여러 가지드만요. 성경 자세히 보세요. 재미 있는 말이 있어요. 뭐뭐 고 기를 못 먹어서 뭐 어쩠다고 원망하고, 마늘과 부추가 없다고 원망해요. 자세히 읽으면요 이거 얘기하면 다들 성경에 그런것도 있나 그래 요. 다시 돌아가 보세요. 딱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마늘과 부추가 없어서 정욕이 떨어져서 원망해요. 광야에 서 살면서 별 잔소리가 많아요. 사람들이 원망해요. 하나님을 원망하는데 이게 바 로 시험에 빠진겁니다. 다 시 말하면 감사하지 못했어 요. 비록 어렵지만은 하나 님이 나와 함께한다는 믿음 이 흔들렸기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했어요. 이것이 시험에 빠진것이요. 그리고 성경은 오늘 말합니다. 거울로 보여 주었느니라.
이 스라엘의 역사 그런고로 역 사를 읽을 줄 알아야 되고, 역사의 의미를 알아야 되고, 역사의 맥락을 바로 깨닫는 지혜가 있어야 돼요. 성경 역사를 보면서 무엇이 시험 이요, 무엇이 승리요, 무엇이 살 길인지를 분명히 읽을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 들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으 면 나는 가지 말아야 하겠지 요. 바로 읽을줄 알고, 바로 깨달을 줄 알아야 합니다.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 오늘 성경 말씀에 말합니다. 그런고로 스스로 선다하는 자는 무너 질까 조심하라. 넘어질까 조심하라. 스스로 섰다고 교만할때 무너지는 것이예 요.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 야 되구요. 피할길을 주셔 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피할 길을 주시고, 우리의 환경도 바꿔 주어서 감당할 정도로 감당하게 하고 피할길을 주 고 또 감당할 수 있는 용기 도 지혜도 하나님이 주신다 는 말입니다.
미국에 알라 바마에 엔터프라이즈라고 하 는 마을이 있는데 거기에 곤 충의 기념비가 있다고 합니 다. 어째서 곤충을 기념비 를 세웠나? 이렇습니다. 알라바마는 본래 여러분 들 어서 아시는 바와 같이 목화 밭입니다. 전체가 목화를 심었어요. 오로지 목화를 심어서 그 목화를 따서 이제 부자가 된 주인데 어느해부 턴가 거기에 이상한 버러지 가 생겼어요. 바굼이벌레가 생겨가지고 온통 먹어버리는 거요. 농사를 지을 수가 없 어요. 다 실패하게 됩니다. 이것 때문에 고민하고 있을 때 카버라고 하는 이런 박사 님께서 연구를 많이 했어요. 이렇게 이 버러지 때문에 어 찌할 수 밖에 없다. 이제 땅속으로 들어가는 농사를 하는수밖에 없다. 그래서 땅콩농사를 시작했어요. 카 터가 그래서 땅콩으로 농사 해서 세계적인 부자도 되고 대통령도 되고 하지 않았습 니까? 어쨌든 땅콩으로다가 농사를 해가지고 이걸로 큰 성공을 거두었어요. 그래서 이 버러지가 공로자다 해서 기념비를 세웠데요. 여러분 이 버러지가 아니었다면 왜 땅콩 심을 생각을 했겠습니까? 왜 시련이 아니라면 괘 도수정을 했겠습니까? 어려운 난국이 아니라면 어찌해 서 바른 진실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이걸 잊지 말아 야 합니다.
그런고로 우리 는 아무도 원망하지 말 것입니다. 하나님은 피할길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시련을 은혜로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고, 어떤 시련 이든 이건 내게 필요한 것이 다. 이것은 유익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하나님 은 나를 보다 더 높은 길로 인도하신다 하는 확고한 믿 음을 가지고 대처해야 됩니 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사 랑하는 제자 베드로가 겟세 마네 동산에 있을때에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깨어 기도하라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앞에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엄청난 십자가 사건이 있는 데 이제 기도하라고 말합니 다. 그러나 베드로는 정신 못차리고 졸고, 졸고, 세번이 나 쓰러집니다. 예수님께서 계속 깨웠지만은 일어나질 못했습니다. 결국은 예수님 이 십자가를 지실때에 베드 로는 초라하게 예수를 세번 이나 모른다고 하고 그는 도망가고 부끄러운 제자가 되 었습니다.
자 여러분 다시 한번 생각합시다. 예수님께 서 깨어 기도하라 할때에 베 드로가 정말 예수님처럼 피 땀을 흘리며 그 옆에서 간절 히 기도했다면 어떻게 됐을 것 같습니까? 그러면 십자 가가 멀리 떠났을까요? 십 자가 안지게 됐을까요? 십 자가에서 뛰어내렸을까요? 그게 아니지요. 베드로가 깨어 기도했다면 그는 예수 님과 함께 나란히 십자가를 졌을꺼요.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실때에 그도 함께 부 활하는 영광을 얻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어 려운 시련 앞에서 깨어 기도 하면은 어떻게 되느냐구요. 모든 일이 만사형통으로 뒤 바뀌는 겁니까? 그게 아니 에요. 우리는 이 깊은뜻을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달게 지고 이를 통하여 하나 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 요. 그래 예수님은 겟세마 네 동산에서 기도하고 내려 오면서 말씀하십니다. 아버 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말씀하시 며 이 십자가를 지게 됩니 다. 승리의 십자가요, 영광 의 십자가요, 그리고 부활의 영광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당하는 이 어려운 시련앞에서 깨어 기도함으로 정말 놀라운 능 력을 여기서 우리가 받을 수 있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 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 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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