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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온유한 사람
민수기 12:1-8
The Power Principle 이라고 하 는 유명한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 있 습니다. 우리말로 번역할 때에 '지 도력의 원칙'이라고 번역되고 있습 니다. 이것은 블래인 리(Blaine Lee)라고 하는 교수님이 쓰신 것인 데요, 저는 그 유명한 "성공하는 사 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고 하는 책 을 써서 세계에 널리 알려진 코비박 사 경영하는 코비 리더쉽 센터의 부 회장으로 있는 분입니다. 이런 많 은 연구와 경험 속에서 이런 지도력 의 원칙에 대해서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고있습니다. 그는 지도력 에 대해서 세 가지로 분류해서 우리 에게 가르쳐줍니다.
첫째가 "코우 얼시브 파워(Coercive Power)"라고 하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강압적 지도력이 있다는 겁니다. 강제적 수단을 사용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내 명령에 따르게 하는 그러한 지도 력이 있다는 겁니다. 지금도 걸핏 하게 되면 세무사찰 한다 뭐 또 이 런 거, 혹은 벌금을 물린다, 혹은 이 렇게 하면 형무소에 간다, 이렇게 해서 협박입니다 이것은요. 그래서 강압적으로 억지에 못 견뎌서 내 뜻 에 따라오게 하는 지도력이 있습니 다. 주로 독재자들이 그랬고 오늘 도 이러한 지도자들이 많이 있습니 다. 이것은 일시적으로 순종은 합 니다. 하지만은 마음속에서는 계속 반항만 누적되는 겁니다. 그래 언 젠가는 터져 나가고 맙니다. 이런 강압적 지도력, 한번 생각해 볼만합 니다. 우리 어른들이 자녀들에게도 한번 큰소리 꽝 칩니다 만은 이게 교육이 되는 게 아닙니다. 자 이런 강압적 지도력이 있고
또 하나는 "유틸리티 파워(Utility Power)"라고 하는 게 있습니다. 이것은 실리적 지도력입니다. 네가 내 말을 들으 면 네게 유익할 것이다 그런 얘기입 니다. 또 나 하라는 대로하면 그러 면 보너스도 주고 승진도 시켜주고 그래서 이제 보상을 많이 주겠다 하 는 이런 것으로 상대방을 유도합니 다. 이것은 당근을 주는 겁니다. 말을 훈련시키는 조련사가 한 손에 는 채찍, 한 손에는 당근, 이 둘로 가르친다고 하는데 이건 당근입니 다. 내 말을 들으면 네게 좋을 거 다, 이렇게 해서 인도하는 것입니다. 이건 하나의 거래입니다. 이런 식 의 지도력이 있습니다 이것도 사실 알고 보면 어느 순간에 가서는 이걸 만족치 않습니다.
그런가하면 세번 째는 "프린시플 센터드 파워 (Principle-centered Power)"라는 게 있습니다. 원칙 중심의 지도력, 참 이 대목에서 우리는 크게 감동을 받 았습니다. 원칙 중심의. 내게 이롭 고 해롭고가 아닙니다. 저 지도자 가 원칙대로 하면은 우리는 그를 존 경하게 됩니다. 원칙이 원칙이기 때문에 내가 따르고 진리를 따라가 니까 내가 따라가는 거지 그 사람을 따라서 내게 이가 있느냐 해로움이 있느냐 이런 얄팍한 계산 가지고는 지도력이 지도력 될 수도 없고 우리 가 그를 신뢰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 다. 문제는 지도자는 그 자신이 먼 저 원칙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 것이 지도력을 생산하는 것이올시 다. 그래서 이건 존경심에 바탕을 두게 됩니다. 이유 없습니다, 그가 진리대로 살고 그가 원칙대로 사는 것을 보고 나 또한 양심 깊은 데서 부터 그를 존경하고 그를 따르게 됩 니다. 이러한 것은 이 존경심이라 고 하는 것은 그분의 온유함과 덕성 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온유함 과 덕성이라고 하는 깊은 성품으로 부터 유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식이나 능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인간성에서 풍기는 신뢰성, 존경 심, 마침내 우리는 그에게 충성을 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최근에 우 리 나라에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 고 있는 그런 문제가 하나 있습니 다. 그것이 바로 감성지능이라고 하는 것, "이모우셔널 인텔리젼스 (Emotional Intelligence)"입니다. 자 이제 보세요. 좀 지능이 있는가 하면 약아 빠져서 못 쓰겠어요. 또 사람이 좋은가 하면 또 멍청해요. 이거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그런고 로 감성지능, 그게 중요한 것이죠. 그 성품화된 지능, 이것이 필요해요. 이런 인간을 우리가 만나야겠고 이 런 인간이 되어야겠다 하는 것을 지 금 온통 이 사회가 들어서 생각하고 걱정하고 또 그렇게 지향하고 있습 니다. 이것은 자기를 존중할 줄 알 고 자제력이 있고 일관성도 있고 지 구력도 있고 자기 동기를 부여할 줄 아는 그런 지능을 말하는 것이올시다.
오늘 본문 성경에 보면은 하나님 께서 모세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 중에 모세가 가장 온유하 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칭찬하시고 하나님이 그를 도우시고 그를 붙들 어주시고 높여주십니다. 이것이 오 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이제 문제 는 이 말씀을 하게되는 바로 그 시 점이 중요합니다. 이거 이 말씀이 지금 어느 시간에 이 말씀을 하시느 냐 하면 모세가 지금 범죄했습니다. 잘못했어요. 하나님의 종이요 아주 높은 위상을 가진 이 어른이 또 나 이도 많아요, 어쩌자고 에티오피아 여자를 소실로 맞았습니다. 이것은 결정적인 실수입니다. 또 실수가 실수인 만큼은 다른 사람들은 다 속 으로 비난하지만 그 누나와 형님은 정면적으로 비방을 합니다.
"어찌 네가 그럴 수 있느냐? 하나님의 사 람, 네가 어찌 그럴 수 있느냐?"
그 리고 이걸 또 신학적으로 풀이합니 다.
"너 보통사람 아니냐. 그런고 로 하나님이 너하고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에게도 말씀했느니라. 너 만이 지도자냐 나도 지도자다"
뭐 이렇게 된 거예요. 한 마디로 말하면 모세 의 영적 지도자 된 권위를 여지없이 파괴하고 맙니다. 바로 이런 비난 을 받게되는 바로 그 순간, 바로 그 런 시간에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니다. 모세는 모든 사람보다 가 장 온유하다, 그런고로 저 사람은 내 사람이다."
그의 충성은 최고라 고 칭찬하십니다. 그리고 모세 편 을 들어주십니다. 놀랍고 감격스러 운 시간입니다. 그런데 모세의 생 애를 우리가 아시지 않습니까. 그 는 혈기가 있는 사람입니다. 또 다 혈질의 사람입니다. 애굽사람이 마 음에 안 든다고 이유야 어쨌든 애굽 사람을 쳐죽이는, 당석에서 쳐죽이 는 그러한 혈기의 사람입니다. 하 나님이 아로새겨 주신 소중한 십계 명을 새긴 그 비석을 가지고 내려오 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 기는 걸 보고 분노함이 그 충천하게 될 때 그대로 그 비석으로 내려쳐서 깨뜨리는 그런 다혈질의 사람입니 다, 실수가 많아요. 또 이스라엘 백 성들이 물이 없다고 원망하고, 이제 또 그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됐다고 하면서 모세를 원망하고 모 세를 죽이겠다고 그러고 이럴 때에 모세가 화가 납니다. 그래서 반석 을 그대로 두 번 혈기로 내려치는 그런 죄를 범하는 사람이요. 이런 실수가 있는 사람이요. 뭐 생각하 면 굉장히 혈기에 찬 사람이요 다혈 질의 사람인데, 오늘 하나님 말씀하 시기를 이 모든 허물을 다 덮어주시 고 말씀하십니다.
"저의 온유함이 모든 사람보다 승하니라"
저는 온유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자 이제 생각하십시다. 온유가 뭡니까? 이 온유란 말은 히브리 말로는 '아나바' 라고 하는 말이요, 그 어원 은 '안와' 라고 하는 말입니다. 이 건 70인역에서 이것을 '풀 하우스 온유'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 말의 뜻은 굽히다, 굴복한다, 혹은 절을 한다, 구부린다, 낮아진다, 그런 얘기입니다. 여기에 단서가 붙 습니다. 그것은 무엇에 굴복해서 굽히는 게 아니고 스스로 굽히는 겁니다. 무엇이 무서워서도 아니고 보상을 위해서도 아니고 수단이 아닙니다. 스스로 자기를 낮추고 스 스로 자기를 굽히는 마음, 이것이 온유입니다. 타의에 의해서가 아니고 자의적으로 굽히는 마음이 온유올시다. 겸손이라는 말은 사람에게 만 쓰여지는 덕목입니다. 그러나 온유라는 말은 하나님에게도 쓰여지 는 하나님의 속성을 지칭할 때에도 쓰여지는 소중한 덕목입니다. 온 유! 그래서 사무엘하 22장 36절에 보면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 셨나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도, 하나님도 온유하시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 사람의 몸은 살아있을 때 부드럽습니다. 오히려 건강한 사람, 젊은 사람이 부드럽습니다. 그래서 허리도 유연하고 뭐 팔도 유연합니다. 살도 부드럽습니 다. 그런데 나이 많아지면 굳어집 니다. 죽은 사람은 뻣뻣합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생명은 부드럽습니 다. 오히려 여유가 있을 때 더 부 드럽습니다. 마음도 죽은 마음은 굳습니다. 죽어 가는 사람은 굳습 니다. 여기서 우리는 온유함이 무 엇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마태복 음 11장 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나는 온유하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여러분 잘 압니다. 그 가운데 여덟번째 열매가 온유입니 다. 성령 받은 사람 온유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성령 충만한 사람 들 온유했습니다. 시편 37편 11절 이나 마태복음 5장 5절에, 구약에서 도 신약에서도 말합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고. 우리 어찌 생각하면 온유한 사람은 나약하지 않습니까? 나약하게 보이는데 그게 아니오, 오히려 온유한 자가 권력을 얻는다. 이 땅을 차지한다는 말은 왕권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온유한 자가 왕권을 얻는다 이걸 잊지 말아 야 합니다. 강팍한 자가 강경한 자 가 권력을 얻는 게 아닙니다. 언제 나 온유한 자가 왕권을 얻겠다고 말 씀하십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겟 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에 기도 하신 내용을 잘 아십니다.
"내 뜻 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 옵소서"
바로 여기에 온유함의 극 치가 있습니다. 난 나대로 생각이 있습니다만은 내 뜻을 포기하고 아 버지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를 의미하고 있 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의 뜻대로 하옵소서, 이것이 온유의 극치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모세의 온유 를 자세히 생각해 보십시다. 그는 자기의 정체를 잃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는 온유한 사람이 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불러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 라"
할 때에도, 사실은 그가 이 능 력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끝까 지 말을 못하고 있는 게 하나 있었 습니다.
"나는 애굽에서 사람을 죽 였습니다. 그런고로 애굽에 갈 수 가 없습니다. 또 애굽에서 40년 동 안 바로의 궁전에서 사랑을 받고 신 세를 졌습니다. 그리고 나는 배신 한 사람입니다. 그런고로 나는 바 로의 궁전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입 니다"
이 말을 해야되겠는데 못합니 다. 절대로 갈 수 없어요. 그래서
"나는 말을 잘 못합니다"라는 핑계 를 댑니다 만은 하나님 말씀하시기 를
"사람의 입을 지은 자가 누구냐? 가라면 가"
그렇게 말씀하시죠. 그 때에 자기 생각, 자기의 두려운 마 음, 인간적인 지식, 판단, 다 버리고 굽힙니다. 그래서 소명을 받는 겁 니다. 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순간 그는 참으로 온유한 사람이었 어요. 자기 자신의 부족함이나 허 물을 다 생각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만 그대로 수용합니다. 이게 온유 함이죠. 또는 그는 많은 능력을 행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능력을 행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래서 그는 평생 전설에 의하면은 보 좌에 앉아 본 일이 없답니다. 평범 한 옷을 입고 언제나 돌 위에 앉았 다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진노하 시면서 이들을 다 진멸하고 너와 네 후손만 번성하게 해서 가나안에 들 어가게 해주마 하고 하나님이 말씀 하실 때 그는 뭐라고 말합니까, 출 애굽기 32장에 보면
"하나님 정히 그러시려거든 나도 저들과 함께 죽 게 해주세요"
이러한 온유함이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에 대한 자기중심 적 욕망이 하나도 없습니다. 참으 로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에 나타난 대로 보면은 그 가 구스 여자를 취한 것으로 해서 비방을 받는데 이건 참을 수 없는 겁니다. 사람은 칭찬 받을 때 자기 페이스를 잃어버립니다. 또 비방을 받을 때 자기 자체를 잃어버리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기 정 체를 딱 지켰습니다, 자기 위치를 지킵니다. 잘못했으니까 잘못했다 는 말을 듣는데 할 말 없지, 그는 잘 받아들였습니다. 자기를 스스로 자기 방어를 하려고 들지도 않고, 자기 변명을 하려고 들지도 않았습 니다. 조금도 초조해 하지도 않았 습니다. 비방을 그 어려운 공격을 다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또한 공격하는 자를 공격하려고 하지도 않고 비방하는 자를 비방하지도 않 았습니다. 제가 대신 비방해 볼까 요? 할 말 많습니다. 자 나는 실수했다 하자, 형님보고 당신은 금송 아지를 섬긴 주도인이요, 할 말 있 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도 없습니 다. 비방하는 자를 비방하지도 않 았습니다. 조용히 그대로 조용히 받아들입니다. 그는 정직했습니다. 여러분 온유함이 라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교만한 자는 거짓말을 합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만 때문에 거 짓말을 하게 되는 겁니다. 온유해 지고 낮추고 낮춰지고 나면은 거짓 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정직할 수 있는 겁니다. 온유한 자는 정직합니다, 정직하기 때문에 용기 가 있는 겁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 다.
그런데 사실 이 모세는 충분히 변명할 여지가 있습니다. 상황을 따라 변명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모세 대신 좀 변명을 해보겠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장가 갈 때가 언젠고 하니 애굽에서 피난을 나와서 그가 미디안 광야에 방랑객으로 돌아다닐 때거든요. 그 정처없이 다니는 나그네, 이 미디안 광야에서 이드로의 집에서 양을 치기 시작하면서 그 집 에 머슴으로 삽니다. 이 머슴으로 살다가 그 집 딸하고 결혼한 거예 요. 그러니까 그것도 하루, 이틀도 아니고 40년 동안 처가살이를 했습니다. 뭐 무능하기로 보면 형편없는 남자입니다. 자 그런데 바로 그 때에 이 '십보라'라고 하는 여자는 이 남자와 결혼을 합니다. 그러니 까 처음에 결혼할 때에 그 인상을 지우기가 어려울 거예요. 어쩌면 이 여자는 이 남자를 존경하지 않습 니다. 우리 집 머슴, 이거 아닙니 까?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보는 때도 이 모세의 아내만은 남편을 우습게 보았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모세를 동정하는 거예요. 그래 집에서 재미가 없었을 거 같아 요. 그러니까 지금 이 여자를 취하게 됐다, 거 내가 대신 좀 변명하고 싶어요. 그러나 모세는 그런 말을 안 합니다.
"인간인고로"
하면서 실수했다는 말을 안 합니다. 왜요? 내 마음속에서부터 된 일이니까. 이건 일시적인 실수가 아니라는 거예요, 나는 본래 이런 사람이다 이 거예요. 또 아무도 원망하지 않습 니다. 또한 업적을 내세우지도 않습니다. 미워하지도 않고 조용히 이 비판을 다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조용하게, 뭐 나쁜 놈 나쁘다고 하 는데 뭐. 아 죄인보고 죄인이라고 하는데 어쩌라는 건가, 그대로, 나는 본래 이런 사람이다, 하고 수용하게 됩니다. 그 참는 모습을 하나님이 보시고 이 사람은 온유하다고 합니 다. 여기에 더 높은 차원의 신비로 운 온유함이 있습니다. 그걸 잘 들 으셔야 됩니다. 그는 직무유기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보세요. 이렇게 비난을 받을 때, 좋아, 그러면 나 이 지도자의 위치를 내 놓겠 노라, 당신들 다 하라, 난 모른다. 그리고 내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건 교만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생각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때 에도 죄인이었어요. 오늘까지 하나 님의 일을 하고 있는 동안도 나는 여전히 죄인이었어요. 지금 내가 실수했다고 하지만 별일 아니오. 나는 본래 그런 사람이요.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쓰셨고 나를 통하여 위대한 역사를 이루신 그건 하나님 의 역사일 뿐이지 나 자신의 의가 아니라는 겁니다. 전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그에게 분노가 없는 거예요. 변명이 없는 거예요. 이 위대한 점이 아닙니까? 그런고로 이런 어려운 비난을 받으 면서도 자기에게 맡겨진 거룩한 사 명은 그대로 지켜가려고 합니다. 이것을 온유라고 한 것이요.
다시 돌아가 다윗을 보세요. 다윗은 씻 을 수 없는 큰 죄를 진 사람입니다 만은 그가 이 비난을 받을 때 온 백 성으로부터 비난을 받을 때 그는 왕 관을 벗어 던지지 않았습니다. 그 리고 초야에 묻히지 않았습니다. 왜? 그는 말합니다.
"나는 어머니 의 태로부터, 어머니가 죄 중에 나 를 낳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나 는 죄인입니다. 사건은 지금 있지 만은 내가 본래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여기서 이상한 행동을 취하지 않습니다. 나는 다 윗을 이래서 더 존경합니다. 회개 하는 다윗도 훌륭하지만은 회개하고 왕의 현직에 그대로 지켜갔다고 하 는 것, 얼마나 위대합니까? 그게 바로 온유함입니다. 오늘 모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 어느 때도 자 기 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고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충성을 다했습니다 오늘 본 문대로. 그런고로 하나님은 말씀하 십니다. 저는 온유함이 최고요 충 성도 최고라는 거지요. 자 온유함 에서 정직이 나타나는 겁니다.
아놀드 토인비라는 분이 역사의 한 연구라고 하는 유명한 책을 쓰지 않았습니까. 그가 그 권력의 시작 과 권력의 장악과 권력의 몰락, 이 역사라는 것은 권력이 세워졌다가 몰락하고 올라갔다가 떨어지고 뭐 그런 역사 아닙니까? 여기서 그는 중요한 얘기를 합니다. 이 권력이 라는 건 과식, 거만, 재난, 이 세 단 어에서 끝난다 그랬어요. 과식, 음 식을 좀 많이 먹는 것처럼 분에 넘 치는 욕심을 부려. 이것이 첫째요, 그 다음에 또 거만해지고 교만해지 고 포악해져요. 그리고는 재난을 당하는 거예요. 역사는 이렇게 돌아가는 거예요.
그렇다면 오직 온 유한 사람, 그만이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시고 그에게 권력과 능력을 더해주시는 겁니다. 그는 정직했습 니다. 그는 온유했기 때문에 정직 했습니다.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을 시인하고 변명이 없었습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저를 도왔습니 다. 그는 잘못했습니다, 그건 사실 입니다. 그러나 그는 온유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온유한 믿음을 보 시고 그를 의롭다 하십니다. 하나 님이 모세 편을 들고 미리암을 쳤습 니다. 이건 놀라운 얘기입니다. 그 런고로 온유한 마음, 온유한 믿음이 하나님 앞에 상달될 때 하나님께서 는 그를 의롭다 하십니다. 여러분 온유한 자에게 주시는 모든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바랍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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