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장 고통스럽고,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아픈 상황에 대해 나눌 것입니다.
제가 하려는 말이 어떤 사람에게는 충격을 줄 것입니다.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은, 두 가지 영을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은 깨끗한 사람에게만 임한다는 말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성령은 정결치 못한 사람에게도 임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은 우리가 완전히 깨끗해 졌을 때만 임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성령은 오셔서 우리를 정결케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정결할 수가 없습니다.
온전한 사람에게만 성령이 임한다는 주장은
대학교수가 학생에게 네가 모든 시험을 다 통과하면
그 후에 내가 가르쳐 주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학생은 그런 교수에게 ‘시험에 통과하려면 교수님의 수업이 필요합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다윗왕은 간음과 살인을 하고 난 후 성령을 거두지 말아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간음과 살인은 정말 악한 죄였지만, 성령은 다윗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입니다.
※신약에서 바울도 자기 속에 두 마음이 싸운다고 했지요?
이런 현상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데렉 프린스는, 그게 아주 심하게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고,
특히 사역자에게도, 그런 (일시적/장기간으로) 귀신에 미혹되는 때가 있다는 것을!
성령의 인도를 받음과 동시에요.
그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설교에서요!
여러분이 어리석은 짓을 할 때마다
성령이 여러분을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반갑지 않습니까?
마가복음7장에는 사람을 더럽게 하는 7개 죄가 나오는데
그 중 두 가지는 교만과 어리석음입니다.
우리가 어리석게 행동할 때마다 성령이 떠난다면
성령 충만할 수 있는 기독교인이 몇이나 될까요?
그렇기에 성령이 완전히 정결치 않는 사람에게도 임해 있다는 것이 사실인 것입니다.
▶때로 성령께서는 다른 영을 가진 사람 속에도 내주해 주십니다.
저는 개인적인 경험은 없지만 십여 차례 그런 사례를 접했습니다.
목회자가 다루기 가장 힘든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입니다.
방언 통변을 하는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어느 때는 정확한데
어느 때는 빗나간 통변을 합니다.
그런 경우를 못 봤다면 아직 경험이 짧은 것이고 제가 만나는 것 같은 사람들은 못 만난 것입니다.
제가 런던에서 목회를 할 때 그런 사람을 만났는데, 정말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랐습니다.
한사람이 와서 제게 축사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당신의 방언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당신 안에는 마귀가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사실 제가 틀렸고, 그 사람이 옳았습니다.
저는 그의 문제를 인정하지 않았기에, 그를 도와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불행하게 살다가 일찍 죽었습니다.
그 후 제가 가지고 있던 신학을 수정해야 했습니다.
저는 현실에 맞추어 신학을 조정했습니다.
여러분이 영적인 경험을 하다보면 가장 힘든 경우가 <때로는 성령>가운데,
<때로는 다른 영> 가운데 움직이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저는 고통스러운 사실을 말하려고 합니다.
저는 이에 대해 많은 기도를 해왔고 하나님께서 말하라고 하신다고
믿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사람들은 윌리엄 브레넘의 자료를 모두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윌리엄 브레넘을 아시는 분 있습니까?
윌리엄 브레넘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가장 극적이고 강력한 은사를
가지고 사역했던 분입니다.
그러나 저는 윌리엄 브레넘과 가깝게 몇 년 동안 사역했던 성경교사를 알고 있습니다.
그 분 이름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그 분은 윌리엄 브레넘에게는 성령과 그 외의
다른 영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슬픈 것은 그의 놀라운 은사와 하나님이 그를 사용하시는 방식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지막은 매우 비극적이었습니다.
만취한 운전사가 그의 차에 정면 충돌해 죽었습니다.
그가 죽은 뒤에도 그를 추종하는 작은 무리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윌리엄 브레넘을 숭배하는 아주 서글픈 기독교인들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난 이유는 두 가지 영이 섞였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영을 제거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올바른 영의 사역까지 타락시킬 것입니다.
▶말씀을 읽겠습니다.
신명기 22장9-11절입니다.
9.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뿌린 씨의 열매와 포도원의
소산을 다 빼앗길까 하노라.
10.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 하여 갈지 말며
11.양 털과 베 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지니라.
양털wool : 인간의 노력을 의미합니다. 땀을 만들어냅니다.
베실 linen(세마포, 한국으로치면 모시) : 성경 곳곳에 세마포는 영적인 순결을 의미합니다.
원리는 하나님을 섬길 때 두 가지 다른 종류를 섞지 말라는 것입니다.
과수원에 씨를 섞어 뿌리면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는 그런 생산물이 나옵니다.
당신과 저 그리고 교회는 스스로를 점검해야합니다.
‘우리가 섞인 씨앗을 뿌리는 것은 아닌가?’
‘좋은 씨앗과 거짓을 함께 뿌리는 것은 아닌가?’ 점검해야 합니다.
어느 정도는 그리스도의 의를 입고 있지만
다른 한편은 나의 육적 성품도 같이 갖고 살고 있지 않는지 점검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결국 순결한 것과 순결치 않은 것이 섞여 있는 곳에는
머무르지 않습니다.
▶중요한 문제이니 점검합시다.
미혹이 들어갈 수 있는 통로들입니다.
자신의 믿음의 정도를 넘어서 예언하는 경우입니다.
믿음으로 시작하여 교만해져서 믿음의 정도를 넘어서는 사람들입니다.
여러 종류의 다른 점술가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점술가들에게 많은 돈을 줍니다.
오늘날 독일의 경우
대부분의 독일 사업가들은, 사업결정을 하기 전에 점술가에게 간다고 합니다.
그들은 교회나 목회자에게 가지 않습니다.
사업가들은 이득을 얻지 못하면, 투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받는 상담이 바른 것은 아니지만, 부분적으로 맞습니다.
또 때로는 아주 큰 도움이 된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나중에 몇 배로 손해당할 일이 생기지만요)
미국의 레이건 전직 대통령의 경우처럼, 지속적으로 점술가와 점성가를 접촉해서
대통령의 대부분의 일정이, 점성가의 충고에 따라 잡혀졌습니다.
고르바초프와의 만남 같은 경우도 그랬습니다.
점이나 주술은 중세시대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에도 강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경고합니다.
여러분의 운명에 대한 사단의 충고를 따르지 마십시오.
점집을 다녔던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행위를 깨끗이 해야 합니다.
▶저는 한 기도모임에서 처음 보는 젊은이를 만났는데
대화도중 그에게 ‘성령을 받았는가?’ 질문했습니다.
그는 ‘예, 그러나’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대답을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성령은 받았지만 방언은 못한다고 합니다.
저는 그에게 ‘점집에 가 본적이 있는가?’ 질문했습니다.
그는 15살 때 장난으로 가봤지만, 심각한 게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그가 점집에 갔었고 점을 봤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했고
하나님께 그런 죄를 인정하고, 그 죄에 대한 결과에서
자유롭게 해 달라고 구할 용의가 있는가 물었습니다.
그는 제게서 피하려고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간단한 기도를 하도록 인도했습니다.
‘주님, 저는 점집에 간 죄를 회개합니다.
점을 봤습니다.
주님 회개하니 그에 대한 모든 결과에서
자유롭게 해주십시오.’
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안했지만 그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자 그는 즉각 유창하게 방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장벽이 제거된 것입니다.
그의 삶에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는데 제거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슬에 걸려들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은사주의적인 점술도 있는데
저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때로는 맞고, 때로는 틀립니다.
예언하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말을 들으려고 하는 소원을 가진 사람들은
위험한 영역에 있습니다.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점보려는 소원을 가지고 있으면, 많은 위험에 노출되게 됩니다.
▶이런 미혹에 잘 넘어가는 사람들의 특성을 말하겠습니다.
스스로를 점검해 보십시오.
완전한 리스트는 아닙니다.
1) 자기 주관적인 인상에만 의존하는 사람들은 위험합니다.
‘그 형제가 예언할 때 정말 기분이 좋았으니
그 예언은 하나님이 주신거야’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 경우입니다.
예언은 여러 가지로 점검해야지,
그렇게 주관적인 느낌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2) 인간 지도자만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위험합니다.
이들은 자신이 추종하는 누군가의 말이라면 다 믿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은 다 실수를 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제가 말했다고 해서 믿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언제나 성경말씀으로 이끌려고 하지
제 주관적인 판단을 믿으라고 설득하지 않습니다.
3) 초자연적인 기적을 진리에 대한 확증으로 받아드리는 사람들은
위험합니다.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가 나타나 놀라운 표적과 기사를 보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누군가 놀라운 기적을 일으킨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참된 선지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4) 자기 개인적인 야망 때문에, 아부에 약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잠언29:5절
‘이웃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것이니라.’
목회자들이 아닌 사람들은, 목회자들이 얼마나 인정받기를 원하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잘못된 곳에서 인정을 받으려고 합니다.
인정받으려는 욕구 때문에, 이상한 곳에 연관될 수 있습니다.
5) 고난과 핍박을 받아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위험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언젠가 미혹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고난과 핍박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1-2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
많은 기독교인들이 오늘날 무장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런 진실을 못보고 있습니다.
고통은 기독교인의 삶의 일부분으로
하나님이 자녀를 다루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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