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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식은 겸손입니다 P2 레16:29, 행27:9 --데릭 프린스

by 【고동엽】 2023.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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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속죄제를 바치라고 하신 날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레위기16:29.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칠월 곧 그 달 십일(대속죄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는 날입니다.

이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원하시는 반응이 있습니다.

 

바로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레16:29

다른 말로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영혼을 다시 겸손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괴롭게 afflicted’는 히브리어로 ‘아나’인데,

<금식은 겸손1>에서 살펴본 시35:13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아나) humble 하였더니’ 와

히브리어로 같은 단어입니다.

즉 레16:29절은, ‘괴롭게 하다. 겸손케 하다’는 뜻이 둘 다 들어 있습니다.

 

희생 제물을 받는 것은, 그들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고, 즉 하나님이 받아주시는 것이고,

다만 그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오직 겸손한 자세를 취하는 것입니다.

 

겸손하지 못하다면,

즉 금식으로 자신을 괴롭게 하지 못한다면.. 그 속죄제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크리스천들도 동일합니다.

예수님이 그 모든 속제제사를 다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오직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겸손한 것입니다.

속죄의 은혜를 받으려면, 이스라엘처럼 스스로 겸손/괴롭게/금식해야 합니다.

 

▲유대인은 '스스로 괴롭게 하라'는 말씀이, 금식을 말하는 것을 곧바로 압니다.

음식이나 물을 말이죠.

 

제가 금식이라고 하는 것은 ‘영혼을 위하여 음식을 금하는’ 것입니다.

종종 물을 금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아닙니다.

어떤 방식으로  금식할지, 그 결정은 스스로에게 달렸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속죄제물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

적어도 금식을 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지난 3400년 동안 ‘겸손하라’는 의미는 금식을 의미하였습니다.

모세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은 대속죄일(레16:29)에

금식으로 자신을 겸손하게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7장 9절에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하나님께서 신약에서도 다시 확인시켜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금식하는 절기, the Fast’란

유대인의 전통인, 대속죄일의 금식을 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레위기에 보면, 대속죄일에, 유대인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자신을 괴롭게(겸손케) 하는데,

그것은 곧 금식을 뜻하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에, 우리가 구약의 규례를 다 따를 필요는 없지만

그 ‘정신’은, 엄연히 살아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속죄를 요청할 때는, ‘스스로 자신을 겸손케’ 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금식은,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주님께 드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상적이고 신학적인 내용이 아니라, 아주 실제적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실제적인 겸손의 방법 중 한 가지가 금식입니다.

 

금식은 <역사를 바꿉니다.> 3가지 예만 들어봅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악한 왕이었던 아합도 금식하고 겸비하니

하나님이 재앙을 미루셨습니다. 왕상21:27~29

 

니느웨 성도, 사람부터 동물까지 금식하자

40일 후에 무너지리라던 성읍이

그 후 100년 동안 심판이 미뤄졌습니다.

 

에스더와 이스라엘인들은, 사흘 동안 금식하고

에스더가 왕 앞에 나아가서.. 민족적인 구원을 받았습니다.

 

무엇이 역사를 바꿉니까? 무엇으로 인하여 국면이 전환될 수 있었습니까?

바로 금식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금식을 통해서 나라의 운명이 바뀐다는 것은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탄이 금식이라는 약속을, 그렇게 숨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신약에 많은 금식의 예들이 있지만, 두 예를 들겠습니다.

 

개인금식과 교회적 금식입니다.

 

고후6:4-5 금식

(우리가)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in fastings 금식) 가운데서도 ..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사역자임을 증명할 때

금식을 하나의 예로 들고 있습니다.

 

고후11:27, 개인금식

(내가)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in fastings(KJV) 춥고 헐벗었노라

 

바울은, 내가 자주/여러 번 금식하였다고 말합니다.

 

갈증이나 배고픔은 금식과는 다릅니다.

갈증과 배고픔은 우리가 먹을 수 없는 상황을 말하지만

금식은, 먹을 수 있지만, 자기자신을 부인한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금식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종임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오늘날 역시 하나님의 종들은, 자신을 바울과 같은 방법으로 보여야합니다.

 

저 Derek Prince는 자신 있게 말합니다.

금식 없이는, 지금까지 제 영적 성장이 불가능하였습니다.

 

케냐에서 몇 달간,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금식을 안했을 때

저는 정말 끔찍하였습니다.

앞으로 아무리 바빠도 금식은 꼭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것은 저의 산 체험들 입니다. 진심으로 말씀드립니다.

 

교회적인 금식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도행전13장. 선교사 파송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처음으로 선교사를 파송할 때입니다.

 

행13:1-4절에, 5명이 예언자와 교사로 있었습니다.

 

2절에 어떻게 그들이 하나님을 섬겼습니까? 금식입니다.

다른 것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한다고도 번역이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사에 중요한 장면중 하나입니다.

 

이들이 앉아서 전략을 짜고 시스템을 짜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성령님께 하나님의 전략을 듣는 것입니다.

 

지금 교회의 문제는 이것입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습니다.

 

우리의 전략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선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완성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셔야 끝을 내십니다. (그런데 시작부터가 하나님의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것은,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십니다.

 

금식을 통해, 하나님께 들으려고 하니,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보내라고 대답하십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초대교회는 바로 파송하지 않았습니다.

 

3절, 그래서 그들은 금식하고 기도한 후 그 두사람에게 안수하고 둘을 보냈다.

또 다시 금식한 것입니다.

 

첫 번째 금식은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이었고

두 번째 금식은 파송하기 위해서 했습니다.

 

▲4절, ‘바나바와 사울은 성령님의 보내심을 받아’

 

여기서 그리스어로 해석은, '보내심을 받고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성령께서 가라고만 하지 않으시고 내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들의 사역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이 때까지 이들은 예언자와 교사로 불립니다.

다음부터는 사도로 불립니다. 행14:14

 

언제 사도로 불리웁니까?

교회에서 파송 받을 때입니다.

 

사도는 보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아주 중요합니다. 이것이 사도적 사역에 대한 성경적인 해석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예언자와 가르치는 자가 있다고 믿으십니까?

있습니다.

 

예언자와 교사가 하나님을 기다리고 금식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사도로 보내십니다.

 

▲사도들은 많은 도시를 방문하고 교회를 세워야 했습니다.

그들은 제자들을 세우고 교회를 만들었습니다.

 

제자들의 모임을 교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누가 필요합니까?

장로입니다. 제자들이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체계가 필요합니다.

 

사도행전 14장

21절,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22절,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23절, 또 그들은 각 교회에 장로들을 뽑아 세우고

금식 기도하며 장로들을 보호해 달라고 그들이 믿는 주님께 부탁하였다

 

장로를 어떻게 선정했다고요? 어떻게 뽑았습니까?

하나님의 방법으로 뽑았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 물었습니까?

답은 금식입니다.

 

교회에서 두 가지 중요한 결정은, 사도와 장로를 선택하는 일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이것은 기도와 금식으로 이루었습니다.

 

왜 지금 교회에서는 이것을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 방법에서 더 발전해서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발전시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바라십니다.

이것이 열쇠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방법을 바꾸셨습니까?

더 좋은 방법이 있습니까?

 

▲두 가지 결론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역대하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저는 이 말씀을 국가의 희망에 관한 것이라고 봅니다.

 

만일 내 백성이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며 나를 찾고 악한 길에서 돌아서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며 그들의 땅을 다시 축복해주겠다..

 

여기 7가지 순서가 나옵니다.

우리가 4가지를 하고, 하나님께서 3가지를 하십니다.

 

우리가 먼저 4가지를 해야만, 하나님이 3가지를 하십니다.

 

①첫 번째, ‘스스로 낮추어라’.

왜죠?

교만이 기도를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②두 번째가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겸손해지기까지 기도를 멈추지 말라고 하십니다.

 

③세 번째는 나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모임을 말합니다.

 

④네 번째는 ‘악에서 돌아서라’

우리는 우리 안에 악한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먼저 주의 임재 안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자기 악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내 안에 회개할 것이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은, 이미 주님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빛 앞에서는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4가지는

겸손하고, 기도하고, 나를 찾으며, 악에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겸손해집니까? 금식입니다.

하지만 금식하면서 교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위선자들처럼 하지 말고, 올바른 방법으로 금식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하시는 3가지는

 

①내가 하늘에서 듣고

②그들의 죄를 용서하며

③그들의 땅을 다시 축복해 주겠다..입니다.

 

▲마지막 말씀 보겠습니다.

 

요엘2:15,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

 

‘요엘 금식’이라고 부릅니다.

 

16. 백성을 한데 모으고, 회중을 거룩하게 구별하여라.

장로들을 불러모으고,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도 불러모아라.

신랑도 신방에서 나오게 하고, 신부도 침실에서 나오게 하여라.

 

17.주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은 성전 현관과 번제단 사이에서, 울면서 호소하여라.

"주님, 주님의 백성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주님의 소유인 이 백성이, 이방인들에게 통치를 받는 수모를 당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세계 만민이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서 조롱하지 못하게 하여 주십시오."

 

여기에 교회의 리더십의 책임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장로들, 제사장들이 ‘앞장서라 그리고 모범을 보이라’

이들이 금식에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오늘 날 일부 목사는, 금식에 있어서 가장 뒤에 서기도 합니다.

그는 참 리더십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 가셨을 때, 제자 중에서도 세 명을 따로 데리고 가십니다.

그리고서 그들을 멈추시고는, 예수님 자신은 조금 더 가십니다.

더 가는 것이 리더십입니다.

 

▲요엘2: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이 말씀을 베드로가 성령강림절에 인용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아직 온전하게 이루어진 예언이 아닙니다. 마지막 때에 이루어집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오순절에 나의 영을 ‘조금’ 붓는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말씀은 (말일에) ‘온전히’ 모든 사람에게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다른 해석 있을 수 있음

 

우리는 아직 이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성령의 역사를 본 것은 극히 일부입니다.

아직 무슬림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무슬림에게 성령이 임할 수 있을까요?

무슬림은 자연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금식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고 거룩해져야 합니다.

대제사장, 장로, 섬기는 자들이 본을 보여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나의 명령을 지켰으니 나의 영을 모든 육체 위에 부어주겠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성경에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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