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783회] - 평안북도 선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3)
필자는 한국교회사를 공부하면서 서북지방, 특히 평안북도 선천(宣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접하게 되었습니다. 선천은 평안북도 서부 지역에 위치해 있고 황해를 접하고 있는 본디 보잘 것 없는 시골 소읍(小邑)이었습니다. 그러나 평양에서 시작하여 신의주로 연결되는 평의선 철도가 부설되면서 선천에 기차역이 세워졌고, 이를 기해 선천은 서서히 변모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인 정지용이 선천을 다녀가면서 남긴 기행(紀行)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선천은 호수(戶數)가 4,000이 넘고, 2만 인구가 호흡하는데, 초가(草架)라고는 별로 없고 개와 집 아니면 양옥이다. 산골에서 여차직하면 양옥을 짓고 사는 이곳 사람들은 첫 눈에 북구(北歐)인 같은 심중(沈重)한 기질을 볼 수 있다.
별장(別莊) 지대풍의 소비적 소도시인지라, 소매 상가를 지날 때, 양식식료품, 모사(毛紗:모직) 의류, 화장품, 약품, 과자 등이 에덴들 없을까, 잡다하다느니 보다 많은 진열 배치된 품이 착실(着實)하기 Quality Street다운 데가 있으니, 물건 팔기 위한 아첨이라든지, 권장하는 언사를 들을 수 없고, 등을 밖으로 향하여 앉아 성경 읽기에 골몰하다가, 손님이 들어서면 물건을 건네고, 돈을 받은 후에 별로 수고로운 인사도 없이 다시 돌아 앉아 책(성경)을 드는 여주인을 볼 수 있는 것이 예사다.
장로교가 거진 풍속화 하였다는 것을 이 일단으로도 짐작할 만하니, 내가 새삼스럽게 장로교 경영의 남녀 학교라든가, 병원, 양로원, 고아원이라든가를 열거해야만 할 것도 없이 선천은 사회 시설의 모범지다.
개인으로 공회당, 도서관, 학관을 겸한 선천회관을 제공한 이가 없겠나, 동서남북 교회 등 사대 예배당이 읍을 네 소교구로 분할하여 주x청루(酒x靑樓)에 배당한 토지가 없이 되었다. 더구나 남교회라는 예배당은 거대한 이층 연와(煉瓦:벽돌) 건축인데, 1천 수백 명을 앉힐 만한 호올(Hall)이 두 개가 있다. 일(一) 소교구의 신도의 각자 의연(義捐:자선이나 공익을 위해 돈이나 물품을 냄:헌금을 의미함)으로 된 것인데, 건축 경비 6만 원이라는 거액이 어떤 방법으로 판출(判出:돈이나 물건 따위를 변통해 가추어 냄)되었는가 하면, 일례를 들건데 월급 50원의 가족을 거느리는 신도가 일구(一口) 50원을 의연(義捐)하되 불과 삼사 삭(朔:매월 1일) 에 완납하였다.
남교회 건축에 관한 부채는 깨끗이 청산되고도 여유가 있었다. 여자 사회가 얼마나 발달되었는지 청년회, 합창대 등은 물론하고, 춘추(春秋)로 그네뛰기와 때로 대회를 열되 순연(純然)히 여자만으로 주최하며, 시어머니 며느리가 이인(二人) 삼각(三脚:세 발)으로 출전하여 우승하였고, 상품으로 평안도 놋쟁반 크다마한(큰) 것을 탓다고 했다.”
선천에 북장로교회 지부가 설치되면서 선천은 평안북도의 선교 거점 중 하나가 되어 다대한 선교 결실을 거두는 중심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선천읍교회가 처음으로 설립되었고, 선교부의 병원이 설립되었으며, 양전백 장로(후에 평양 장로회신학교 제1회 졸업생)와 선교부가 연합하여 신성학교와 보성여학교를 세웠고, 교회도 동서남북에 설립되면서 주민의 60%가 기독교인이라 장날이 주일이면, 자연히 월요일로 순연(順延)되는 기독교 도시였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기독교 탄압의 시초가 된 105인 사건도 신성중학교가 발상지였는데, 당시 교회 지도자들과 신성중학교 교사, 학생 다수가 체포되어 곤욕을 치렀습니다. 이것은 일제가 기독교 본거지인 선천의 기독교 세를 꺾으려는 음흉한 음모였습니다.
1919년에 일어난 3.1독립운동 때도 남, 북교회와 신성중학교 학생이 중심이 되어 만세 운동을 일으켜 많은 희생자를 냈습니다. 북교회 담임 양전백 목사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었고, 선교사 George S. McCune은 신성중학교 교장으로 백낙준 등을 미국에 유학 보내 인재로 양성하였습니다. 그는 3.1운동의 주모자 및 배후 조정자라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1921년 미국으로 추방되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선천은 보잘 것 없는 작은 시골 읍내였으나 복음이 들어가면서 교회와 학교, 병원 등이 들어서고 고아원, 양노원이 운영되면서 획기적인 사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복음은 세상을 변화 시킵니다. 복음은 사회를, 가정을, 개인을 변화 시킵니다. 변화가 없는 사람은 교회를 다녀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이 아닙니다. 믿지 않은 사람들이 “그 친구 예수 믿더니 딴 사람이 되었어...”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 참 그리스도인입니다. 선천의 변화가 그것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오늘도 변화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샬롬.
L.A.에서 김 인 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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