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782회] - 정지용(鄭芝溶)의 글 중에서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 ....노인이라고 정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니라.” (욥기 32:8)
필자가 좋아하는 시인 가운데 정지용(鄭芝溶)이 있습니다. 정지용은 한국 사람들이 애송(愛誦)하고 애창(愛唱)하는 ‘향수’(鄕愁)라는 시를 쓴 시인입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로 시작되는 향수는 한국 시골 고향의 정취가 물신 풍겨 나는 서정시입니다.
필자는 이 시가 좋아서 모두 외우고, 가끔 혼자 중얼 거리며 외우곤 했습니다. 그런데 유학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 가 보니, 이 시가 노래가 되어 많은 이들의 애창곡이 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필자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어느 국어 시간에 선생님이 들어오시더니, 아무 말 없이, 칠판 가득히 시 한 편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다 쓰신 후에, 처음부터 조용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연(聯)까지 다 읽으신 후, 서둘러 칠판에 쓴 시를 마구 지웠습니다.
그 때, 필자는 왜 선생님이 그랬는지 알지 못했으나, 후에 그 시를 지은이가 정지용이고, 그 분이 월북 작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군사 정권이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고....’라며, 서슬 퍼렇게 반공 통치를 하던 때라, 월북 작가의 작품을 읽고, 소지하면 당장 불순분자로 낙인 찍혀 잡혀가던 시기였습니다. 같은 동족이라도 월북을 했다는 이유로 그들의 시나 소설 등의 작품을 읽을 수 없었던 참담한 세월이었지요.
오래전에 <정지용 시와 산문>이라는 책을 사서 읽은 일이 있었는데, 오늘 아침 이 책을 꺼내 이곳저곳을 훑어 보다, “달과 자유”란 글을 읽었습니다. 그 중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지난 입춘 때 몹시 추운 밤에 이웃집 개가 몹시 울었다. 그날 밤은 달도 없이 캄캄한 심야(深夜)였다. 개가 짖는 이야기가 아니라 개가 우는 이야기다. 30분 이상 계속 된 개 울음소리는 극(極) 고통에서 나오는 비명이었다. 급격한 형벌을 받는 것이었다.
형벌이란 범죄에 대한 징치(懲治)다. 개가 어떠한 정도의 죄를 범한 것일까? 주인집 고기 한 근 쯤 훔쳐 먹었다고 상정 하였다. 그 집에서 무슨 요새 비싼 고기를 한 근 이상 개에게 빼앗길 것이 있을라고 말이다.
고기 한 근에 범한 죄가 저다지도 심한 형벌에 상당한 것이냐! 조선에서는 개를 때리는 법으로 여자와 아이들을 때린다. 때리면 아프고 아프면 울 수밖에 없다. 개와 아이들은 큰 죄를 범 할 수 있는 능력이 제한되어 있다.
죄는 결국 사람 중에도 어른과 늙은이가 많이 짓는다. 나이 먹을수록 죄를 많이 짓는다. 영국에서는 제 집 개와 아이들을 때리면 경찰서에서 잡아간다고 한다. 500년 동안 백성과 전제 왕정과 투쟁하여 쌓아올린 인권과 자유의 금자탑의 혜택이 오늘날 영제국(英帝國)에서는 미물 짐승에까지 미치고도 나머지가 있다..... 조선의 자유와 인권의 민주주의적 투쟁이 영국처럼 500년이 걸려서야 비관 아니 할 낙천주의자가 어데 있겠느냐?”
정지용의 이 글 가운데 “조선에서는 개를 때리는 법으로 여자와 아이들을 때린다.”라는 말이 참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이 글을 쓴 때가, 일제 강점기니까 불과 반세기 남짓한 때입니다.
글을 읽으면서, 여자와 아이들이, 그리고 개가 매를 맞던 시대가 그리 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격세지감(隔世之感:다른 세대를 만난 것처럼 몹시 달라진 느낌)을 느낍니다. 정지용이 이 글을 쓴 때는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 온지 반세기가 지난 때였는데, 아직도 여자와 아이들이 그리고 개가 매를 맞는 세대였으니, 기독교 복음이 우리 민족의 삶 속에 녹아들어 가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시대가 많이 변해서 지구촌에 사는 한국인들 중 여자도, 아이도, 심지어 개나 고양이도 때리지 못하고, 때리면 처벌을 받은 세상이 되었으니, 세상 참 좋아졌지요? 물론 지금도 여자들을, 아이들을, 개들을 때리는 무지(無知)한 인간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에 비하면 그 수가 훨씬 적다고 여겨집니다.
기독교 진리는 약한 사람들이나 동물들을 때리는 야만적 행위를 엄히 금하고 있습니다. 약한 인간이나 동물도 모두 존중되고, 귀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 기독교의 가르침입니다. 이 진리를 널리 전파하여 아직도 여자나 아이를, 그리고 동물을 학대하고 구타하는 야만적 삶을 살고 있는 미개한 사람들에게 진리의 복음을 널리 전파해야겠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져야 하는 또 다른 십자가입니다. 샬롬.
L.A.에서 김 인 수 글.
최광옥, 박종현, 외 1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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