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745회] - 교황의 참회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요한계시록 2:16)
프란치스코(85세) 교황이 2022년 1월 24일부터 29일까지 캐나다를 방문하였습니다. 건강이 별로 좋지 않은 상황에서 장거리를 이동하며 캐나다 여러 곳을 방문하였는데, 그 목적은 과거 가톨릭교회가 저지른 죄악을 사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과거 캐나다에서 선교하던 가톨릭 신부들은 수천 년 동안 무속 신앙에 찌든 기성세대를 개종 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고 판단하고, 원주민 아이들을 상대로 기독교 교육을 시키기로 하고 그 방법을 모색하였습니다.
이들이 생각해 낸 방법은 기숙학교를 만들어, 부모와 격리된 상태에서 교육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들을 교육 시켜 봤자, 부모의 관습에 젖어 기독교 신앙을 버리거나, 부모의 무속 신앙과 기독교 진리가 뒤섞여 혼합 신앙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캐나다의 초대 총리인 John A. McDonald가 1883년 의회에 기숙학교 시스템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학교가 인디언 보호 구역에 있으면 아이는 부모, 즉 야만인과 같이 살게 된다. 읽고 쓰기를 배운다 해도 습관과 훈련, 사고방식은 인디언 식이 된다. 그러므로 아동들을 학교에서 생활하게 함으로써, 부모의 영향에서 벗어나, 백인들의 습관과 사고방식을 배우게 해야 한다.”
이후 근 100여 년 동안, 대략 139개 기숙학교에 원주민 아동 총 약 15만 명이 수용되어 교육을 받았습니다. 기숙학교는 아이들의 이름을 영어 이름으로 바꾸었고,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금지했으며, 부모와 형제들로부터 격리시켜, 기독교로 개종 시켰습니다.
인디언 언어를 사용하거나 쓰면, 매를 때렸습니다. 기숙 시설은 비좁고 열악해서 전염병이 퍼졌고, 영양실조에, 육체적, 정신적, 성적 학대는 일상으로 일어났습니다. 아이들은 폐렴을 비롯한 여러 가지 질병으로 사망했고, 때로는 화재나 사고로 생명을 잃기도 했으며, 폭압에 견디다 못한 아이들이 자살을 하기도 했고, 도망을 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사라진 아이들이 4,120명이라지만, 알려지지 않은 아이들 모두를 합하면, 실제로 1만 명쯤 되는 것으로 추산합니다. 이런 기숙학교를 운영한 단체는 가톨릭교회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기숙학교에 아이들을 보낸 부모와 가족들이 집단 소송을 제기하자, 2008년 ‘진실과 화해 위원회’가 설립되면서, 지난날의 참상이 만천하에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큰 충격적 사건은 아이들을 암매장한 일인데, 레이더 투시 장치로 과거 기숙학교 부지들 땅속을 들여다보면서 시신들을 찾아냈습니다.
아이들이 죽으면 학교 측이 경비를 아끼느라고 암매장을 하였고, 사제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소녀들이 낳은 아기들 역시 암매장 되었다는 사실이 원주민들의 입을 통해 폭로되었습니다.
프란체스코 교황은 “많은 기독교인들이 원주민을 상대로 저지른 악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가톨릭 선교사들이 유럽 열강의 식민주의 사고에 동조하여, 캐나다의 참혹한 동화 정책에 협력한 데 대해 사죄한다.”고 말했습니다.
원주민 사회는 “50년을 기다렸던 사죄”라며 환영하는 한편, “이 사건과 관련된 당사자들을 위한 사죄일 뿐, 가톨릭교회 자체의 사죄는 아니다.”라며 유감을 표했습니다.
기독교회의 최우선 사명은 선교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중대한 소명을 지고 있습니다. 2,000년 기독교 역사에 수많은 전도인들이 생명을 걸고, 오지(奧地)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 동안 여러 선교 방법이 시행되었습니다.
가톨릭교회가 원주민 인디언들과 자녀들에게 선교를 시도 한 일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다만, 그 방법이 지나치게 억압적이고, 아이들의 인권을 철저히 무시하였으며,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선교를 시도했다는 점은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특히 죽은 아이들과, 사제들이 소녀들을 강간해서 낳은 아이들을 암매장했다는 사실은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대죄(大罪)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도, 사제도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죄를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비록 선한 목적이라고 해도 그 방법이 옳지 않으면, 하지 않은 것만 못합니다.
선교는 반드시 해야 하지만, 그 방법은 단연코 복음에 합한 것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지향해 나가야 할 선교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원하십니다. 샬롬.
L.A.에서 김 인 수 글.
'◑ 자료 18,185편 ◑ > 자료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의 묵상 - 747회] - 팁 Tip (0) | 2023.01.12 |
---|---|
[오늘의 묵상 - 746회] - 여호와의 생기(生氣)를 받으라. (0) | 2023.01.12 |
[오늘의 묵상 - 744회] - 정교(政敎) 분리 (0) | 2023.01.12 |
[오늘의 묵상 - 743회] - 물 (0) | 2023.01.12 |
시가서 녹취 3 (0) | 2023.01.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