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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것에 대한 자랑

by 【고동엽】 2022. 10. 9.

고후 12장 7-10

서론

약할 때 강할 수 있는 길이 있기에 자랑해야 합니다.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할 때에 주께서 채워주시지 내가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할 때는 물리치십니다. 겸손할 때 은혜주시지 교만할 때는 물리치시는 것입니다. 내가 병들어 약할 때 주께서 고쳐주시는 은혜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주가 탄생하기까지는 조개의 아픔이 어마나 큰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달콤한 설탕보다는 쓴 것이 몸에 약이 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고난 당한 것이 내게는 유익이라고 하였습니다.

1.찌르는 가시를 자랑해야 합니다

본문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 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 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하였습니다. 이는 지속적으로 육체에 고통을 주는 질병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는 바울의 안질이 나쁜 상태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다메섹 도상에서의 강렬한 빛 때문이라고 보는 것입니다(갈 4:13-15).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사단의 사자를 주었다고 했겠습니까? 이는 바울이 그 가시로 인하여 당한 고통이 대단한 것이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 가시가 그의 삶에 여러 모로 방해가 되었음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또한 여기에는 사단도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어서 성도의 보존을 위해 사용됨이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살면서 나를 찌르는 가시가 있을 때 고통과 괴로움과 아픔이 있습니다. 여기 사도 요한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특별 기도를 세 번씩이나 드렸는데 그 가시를 제거해 주지 않으시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해짐이라도 응답해 주심으로 그 다음부터 크게 기뻐함으로 자기 약한 것에 대해서 자랑했다고 했습니다. 바울에게는 그 가시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자기를 떠나지 않고 머물게 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달콤한 은혜와 복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인생의 삶 속에서 쓰디쓴 고난을 주심으로 더 큰 은혜를 받게 하고 더욱 귀한 그릇이 되게 한다는 생각하고 자랑해야 합니다. 이때 사단은 멀리 물러갈 줄로 압니다.

2.기도할 수 있는 기회기에 자랑해야 합니다

본문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 하였더니"하였습니다. 세 번이라는 숫자는 일정하게 여러 번 반복하여 드리는 기도일 수도 있고 아니면 예수님의 경우에서와 같이 문자적 의미의 세 번을 뜻할 수 있습니다(막 14:32-42). 어찌됐든 중요한 것은 바울이 그 고통스러운 질고(疾苦)를 벗고 싶어서 매우 진지하고 간절히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한편 바울은 주께 기도하였다고 하는데 여기서의 주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킬 때 하나님을 지칭할 때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신앙을 고백할 때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에게 기도한 것은 질고를 담당하신 그리스도에게(사 53:4) 구체적으로 자신의 질병을 거론하여 기도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마 8:17). 히스기야는 병들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여 그의 생명 15년을 연장 받았습니다(왕하 20:1-6). 평안할 때 기도하지 않는 것보다 약하고 병들 때 기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병들어 약하여 기도하게 되었으니 그 약함을 자랑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3.약한데서 온전하여 지기 때문에 자랑해야 합니다

본문 9-10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 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하였습니다.
이는 바울이 뼈아픈 가시를 그대로 지닌 체 만족해야 했습니다. 바울은 응답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그것도 은혜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데 본 구절에서의 은혜는 그가 사도가 되고 또 사도로서의 활동을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본래 은혜라고 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매개(媒介)로 하여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 머무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반드시 인간의 고난이 제거되는 것만이 은혜를 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사람이 짊어지고 있는 아픔 때문에 교만해지지 않고 늘 주님을 의지하고 또 주님께서 은혜로 그가 실족하지 않도록 지켜주신다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 더 영광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약점을 지님으로써 자신에게서 나타나는 능력이 오직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자각하게 되어 겸손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다는 은혜의 원리가 그에게도 적용되어 바울은 끊임없이 그 은혜의 원리를 따라 살게 되는 것입니다.

도리어 그는 크게 기뻐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와 같은 일로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머룰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몸이 건강하고 하는 일마다 잘 되어 교만하여 영력이 떨어져 무능한 것보다는 차라리 약한데서 영력이 충만함으로 하나님의 일을 힘있게 할 수 있는 능력자가 되는 것이 더욱 자랑스럽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라도 자랑할 만하지요 약한데서 강하여지고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게 되는 것은 정말 자랑할 만합니다.

"결론"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하였습니다. 강할 때는 강한 대로 자랑하고 약하면 약한 대로 자랑하고 일체 비결을 배워 합력 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으로 자랑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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