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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를 잊고 앞을 잡으라 (빌 3:12~14)

by 【고동엽】 2022. 9. 20.

뒤를 잊고 앞을 잡으라  (빌 3:12~14)


우리가 살아가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고 잊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잊고 잊어야 할 것은 간직하고 있는 것을 종종 봅니다.
두 가지 이야기로 말씀을 열려고 합니다.

예산에서 치과 병원을 경영하는 배재 고등학교 친구가 있습니다. 형이 사업을 하다가 갑자기 죽었습니다. 급작스런 죽음이었습니다. 큰 사업가라 줄 돈도 많고 받을 돈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돈을 받을 사람들은 채용증서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7억원이었습니다. 그런데 받을 돈은 10억도 넘는다는 데 <내가 돈을 주어야 할 사람입니다>라고 나타난 이는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줄 돈은 다 주고 받을 돈은 하나도 못 받았다고 한탄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받을 것은 꼭 기억하고 줄 것은 잊어버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 이야기가 탈무드에서 발견됩니다.
1311년 프랑스 필립왕은 프랑스 안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포고령을 내렸습니다.
<2일 안에 프랑스를 떠나지 않으면 사형이다>
유대인들은 2일 안에 자기 집이나 가구나 논밭을 팔 수가 없었습니다. 프랑스 안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사형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급히 떠나기에 바빴습니다. 만일 귀금속이나 돈이 있어도 가지고 가다 들키면 빼앗기는 것은 물론 사형이었습니다. 맨 몸으로 도망치듯이 프랑스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 때 파리에 보석상을 하는 유대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파리를 떠나면서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우리 옆집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은 하나님을 믿는 이기에 좋은 사람이고 양심적인 사람이다. 그에게 내 모든 보석을 맡기자. 언젠가 내?다시 돌아 올 날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나에게 돌려 줄 것이다. 그는 양심적이고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자기 보석가게에 있는 보석들을 모두 그 기독교인에게 맡겼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다시 돌아오면 반드시 돌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망명길에 올랐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필립 왕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대한 박해도 완화되었습니다. 그 때 떠났던 유대인들이 하나 둘 돌아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보석상인도 돌아오는 대열에 끼어 있었습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제일 먼저 보물을 맡겼던 이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는 이미 다 늙은이가 되어 어디론가 떠나 버렸습니다. 수소문하여 보았습니다. 그 노인은 최근 전 재산을 다 날렸습니다. 사업이 안 되어 집도 팔아 버리고 어디론가 떠났다는 것입니다. 절망이었습니다. 자기가 맡긴 보물을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추적하여 보았습니다. 드디어 그 집을 찾았습니다. 가서 보고는 더 절망스러웠습니다. 가난이 줄줄 흐르고 있었습니다. 굶주림과 추위에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몰골이 해골이었습니다. 다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몸은 쇠약할 대로 쇠약하여져서 죽음 직전이었습니다. 살아 있는 송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상자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유대인이 들어서자 그는 알아보고 놀라고 반가워하면서 말했습니다.
<여기 당신의 보물이 있소. 소중히 간직하여 왔지요>
예상하지 못 하였던 일에 유대인은 놀라 물었습니다.
<어떻게 이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내 보물을 보관하였습니까? 당신 재산은 다 잃어버리면서 내 재보물을 어떻게 이 상자에 그대로 가지고 계십니까?>
기독교인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내 것이 아닌 데 어떻게 손을 댈 수 있겠소? 여러번 삶에 절망하여 회의를 느끼며 자살하고 싶었었지요. 죽고 싶어도 당신에게 이 보물을 돌려 드려야 하기에 죽지 못 하였소. 내가 이 보물을 돌려 두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나요? 나는 내가 한 약속을 잊지 않고 당신을 기다리느라고 죽지 않았소. 자! 받으시오>
그는 깔고 앉아 있던 보물 상자를 내밀었습니다. 유대인은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이제 과거를 잊으십시오. 이제 축복만 남았습니다. 이 보물의 반은 할아버지 것입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내 식구입니다. 이 보물을 같이 쓰면서 같이 살 식구입니다. 아팠던 과거를 잊으십시오. 지금부터 나와 행복한 미래만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식구로 같이 살았습니다.

정말 대조적인 사건입니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억하고 잊어야 할 것은 잊어야 합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오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 가노라>(빌 3:13-14)

<뒤에 있는 것을 잊어 버리고>

도대체 무엇을 잊어 버려야 할까요? 잊어버려야 할 것이 네 가지가 있습니다.

1. 죄를 잊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의 죄를 도말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골 2;13-15)

도말한다는 말은 원어로 보면 엑살레이프사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페인트 칠한다는 뜻입니다. 문질러 닦아 낸다, 긁어서 없앤다는 뜻입니다.
요한도 말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1요1;8-10)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은 이미 도말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에 지은 죄를 일단 회개하였으면 잊어 버리고 다시는 그 죄 때문에 아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이 잊으신다고 하셨으니 우리도 잊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신다고 하셨으니 나도 나를 용서하여야 합니다.
바울이 그렇습니다. 바울은 예수믿는 이들을 핍박하고 잡아죽이고 못 살게 굴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으로 가는 길거리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바울은 회개한 후 다시 그런 죄로 아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앞만 바라보면 담대히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어느 여인이 남편과 크게 싸웠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출근하였습니다. 아내는 너무나 화가 끓어올라서 속으로 <사고 나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남편도 분을 참지 못 하고 운전하다가 사고 나서 죽었습니다. 아내는 매일 죄책감에 살다가 미쳤습니다. 14년 동안 매일 남편 무덤 속으로 들어가겠다고 야단이었습니다. 과거 죄를 잊지 못 하고 간직하니까 미친 것입니다. 뒤를 잊어야 합니다.
이사야는 말했습니다.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뒤에 던지셨나이다>(사 38;17-18)

시편기자도 말했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시103;12)

우리는 과거 지었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고 더 이상 기억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죄 때문에 얽매어 아파하지 말아야 합니다.

2. 실수를 잊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합니다.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실수하는 것이 사람이고 용서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연필을 만들 때에는 항상 위에 지우개를 달았습니다. 이 연필을 사용하는 동안에 실수가 있을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과거에 실수한 것을 자꾸만 회상하고 기억하고 끄집어 내어 아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우리의 죄와 허물을 짊어지신 것입니다. 허물이 실수입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2;1)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엡2;5)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려고 40살에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사람을 죽였습니다. 실수였습니다. 모래속에 암매장하였습니다. 사람을 죽인 과거가 있는 사람입니다. 만일 내가 사람을 죽인 과거가 있다면 여러분은 나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그러나 모세는 그 실수를 기억하고 아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허물을 용서하여 주신다고 하셨으니 과거를 잊고 당당하게 하나님의 일을 하였습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상적이고 아주 좋은 가정을 파괴시켰습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데려다가 살았습니다. 우리아는 나라를 지키려고 나가서 싸울 때 혼자 있는 아내를 데려다가 산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이 탄로날 것을 두려워하면서 그렇게 충실한 우리아 장군을 죽였습니다.
내가 어느 여인의 남편을 죽이고 그 여인과 지금 살고 있다면 이 강대상에 서서 설교할 수 있을 가요?
그러나 다윗은 다 잊었습니다.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농부가 지난 해 농사를 실수하여 잘 못 지었다고 금년은 포기할까요? 아닙니다. 다시 일어나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그럴 수록 더 잘 하여야 합니다.
위대한 사람들의 생애를 보면 실수를 안 한 것이 아니라 실수하였을 때 더 잘 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과거 실수를 기억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실수도 도말하셨습니다.
어느 아이가 옆집 소옆에서 놀다가 돌로 소를 맞추어 죽였습니다. 주인이 붙들어 경찰에 넘기려고 할 때 아버지가 와서 소값을 넉넉히 물어주고 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잘못 했어요. 용서하세요>
아버지는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버지! 왜 아무 말도 안 하세요. 왜 야단치지 않으세요>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용서를 빌었으니 야단치지 않는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3. 억울한 일 당한 것도 잊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억울하고 분한 일을 당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수 없는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도 잊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요셉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요셉을 끔찍이 사랑하였습니다. 야곱은 아내가 네 명이었습니다. 당시는 다 그랬습니다. 그 중에 라헬을 제일 사랑하였습니다. 라헬이 오랫동안 아이를 낳지 못 하다가 늙으막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야곱에게는 11번째 아들입니다. 그래서 사랑하였습니다. 손자같이 예뻤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였습니다. 질투하였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죽이려고 구덩이에 던졌습니다. 마침 물이 없어서 살았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종으로 팔아 버렸습니다. 인신매매입니다.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가 죽도록 고생하였습니다. 그 때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동침하자고 유혹하였습니다. 어느 날 아무도 없을 때 요셉의 옷을 잡아 당겼습니다. 아무도 없으니 동침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요셉은 하나님이 보고 계시니 동침할 수 없다면서 옷을 벗기며 도망을 쳤습니다. 보디발 아내는 화가 나서 남편에서 요셉이 자기를 겁탈하려고 하였다고 죄를 뒤집어 씌웠습니다. 감옥 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종살이 감옥살이 밑바닥 인생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한이 맺혔을 가요?
그러나 후에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나 같은 제일 먼저 한을 풀 것입니다.
<그 년을 대령하여라>
그러나 성경에 요셉은 전혀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아예 기억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였다는 말조차 없습니다. 뒤에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형들이 요셉에게 어떻게 하였는가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세상을 떠나자 형들은 겁이 났습니다. 요셉이 아버지 때문에 자기를 건드리지 못 하였는데 이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으니 복수할 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선수를 치면서 요셉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창 50;16-17)

이 때 요셉이 한 말을 들어보십시오.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창50;19-21)

요셉은 억울함과 분함을 전혀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잊었습니다. 과거의 억울하게 하였던 사람, 분하게 하였던 사람, 이가 갈리도록 미웠던 사람을 잊어야 합니다. 과거는 과거입니다. 미래가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숭이가 싸우다가 엉덩이를 들면 항복표시입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더 이상 공격하지 않습니다. 개가 싸우다가 꼬리를 내리면 항복입니다. 그러면 싸우던 개는 공격하지 않습니다. 짐승도 항복하면 싸우던 것을 잊어버립니다. 사람도 용서를 빌면 끝내고 잊어야 합니다.

4. 선행도 잊어야 합니다.
우리가 과거에 잘 한 일이 있습니다. 우쭐대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나쁜 뒤에 것만 잊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무조건입니다. 뒤를 잊으라고 하였습니다. 골라서 잊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잊어야 합니다. 어제 잘 했던 일도 잊고 내일을 향하여 나가야 합니다.
마태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마6;1-4)

어느 시인은 말했습니다.
<고상한 행동을 하고 나서 그것을 하루종일 꿈꾸지 말라>
모세가 일으킨 기적 중에 가장 큰 기적은 홍해를 가른 기적일 것입니다. 모세는 <내가 이런 사람이다. 홍해를 가른 사람이다>라고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40년 간 광야 생활을 하면서 한번도 자랑스럽게 말한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홍해를 갈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였습니다.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켰습니다. 40년 된 앉은뱅이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사실을 자랑하거나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곳에 가나 복음만 전하였지만 과거에 일으킨 기적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뒤에 것은 잘 한 것도 다 잊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입니다.
이 설교를 구상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내와 병원에 다녀오다가 신호등 앞에 섰습니다. 뒤에 있던 차에서 사람이 내리더니 창을 두드렸습니다. 내가 열려고 하니까 아내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습니다.
<위험해요. 열지 말아요>
그러나 나는 나도 모르게 창문을 열었습니다.
<성동 구치소가 어디예요?>
구치소를 물어 보는 그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였습니다. 나는 길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나 따라 와요>
그리고 구치소 앞까지 와서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나는 달려 왔습니다. 차를 세우고 <여기요> 그런 후에 <고마워요. 어디 이렇게 친절한 사람이 있어요> 이런 말을  들고 싶었지만 그냥 달려 왔습니다.
잘하고 칭찬 받고 싶은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뒤에 것은 모두 잊어버리고 앞만 보라고 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기억하여 보십시오.

<형제들아. 나는 오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 가노라>(빌 3:13-14)

1. 죄를 잊어야 합니다.
2. 실수를 잊어야 합니다.
3. 억울한 일 당한 것도 잊어야 합니다.
4. 선행도 잊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말 한 마디를 소개합니다.

<머리카락 없는 남자는 용서할 수 있어도 머리에 든 것이 없는 남자는 용서할 수 없다. 과거있는 남자는 용서할 수 있어도 미래가 없는 남자는 용서할 수 없다>

출처/강문호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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