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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되고 말 우상 (삼상5:1-5)
지난주에 우리는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4천 명의 전사자를 내며 패배하자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싸우러 나가면 이길 것으로 생각하고 실로에 있던 하나님의 궤를 가져왔으나 다시 치룬 전투에서 오히려 3만 명의 전사자를 내며 대패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궤를 이방 블레셋에게 빼앗기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당한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다소 의아함을 갖게 할 수 있습니다. 요단강물을 갈라지게 하고 여리고성을 무너지게 하던 그 언약궤가 방약무도한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어쩌면 그렇게 무력한 채로 있었는가 하는 생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언약궤를 앞세우고 놀라운 일들을 행해오신 하나님께서 그 이방인들 앞에서 어쩌면 그렇게 침묵하시며 수수방관하실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궤의 무반응과 하나님의 수수방관은 오직 쇠락한 영적 상태에 있었던 이스라엘을 향해서였을 뿐이고 결코 방약무도한 블레셋에게도 그런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사건이 곧바로 일어났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기록의 일부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에벤에셀에서 이스라엘로부터 빼앗은 하나님의 궤를 아스돗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아스돗은 블레셋의 5대 도시 중 하나로서 그들의 우상 다곤을 위한 가장 중요한 예배중심지였습니다. 다곤은 수천 년 동안 근동지역 전체에서 큰 신으로 여겨졌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서 다곤의 신상 곁에 두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다곤 신이 이스라엘의 하나님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그들이 승리했으며, 따라서 패배한 이스라엘이 블레셋을 섬기듯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다곤 신을 섬겨야 한다는 뜻을 나타내는 상징적 조치였던 것입니다. 이런 행위를 묵과하실 리가 없는 하나님의 반응이 당장 나타났습니다. 아스돗 사람들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하나님의 궤 앞에서 그 얼굴이 땅에 닿은 채 엎드러져 있었던 것입니다.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는 것은 경배와 굴복의 표시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다곤을 섬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굴복해야 함을 보이신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다곤을 일으켜 다시 제 자리에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본즉 또다시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그 얼굴이 땅에 닿은 채 엎드러져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번에는 그 머리와 두 손목이 잘려 있었던 것입니다. 머리나 손목을 자르는 것은 전투에서 적을 이기거나 처형할 때 흔히 있는 일입니다. 다곤은 하나님의 적수가 될 수 없으며 하나님에 의해 심판을 받아 파괴되고 사라져야 할 우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첫날 아침 다곤의 신상이 엎드려져 있었던 것이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며, 사람들이 그것을 다시 세우려 해봐야 헛일임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이 사건 하나로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에서 당신만이 참 신이시며 사람들에 의해 신이라 불리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 앞에서 설 수 없고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으며 실상 아무 것도 아님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대하여 대승을 거두고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를 탈취하는 뜻밖의 전과를 올렸다고 좋아했을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궤로 하여금 말없이 블레셋의 손에 의해 블레셋 땅으로 탈취당해 가는 것처럼 보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오히려 하나님의 궤가 블레셋 사람들의 정신과 삶의 중심인 다곤의 신전으로 들어가 그들의 신 자체를 굴복시키고 파괴해버림으로써 하나님만이 온 세상의 참 하나님이시며 주권자이심을 알리는 역사를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징은 블레셋의 우상 다곤에게만 내려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다곤을 섬기며 하나님의 궤를 함부로 빼앗아 가져온 블레셋 사람들 또한 응징하셨습니다. 본문에 이어지는 6절을 보면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역을 쳐서 망하게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그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할 때 받을 저주에 대하여 모세를 통해 경고하시며 "여호와께서 애굽의 종기와 치질과 괴혈병과 피부병으로 너를 치시리니 네가 치유 받지 못할 것이라"(신28:27) 경고하신 바 있습니다. 블레셋도 같은 재앙으로 응징하신 것입니다.
아스돗 사람들은 이를 보고 말하기를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하게 할지라. 그의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5:7) 하고는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방백을 모으고 물었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찌하랴?" 방백들은 대답하기를 "이스라엘 신의 궤를 가드로 옮겨 가라" 했습니다(5:8).
가드 또한 블레셋의 5대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가드로 옮기라고 한 것은 아마도 그 주민 중 일부가 이스라엘 사람이었든가 적어도 이스라엘과 호의적인 관계를 갖고 있어서 하나님의 공격을 면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계산은 어긋나고 말았습니다.
궤를 가드로 옮겨 간 후에 하나님의 손이 심히 큰 환난을 그 성읍에 더하셔서 성읍 사람들의 작은 자와 큰 자를 다 쳐서 독한 종기가 나게 하신 것입니다(5:9). 블레셋 사람들은 그래서 다시 하나님의 궤를 에그론으로 보냈습니다. 에그론 또한 블레셋의 5대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궤가 에그론에 이르자 에그론 사람들이 부르짖으며 말하기를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5:10) 하고는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말하기를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그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이 죽임을 면하게 하자" 했습니다(5:11).
이렇게 하나님의 궤가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있은 지 일곱 달(6:1) 동안 온 성읍이 사망의 환난을 당했고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셔서 많은 사람이 죽었거나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한 종기로 치심을 당해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다고 합니다(5:11-12).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다"는 것은 그 이방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들이 믿고 섬기지도 않던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애원하게 되었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땅과 모든 족속의 주권자이심을 여실히 보이신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궤를 이곳저곳으로 옮겨보았으나 하나님의 재앙이 갈수록 더 심해지자 결국은 이스라엘 백성의 땅으로 돌려보내기에 이르렀습니다(6:1-12).
이 하나님의 궤 이야기를 통해서 오늘날 우리가 깨달아야 할 사실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궤는 언약의 궤이고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의 상징이라는 것입니다.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에 신실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 언약의 궤를 앞세우시며 놀라운 일들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약의 백성이 하나님과의 언약에 불성실할 때에는 비록 그 백성이 하나님의 궤를 갖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위하여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이스라엘이 언약궤를 앞세우고 나아갈 때에는 이스라엘을 이길 족속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으시는데 언약궤만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은 어떤 족속도 싸워 그들을 이기고 굴복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스라엘을 이긴 것이 곧 하나님을 이긴 것은 아니며 언약궤를 빼앗은 것이 곧 하나님을 굴복시킨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비록 하나님에 의해 그의 백성을 징치하시는 도구로 사용된 족속이라 하드라도 그들 자신의 우상숭배와 악행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따로 엄히 응징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싸움의 궁극적인 승리자이고 유일한 승리자인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땅에서 거짓 신들을 다 파괴하시고 참 하나님으로 경배를 받으시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민족에게 동시에 크나큰 위로와 경고가 되는 사실입니다. 먼저 지금 우리의 저 북녘 땅의 형편이 어떻습니까? 북한 땅은 이 지구상의 가장 고약하고 우스꽝스러운 우상숭배의 공장이 되었습니다. 평양의 장대현교회가 섰던 자리에는 지금 거대한 김일성의 동상이 서있습니다.
북한 땅에는 무려 29000개 이상의 김일성 동상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김일성은 태양신으로 불리며 절대숭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또 하나의 태양신이 만들어졌습니다. 김정일입니다. 한 때는 동양의 예루살렘이라 하던 평양은 지금은 아스돗의 다곤 신전처럼 되었습니다. 거기서는 공식적인 교회라고 하는 것들도 다 김정일을 섬기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궤를 다곤 신상 곁에 갖다 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북한주민들은 마치 블레셋에게 패한 이스라엘과 같이 되었습니다.
남쪽의 우리 대한민국의 사정은 또 어떻습니까?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추구해온 대한민국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발전에 있어서 북한과는 비교할 수 없이 우월한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남북 간의 엄청난 격차를 이루게 한 요인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종교의 자유를 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열심히 교회를 세우며 전도를 힘쓴 일과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박멸시키기에 혈안이 되어온 것 사이의 차이가 그 결정적인 요인이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시고 만유의 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토록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이 대한민국 땅에 어두운 그림자가 덮이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의 우상들을 숭배하는 자들이 점점 그 세를 확장하더니 이제는 그들 천하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청와대를 비롯해서 정부 여당뿐 아니라 사회, 문화계의 핵심요직에 있는 많은 인물들이 주체사상 추종자들이며 김일성-김정일 태양신숭배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전에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평양을 향해 절부터 하고 서로 만나면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줄인 "위수김동"을 인사말로 주고받던 자들입니다. 그들은 현대판 다고니스트 즉 다곤숭배자들이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철저한 독재권력자이고 가장 가혹하고 악랄하게 인권을 유린해온 자이며 자기들은 온갖 사치와 부귀영화를 다 누리면서 수백만 동포를 굶어 죽게 만든 철면피이고 특히 동양의 예루살렘이었던 평양과 북한 땅에서 주의 몸 된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을 무자비하게 멸절시킨 장본인인 자들을 민족의 태양이고 영웅이며 해방자라고 추앙해온 자들입니다.
지금은 누가 과연 이 나라의 통치자인지 알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연이은 두 정권의 권력자들은 세계사의 흐름에 역행하면서 국민의 뜻을 살피기보다는 김정일의 눈치를 살피고 그에게 아양 떠는 것을 가장 중요시하고 있다는 비아냥 아닌 심각한 우려가 국민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있습니다. 최근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인권운동가가 전한 지금 외국에 비친 한국의 초상이 어떤 것인지 아십니까?
우발적인 사고로 숨진 두 여중생의 죽음에는 끊임없는 촛불시위를 벌이면서도 굶어 죽고 맞아 죽는 수백만 동포의 죽음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려하는 이상한 나라라는 것입니다. 무인도인 작은 섬 독도 때문에는 어마어마한 분노를 쏟아내면서도 이천여 만 명의 동포가 사는 북녘 땅에서의 인권유린 때문에는 분노할 줄 모르고 오히려 부인과 모르는 체함으로 일관하는 이해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김정일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금과옥조로 삼고 북한인권문제에 대하여 침묵과 부인과 국제회의에서의 의사표명기권뿐 아니라 북한의 참상과 인권유린 실태를 알리는 일은 온갖 권력을 동원해 기를 쓰며 방해하는 위선적이고 기만적인 범죄적 태도를 견지하는 사악한 정권은 반드시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요덕 스토리](The Yoduk Story)라는 것이 있습니다.
평양연극영화대학 영화연출학과를 졸업하고 러시아국립영화대학 영화연출학과를 유학했으며 탈북해서 다시 동국대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한 정성산 감독이 제작하고 감독한 뮤지컬입니다. 정감독은 충신교회 교인이며 장편대하소설 [장백산]의 저자이고 영화 [쉬리], [공동경비구역JSA]의 시나리오 각색자이기도 합니다.
그의 뮤지컬 [요덕 스토리]는 북한 함경남도 요덕군 제15호 정치범수용소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사랑과 용서와 희망의 대서사시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저 북한 땅에도 임하기를 간구하며 막을 내리는 감동의 선교뮤지컬입니다. 그런데 현 정권이 이 뮤지컬 공연을 방해합니다. 예약되었던 공연장소들이 예약을 취소하게 만들고 공연자금을 대주겠다고 약속했던 사람들이 물러나게 만듭니다. 그 이유는 그 요덕정치범수용소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김정일이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인권문제를 다루는 것을 막으며 교회의 선교활동을 억압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현 정권이 하는 짓입니다. 새문안의 성도 여러분, 오는 3월 15일부터 4월 2일까지 양재동에 있는 서울교육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이 뮤지컬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가서 관람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정권이 이것마저 막는다면 영락교회를 위시해서 전국의 모든 대형교회에서 공연하게 만들 것입니다.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공연할 수 있도록 초청을 받게 할 것입니다. 이 뮤지컬의 공연이 있는 곳마다 몰려가서 관람해줘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일의 하나입니다. 그것이 반자유민주정권의 부당하고 비겁한 탄압과 김정일독재정권의 폭정에 맞서 싸우는 일입니다. 이들 정권은 하나님께서 그냥 두시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은 그들이 정권을 잡았고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법도 다 바꾸고 사람도 다 바꾸고 감사원과 국세청과 각종 언론매체 등을 정권의 시녀화하여 비판세력을 옥죄는 데에 무차별동원하고 자유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교회까지도 압박하며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들을 무력하게 만드는 데에 성공한 것 같이 보일지 모르나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그들이 하나님을 이길 수는 없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다 무너져가던 김정일정권을 지난 정권이 햇볓정책으로 살려놓았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북한동포들의 극심한 고난을 지금까지 연장시켰고 더 많은 생명들을 희생시켰습니다. 그러나 현 정권이 아무리 김정일정권을 계속 세워주려 해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아스돗 사람들이 엎드러진 다곤 신상을 다시 제 자리에 세워놓았지만 또 다시 엎드러져 목과 손목이 잘렸던 것처럼 그 정권은 결국 무너질 것이고 파괴되고 멸망할 것입니다. 블레셋이 하나님의 궤를 노획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우상 다곤을 엎드러지게 하시고 그 목과 손목을 자르신 것처럼 친김정일 정권 또한 이 땅의 교회를 에워싸고 억누를 수는 있을지 몰라도 교회의 머리 되신 주님을 이길 수는 없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의지하고 추종하며 숭배하는 그 태양신 우상들 자체가 하나님에 의해 바로 그들의 신전 안에서 파괴되고 사라지고 말 것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는 다곤의 신전 안에서 일어난 사건은 곧 오늘날 우리에게서 머지않아 일어날 역사적 사건의 예언과 약속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은 다곤우상에게만 내려진 것이 아니라 다곤을 숭배한 블레셋주민들에게도 닥쳐왔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이스라엘에 돌려보내지 않은 채 그들의 도시 사이에서 전전하는 동안 그들이 당한 재앙은 갈수록 극심해졌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신앙과 선교와 교육의 완전한 자유를 하루 속히 되돌려주지 않는 한 이 정권은 크나큰 재앙을 자초할 것입니다. 진정한 민족공조가 아닌 김정일정권과의 공조에 매달리는 정권은 그들과 함께 동반자멸하게 될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현 정권은 스스로에게 비극을 초래할 뿐 아니라 온 국민과 우리 민족 전체에게 화를 부르는 일을 도모하기를 당장 중지할 것을 촉구합니다. 하나님의 궤를 파괴되고 말 다곤의 신상 곁에 끌어다 놓으려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언약궤와 같은 상징물들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며 그의 뜻을 잘 받들어 민족의 살 길을 찾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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