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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 숭배하지 말라 (출20:4- 6, 요4:24)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함 (요4:24)
기독교 역사를 통틀어서 제 2계명만큼 홀대를 받아온 계명은 없을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엄격하게 제2계명의 정신을 따라서 어떤 형상을 만드는 것을 주저하였습니다. 심지어 기독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십자가마저도 초대교회의 산물은 아닙니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인정되고, 중세기로 접어들면서 형상을 금지하는 제 2 계명은 홀대 받기 시작했고, 급기야 중세는 형상에 의한 우상숭배가 급속도로 발달하였습니다. 이교도로 있던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형상화 작업을 부추겼고, 로마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로마교회는 형상화 작업을 완성하였습니다. 결국 로마교회는 제 2계명을 무시한 채 제 2 계명을 십계명중 제 1 계명으로 편입시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제2계명은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대 사회는 형상이 없이는 신을 논할 수 없는 시대였습니다. 모든 신들은 일종의 형상을 가지고 있었고, 이런 신들의 형상을 중심으로 종교가 형성되었습니다. 로마가 유다를 정복할 때 폼페이 장군은 예루살렘 신전에 들어와서는 아무런 신상이 없다는 것에 놀랐다는 보고서가 타키투스에 의해 언급되고 있습니다. 형상을 금지하고, 형상이 없는 하나님을 섬긴다는 개념 자체는 고대 사회에서 매우 혁명적인 것입니다.
제 1 계명의 초점은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과 함께 유일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절대 우선순위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참된 하나님). 이제 제 2 계명의 초점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든 형태의 잘못된 예배 방식의 문제입니다(참된 종교). 2계명은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가 고안한 방식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제 1 계명을 따라서 이스라엘은 모든 신상을 제거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여호와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 여호와를 섬겨서도 안됩니다.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형상화하는 것은 또 다른 우상숭배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제 2 계명을 어긴 대표적인 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첫째는 출애굽기 32장에서 아론이 주도한 금송아지 사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40일동안 율법을 주실 때,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를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 1 계명의 다른 신을 섬긴 것이 아닙니다. 32: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본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신을 섬긴 것이 아니라, 애굽에서 자신들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을 섬기려고 금송아지를 만든 것입니다.
두 번째 예는 벧엘에서의 금송아지 사건입니다. 남북 왕조가 나뉜 이후 북왕국의 여로보암은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예배하러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단과 벧엘에 제단을 세우고 금송아지를 만듭니다. 그리고 동일하게 고백합니다. 왕상12: 28절입니다.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 하고
이 본문에서도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서 하나님을 섬기려는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세 번째 예는 사사시대 미가라는 사람에 의한 것입니다. 미가는 자기 마음대로 신상을 만들고, 에봇을 만들었습니다. 자기 개인 집안의 제사장을 뽑아서 하나님을 섬깁니다.
이에 미가가 가로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삿17:13)
미가 역시 다른 신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고 섬기고 있습니다. 제 2 계명에서 일차적으로 금하고 있는 것이 이런 상황입니다. 위의 예들과 같이 사람들은 제가기 이방의 신들을 섬기는 방식들을 가져와서 하나님을 섬기려고 합니다. 동일한 방식으로 섬기다 보니 이방의 모양대로 하나님을 섬기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반응은 너무나 명백합니다. 왕상14:9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의 죄에 대해서 “너의 이전 사람들보다도 악을 행하고 가서 너를 위하여 다른 신을 만들며 우상을 부어 만들어 나의 노를 격발하고 나를 네 등 뒤에 버렸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비록 여호와의 이름으로 형상을 만들었지만, 하나님은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과 동일하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형상 만드는 것을 싫어하실까요?
첫째, 형상을 만든다는 개념 자체가 죽은 종교의 표징입니다. 문제의 본질은 신을 사람이 만들 수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어딘가에 위치시키고 사람이 정성을 보임으로 신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발상 자체를 하나님께서 거부하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신들은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데, 사람이 만들어서 사람이 통제하는 신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시요, 절대 주권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한시라도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조작하거나, 통제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당신을 어떻게 드러내시고, 또 어떻게 일하실지를 결정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주권자일 뿐아니라 진정으로 자유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유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 그들을 인도하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삼상 4장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통제하려 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부당한 방식으로 여호와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가지고 갔지만, 하나님은 거기 계시지 않았습니다. 가장 거룩한 법궤였지만, 사람이 통제하려할 때 하나님은 거기 갇히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유하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형상을 만들면, 그 순간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사라지게 됩니다. 구약 성경 어디에서도, 그 누구도 하나님의 형상을 본 자는 없습니다. 오직 그분의 목소리만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을 나무나 돌, 금으로 만들어 놓고 보면 그 형상은 움직일 수도, 먹을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는 가공물에 불과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어떤 형상으로도 담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주권자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이신데, 피조된 세계의 그 어떤 것으로 하나님을 형상화 할 수 있을까요? 절대 하나님은 형상 속에 갇히지 않으십니다.
셋째, 우리의 언약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 위해서 형상을 만들고, 가까이 두려 합니다. 그것이 형상의 장점입니다. 원하면 가서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 언약에 따라 하나님은 우리와 가까이 하십니다.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형상화 한다는 것 자체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맺어진 인격적인 관계를 해치는 요인이 됩니다.
넷째,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형상화는 예수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입니다. 고후4:4절은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라고 진술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요청했을 때에도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자라고 선언하셨습니다(요14:9~10). 또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습니다(창1:26). 하나님을 형상화 하지 못하도록 하는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인간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셨기 때문에, 인간의 존귀함이 이 땅위의 어떤 것으로도 인간이 형상화할 만큼 위대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요, 우리는 의와 거룩으로 지음받은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엡4:24;골3:10).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형상을 만드는 것은 명백하게 불법입니다. 물론 이것을 우리가 모든 형태의 예술작품들을 멀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으로 섬기고 절하며, 어떤 능력의 통로로 간주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문화의 자산으로 주어진 수많은 상징물들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그것으로 일종의 위안을 얻으려 하거나, 기도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작업들은 보다 더 조심해야 할 문제입니다.
제 2 계명은 모든 형태의 형상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대의는 자기 방식대로 하나님을 예배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방의 방식, 세상의 방식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는 시도들은 옳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찾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대로만 나아가야 합니다. 현대에 있어서 하나님을 예배함의 원칙은 외부적인 형상(external image)의 문제가 아니라, 내부적인 예배(inner worship)에 있습니다. 요한복음 4:24절은 우리에게 예배의 중요한 원칙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본문은 예배의 핵심을 내부적이고 영적인 것에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배자에게 “신령과 진정(in spirit and truth)”을 요구하십니다. 어떤 장소가 아니라, 세상의 어디에서라도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예배,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내적인 예배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보시며,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실 때, 바로 이 자리에 있는 청년들이 진정한 예배자의 이름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예배합시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기를 원하는 열망만이 진정한 예배의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하고 예배해야 할 것입니다.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
제96문. 제 2계명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답. 어떠한 형태로든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지 말고 말씀을 통하여 명령하신 방법과 다르게 그를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97문. 그러면 아무 형상도 만들지 말아야 합니까?
답.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어떤 형태로도 묘사될 수 없고 또 묘사되지도 않습니다. 바록 피조물들은 묘사될 수 있을지라도 그것들이 예배의 대상이 되거나 하나님을 섬기는 수단으로 사용되지 못하도록 하나님은 그러한 형상들을 만들거나 가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제98문. 그렇다면 그 형상들을 교회에서 학습보조 교재로 사용하는 것도 안됩니까?
답.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현명해지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못하는 우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말씀의 전파를 통해서 자기 백성들이 교육받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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