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자료 18,185편 ◑/K자료 1,910편

안식일의 주인 예수! (막 2:23-28)

by 【고동엽】 2024. 3. 18.
목차로 돌아가기

안식일의 주인 예수! (막 2:23-28)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재 미있는 전설이 있습니다. 어디까지 나 이것은 전설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많은 사람을 내 셔서 창대 하게 하셨을 때 사람이 많아지니
까 사방에 흩어져서 이제 각 민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특별한
민 족 하나를 선택해서 선민을 삼아 가 지고 쵸우즌 피플(Chosen People), 선민을 삼아 가
지고 그를 통해 말씀 하시고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역 을 또 구원의 뜻을 널리 펴려고 하
실 때 어떤 민족을 선민으로 택할까 하고 하나님께서는 가장 복된 또 복 되게 하는 말씀인
계명을 만들어서, 십계명을 만들어 가지고 그것을 조 건으로 해서 이것을 지키겠다고 하 는
사람에게 그 민족에게 선민의 특 권을 내리시려고 했더랍니다. 먼저 불란서 사람에게 가서
이 십계명을 들고
"너희가 이걸 받겠느냐?"
했더 니
"안되겠는데요, 우리는 제7계명, 간음하지 말라 하는 말 때문에 안되 겠습니다. 우리는 남녀
문제가 복 잡해서 그거는 도저히 우리가 받을 수가 없겠는데요"
독일사람에게 가 서 십계명을 받겠느뇨 했더니
"일주 일 다 일해도 모자란 데 안식일을 지키라니 그거 안되겠는데요"
아랍 사람에게
"너희가 이걸 지키겠느 냐?"
하고 물었더니
"우리는 그 8계 명 때문에 안 되겠습니다. 우리는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의 등짐을 털어서
도둑질 해먹고 사는데 도둑 질하지 말라는 법을 지킬 수가 없으 니까 안되겠습니다"
유대사람에게 물어보기를
"너희가 이걸 받겠느냐"
했더니 유대사람이 뭐라고 하나님께 물었는고 하니
"그거 얼마입니까?"
그랬어요. 하나님 말씀하시기를
"공짜다"
그러니까
"아 그러면 받겠 습니다"
그래서 유대사람이 그걸 받 아 가지고 선민이 됐답니다. 유대 사람이 뭔가를 잘 말해주는
그런 얘 기입니다. 유대사람들은 이래서 안 식일을 엄수합니다.
주전 170년경에 있었던 사건은 너 무나도 유명한 얘기입니다. 헬라의 통치자 안티오커스 에
피파네스가 모 든 사람을 헬라문명 하에 지배받도 록 하기 위해서 헬라의 문화와 문명 을
강요할 때 모든 민족이 따랐습니 다 만은 유대사람은 아닙니다. 유 대사람들은 끝까지 고집
스럽게 자기 문화를 지켜가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이들을 꺾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두 가
지가 있는데 유대사람들 이 철저하게 음식에 대해서 터부가 많습니다. 이것은 먹어야 되고
이 것은 먹지 말아야 되고 그걸 알고, 이 사람들이 돼지고기는 절대 안 먹 는 것을 알고 돼
지고기 먹는 것을 강요했습니다. 먹으면 살려주고 안 먹으면 죽이는 겁니다 가차없이. 이렇
게 하면서 유대사람으로 하여금 헬라 문화 앞에 굴복하도록 강제성 을 띄우고 정치를 했는
데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었고 또 그 다음에는 안식일입니다. 이것을 엄격하게 지 키는
것을 알고 예루살렘 성전 마당 에다가 제우스 신당을 만들어 놓고 제우스신상 앞에
"모두가 무릎을 꿇 어라"
그리고 안식일 지키는 것을 금했습니다. 이들은 신앙대로 살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산으로
도망갔 습니다. 산 속에 들어가서 은거하 면서 거기서 율법을 지키고 안식일 을 지키며 살
려고 했는데 안티오커 스가 그리로 쳐들어갑니다. 쳐들어 갈 때 안식일에 들어갔습니다. 그
런고로 안식일을 지키기 위하여 저 들은 대항도 하지 않았고 도망도 가 지 않았습니다. 도
망가는 것도 안 식일을 범하는 거니까. 그대로 다 섬멸됐다고 합니다. 어쨌든 이스라 엘 사
람들은 목숨을 걸고 안식일을 지킵니다.
바벨론 포로 이후에 집대성한 구 전법 모음인 '미쉬나' 라고 하는 책 이 있습니다. 우리
신·구약 성경 보다 더 큽니다. 이 미쉬나라고 하 는 책, 이것은 구전으로 이스라엘사 람들
에게 전해진 율법을 다 수집해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 속에 안 식일에 대한 것만 39개조
가 있습니 다. 이것을 하지 말라 저것을 하지 말라. 그런데 이것이 또 다시 그 다음에 부칙
이 나옵니다. 원칙이 있고 또 부칙. 그래서 마침내 이백 열아홉가지라고 하는 그런 금칙이
있습니다. 예컨대 이 서른아홉가지 를 다 말씀드리진 않습니다만은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씨 뿌리는 일, 수확하는 일, 곡식을 단을 묶는 일, 타작하는 일, 키질하는 일, 곡식 고 르는
일, 맷돌질하는 일, 체질 하는 일, 반죽을 만드는 일, 빵 만드는 일, 양털 깎는 일, 끈을 매는
일, 바 느질하는 일, 뭐 쭉 이렇게 자세하 게 서른아홉가지를 말합니다. 이제 또 부칙이 나
옵니다. 그 부칙 중에 는 이런 넌센스 같은 얘기도 있습니 다. 어린아이를 안식일에 안아주
는 건 좋으나 어린아이가 책을 들고 있 는 것을 안아주면 책을 들었기 때문 에 안식일을 범
한 것이다. 바느질 을 하다가 어쩌다 실수해서 바늘을 옷에 꽂아 놓은 대로 입고 나가면 바
늘을 운반한 죄가 있다. 이것도 안식일을 범한 거예요. 아주 까다 롭게 까다롭게 이렇게 부
칙을 만들 어서 안식일을 저들은 지키게 됩니 다. 그래서 성경에도 나타납니다 만은 장님이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눈 뜬 다음에 막대기를 들고 다니는 건 안식일
범 했습니다. 이게 또 문제가 되는 거 예요 그만큼 엄격하게 안식일을 저 들은 지켰다 하는
말입니다. 이래 서 결론적으로 많은 역사가들이 말 합니다. 유대사람이 안식일을 지켰 느냐
안식일이 유대사람을 지켰느 냐? 결론은 안식일이 유대사람을 지 켰다는 겁니다. 그들은
2000년 3000년 디아스포라로 흩어져서 남의 나라에 가서 살고 있지만은 그들의 민족성과 신
앙을 지켜갈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안식일 때문입니다. 그들은 안식일 하나를 지키기 위해
서 얼마나 많은 수난을 겪는지 모릅 니다. 여러분 깊이 생각할 문제올 시다.
문제는 그 깊은 뜻에 있습니다. 예수님과 당시 유대사람들과 충돌된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 안식일입 니다. 안식일을 중심 해서 율법에 대한 해석이 예수님의 해석과 그들 의 해석
이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위선적인 안식일 엄수하는 법을 여지없이 비판했습니다. 이
런 것들로 인하여 충돌되어 마침내 십 자가에까지 이르게 됐다 라고 해석 하게 됩니다. 문
제는 뜻을 잃어버 리고 형식만 남으면 다 그런 겁니 다. 깊은 뜻은 멀리 갔고 방법이 목적
을 배신합니다. 목적을 위한 방법인데 방법에 충실하다보면 어느 사이에 목적은 멀리 가버
립니다. 이런 경우가 그들에게만 있는 게 아 닙니다.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사물의 체계"라고 하는 책이 있 습니다. '쟝 보드리야르'라고 하는 불란서의 파리 대학의
유명한 교수 요, 사회 이론으로서는 대표적인 분 이라고 합니다. 그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자본주의 사회 사람들은 그 기능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소비한다'
라고 말합니다. 기능이냐 의미냐?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가 자동차를 타는데 티코가 있
고 여기 그랜저가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티코가 아 니고 그랜저냐? 비싸고 기름도 많 이
먹는데. 물어보면 대답은 그럽 니다.
"아 그게 안전하니까"
뭐 사고 날 때 보면 거기서 거기입니 다. 또 그런가 하면 승차감이 어떻 고 적당한 얘기를
합니다 만은 솔직 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한 것은 권 위주의 때문입니다. 티코를 타고 다니면
은 무시당합니다. 자동차에 기름을 넣으러 들어가도 그 사람들 이 없수이 여깁니다. 더구나
호텔 에 가서 밸레이 파킹(Valet Parking)을 하려고 하면은 티코는 안 받아 줍니다. 여기에
아무리 팁 을 준다고 해도 어림도 없습니다. 고급차를 타고 들어가면은 거기에 있는 그 총
각아이들이 저마다 나와 서 몰고 가겠다고 합니다. 자 이런 맛에 좋은 차 타는 겁니다. 그러
니 까 이것이 기능이냐 뜻이냐 하고 물 어봅시다. 어느 쪽입니까? 기능이 아니라 의미라는
말이에요. 저희 교회의 장로님 한 분이 그런 말씀을 하셔서 재미있게 뜻 있는 얘기라고 들
었습니다. 언제 한번 미국에 여 행을 하시다가, 좀 여러 날 여행을 했대요. 그래 집으로 돌
아올 때 그 사모님께 미안한 마음이 있어서 그 저 화장품이나 하나 좋은 거 사줄 거다 하고
생각을 하고 백화점에 가 서 화장품에 대해서 모르는 이 양반 이 가만히 보다 보니까 엄청
나게 몇 백불 붙여 놓은 게 있더래요. 무조 건 비싼 건 좋은 거 아니겠나 해서
"제일 비싼 거 이거 주세요"
그랬더 니 물건을 파는 아가씨가 그러더랍 니다.
"애인을 줄 겁니까 사모님 줄 겁니까?"
그래서
"아 이거 제 마 누라 줄 겁니다"
그랬더니
"그러면 사지 마세요"
그러더래요
"이거는 좋고 나쁘고 가 아니라 돈 많은 과 부들이 비싼 맛에 사는 겁니다. 그 리고 나는
이렇게 비싼 걸 쓴다 하 고 기분 좋으라고 갖다 놓은 거지 마누라 줄려면 이거 살 필요가
없습 니다"
그러더랍니다. 애매모호한 소리지요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 여러분의 심리를 스스로 비판해
보 세요. 비싼 맛에 사는 겁니까 실용 적으로 사는 겁니까? 왜 옷 하나에 몇 십만원이요 몇
백만원 입니까? 뭐 입은 거 보니까 별것도 아니던 데. 그러나 아 이걸 입고서
"나는 이거 얼마 짜리다"
그래요. 그래 나는 잘 모릅니다 만은 여자들 여름 에 입는 블라우스, 그거 150만원짜 리가
있다며? 세상에 내 눈으로 볼 때는 거기서 거기입니다. 옷걸이가 시원치 않아서 별로 볼 것
도 없어 요. 그러나 이거 나는 얼마 짜리 다……. 기분이에요 기분! 이 기 분이라는 말을 다
른 말로 말하면 그 게 바로 의미라는 거죠. 기능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소비 한
다. 그렇습니다. 이 목적을 배신 한 행위올시다. 도대체 무엇을 위 해서 일이 필요한 겁니
까? 다 그야 말로 자기 권위, 자기 명예, 자기 존 재를 높여 보자는 거지. 답답하지 만 이렇
게 해 보겠다는 건데요, 율 법도 이렇게 지켰다는 거예요. 형 식주의로 빠져나가면은 본래성
은 상 실하고 이걸 지킴으로 내 값이 올라 가요. 나는 율법을 지키는 자 다……. 나는 목숨
을 걸고 안식일 을 지키는 자다……. 스스로 교만 해지는 거죠. 이러고 못 지키는 자 를 멸
시하는 거죠. 저것은 사람도 아니다, 율법도 모르는 금수와 같은 사람들이라고 이방사람들을
멸시한 거 아닙니까. 자 이거는 기능적이 기보다는 완전히 의미적인 것이었다 하는 말입니
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야기를 자 세히 살펴보면 사실 제자들이 잘못 했습니다. 자고로 제자
잘못 두면 선생이 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 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같이 길 없 는 지름길
로 가느라고 밀밭 사이로 지나갔는데 밀밭 보리가 다 익은 것 을 헤치고 가다가, 가만히 헤
치고 가지 왜 보리 이삭은 뜯어서 이걸 비벼서 입에다 넣었단 말이에요. 그 타작을 한 것이
에요. 이거 빵 만들어 먹은 거예요 이게 지금. 이 게 큰 죄가 되거든요. 그래서
"당 신의 제자들이 왜 안식일에 못 할 일을 합니까?"
하고 예수님께 질문 하는데 참 예수님 이럴 때 정말 난 처했겠어요. '아 이거 시원치 않은
제자들 때문에 내가 아주 어려움을 당하누만…….' 그랬을 거예요. 그 러나 예수님은 엉뚱한
예를 듭니다. 아비아달 제사장 때 다윗이 자기 수 종자들과 함께 피난을 갔는데 굶어 죽게
됐다 그래서 진설병이라고 하 는 일반은 먹을 수 없는 것을 주었 다. 당연히 먹고 죽어야
하겠지만 죽지 않았다. 왜요? 아주 이건 이 멀전시(Emergency)니까. 또 불신 앙적으로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라고 하는 거 같습니다. 아무튼 이 렇게 변명을 하시면서 예수님께서
는 이 시간에 소중한 교훈을 하십니다. 너무나도 저는 이 말씀이 좋아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느냐 안식 일이 사람을 위해 있느냐"
다시 깊 이 생각하면 이런 말씀이에요. 율 법이 사람을 위해 있느냐 사람이 율 법을 위해
있느냐. 도대체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는 거냐? 율법을 왜 지키는 거냐? 어떤 마음으로 지
키 고 있느냐? 이것을 근본적으로 묻 고 있는 것입니다.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에요.
요새 한국과 미국에서까지 베스트 셀러로 유명하게 읽히고 있는 책 하 나가 있습니다.
"최고 경영자 예 수!, 지저스 씨이오(Jesus CEO)"
라 고 하는 책입니다.
"씨이오(CEO)"
라는 것은
"치프 이그제큐티브 오피 서(Chief Executive Officer)"라고 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경영자적인 시각에서 보아도 가장 훌륭한 분이었다 라고 아주 신앙이 좋은 분이에요 이 저
자가. 그래 읽 으면서 아주 은혜를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대단히 좋은 책인데, 제 가 아주
한번 정독을 했습니다. 여 기에서 제가 크게 느낀 것은 뭐냐하 면 예수님은 먼저 자기 문제
를 해결 하고 목적을 세우고 그 목적대로 일 생을 살았다 하는 것입니다. 특별 히 그가 지
적하는 것은 일하기 전에 먼저 광야에 나가서 40일 동안 기도 하면서 자기와 하나님과의 문
제를 해결하고 나는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입니까, 다 결정해 놓고, 목 적과 의미를 다
결정해 놓고 그대로 밀어 붙였다는 거죠. 이게 성공하 는 것이요. 살아가면서 이렇게도 살아
보고 저렇게도 살아보고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예수님은 자기 문제 신앙적으로 먼저 해결
하고 한 평생을 살아갔다 그리고 모든 면에 서 제자를 양육한다던가 제자를 믿 었다던가 무
려 한 근 100가지의 예 를 들어가면서 예수님을 경영자적 시각에서 보아도 훌륭하고 가장
모 범적인 분이라고 그렇게 해설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율법에 대해서 말합니다. 예수님은 율법에 대해서도 특별히 요점을 알고 중심을 말
할 수 있는, 진리를 통합하고 분석하고 구체화하 는 능력을 가지셨다는 거죠. 여러 분 아시
는 바와 같이 어떤 율법사가 와서 물어봅니다
"이 계명 중에 가 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 어봅니다. 십계명 중에 가장 큰 것 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시는데 대 답이 어디로
갑니까?
"주 너의 하 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다."
그러고 말합니다. 아주 굉장한 대 답입니다 그야 말로 디맨션 (Dimension)을 달리하고 있습
니다, 차원적으로 달라요. 계명, 십계명이 도대체 왜 존재하는 거냐? 사랑입 니다. 오직 사랑
이 계명의 뿌리요, 사랑이 계명의 정신이요, 계명의 목 적이라고 말합니다. 너무나도 놀라
운, 해박한 해석이요 결론입니다. 보세요 사랑! 계명이 왜 있습니까? 사랑 때문에. 우리를
사랑해서 주 신 계명입니다. 그건데 이것을 벌 벌 떨면서 억지로 지킬 것입니까? 효자가 누
구입니까 효자가. 무슨 관광 여행이나, 효도 여행을 보내드 리면 효자입니까? 한 평생 평안
하 게 해 드리자고요? 아니요. 참 효 자라는 것은 부모님의 말씀, 그 모 든 것을 내게 향한
사랑으로 소화합 니다. 내게 사랑해서 주시는 말씀, 책망도 사랑해서 주시는 말씀, 내게 돈
을 주든 안 주든 다 사랑해서 내 게 주시는 말씀, 그렇게 받아들이는 거예요. 어떤 경영자는
돈이 많은 데도 불구하고 자식을 남의 회사로 보냅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네게 는 한 푼의 유산도 없다."
보내 버 렸어요. 그 자식에게 있어서는 좀 불평이겠죠. '아버지 재산이 이렇게 많은데 나는
왜 여기서 이렇게 고생 을 해야 하나.' 이것이 사랑이기 때 문이요. 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 니까? 우리 아버지가 가난하십니 까? 우리 하늘 아버지가 그렇게 인 색하십니까? 모든
말씀 모든 계명 이 그대로 내게 향한 사랑이라는 말 이요. 그것이 바로 효도요 그것이 신앙
이올시다. 그래 예수님 말씀은 십계명! 사랑이다. 그런고로 율법 에 대한 자세를 말씀하십니
다. 사 랑하는 마음으로 받을 것이요, 율법 을 대할 때마다 율법을 주신 자에게 감사할 것이
요, 이것이 사랑이기 때 문에. 나는 이 율법을 통해서 자유 를 느껴야 됩니다. 무한한 자유,
무 한한 행복을 항상 느끼며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일을 지킵니다. 그러나 본래의 이름은 안식일입니 다. 여러분 주일 지키라
는 것이 무 슨 뜻입니까? 저는 이 교회를 목회 하면서 목회의 목회 지침 열가지 중 에 하나
가 그겁니다.
"주일을 안식 일화"
왜요? 주일은 쉬어야됩니 다. '쉰다'는, '안식'이라는 말은 문 자 그대로 쉬라는 말입니다. '
일주 일에 하루를 쉬라' 이것처럼 지키기 쉬운 계명이 어디에 있습니까? 특 별히 일하라면
모르겠는데 '쉬라' 그 거예요. 그런데 이걸 안 지키겠다 고 합니다. 안 지키면 죽습니다. 그
뿐 아니라 여러분 '안식일을 지 키는데 대한 손해보는 것은 내가 보 상하마' 이거예요. '안
식년을 지켜 라. 그것도 내가 보상하마' 얼마나 귀한 말씀 귀한 메시지입니까. 요 새 같은
때에 우리 젊은이들 참 피 곤해요. 우리 젊은 사람들 모이는 데 이렇게 가보면요 안됐어요.
다 얼굴이 누렇게 떴어요. 근심 걱정 으로 찌들었어요. 전 수없이 결혼 주례를 하지만 마음
이 아파요. 옛 날에는 남자가 크고 여자가 작았어 요. 요새는 여자가 크고 남자가 작 아요.
왜 이렇게 됐는지? 여자는 여자대로 조금 다른 견해가 하나 있 어요. 이렇게 살다가도 내가
결혼 만 잘하면 팔자 고친다는 고런 마음 이 있는가 봐요. 그건데 비해서 남 자들은 내가
내 길은 책임을 져야돼 요. 공부해야죠 걱정해야죠 시험봐 야죠……. 그만 쫄아가지고 크질
못해요. 이 비참한 세상입니다. 여 러분, 여러분 지금 살아 나가면서 얼마나 힘듭니까? 그런
데 하나님 말씀이 '일주일에 하루는 깨끗이 잊 어버리고 쉬어라!' 이 계명을 못 지키겠습니
까? 이걸 안 지키겠다고 발버둥칩니까? 그러면 그대로, 그 대로 가는 거예요. 안식일을 지켜
야 건강이 보장되도록 의학적으로 돼있어요 이게. 일주일에 하루는 꼭 쉬어야 되게 되어 있
어요. 몸과 마음과 정신이 다 쉬어야 됩니다. 교회 와서 오늘만은 깨끗하게 떠나 서, 세상
걱정 근심 깨끗하게 떠나 서 주일을 지키고 말씀을 듣고 성도 와 교제를 나누고 혹은 여러
분 마음 이 있을 때, 혹은 병원도 방문하고 혹은 사랑하는 친척도 방문하고 이 러면서 아름
답고 귀하게 자기들과 함께 하루를 쉽니다. 100% 쉽니다.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 주 신 것인데 왜 이것을 마다하는 겁니 까? 나는 어제 그 책
을 보고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씩 교회 나오는 사람과 안 나오는 사람, 미
국에서 조사해 보니까요 나 오는 사람이 안 나오는 사람보다 10% 더 오래 산답니다. 그런
줄 아세요. 일주일에 한번 이상 더 나 오는 사람은 20% 더 오래 산대요. 알아서 하세요. 여
러분 안식일 쉬 는 겁니다, 복을 주시는 겁니다, 특 별히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특별 히 오
늘 본문에 안식일의 주인이라 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신학적으로 큰 뜻을 가지고
있습니 다. 예수임께서 친히 십자가를 통 하여 율법을 완성했기 때문에 하시 는 말씀이요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 를 율법으로부터 자유케 하셨기 때 문이요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기 때문에 이 사랑 을 받고 구원받은 사람은 율법에 대 해서 부정적으로가
아닙니다 능동적 으로, 자발적으로 율법을 사랑으로 소화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가게 된
다 하는 말입니다. 특별히 히브 리서에 의하면은 안식일이라는 것은 하늘나라의 상징입니다.
그런고로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그랬습니 다. 이 주일을 잘 지키는 사람은 아무리 바쁘
다가도
"주일이다"
하면 은 올 스톱합니다. 이렇게 끊어 버 리는 사람은 주님께서 부르실 때
"가겠습니다"
하고 따라 갈 겁니다 만은 안식일을 안 지키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부르려고 하면은 아마 연
기신청 내려고 그럴 거예요. 통하 지도 않지만은 말이에요. 여러분 깨끗이 벗어나는 훈련,
안식일에 이 르는, 안식에 이르는 훈련을 쌓아가 야 하는 것입니다. 인자는 안식일 의 주인
이다. 안식일은 너희를 위 해 있는 것이다. 계명은 사랑에 있 는 것이다. 자유함에 있는 것
이다. 이 거룩한 말씀을 통해서 온전히 자 유할 수 있는 주의 자녀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