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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주인 예화모음 30편

by 【고동엽】 2023.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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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잘것 없는 노예
 
흑인 가수 '마리안 앤더슨'(1902-1973)은 백년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노래를 잘하여 영광을 한 몸에 받은 사람이었다.
23개국에서 명예학위를 받았고 아이젠하워, 캐네디 대통령 취임 시에 국가를 독창했고 58년에는 유엔 대표로 지명 받았으며, 63년에는 존슨 대통령으로부터 최고 훈장인 '대통령자유상패'를 받았다.


그가 40년간의 성악 활동을 끝마칠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보잘것없는 노예밖에 될 수 없는 인간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목소리를 주셨으므로 유명해진 것이지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명예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쫓아내기 어려운 전세자
 
당신은 어떤 의미로는 당신이 바로 당신 자신의 신이었습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섬겼고, 스스로를 경배해 왔으며, 당신 자신의 목표와 흥미를 만족시키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지금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며 모든 것이 변화되었습니다. 당신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지만 옛날의 자기 중심적 사고 방식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자아는 당신의 마음의 보좌에 악착같이 매달려서 쫓아내기가 어려운 전세자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예수님이 주님이시며, 또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의 삶의 주님이신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알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나의 금전 출납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나는 돈을 어느 곳에 사용하고 있는가? 나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하고 있는가?


시간 사용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나는 어떤 오락을 즐기고 있는가? 나를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세상적인 것들을 즐기고 있는가? 나는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거나 나를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 죄에 대하여 관대한 태도를 취하고 있지는 않은가?


 당신의 삶은 어떻습니까? 오늘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삶의 주님으로 모시는 것과, 그를 따르며, 순종하며, 신뢰하며, 사랑하는 것을 목표로 삼을 수 있습니다

 

 

 
 
 

 

 

두 주인
 
C.S.루이스는 말합니다. “천국을 지향하면 세상을 덤으로 얻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지향하면 둘 다 잃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아니라 천국을 지향하고 얻어야 합니다. 미련한 사람은 둘 다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


두 주인을 섬기면 두 주인에게서 배반을 당합니다.

한쪽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일입니다. 다윗은 내 마음을 확정했다고 기뻐합니다.
내 마음을 확정한 기쁨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아예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이 가장 편하고 기쁜 일입니다. 악인들이 성도들을 미워하는 것은 성도들의 약점 때문이 아니라 거룩함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별되어 사는 것을 악인들은 싫어하고 미워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자랑입니다.

 

 

 
 
 

 

 

그 분은 손님이 아닙니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이따금 가난한 백성들의 집을 예고없이 방문해 음식을 나누며 대화하곤 했습니다. 하루는 어느 독실한 그리스도인 과부의 집에 들어가서 그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과부의 신앙이 뛰어남을 알고 있는 여왕은 이 여인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의 집을 방문했던 이들 중에 가장 명예로운 손님은 누구였소?” 과부는 지체하지 않고 “예,바로 여왕이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이라는 대답을 기대했던 여왕은 조금 실망스러워 “혹시 당신 집을 방문했던 가장 명예로운 손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닐까요?”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자 과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제게 손님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항상 저와 함께 여기에 살고 계시는 이 집의 주인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의 손님이십니까,아니면 주인이십니까?

 

 

 
 
 

 

 

아주 특별한 손님
 
맛있기로 소문난 제과점이 있었다. 어느 날 남루한 차림을 한 거지가 찾아와 빵을 주문했다. 가게 종업원은 빵을 포장하고도 건네주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이때 가게 주인이 달려와 정중한 자세로 빵을 포장해 직접 건네주었다. 그러자 거지는 호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지폐 한 장을 꺼내 빵 값을 치렀다.

주인은 공손히 돈을 받으며 "가게를 찾아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며 거지를 향해 허리까지 굽혀 인사를 했다. 거지가 돌아간 뒤 의아해하는 종업원에게 주인이 말했다.
"평소 우리 가게에 오는 손님은 모두 돈이 많고 지체가 높은 사람들이지. 그들이 우리 가게를 찾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닐세.

그러나 아까 그 거지손님이 우리 빵을 맛보기 위해 얼마나 고생하며 돈을 모았을 지를 생각해보게. 그러면 그가 얼마나 특별한 손님인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일세."
이후 주인의 거지에 대한 태도는 미담이 돼 빠르게 전해졌고 그 제과점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손님 대접
 
손님을 정성으로 잘 대접하는 일은 매우 귀한 일입니다. 하지만 아무 손님이든지 모두 받아들이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공간에 오는 손님은 신중하게 생각하고 판단하여 구별 해야합니다. 그래서 귀한 손님만 초청을 해서 대접하며 따뜻한 사랑의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아무나 오게 해서는 안됩니다. 오지 말아야 할 사람이 오면 서로 힘이 듭니다. 좋은 곳에 써도 모자라는 에너지를 헛된 곳에 낭비하게 됩니다. 그것은 탈진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손님을 대접하는 일 자체를 중지하게도 만듭니다.

집에도 손님이 찾아오지만 내 마음의 집에도 '생각'이라는 손님이 찾아옵니다. 마찬가지로 내 마음의 문을 아무 생각에게나 열어주면 안됩니다. 좋은 생각, 행복한 생각, 긍정적인 생각, 은혜로운 생각, 기쁜 생각, 믿음의 생각...... 은 받아들여서 잘 대접하고 반대로 나쁜 생각, 의심의 생각, 섭섭한 생각, 교만한 생각.....은 집에 들어오는 것을 단호하게 반대하고 거부합니다.

 

 

 
 
 

 

 

주인의 음성
 
캐나다 서부, 브리티시 콜롬비아 주에 사는 주민 한 사람이 자기가 기르던 리트리버종 개를 한 마리 잃어버렸다. 그는 이 개를 돌려주는 사람에게 현상금을 주겠다며 광고를 냈다. 그런데 그곳으로부터 약 10km 정도 떨어진 지역인 밴쿠버에서 어떤 사람이 그와 같은 개를 데리고 있다며 전화가 왔다.

이때, 개 주인은 전화를 건 사람에게 “전화기를 그 개한테 좀 대주시겠습니까?”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수화기를 개의 귀에 대주었더니, 그렇게 슬퍼하며 침울해 있던 개가 갑자기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자기 몸을 붙잡고 있던 사람들 손에서 빠져나와, 식탁이며 책상 밑, 그리고 찬장과 문들 뒤를 돌아다니며 무엇을 찾는 것이었다.

그것은 자기가 그처럼 잘 알고 있는 주인의 음성을 다시 들을까 해서였다. 그러다 그 전화기에서 자기 주인의 목소리가 났었다는 것을 기억했는지 다시 그 전화기로 돌아와 수화기에 귀를 댄 채 몇 초 동안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었다.

개 주인은 “내가 곧 가서 너를 집에 데리고 오마”라고 말했다. 그 개는 그 말을 알아들은 것이 틀림없었다. 왜냐하면 그 개는 곧 먹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족스럽게 일이 되어 가는 것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우리 주님도 방황하는 영혼들을 향하여 “그 사람 좀 대주시오”라고 말씀하신다.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正路)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할 것이며”(사 30:21).

 

 

 
 
 

 

 

주변인이 되지 말고 중심인이 되라
 
'주변인'은 누구이고 '중심인'은 누구일까요? 어떤 사건을 만날 때 쉽게 흔들리는 사람을 '주변인'이라 할 수 있고 어떤 사건을 만날 때라도 크게 요동하지 않는 사람을 '중심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단체활동이나 사회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주변인'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항상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no-no people)'은 '주변인'입니다. 그리고 '뚜렷한 가치관이 없이 긴가 민가 하는 사람(yo-yo people)'도 '주변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큰 결심을 한 후 실천이 없는 사람(blow-blow people)'도 '주변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변인적 성향'을 배격하고 '어떤 난관이 있을지라도 앞을 향해 달려갈 줄 아는 사람(go-go people)'이 지닌 '중심인적 성향'을 배양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살펴 보면 수많은 '주변인'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은 이 교회 내일은 저 교회로 돌아다니는 영적인 보헤미안들이 교회의 '주변인'입니다. 또한 그저 형식적으로 주일 아침에만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도 교회의 '주변인'입니다.

그런데 가장 특이한 '주변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의 부흥기 때는 너도나도 몰려들어 '중심인'인 것처럼 서로 질세라 충성을 말하지만 교회가 어렵거나 낙조기를 맞이하면 자취를 감추어 버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형통한 날에는 충성을 과시하다가 시련의 날에는 온갖 핑계를 다 내세워 교회를 떠나기에 이러한 '주변인'들은 보통 '교회의 참새'라는 오명이 붙여지기도 합니다. 이 현상은 사회의 여러 단체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참으로 충성된 일꾼이 그리운 시절입니다.

우리는 '중심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모든 일에 '중심인'처럼 행동하라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모든 일에서 '중심인'처럼 행동한다는 것은 위선자나 지나치게 욕심쟁이나 지나치게 교만한 자나 아니면 미친 자만 연출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몇 가지의 일에만 '중심인'으로 활동하고 나머지 일에서는 '주변인'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중심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일에서 '중심인'으로 활동하다가 어려움이 닥쳤다고 '주변인'으로 바뀌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인의식
 
어떤 사람이 우연히 살찐 여우를 발견하고 저 여우는 어떻게 해서 살이 쪘을까 하고 궁금해했다. 그가 관찰한 결과 여우는 사자가 먹이를 먹는 장소에 있다가, 사자가 먹이를 먹고 사라진 다음 남은 먹이를 먹고 있었다. 이후 그는 자신도 여우처럼 살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숲 속 대신 길거리에 앉아서 기다리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그에게 눈길 한 번 주는 이가 없었다. 그가 허기지고 지쳤을 때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렸다.
"그대는 왜 사자가 되지 못하고 어리석은 여우와 같은 행동을 하는가?"
무엇을 하든 그것의 주인이 되도록 하세요. 주변인은 영원한 주변인일 따름입니다. 삶의 주인이 되세요.

 

 

 
 
 

 

 

창조적인 삶을 살자
 
주인이 명령하면 무슨 일이나 열심히 일하는 노예가 있었다. 이 사람은 주인이 하루 일과로 정해준 일과에 따라 밭에서 감자를 캐고 있었다. 저녁 때가 되어 밭 가운데는 감자가 산같이 쌓이게 되었다.

주인은 노예게게 커다란 구덩이 두 곳을 파고 감자를 저장하는데 한 구덩이에는 큰 감자를 넣고 또 다른 구덩이에는 작은 감자를 넣으라고 일러주었다.
쉽게 일을 마쳤을 것으로 생각한 주인은 밭에 나가보았다. 그라니 노예는 감자 두 개를 양손에 들고 머리만 갸우뚱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너무나 쉬운 일을 시켰는데도 아직 시작도 아니한 노예에게 버럭 화를 내었는데 노예가 하는 말이 재미있다.

"주인님, 어떤 일이라도 시키시면 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제발 큰 감자와 작은 감자를 고르는 일만은 시키지 말아주십시오. 감자를 손에 들 때마다 이것을 왼쪽 구덩이에 던져야 할지, 오른쪽 구덩이에 던져야 할지 결정지어야 하는 괴로움이 너무 커서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었다.

노예에게 있어서 가장 힘든 일은 땀흘려 흙구덩이를 파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노예는 주인이 시키는 일만 하면 되었지. 자기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힘이 없었던 것이다.

 

 

 
 
 

 

 

내게 두 주인은 없다
 
러시아의 군인 하나가 나폴레옹의 군대에게 붙잡히게 되었습니다. 나폴레옹 군대의 군사들이 포로로 잡은 러시아의 병사에게 이제는 그가 나폴레옹의 군대에 속하게 되었다는 표시로 그의 팔에 N자를 새겼다고 합니다. 이때 러시아 병사는 물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오?”
나폴레옹 군사가 대답합니다.

“그 N자는 네가 오늘부터 나폴레옹 대제에게 속했다는 표시야”
이 말을 듣자마자 러시아 군사는 칼을 뽑아 자기의 팔을 잘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자기의 팔을 내던지면서 하는 말이
“내게는 한 주인만 있을 따름이요. 내게 두 주인은 없소. 나는 오직 러시아 대제에게만 속해 있을 따름이오.”

 

 

 
 
 

 

 

두 번째 나의 것
 
어린 소년이 많은 시간을 들여서 섬세한 부분까지 잘 조각을 해서 작은 배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 배를 물위에 띄웠을 때 그에게서 빠르게 멀리 흘러가 버렸습니다. 비록 그가 둑을 따라 배를 따라가 보았지만 배를 따라가 보았지만 배를 좇아 갈 수가 없었습니다. 강한 바람과 물결이 배를 가져가 버렸습니다. 또 하나의 배를 만들려면 얼마나 힘들여 일해야 하는가를 생각할 때 소년은 가슴이 찢기는 듯 아팠습니다.

강 저 밑 쪽에서 한 사람이 이 작은 배를 발견하고 도시로 가지고 가서 상점 주인에게 팔았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소년이 시가지를 걸으면서 한 진열장 창문을 통해 그 배가 진열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상점에 들어가 그는 주인에게 그 배는 자기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배에는 자기가 찍어 놓은 작은 표시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표시만으로 그것이 자기 배라는 것을 주인에게 증명해 보일 수는 없었습니다.

상점 주인은 그가 그 배를 갖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그 배를 사는 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소년은 그 배가 너무 갖고 싶기 때문에 그렇게 했습니다. 그가 상점 주인의 손으로부터 그 배를 받았을 때 그는 그 배를 보며 말했습니다.
"작은 배야, 너는 두번째 나의 것이다. 내가 너를 만들었고 또 내가 너를 샀기 때문이다."

 

 

 
 
 

 

 

시집의 진정한 주인
 
스튜더트 케네디가 쓴 책에 브로우닝의 시집을 각기 다른 환경의 피조물이나 사람들이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재미있는 얘기가 나온다.
침팬지는 그 책을 보고는 움켜쥐고, 냄새 맡고, 먹어보려 하다가는 갈기갈기 찢어 던져 버린다. 열 살 된 꼬마는 그 책을 자기 장난감 받침으로 쓴다. 40대의 교육받지 못한 주식중개인은 그 책을 흔들리는 책상다리 받침으로 끼워 넣고 그 위에서 서류를 작성한다.

물론 그 책의 진가를 아는 사람이 있다. 그는 책에 정신이 팔려 조용히 않아서 읽는데 몸은 이 세상에 있지만 마음은 저 세상에 있는 듯 행복에 잠겨 있다. 삶의 부요함과 아는 자의 행복이 여기에 있다.

 

 

 
 
 

 

 

토기장이와 진흙
 
성경은 하나님은 토기장이시오 우리는 진흙이라고 말씀합니다. 토기장이는 좋은 진흙을 갖게 되면 아름다운 도자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예부터 좋은 도자기를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려자기나 이조백자 등은 오늘날에도 세계적인 예술품입니다. 임진왜란 때 한국의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가 오늘날 일본이 세계적인 도자기 생산국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토기장이가 찾는 진흙
좋은 토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토기장이가 좋은 진흙을 찾아야 됩니다. 좋은 진흙을 찾지 않으면 좋은 토기나 도자기를 만들 수 없습니다.

몇년 전 TV에서 처음 일본으로 끌려간 한국의 도공들이 일본에서 좋은 진흙을 발견하지 못하여 좋은 도자기를 구워낼 수 없어 참담한 고생을 하는 것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친히 택하신 진흙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 토기장이가 진흙을 선택하는 것처럼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아무 흙으로 도자기를 구울 수 없는 것처럼 아무나 붙잡아 천국백성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좋은 도자기를 만들 때 주로 고령토를 사용합니다. 고령토는 원래 중국의 까오루(高陸)에서 많이 산출된다고 해서 그 이름을 고령토라고 불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경남 하동지방에 많이 있습니다. 이 고령토는 약간 회색을 띤 백색으로 조선백자, 분청사기, 청자의 백색 상감 등을 만들 때 사용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동의 고령토는 지금까지도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좋은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흙이 있어야 됩니다. 아무 흙이나 가지고 도자기를 구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천국백성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를 선택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아무나 불러서 천국백성으로 삼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로마서 9장 11절에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행위로 말미암아 하늘나라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해서 불러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거기에 응답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을 골라서 그 진흙으로 그릇을 만드는 것이지 아무 진흙으로 도자기를 만들지 않습니다.

선택한 진흙을 토기장이가 공장으로 옮겨 잘 씻어서 돌이나 지푸라기나 흙을 제하고 온전히 토기를 만들 수 있는 재료로 만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세상에서 파내어 교회로 데리고 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그릇을 만드는 공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인과 노예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사 온 어떤 사람이 노예가 저렇게 까만 것은 전 주인이 게을러서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비누로 노예를 씻기고 박박 문질러 피부를 하얗게 만들려고 애를 썼지만 별로 효과가 없자,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 피부를 조금이라도 하얗게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결국 지나치게 무리한 흑인 노예가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것
 
어떤 아내가 남편에게 불평을 합니다. “여보,나에게도 시간을 좀 내주세요. 당신이 직장생활을 하느라 너무 바빠서 나와 함께 보낼 시간을 내주지 않으니 집이 마치 호텔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자 남편이 웃으며 대답합니다.

“여보,내가 직장에서 일하는 것은 당신과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니,내가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이 다 당신 시간 아니겠소?” 그러나 이런 대답은 아내에게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아내가 원하는 것은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식사를 같이 하면서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모두 우리에게 주셨지만 하나님과의 특별한 시간을 원하셨기 때문에 주일을 정하신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도 모든 재물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특별한 신앙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작은 것에 현혹돼 큰 것을 잃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
 
인생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길이 있다.
그 길을 아는 사람은 복된 사람이다.
그렇다면 누가 그 길을 알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에게 인생길에 있어 필요한
최선의 정보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최고의 지혜이고,
최고의 지혜자만이 땅을 차지한다.
-김영규 목사의 ‘하나님의 경제비법 7가지’ 중에서-

 

 

 
 
 

 

 

노예가 당신의 주인
 
한 수도사와 왕이 만났다.
왕이 관례에 따라 수행자에게 물었다.
"소원이 무엇이오?"
수행자가 대답했다.
"주인에게 소원을 말할지언정 노예에게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왕이 성을 내었다.
"그러면 내가 그대의 노예란 말인가?"
수행자가 대답했다.
"왕께서는 제 노예는 아니지만 제 노예의 노예입니다. 왕이시여, 저에게는 탐욕과 원망이
라는 노예가 있는데, 그 놈들이 바로 왕의 주인이 아닙니까?"

 

 

 
 
 

 

 

주인이 필요한 사람
 
어쩌면 우리는 지금 <정신적 공황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신의 부재>
는 <존재와 가치의 부재>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한때 해적에게 붙들려 노예
시장으로 끌려간 적이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노예로 팔려가기 위해서였다. 디오게네스는
노예시장에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가 옷을 잘 입고 돈이 많아 보이지만 <정신이 빠진 것>
같은 부자 청년을 보았다. 디오게네스는 해적에게 말했다.



 "나를 저 청년에게 파시오. 저
청년에게는 주인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종과 주인
 
종은 자기를 즐겁게 하는 자가 아니라 주인을 기쁘게 하는 자이다
종은 자기 짐을 가볍게 하려는 자가 아니라 주인을 위하여 무거운 짐을 지는 자이다.
종은 주인을 생각하는 자가 아니라 주인을 따르는 자이다.
종은 자기의 일보다 주인의 일에 우선권을 두는 자이다.
종은 요나처럼 자기 가고 싶은데로 가는 자가 아니라 땅 끝가지라도 주인을 따라가는 자
이다.

 

 

 
 
 

 

 

소녀와 강아지
 
강아지를 파는 가게에 한 어린 소녀가 찾아와서 강아지의 값을 물었습니다.
그 소녀가 가리킨 강아지는 다리를 저는 강아지였습니다.
가게 주인은 이상하다는듯이 "왜 하필이면 다리를 저는 개를 사려고 하니?"
"저도 다리를 다친 절름발이거든요. 이 강아지에게는 많은 사랑과 도움이 필요할 거예요.



저 역시 많은 도움과 사랑을 받았지요. 불구의 몸으로 자라는 것이 보통 힘드는 것이 아니거든요."

주인은 그 이야기를 듣고 그 개를 그 소녀에게 그저 주었습니다.
그 소녀가 그 강아지를 가장 잘 보살펴 줄 주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너무 많은 기사관들
 
세계에서 가장 큰 열차 사고는 1994년 1월 3일 스페인의 레온에 있는 엘토로 터널에서 생긴 사고일 것입니다.
500명 이상이 죽은 사고였습니다.
이 열차는 기관차를 앞과 뒤에 달고 달리는 긴 여객열차였습니다.
사고가 난 이날 열차가 엘토로 터널에 들어갔을 때 앞쪽 기관차가 갑자기 섰습니다.

앞 기관차가 섰을 때 뒤 기관차는 터널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후진을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때 앞 기관차가 고장난 것을 바로 잡고 차를 앞으로 끌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동안 두 기관차끼리 의사소통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양 쪽 기관차는 차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얼마 동안 더욱 속력을 냈습니다. 수 백명의 사람들이 터널속에서 두 기관차가 반대 방향으로 줄다리기을 하고 있는 동안 승객들은 기관차에서 뿜어 내는 일산화탄소를 마시고 죽게 된 것입니다.

*적용

차에 탔던 사람들은 기관차가 하나가 아니고 두 개가 있었기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인생에서 어느 길을 가야 할지 방황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께로 가야 할지 또는 그냥 세상에 남아 죄인의 삶을 살 것인지. 이런 방황은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결정을 잘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양쪽을 적당히 절충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단을 함께 섬길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이중적인 삶을 살 수 없다고 경고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마 6:24 전)."

 

 

 
 
 

 

 

두 아들 잃은 랍비부부
 
어떤 랍비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그런데 어느날 그가 외출한 사이에 두 아이가 사고로 죽고 말았다.

그의 아내는 남편에게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일단 그는 두 아들의 시체를 방안으로 옮겼다.한참 후 랍비가 돌아왔을 때 아내는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예전에 어떤 사람이 제게 귀중한 보석 두 개를 맡기고 갔었습니다.그런데 오늘 느닷없이 그가 찾아와서는 그것들을 돌려달라는데 이럴 때는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랍비는 별 생각 없이 쉽게 대답했다.“아니 주인이 달라고 하면 당연히 돌려주어야지” 그제서야 아내는 랍비를 데리고 두 아들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갔다.그리고는 흐느끼면서 이렇게 말했다.“방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놓으셨던 귀중한 보석들을 찾아가셨답니다”

우리는 주인이 아니다.하나님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의 주인이시다.그러므로 주인이신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만족하고 도로 가져가시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살아가자.그리하면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 수 있을 것이다.

 

 

 
 
 

 

 

진열장 안의 보트
 
어린 소년이 많은 시간을 들여서 섬세한 부분까지 잘 조각을 해서 작은 배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 배를 물위에 띄웠을 때 그에게서 빠르게 멀리 흘러가 버렸습니다. 비록 그가 둑을
따라 배를 따라가 보았지만 배를 따라가 보았지만 배를 좇아 갈 수가 없었습니다.



강한 바람과 물
결이 배를 가져가 버렸습니다. 또 하나의 배를 만들려면 얼마나 힘들여 일해야 하는가를 생각할 때
소년은 가슴이 찢기는 듯 아팠습니다.


강 저 밑 쪽에서 한 사람이 이 작은 배를 발견하고 도시로 가지고 가서 상점 주인에게 팔았습니다
. 그런 일이 있은 후, 소년이 시가지를 걸으면서 한 진열장 창문을 통해 그 배가 진열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상점에 들어가 그는 주인에게 그 배는 자기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배에는 자기가 찍어 놓은
작은 표시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표시만으로 그것이 자기 배라는 것을 주인에게 증명해 보일 수는 없었습니다. 상점 주
인은 그가 그 배를 갖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그 배를 사는 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그 소년은 그
배가 너무 갖고 싶기 때문에 그렇게 했습니다.


그가 상점 주인의 손으로부터 그 배를 받았을 때 그는 그 배를 보며 말했습니다.
"작은 배야, 너는 두번째 나의 것이다. 내가 너를 만들었고 또 내가 너를 샀기 때문이다."

 

 

 
 
 

 

 

구경꾼과 참가자
 
올림픽은 참가에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댓 명이 출전하는 나라도 올림픽에 참가한다. 민주주의도 참여에 의미가 있다고 한다. “나라가 나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라”는 케네디의 연설은 민주 시민의 참여정신을 지적한 말이다.


올림픽에서 가장 감격스러운 장면은 폐회식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로 얼싸안고 지구촌의 형제애를 만끽하는 것은 참가를 통해서만 체험할 수 있는 마음의 흐름인 것이다.


사람들은 구경을 좋아한다. 운동경기장은 초만원을 이루고 영상문화의 대중화와 더불어 인간들은 구경꾼이 되어가고 있다. 불구경 교통사고 구경 싸움구경까지 좋아한다.뉴욕타임즈가 뉴욕 병원들의 응급환자 사망 원인을 조사했는데 환자가 응급실에 너무 늦게 실려 오는 것이 중요 원인이고 늦는 이유는 아파트에서 환자를 너무 늦게 발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은 특수한 나라이다. 전 세계의 인종들이 거의 다모여 하나의 나라를 이룩하였다. 언어 관습 종교 문화 음식까지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하나를 이룩했다는 것은 기적이다.각 인종들이 배타적이면 미국의 모토인 ‘다양성 속의 통일’은 불가능하다. 남들의 다른 점을 받아드리는 아량과 복합문화 속에 나도 뛰어드는 참가정신이 있어야 공동의 선을 지향할 수 있다. 한국계도 이 참여의 전통에 동화하여야 미국인이 될 수 있다.


요기 베라 씨의 책에 이란 일화가 나온다. 그가 양키즈 팀의 포수로 활약할 때 한 번은 적군의 타자가 타석에 나와 가슴에 십자를 그었다. 가톨릭 신자인 것이다. 장난기가 많은 그는 “가톨릭의 신도 내가 믿는 개신교의 신도 한 분이시니까 이 경우 하나님은 저 스탠드에 올라가 계시게 하세”하고 속삭였다.



그랬더니 순진한 그 선수는 “신부님 말씀이 성서의 신은 역사에 참가하시는 분이라고 들었네”하고 심각한 낯으로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실상 성육신(Incarnation)의 교리는 신의 역사참여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성서는 방관자와 구경꾼을 꾸짖고 선과 정의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능동적인 참가정신을 고취하고 있다.

미국인도 옛날에 비하면 각종 사회단체 참가율이 낮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한국 사람에게는 배울 점이 많다. 열심 있는 사친회 많은 발렌티어 활동,수많은 비영리단체를 후원하는 생활습관 등은 본받을 정신이다. 인간의 선택은 언제나 두 번 이루어진다. 첫째는 마음의 결정이고 둘째는 몸의 결정이다. 이것이 헌신이라고 불리는 구체적 참가인 것이다.

 

 

 
 
 

 

 

가장 고귀한 손님
 
잠28:9)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빅토리아 여왕은 신앙심이 깊고 선정을 베푼 여왕인데 어느 날 한 과부의 집을 찾아 이렇게 물었습니다. "일찍이 아주머니를 찾아온 손님 가운데 가장 고귀한 손님이 누구입니까?"



 그 말에 대한 답변이 여왕이라는 것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 이 아주머니가 생애의 최고의 손님은 우리 주님이라고 고백을 하면 자기도 그렇다고 하면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그런 기대 때문에 물었는데, 그 아주머니는 "두말 할 것도 없이 여왕님께서 내 생애 최고의 손님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여왕이 실망하여 "예수님이 아주머니를 찾아 주신 것이 아닐까요?" 라고 물었더니, 대답이 "예수님은 손님이 아닙니다. 내 주인입니다. 처음부터 계신 분입니다. 나는 그분을 위해 존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귀를 돌이키다'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고의로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회피하는 것을 말합니다. 귀를 막고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악을 행하고 살면서 자기가 아쉽고 다급하고 필요할 때에는 "주여, 도와주소서." 하고 기도하는 사람의 기도는 응답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을 가증히 여기시고,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막았듯이 하나님께서도 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주인님의 뜻대로 이뤄지기 원합니다
 
어떤 사람이 그의 정원에 대나무를 심었다. 그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몸소 대나무에 물을 주었다
. 때때로 시든 잎이나 벌레 먹은 잎이 보이면 살짝 따주었다. 그는 알뜰살뜰하게 대나무를 사랑했다.

오래지 않아 대나무는 밭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사랑스런 식물로 자랐다. 대나무는 주인의 은혜에 매우 감격하여 항상 어떻게 보답할까 하고 생각했다.


하루는 주인이 대나무 곁에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 사랑하는 대나무야, 이제는 내가 널 사용하려고 하는데 네가 원할는지 모르겠구나"
대나무는 재빨리 대답하였다.



"주인님, 저도 마침 당신이 키워준 은혜에 보답하려고 했는데, 어찌 원하지 않겠습니까?" 주인이 말했다.
"하지만 내가 널 사용하기 전에 땅에서 찍어내어야…" 대나무는 주인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황급히 말하였다.
"아, 주인님! 그건 어렵겠는데요. 여태까지 밭에서 내가 가장 높고 귀했습니다.



 내가 모든 식물보다 크게 자랐기 때문입니다. 이제 주인님이 나를 찍어버려 땅에 가로놓이고 그들 밑에 구부리면, 나는 그로부터 다시는 곤경에서 헤어나는 날이 없을 것입니다.
아, 주인님! 오직 이 일만은 안됩니다." 주인이 말하였다. "그러나 너를 본래의 땅에서 찍어내어 땅에 눕히지 않으면 너를 쓸 수가 없단다. 너는 내가 이전에 너를 재배한 목적이 무엇인지 기억하느냐?"


대나무는 주인의 은혜에 보답해야 하기 때문에 고통을 참으며 주인에게 대답하였다. "주인님 뜻대로 이뤄지기 원합니다." 주인은 곧 날카로운 도끼로 대나무를 찍어서 땅에 눕혔다. 찍을 때의 그 아픔은 비할 데 없었다. 그러나 대나무는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기꺼이 참고 견디었다.

 

 

 
 
 

 

 

두 주인2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어떤 신학교 교수님이 방학을 맞아 즐겁게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에게 "지금 당장 천국에 갈 수 있다면 천국에 가겠느냐, 집에 가겠느냐?"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학생은 "천국에 가기 전에 아무래도 집에 먼저 둘러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과 세상을 저울질하던 무리들에게 하신 경고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대학 입학 시험을 앞둔 자녀는 교회에 보내지 않는 신앙인들, 사업이 잘되고, 일이 잘 풀리면 하겠다고 계속 교회 봉사를 미루는 집사님들, 교회에 와있어도 천국의 소망보다는 아파트 평수를 넓히고 차를 바꾸는 일에 더욱 즐거움이 많은 성도들, 천국과 세상을 저울질 하는 이 모습들이 바로 믿음이 있다고 자부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결코 예수님의 경고의 말씀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일생에 두 주인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영원한 천국과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을 주인으로 삼아야 합니다.

 

 

 
 
 

 

 

나는 노예다
 
나는 표시가 붙은 인간이다.
주님의 표시를 붙인 인간이다.
그러나 의(義)의 노예이지 죄의 노예는 아니다.
또 순결의 노예이지 부도덕한 노예는 아니다.
나는 자유의 노예이지 방종의 노예는 아니다.


주님 나라의 노예이지 군중의 노예는 아니다.
그리고 특별히 주님의 노예이지 부의 노예는 아니다.
이처럼 나는 주님의 쇠사슬에 묶인 노예이므로 주님 사업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
(웨슬리)

엡6:20, 고전9:19, 벧전2:16

 

 

 
 
 

 

 

토기장이
 
사64:8"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 "

한 전도사가 도자기 공장 지대에 사는 한 사람을 방문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젊었을 때는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전도사는 그 집에 도착하여 유리 상자 속에 든 두 개의 좋은 꽃병을 보고 감탄하여 말했습니다.
"야! 참 멋있군요. 아주 귀한 것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얼마면 파시겠습니까?"
주인은 고개를 휘저으며 전도사에게 말했습니다.
"이 세상 돈을 다 준다 해도 저 두 개의 꽃병은 절대로 팔 수 없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몇 년 전만 해도 술주정뱅이에다 노름꾼이었지요. 말하자면 마귀에게 영혼을 맡겨 놓고 다녔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의 권유로 교회의 집회에 참석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쓰레기 더미에서 흙 한 무더기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쓸데가 없어서 버린 것이었지요.



나는 그걸 집에 가져와 반죽을 하고 모형을 만들어 구워 보았습니다. 결국 나는 쓸모 없던 흙으로 두 개의 아름다운 꽃병을 만들었습니다. 그날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도 나를 가지고 똑같은 일을 하실 수 있을 거야!'


그때부터 저는 제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내맡기고 하나님께서 저를 새 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길 바랐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그 쓰레기장의 흙무덤 같은 나를 아름다운 꽃병으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진흙과 같은 우리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신 토기장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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