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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징계 예화모음 35편

by 【고동엽】 2023.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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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의 뜻
 
영적 무감각은 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징계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한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에 허락하신 고통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때마다 나는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그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온갖 죄 가운데 빠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당하는 고통과 죄 사이의 상호 관계성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번 시작하신 것을 성취하시기 전에는 성도에게 가하시는 연단을 결코 완화하시지 않는다. 우리가 복종하기를 거부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징계의 매를 더욱 더하실 뿐이다. 하나님의 최종 목표는 우리로 그 분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하시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당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징계를 체험하고 있는가? 만약 하나님께서 당신의 반역과 불순종의 결과를 당신이 면할 수 있도록 계속 내버려 두셨다면, 당신은 지금 어떻게 되었겠는가?


하나님께서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던 당신의 발걸음을 돌려 그분께로 향하게 하셨다는 사실이 이해되는가? 히브리서 기자의 말처럼 “징계는 당시에는 즐거워보이지 않고 슬퍼보인다.” 그러나 당신이 하나님께 그분의 사역을 완수하도록 맡기고 허락한다면, 당신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의의 평강한 열매를” 거두는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초달치 못하는 자는
 
어느 한 사람은 15살난 중학생 아들이 3번이나 사고를 내어 학교에서 경고장이 와 아버지가 학교로 불려 갔습니다. 이런 경우 아버지는 아들에게 "내 체면이 있으니 좀 봐 달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안됩니다. 그러나 그는 집에 돌아와서 아이를 데려다 놓고 [이제부터 너를 위해서 너도 조금 고생하고 나도 조금 고생하자]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3일동안 금식 기도를 하고 와서 아들과 같이 기도하고 매를 때린 후 또 기도하기를 [하나님, 제가 이 아들을 잘못 키웠습니다.


기도도 등한히 하고 잘못 가르쳤으며 나쁜 성격을 유전시킨 것을 회개합니다. 앞으로 이 아이를 위해서 더 가르치고 기도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라고 회개하며 기도하였더니 그 아들이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울먹이면서 [아버지, 다시는 그런 일이 안하겠습니다]라고 용서를 빌었으며 그후 그 아이는 절대로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녀들을 훈계하며 잘 양육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자녀들을 초달할 때의 원칙
첫째, 징계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한다는 것을 자녀들에게도 납득시켜야 합니다.
어떠한 규율을 정해 놓고 그 법에 순종하지 않을 때에는 징계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을 알려야 합니다.
둘째, 반드시 준비기도를 하고 매를 때려야 합니다.
이것은 특별히 아들들에게 해당되는 것이고 딸들에게는 매를 때리지 말고 다른 벌, 즉 베개를 머리에 이고 있게 한다든가 성경말씀을 어디에서 어디까지 읽으라든가 하는 융통성 있는 방법을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세째, 본인의 동의를 구하고 때려야 합니다.
매를 때로 놓고 아버지에게서 정이 떨어지고 불쾌하게 느껴진다면 매를 때리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매를 때린 후에도 존경심이 생기 도록 기술적으로 교육적으로 해야 합니다.
네째, 분노나 즉흥적인 감정으로 때리면 절대로 안됩니다.
다섯째, 사랑의 원리에 의해 때려야 합니다.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잠13:24)


 

 

 
 
 

 

 

인간의 타락과 징벌
 
아담의 속성과 죄를 짓기 전의 아담의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떠했습니까?

A. 아담의 혜택
아담은 동물의 이름을 지을 수 있었고 하와와의 관계를 인식할 수 있는 이해력과 추리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창 2:19-23). 하나님께서는 또한 그에게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과 그 자신의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하셨습니다(창 2:16, 20, 23).

B. 아담의 도덕적 속성
우리가 타락 전에 아담의 도덕적 속성을 어떻게 묘사하든지 간에, 그가 죄가 없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사실이 일종의 '수동적인 거룩성(passive holiness)'으로 아담이 나쁜 것으로부터 깨끗한 존재였음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아담의 거룩성은 그에게 하나님과의 완벽한 교제를 즐길 수 있도록 할만큼 탁월한 것이었습니다. 아담이 죄를 짓기 전까지 그 하나님과의 교제는 '수동적인 거룩성'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견고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다음과 같은 묘사를 더 선호합니다. "아담은 견고하지 않은(unconfirmed, 왜냐하면 아담은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시험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피조물적인(creature, 왜냐하면 그의 거룩성과 창조주의 거룩성은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룩성(holiness, 왜냐하면 그는 단순히 깨끗한 존재 이상의 의미를 지닌 존재였기 때문이다)을 가지고 있었다."

C. 그의 책무
땅에 대한 통치권을 행사하는 것(창 1:26, 28)이 그의 책무였습니다. 신통치학자들(theonomists)은 모든 종류의 하나님을 반대하는 것들을 철폐함으로, 세계의 모든 구조가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에 놓이게 해야 함을 사람들에게 확증시키기 위해서 '땅에 대한 통치권을 행사하는 것'을 소위 '문화적 사명(cultural mandate)'라고 이해합니다. 개혁주의 학자들은 오늘날 사회의 모든 측면에서 '구약성경의 율법 확립(the establishment of the Old Testament law)'을 강조하지 않는다는 점만 빼고는 신통치학자들과 유사한 이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땅을 정복하라"는 구절이 홍수 이후의 노아 및 노아의 후손들(우리도 포함)에게 주어진 명령이 아닙니다(창 9:1). 더 나아가서 창세기 1:28에 나오는 "정복하라(subdue)"는 단어는 '반죽하다(knead)' 혹은 '밟다(tread)'라는 어근으로부터 온 단어로 사람이 번성할 수 있도록 '땅을 경작하는 것(bringing the earth under cultivation)'을 언급하는 단어입니다. 아담은 땅에 충만하게 될 사람들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땅과 땅의 피조물들을 관리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책무는 아담이 에덴 동산을 다스리고 지키도록 명령받은 것(창 2:15)과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II. 시험

궁극적으로 시험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느냐 혹은 순종하지 않느냐에 관한 시험이었다. 그것을 증명할 수 있었던 특별한 방법은 '에덴 동산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않는 것'에 의해서였습니다. 어떤 의미로 그들이 실과를 먹을 수 있었던 다른 많은 나무들과 비교해서 그들에게 주어진 명령은 '소소한 금지(a minor prohibition)'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의미로 그러한 명령은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느냐 아니면 불순종하느냐를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중대한 문제(a major matter)'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분은 인간이 로봇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III. 유혹자

사단은 현명하게도 그 자신을 드러내어, 즉 하와가 사단을 보고 조심하여 스스로 경계심을 가질만한 상황을 만드는 것 대신에 하와가 친숙하게 생각했던 피조물을 이용했습니다. 그때 하와는 뱀과 함께 얘기했던 내용에 대해서 경계하지 않았습니다.

IV. 유혹

A. 사단의 거짓
거짓은 소중한 것을 제거한 상태에서 가능한 한 진짜의 것과 비슷한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거짓의 아비 사단은 하나님과 같지는 않지만 이전에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야망을 가진 적은 있었습니다(사 14:14). 사단은 자신의 계획이 하나님의 계획과 같지만 온전한 순종이라는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제안을 가지고 하와에게 접근했습니다. 그리고 사단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너무 지나친 제한을 두셨을 것이라는 암시를 심어주었고, 하와는 그 생각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사단은 그녀에게 그러한 제한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그 자신의 계획을 제의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하와가 금지된 실과를 먹는다면 그녀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그릇된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B. 하와의 합리화
사단의 제안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을 때, 그녀는 그 실과가 먹기에 좋아 보이고 아담을 위해 좋은 것을 제공하는 것이 그녀의 아내로서의 책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그들이 즐기도록 그처럼 많은 다른 것을 만드셨다면, 왜 하나님께서 눈에 보기에 아름다운 그 실과를 금지하셨을까?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현명하게 되기를 틀림없이 원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실과를 먹는 것이 바람직하거나 심지어는 꼭 필요한 조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실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백한 명령이 그녀의 마음으로부터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그 나무의 실과를 따서 먹게 되었습니다.

V. 징벌

A. 인간에 대해(창 2:7-13)
1. 옷을 해 입음으로 증명되는 죄책감(창 2:7)
2. 하나님의 낯을 피함으로 증명되는 교제의 상실(창 2:8). 이것은 또한 인간에게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죽음을 동시에 초래했습니다. 죽음은 언제나 분리(seperation)를 의미합니다. 타락 즉시 아담과 하와는 영적 분리를 겪게 되었고, 동시에 그들의 몸은 부패 과정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으며 결국 육체적으로 죽게 되었습니다(롬 5:12).

B. 뱀에 대해(창 3:14)
뱀은 비천한 존재라는 표시로 기어다니도록 정죄 받았는데, 이 사실은 뱀에 대한 징벌이 가해지기 전에 뱀은 아마 똑바로 선 피조물이었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천년왕국에서조차 이러한 모습은 지속될 것입니다(사 65:25). 사실상 타락한 상태의 인간이 생물에 대한 어느 정도의 통치권을 여전히 행사할 수 있도록 모든 생물계도 인간의 타락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롬 8:20).

C. 사단에 대해(창 3:15)
1. 사단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단의 후손(모든 잃어버린 자들, 요 8:44; 엡 2:2)과 여자의 후손(모든 하나님의 가족들) 사이에 적대감이 존재할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인 한 분(예수 그리스도)이 십자가에서 사단의 정수리에 죽음의 타격을 가하지만(히 2:14; 요일 3:8), 반면에 사단은 그리스도에게 고난("발꿈치를 상하게 하다")을 초래할 것입니다. 기독교가 등장하기 전의 유대인들은 창세기 3장 15절에서 희미하게나마 메시야 사상을 받아들였습니다.

D. 하와 및 여자에 대해(창 3:16)
1. 잉태. 하나님은 여자의 잉태하는 고통("잉태와 고통"이 아님)을 더하셨습니다. 어린아이의 탄생에는 이제 고통이 수반되게 되었습니다.
2. 여자는 그녀의 남편을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수고 및 출산의 고통에 대한 보상적 요소라고 이해합니다. 이를테면 출산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녀의 남편에 대해서 깊은 성적인 매력을 느끼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아이를 낳으려는 소원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3. 통치의 질서. 죄악된 세상에서의 질서의 필요성 때문에 여자는 남자에 의해 다스려질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이러한 질서를 철폐하지 않습니다(고전 11:3; 14:34; 엡 5:25-25; 딛 2:3-5; 벧전 3:1, 5-6).

E. 아담 및 남자에 대해(창 3:17-24)
1. 땅에 대한 저주. 땅은 아담의 죄 때문에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땅은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되었고, 땅의 소산을 얻기 위해서 아담은 더 많은 수고를 해야 했습니다. 타락이 있기 전에 아담에게 있어서 노동은 즐거운 것이었고 만족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제는 어렵고 공허한 것이 되었습니다.
2. 죽음. 아담과 인류는 죽어서 땅의 흙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3. 추방. 아담은 에덴 동산으로부터 쫓겨나게 되었는데 그러한 모습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다는 사실을 지리적이고 영적인 상징으로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VI. 참고할 내용

위와 같은 특별한 징벌과 더불어, 아담과 하와의 죄에 대한 두 가지의 중요한 내용이 지적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모든 죄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하와의 죄는 아담에게 영향을 미쳤고, 아담의 죄는 모든 인류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들과 관련되지 않는 상태에서 완전히 개인적으로 죄를 지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혹은 하지 못하는 모든 일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소수 혹은 다수의 사람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둘째, 죄는 한 번 범해지면 결코 되돌려질 수 없습니다. 용서는 이루어질 수 있고, 교제는 회복될 수 있으나 역사는 변해질 수 없고 삭제될 수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한 번 추방되면 에덴 동산으로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두 가지 참고사항에 대한 또 다른 측면의 내용이 있습니다. 죄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은혜와 선도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삭제될 수 없지만 우리가 역사의 교훈을 잘 배울 수 있다면 미래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타락은 모든 인간에게 영향을 미쳐서 부패와 죽음을 초래했고, 그 타락의 시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더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거하게 될 것입니다(롬 5:20; 요일 2:17).

 

 

 
 
 

 

 

징계의 복
 
신 8:5-6

한 목회자에게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둘째아들이 중학교 3학년 때 주일에 교회에 가지 않고 친구들과 강으로 놀러갔습니다. 저녁이 되어 불안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채찍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종아리를 때리면서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나는 네가 일류대학에 가고 출세해서 돈 많이 벌기를 바라지 않는다. 하나님 사랑하고 믿음을 지켜 신앙의 자식이 되기를 더 원하고 있다. 왜 거룩한 주일을 우습게 여기느냐?” 종아리를 맞던 아들은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 후 그 채찍은 아들의 신앙과 장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 변호사가 된 그 아들은 모범적인 가정을 이루었고 교회에 훌륭하게 봉사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채찍에 대한 분명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사무엘하 7장 14절에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벌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하시면서 채찍 없는 인생은 불쌍하게 된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채찍으로 그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십니다(히 12:6). 우리가 진정 영혼을 사랑한다면 채찍을 들어야 합니다. 채찍은 아프지만 하나님은 그 은총을 빼앗지 않습니다(삼하 7:15). 영혼을 때리는 채찍은 바로 내 자신에게 먼저 필요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부자는 자기 영혼에 대해 채찍을 들지 않았습니다. 그 영혼은 저주 받았고 음부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채찍 없는 세대는 영적 암흑입니다. 채찍 없는 엘리 제사장과 그 아들들의 방자함이 제사장 가문을 망하게 했듯(삼상 2:34) 영혼을 때리는 채찍을 통해 구원과 생명의 존귀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진정 영혼을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채찍을 드십시오.

한 사형수가 형장에서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그의 어머니를 불렀습니다. 사형수는 어머니의 귀에 대고 “내가 이렇게 사형수가 된 것은 어머니 때문이에요. 당신이 내가 잘못할 때 한 마디라도 꾸짖었다면 이 지경까지는 되지 않았을 텐데”라고 말하고 어머니의 귀를 물어버렸습니다.

외아들인 자식이 나쁜 짓을 할 때 그 어머니는 채찍을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아들은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사형수가 되고 만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채찍이 있는지요? 방자하게 행할 때 꾸지람이 필요하고 오만해질 때 채찍이 있어야 합니다. 미국 속담에 “매를 아끼면 자식을 버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 속담에는 “예쁜 자식 매로 키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가 야단칠 때 ‘네, 알겠습니다. 잘못했습니다.’ 하고 뉘우치는 자녀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야단친다고 대들고 거역하는 자녀들은 학교에서 선생님께 대항하고 사회에서도 법을 지키지 않아 실패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부모에게 순종하고 선생님께 순종하고 사회에서는 직장상사에게 순종하고 법을 잘 지키는 사람은 훌륭한 인물이 됩니다. 성공적인 삶을 삽니다. 더 나아가서 부모에게 효도하는 효자가 됩니다.

어렸을 때부터 엄하게 키워야 성공하고 효자가 됩니다. 부모보다 키가 커지면 그 때는 늦습니다. 초등학교 때 길을 잘 들어야지,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 이미 늦은 것입니다.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잠13:24)

 

 

 
 
 

 

 

잘될 때 근신하라
 
신실하게 신앙 생활을 하는 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주일이면 부부와 어린 아들 세 식구가 교회의 맨 앞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리고 열심히 봉사했습니다.
하루는 그 가정의 남편이 목사님께 승진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그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했고, 드디어 그는 승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승진을 하고 재산이 점점 늘어나면서 교회에서 그 가족이 앉던 예배 좌석이 가끔 빈 자리가 되곤 했습니다. 그러더니 결국에는 아예 주일 예배에 불참했습니다. 목사님이 심방을 해서 알아보았더니, 그들의 말인즉 조용한 호숫가에 별장을 한 채 샀는데 주말이면 그곳에 가서 수상 스키를 타기 때문에 주일 예배에 참석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불과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아들이 호수에서 수상 스키를 타다가 물에 빠졌는데 그 순간 쏜살같이 지나가던 다른 보트에 받쳐 그만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귀한 아들을 졸지에 잃고 크게 낙심한 그들은 그때서야 비로소 다시 교회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 식구가 나란히 앉았던 자리에는 이제 두 부부만이 앉아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탐욕에서 돌이키지 않는다면 재앙은 속히 임합니다

 

 

 
 
 

 

 

바늘 도둑이
 
어느 바닷가 조그만 마을에 한 어린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날마다 바닷가에 나가서 놀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소년은 물새알을 발견해 그것을 양쪽 호주머니에 넣고 얼른 집에 돌아와 어머니께 보였습니다. 소년의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물새알을 맛있게 요리해 주었습니다.
다음 날도 소년은 바닷가에 나갔지만 이제는 노는 것에 더이상 관심이 없고, 하루 종일 물새알을 찾아 헤맸습니다.

하루는 물새알을 못 주워 힘 없이 집으로 돌아가는데, 어느 집에서 ꡒ꼬꼬댁ꡓ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암탉이 알을 낳고 우는 소리였습니다. 소년은 물새알 대신 이번엔 달걀을 갖고 돌아왔습니다. 어머니는 또 말없이 그것을 요리해 주었습니다.

다음 날부터 소년은 바닷가로 나가는 대신 누구네 닭이 알을 낳는지를 살폈고, 그렇게 시작된 소년의 도둑질 버릇은 어른이 되면서 점점 더 대담해지고 규모가 커져 결국 교수대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사형이 집행되기 전 그는 울고 있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제가 어린 시절 물새알이나 달걀을 가져왔을 때 저를 훈계하셨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런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당신의 자녀를 하나님께 드렸습니까? 아니면 당신이 소유하고 있습니까?

 

 

 
 
 

 

 

사랑의 징계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숭배로 하나님을 반역하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징계를 내리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변화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서 치욕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우리를 사랑하시되, 우리의 가증스러운 반역에 대해서는 엄중한 징계로 다스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된 우리가 불신의 세상과 함께 정죄당하도록 방치하지 않으시고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온갖 가증스러운 행위들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답게 살아가야겠습니다.

 

 

 
 
 

 

 

책망과 회개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 (잠 29:1)

몇 년 전, 어떤 여자가 죽을병에 걸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그 여자는 이웃에 사는 기독교인에게 이런 맹세를 했습니다."만일 하나님께서 내게 새로운 생명을 허락하신다면 앞으로는 전혀 딴 사람이 되겠습니다. 애들을 교회에 데려가고 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대로 자라도록 하겠습니다"

그 후 그녀는 완전히 회복되었으며 몇 개월 도안은 맹세를 잘 지켜 나갔습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옛날의 생활방식으로 돌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옛 친구와 어울려 차를 몰고 가면서 술을 조금씩 마신 것이 원인이 되어 커다란 교통사고를 내고야 말았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기를 때, 자식이 한 번 잘못했다고 해서 회초리를 들지는 않습니다. 여러 번 책망을 하고 난 다음에도 자식이 그 책망을 무시하고 여전히 자행자지하면, 그때는 회초리를 들고 종아이를 때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오래 참으십니다.

하지만 일단 깨닫고 하시고자 때리시면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리시기 전에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 것이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고 완고하면 파멸의 날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반면 마음이 깨어지고 회개하는 사람은 주님께서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징계의 복2
 
히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

한 어린 소녀가 그녀의 음악 교사에게 피아노를 치면 손가락이 아프다고 말했더니 그 선생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아픈줄은 나도 알지만 손가락이 튼튼해지기도 한단다. "
그래서 소녀는 다음처럼 대답하여 옛 부터 지금까지의 교훈을 요약했습니다.
"선생님, 튼튼하게 만드는 것은 모두가 아픈 것 같군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의 고통을 결코 헛되게 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슬픔 중에서도 당신을 신뢰하는 자들을 매우 사랑하시며 고통의 통로로 다가오는 귀중한 영혼을 강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고통당하도록 허락하시지 않는 한 당신께서 조차 우리를 위해 하실 수 없는 일들이 있으니, 당신께서도 과정이 없이 과정의 결과만을 이루실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 속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합니다! 제 궤도를 운행하는 별들이 그를 위해 싸우고 부는 바람마다 그의 닻을 부풀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가치한 영혼에게 시련을 주시지 않습니다.
오늘도 징계의 사랑을 깨닫고 인내로서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빌리 그래함의 딸
 
빌리 그래함에게 안네 로츠라는 큰 딸이 있습니다. 이 딸은 지금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 주 랄리시에 살면서 성서연구 지도자로 수고하고 있는데, 이 딸의 어렸을 때 이야기입니다. 잘못을 저질러서 어머니 루스 여사가 매를 드니까(빌리 그래함 목사의 가정 교육은 엄격한 것으로 소문나 있고,

이렇게 엄격한 가정교육 덕택에 지금은 가족 모두가 전도 사역에 동참하고 있읍니다)안네는 얼른 “엄마.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고 내 안에 마귀가 있는데 그 놈이 잘못하게 했어.”하고 둘러대더라는 것입니다.

어머니 루스 여사는 “오. 알아. 그래서 나는 그 마귀를 쫓아내려고 하는 거야.”하면서 회초리로 딸을 때렸습니다. 두 시간 뒤에 딸이 또 잘못을 저질러서 루스 여사가 매를 드니까 딸은 얼른

“엄마. 마귀란 놈이 벌써 내 속에서 밖으로 도망갔어.”
하더라는 것입니다. 루스 여사는 하는 수 없이 회초리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딸은 이렇게 애교로 매를 피했지만 우리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서 피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한 심판을 반드시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죄를 숨길 수 없습니다. 민수기32:23에는 “너희 죄가 정녕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고 되어 있고,
잠언28:13에는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느니라”
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릇된 신앙
 
계 3:14-22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계3:19)

얼마 전 TV에서, 최근 성장하고 있는 호주 불교의 실상을 취재한 프로그램이 방영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의 한 주지는 호주 불교의 성장을 그리 환영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절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색적인 동양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건강을 위해 도움이 된다는 심신수양에만 관심이 있을 뿐 정작 불교의 교리나 가르침에는 무관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상은 기독교도 다를 바 없습니다. 절기마다 가득 찬 기도원이나 때마다 호황을 이루는 철야예배는 사업이 번창하고, 건강이 좋아지고 자식이 잘 됐으면 하는, 자기 중심적인 그릇된 신앙의 표현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사람들에게 신기한 마술사 정도로 인식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구속의 참된 의미는 접어둔 채 자기 욕심만 채우려는 이기적인 자들에게서 떠나 있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쓰여지며 천국 복음의 증거들로 제시되었습니다. 혹시 우리의 믿음도 세상작인 복과 이적만을 쫓는 믿음이 아닌지 반성할 때입니다.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빌2:21)

 

 

 
 
 

 

 

요한 웨슬러 어머니 수산나의 징계
 
감리교의 창시자였던 요한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는 모두 19명의 자녀를 키웠습니다. 엄청난 숫자입니다. 그러나 수산나는 그들을 하나같이 신앙적으로 훌륭하게 잘 길렀습니다.
한 번은 수산나가 자기 아이들에게 사과를 하나씩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것은 바구니에 넣어 높은 선반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런데 요한 웨슬리는 더 먹고 싶은 욕심에 의자를 놓고서 어머니 몰래 선반 위에 있는 사과를 꺼내어 훔쳐먹었습니다. 나중에 수산나가 그 사실을 알고서는 요한 웨슬리를 불러다가 따끔하게 혼내었습니다.

그에게 얼마나 매질을 했는지 그의 맞은 자리에서 피가 흐를 정도였습니다. 나중에 요한 웨슬리는 그때 일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그때 내가 어머님께로부터 실컷 매를 맞고 혼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도 지금의 내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지 않으면 성령께서는 탄식하십니다. 더 나아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바른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의 징계는 복입니다
 
신명기 8;1∼6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신 8:5)

어려움을 전혀 겪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고통과 어려움 없이 사는 비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말한다면 그건 보나마나 사이비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삶은 근본적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것이라고 분석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 말씀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정도와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어서 그렇지 어려움은 누구나 있습니다. 어려움이나 고난에 빠지지 않도록 지혜롭게 삶을 관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 어려움을 만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태도입니다. 이런 자세를 가지게 되면 삶이 소극적이고 폐쇄적으로 변합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용기가 사라집니다. 특히 오늘날처럼 변화가 심한 세상에서는 이런 사람은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합니다.

누구에게나 어려움이 있다면 중요한 것은 그 어려움을 어떻게 이해하고 극복해 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의 광야 생활을 해석하는 영적 시각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광야는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곳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광야 생활은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겠습니까. 그러나 광야 생활은 이스라엘 민족의 아버지인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를 성숙시키기 위한 훈련 과정이었습니다. 광야 생활의 이런 의미를 깨닫는다면 그 광야의 훈련은 감사할 조건이 됩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 노력하는 선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독의 고된 훈련을 따라갑니다. 감독이 자신을 금메달 선수로 만들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성도들의 인생에 대해 가지고 계신 계획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움은 그 어떤 것이든 훈련 과정으로 생각하십시오. 아니,생각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습니다. 우리 가정의 자녀들이 삶의 어려운 과정을 신앙적인 시각으로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매와 훈계
 
“말에게는 채찍이요 나귀에게는 자갈이요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니라” (잠 26:3)

황 희 정승에게는 방탕한 생활을 일삼는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는 아들에게 여러 차례 조용한 목소리로 훈계를 했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들은 주색에 빠져 학문을 소홀히 했습니다. 이에 어느 날 밤 황 희 정승은 아들이 술에 취하여 집에 돌아오는 것을 보고 친히 문밖으로 나가 아들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고 맞아들였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매우 놀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님, 어이된 일이옵니까? 의관 속대를 하시고 저를 맞아주시다니요?” 이 때 황 희 정승은 정중히 대답했습니다. “네가 아비 말을 듣지 않으니 어찌 내 집 사람일 수 있겠느냐? 한집 사람이 아닌 나그네가 집을 찾으매 이를 맞는 주인이 인사를 정중히 차리지 않으면 어찌 예의라 이르겠느냐?” 이후 황 희 정승의 아들은 크게 뉘우치고 행실을 고쳐 학문에 정진했음은 물론입니다.

미련한 사람은 아무리 좋은 말로 타이르고 또 타일러도 도무지 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슴 깊이 박힐 정도로 한 번 호되게 훈계를 들으면 정신을 차리고 말을 듣습니다. 미련한 사람은 남의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리며 제멋대로 어리석은 짓만 하지만 사랑으로 온전히 훈계를 한다면 변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때로 사랑의 매도 필요한 것입니다.

 

 

 
 
 

 

 

자녀 징계 8계명
 
1. 약한 마음을 품고 감정적으로 징계하지 말고 자신을 이성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 때에만 징계하라.
2. 미리 징계 기준과 방법을 자녀에게 맞게 고려하여 공평하고 일관성 있게 징계하라.
3. 자녀에게 징계 받는 이유를 납득시킨 후 징계하라.
4. 손으로 직접 때리거나 얼굴이나 머리를 심하게 때림으로써 자녀에게 모욕감을 주지 말라.
5. 아무도 없는 곳에서 징계하라. 많은 사람 앞에서 받는 징계는 심각한 수치심과 모멸감(侮蔑感)을 준다.
6. 징계는 자녀가 잘못을 범한 즉시 시행하라.
7. 징계 후에는 반드시 사랑과 용납의 자세로 자녀를 위로하고 감싸주라.
8. 징계 받았던 일에 대해 자녀가 행동 수정을 했을 때 그에 따른 칭찬과 보상의 말과 행동을 잊지 말라.

 

 

 
 
 

 

 

회복
 
신한은행에 민 씨라는 지점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신한은행 설립위원으로서, 실력이 뛰어난 인정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본 오사카 지점으로 발령을 받아 해외근무를 하는 동안 실적이 부진하여 철저히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서울에 돌아와서 지점장을 맡게 되었지만, 그곳에서도 여전히 실적이 부진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그 은행에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는 징계의 의미로 금융연수원 파견연수 명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철저히 밑바닥에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 동안은 자기가 잘나고 능력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두 번 실패하고 연수원까지 떨어지자 그는 비로소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실패한 인생입니다. 나는 인생의 밑바닥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교회에 나가서 성경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신한은행 명동 지점장 자리가 나오게 되어, 그는 명동 지점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책상에 앉는 순간 먼저 두 손을 모으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지점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이 은행의 지점장은 하나님입니다. 그러니 모든 일이 주님 뜻대로 되게 하옵소서.”
그는 날마다 새벽 기도를 드린 후에 출근을 했습니다. 그리고 일을 결정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뒤부터 영업 실적이 올라가서 신한은행 전체 300개 지점 중에서 1등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은행에 근무한지 30년 만에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어 은행장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한번 만에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길을 가서 한번쯤 구겨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회복입니다.

 

 

 
 
 

 

 

어머니의 채찍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가문의 성공 비결은 엄격한 가정교육에 있다. 부시 대통령의 어머니 바버라 부시 여사는 ‘훈련소 조교’로 불릴 만큼 자녀들을 철저하게 훈육시켰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

물건은 항상 제 자리에 놓아라. 귀가시간을 엄수하라.” 바버라 여사는 이런 글이 쓰인 쪽지를 자녀들의 방에 붙여놓았다. 한번은 아들 부시가 텍사스 주지사에 출마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자회견을 열어 아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것은 대통령의 아들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출마의사를 당장 철회해야 한다.” 부시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주지사 출마를 포기했다. 세계의 명문가들은 대부분 이런 엄격한 교육을 통해 만들어졌다.
어머니는 최고의 교사다. 어머니의 격려와 채찍이 자녀를 건강한 인격체로 만든다. 자녀에게 무조건 칭찬만 해주어라. 그러면 그 아이는 아주 버릇 없고 이기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

 

 

 
 
 

 

 

네 자식을 징계하라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잠29:17)

어느 날 유명한 부흥사인 무디에게 어떤 여자 교인 한 사람이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범죄해도 하나님은 저를 그대로 놔두시데요. 그러므로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 분이신 것이 분명해요."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무디는 그 여인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부인! 부인은 지금 부인이 스스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왜요? 제가 교회를 얼마나 오래 출석했는데요."

무디는 다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은 당신을 그대로 놔두지 않았을 것이요."
옛말에 '엄하게 키운 자식이 훗날에 효도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식을 키울 때, 잘한 것은 칭찬해주고 잘못한 것은 징계하며, 말로 꾸짖어서는 안되면 채찍으로 때려서라도 바른 길로 가도록 교육 시켜야 합니다.

이렇게 잘 교육시켜 놓으면, 훗날 자식이 장성한 후에 부모에게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올바른 인생의 길을 가며 부모에게 효도하여 부모를 편안하게 기쁘게 해주는 것입니다.
* 묵상: 당신은 하나님과 부모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리스도인입니까?

 

 

 
 
 

 

 

사랑으로 징계하라
 
징계는 부모로서 반드시 행사해야 할 중요한 권리이자 책임입니다. 그러나 이 징계에도 방법과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자녀에게 징계를 할 때는 먼저 시기가 적절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자녀 스스로가 깨닫도록 기회와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때로는 자녀 쪽에서 부모에게 고백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을 믿고 기다려준 부모에 대해 고마움과 신뢰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부모가 개입하여 책망하고 훈계해야 할 때가 되면 이야기를 하십시오. 그러나 장황하게 설교조로 늘어 놓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감정을 절제하는 일입니다. 감정을 드러낸 반응은 아이들에게 거부감을 갖게 합니다. 징계의 기본 원칙과 기준은 성경입니다. 징계는 부모의 개인적인 기준이나 평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경적인 견해와 관점에서 행해져야 합니다.

부득이하게 체벌을 할 때에는 직접 손을 대지 말고 회초리와 같은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녀의 잘못된 행실의 옷을 벗기기 원한다면 따끔한 꾸중과 냉정한 지적보다는 따뜻한 사랑의 표현이 더욱 효과적입니다.

몰아부칠수록 고치려하기보다는 움추러들게 됩니다. 징계가 필요할 때마다 무엇이 진정 자녀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물에 빠진 고양이
 
독립문성결교회 담임이었던 임영재 목사의 전도사 시절 이야기다. 시골 교회에서 밤 설교를 하고 돌아오는데 온 동네가 떠들썩했다. 우물에 도깨비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임 전도사가 우물 안을 들여다보니 파란 불 두개가 깜빡거리고 있었다.

긴 대나무로 그것을 꾹 찔렀더니 ‘야∼옹’하는 소리가 났다. 쥐를 쫓다가 우물에 빠진 고양이었다. 임 전도사는 고양이를 구해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대나무 끝에 그물을 달아 고양이에게 내밀었다. 그러나 고양이는 계속 반항했다.

그대로 방치하면 죽을 것이 뻔했다. 임 전도사는 결국 막대기로 고양이를 쳐서 실신시켰다. 그리고 뜰채에 담아 구출했다. 따뜻한 방에 고양이를 눕혔더니 곧 깨어났다.
하나님은 강퍅한 죄인을 구원하실 때 이 방법을 사용하신다. “너희가 어찌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 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사 1:5)

 

 

 
 
 

 

 

유태인의 교육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벌을 주는 것은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돕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 구약 성서>에서 ‘아이를 그 가야할 길을 따라서 가르쳐라. 그리하면 나이가 들어도 그것을 떠나지 않으리라.(잠언 22: 6)’라고 씌어 있다.아이를 그 가야할 길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 벌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벌은 반드시 한편으로는 애정의 표현이 따라야 한다. 벌로서 끝나 버리면 부모는 권위에 의해서 아이들을 지배하게 되고, 아이들은 그 개성을 자유롭게 나타낼 수 없게 되어 도리어 위축되어 버릴 것이다. 이래서야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수단이 될 수 가 없다.

‘오른손으로 벌을 주면 왼손으로 안아줘라.“하는 유태의 낡은 속담은 벌에는 애정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그 말마따나 유태인은 무슨 도구를 써서 아이들을 때리는 잔인한 일을 하지 않고 흔히 손으로 두들긴다.

 

 

 
 
 

 

 

회초리에 대한 감사
 
옛날에 선비가 제자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길가에 풀뿌레 나무가 서있었습니다. 선비는 그 나무를 보자 공손히 그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히고 세 번 절을 하였습니다. 제자가 이상하여 물었습니다.
"선생님! 도대체 누구에게 절을 하신 것입니까?"
선비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저 나무에게 절 한 것이지"
"왜 나무에게 절을 하십니까?"
선비가 말했습니다.


"이상할 것 없네. 저 풀뿌레 나무는 나에게는 가장 영향력을 미친 스승이라네"
"무슨 말입니까?"
"내가 어렸을 때였지. 내가 망나니로 개판치며 살고 있을 때 아버지가 이 나무를 꺽어서 회초리를 만들었지. 그리고 내 종아리에 피가 나오도록 쳤어. 나는 그 때 아버지를 원망하였지만 결국 이렇게 크게 일하게 되었지. 그래서 나는 이 나무만 보면 그 생각이 나. 이 나무 때문에 내가 바로 살게 되었어

 

 

 
 
 

 

 

꾸짖어주세요
 
역사상 어진 정승으로 으뜸은 '황희 정승'(1363-1452)을 들 수 있습니다. 황희 정승은 남을 꾸짖지 않은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그 이유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망령된 사람은 짐승과 같다. 짐승을 나무라서 무엇하리'라는 맹자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왜냐하면 황희 이후 최고의 인물이었던 김종서와, 훗날 영상까지 된 황수신 에게 만큼은 인정사정 보지 않고 혹독하게 야단을 쳤기 때문입니다. 황희의 눈에는 이 두 사람만 사람으로 보이고 나머지 중생들은 짐승으로 보였을 수 있습니다.

이 나라에 사람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황희 정승과 같은 큰 인물이 없는 것인지, 도무지 쓴 소리를 하는 '어른'이 안보이네요. 국민을 꾸짖을 만한 위치에 있는 분들이 꾸중이나 책망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땅을 치며 통곡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국민을 개나 돼지취급을 하고 있음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나라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꾸지람이 사라진지 오래 되었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은 상전으로 앉혀놓고 비위 맞춰주기에 급급합니다. 아이들을 꾸짖지 않는 다면 그것은 아이들을 짐승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당연히 부모는 짐승을 사육하는 셈이지요.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과 같이 하느니라"(잠3:11-12)

 

 

 
 
 

 

 

사랑의 매
 
잠13: 24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옛날에 작지만 평화로운 나라가 있었습니다. 어느 때부턴가 이웃 나라의 왕 때문에 이 평화스러운 나라에 괴로움이 찾아왔습니다. 이것저것 시비를 걸어오는 것입니다. 평화스러운 나라의 왕은 고심 끝에 젊고 현명한 사람을 뽑아서 사신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사신을 보고 이웃 나라의 왕은 몹시 언짢아하였습니다.

"당신 나라에는 그다지도 인재가 없단 말이오? 수염도 나지 않은 사람을 내게 보내다니..." 젊은 사신은 대답했습니다.

"왕께서 수염의 길이로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하신다는 것을 저희 왕께서 미리 아셨다면 아마도 저 대신 염소를 보내셨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이웃 나라의 왕은 다시는 그 나라를 괴롭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은 이와 같은 지혜입니다.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리면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자 하나님께서는 크게 기뻐하시며 구하지 않은 많은 것까지 더해주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부귀와 행복의 근원이 지혜로부터 시작됨을 잘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땅에는 지혜와 지식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공교육이 무너지고, 사도도 제자도도 없습니다. 그리고 교실은 대학에 들어가는 학원으로 전락해버리고, 학원에서 공부하고 학교에서 잠을 잡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때리면 폭력이고, 학원에서 강사가 때리면 사랑의 매라고 합니다.

무엇 때문에, 왜 이 땅이 이렇게 변했을까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자원은 물이나 땅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숲이나 들판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고 누구도 꺾을 수 없는 마음속에 있는 지혜입니다.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잠29: 15)


어느 날 유명한 부흥사인 무디에게 어떤 여자 교인 한 사람이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범죄해도 하나님은 저를 그대로 놔두시데요. 그러므로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 분이신 것이 분명해요."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무디는 그 여인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부인! 부인은 지금 부인이 스스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왜요? 제가 교회를 얼마나 오래 출석했는데요."
무디는 다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은 당신을 그대로 놔두지 않았을 것이요."
옛말에 '엄하게 키운 자식이 훗날에 효도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식을 키울 때, 잘한 것은 칭찬해주고 잘못한 것은 징계하며, 말로 꾸짖어서는 안되면 채찍으로 때려서라도 바른 길로 가도록 교육 시켜야 합니다.

이렇게 잘 교육시켜 놓으면, 훗날 자식이 장성한 후에 부모에게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올바른 인생의 길을 가며 부모에게 효도하여 부모를 편안하게 기쁘게 해주는 것입니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 (히12:8)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잠29:17)


현대의 많은 교육학자들은 자녀교육에 있어서의 체벌의 문제, 즉 매의 사용에 관해서는 대부분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녀에게 체벌을 가하는 것은 폭력적이며 비인격적이고 비교육적이라 말하며, 오직 사랑으로 끊임없이 인내하는 가운데 자녀를 양육하면 자녀는 올바로 성장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성경의 견해와는 정반대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 말씀은 물론 성경 여러 곳을 통해서 자녀를 채찍으로 근실히 징계할 것을 명하십니다.

"상하게 때리는 것이 악을 없이 하나니 매는 사람의 속에 깊이 드러가느니라"(잠20: 30)
그 사랑많고 인자하신 하나님께서는 왜 처벌을 통한 징계를 명하시는 것일까요? 거기에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문제는 다만 부모들이 체벌을 가함에 있어서 잘못된 방법을 사용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현재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부모에게는 물론 앞으로 부모가 되실 분들을 위해 매의 필요성과 그 올바른 사용 방법 그리고 하나님의 징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사랑의 매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였던 요한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는 모두 19명의 자녀를 키웠습니다. 엄청난 숫자입니다. 그러나 수산나는 그들을 하나같이 신앙적으로 훌륭하게 잘 길렀습니다. 한 번은 수산나가 자기 아이들에게 사과를 하나씩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것은 바구니에 넣어 높은 선반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런데 요한 웨슬리는 더 먹고 싶은 욕심에 의자를 놓고서 어머니 몰래 선반 위에 있는 사과를 꺼내어 훔쳐먹었습니다. 나중에 수산나가 그 사실을 알고서는 요한 웨슬리를 불러다가 따끔하게 혼내었습니다.

그에게 얼마나 매질을 했는지 그의 맞은 자리에서 피가 흐를 정도였습니다. 나중에 요한 웨슬리는 그때 일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그때 내가 어머님께로부터 실컷 매를 맞고 혼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도 지금의 내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루만짐
 
한 번 물면 쇠토막도 부러뜨리는 무서운 입을 가진 사자가 위협을 느끼자 자기 새끼를 입으로 물고 어디론가 달려가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보았습니다.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새끼를 입에 물고 전속력으로 달려가더군요. 그리고 안전한 곳에 도착하여 입을 벌리고 새끼를 바닥에 놓았습니다.

귀여운 사자 새끼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재롱을 피웠습니다.
자신보다 훨씬 큰 동물들도 한번 물면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놓지 않는 그 무서운 사자의 입이 어떻게 그렇게 자신의 새끼를 입에 물고도 상처 하나 안내고 달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사자의 입이 새끼를 어루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루만진다는 것은 부드럽게 감싸안으면서 안전하게 보호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그렇게 어루만지십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무서운 징계가 나를 덮치는 것 같이 보여도 그것이 바로 위험에서 나를 어루만지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겁내지 마세요. 사자의 입 속에 들어갔어도 안전한 것은 사자의 새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도 그것은 사랑의 징계입니다.

 

 

 
 
 

 

 

매를 맞는 이유
 
어떤 사람은 누워먹는 팔자가 좋다고 해서 밤낮 누워먹다가 무량병이 들었다는 것이다. 유명한 의사가 내가 고쳐준다고 가족과 의논하고 박달 망치를 차고 들어가서 사정없이 욕을 한다.
"야 이놈아, 너 돈푼이나 있다고 밤낮 누워먹어? 너는 이 사회에 하루 살아야 하루 해독이요 이틀 살아야 그만큼 이 나라 이 사회에 해독인 기생충 같은 놈이야. 너 같은 놈은 때려 죽여야 한다"고 사정없이 두들 긴다.

무량병자는 마누라를 부르고 자식을 부르나 종무소식(終無消息)이다. 이러다가는 정말 죽겠구나 하고 있는 힘을 다하여 발동하며 일어난다. "야, 이놈이 일어나누나" 하고 다시 후려갈기니 둥싯둥싯 달아나면서 한 번만 살려 주시면 일 잘하겠다고 백배 사죄를 한다.

그래서 무량병 든 놈을 때려서 살렸다는 것이다.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참말 한국 민족이 이렇게
매를 맞고 한국 교회가 많은 매를 맞는 것은 일어나서 일하라는 것이다. 남을 위해 일하는 것은 곧 나를 위함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출처 : 어느 목사님 설교 중에서

 

 

 
 
 

 

 

훈계와 책망
 
잠29:1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

골프 천재 타이거 우즈가 1997년에 20세의 나이로 세계 골프대회에서 우승했습니다. 하지만 코치는 우즈의 스윙 폼이 좋지 못함을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코치는 스윙 폼을 바꾸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에 앞으로 2년 동안은 우승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우즈는 코치의 훈계를 받아들여 당장의 우승을 생각하지 않고 스윙 폼을 고치는 일에 전념하였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2년 동안의 교정훈련을 잘 견디어냈습니다. 드디어 2년이 지난 1999년, 14개 세계 대회에서 무려 10번을 우승했습니다. 그는 코치의 훈계를 받아 들였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심지 않고 거둠은 없습니다. 주님은 심지 않고 거두기만 바라는 자를 게으르고 악한 종이며 무익한 종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미 준 것마저 빼앗아 열심히 장사하여 갑절로 남긴 충성된 종에게 주셨습니다. 달란트 비유에 나온 말씀입니다.

십자가 없는 면류관은 없습니다. 잘못된 습관은 힘들어도 고쳐야 합니다. 책망을 받아 들이냐, 받아들이지 않느냐가 때로는 행복과 불행의 갈림길이 되기도 합니다.

 

 

 
 
 

 

 

징계를 통한 교훈
 
시118:18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붙이지 아니하셨도다(118 :18)

논산에 살고 있는 한 여집사의 간증입니다. 그 집사는 남편의 구원을 위해 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봄날에 아이들이 서울대공원으로 소풍을 가자고 졸랐습니다. 주일에만 쉬는 남편도 함께 가기를 바랐습니다.

한 번만 남편의 부탁을 들어 주면 나중에 교회에 이끌기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딱 한 번만 주일성수를 접어두고 가족이 함께 과천 서울대공원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입구 부근 모퉁이에서 커다란 쓰레기 수거차가 달려와 그 집사의 가족을 덮쳤습니다.

목숨을 잃은 사람은 없었으나 그 딸은 오래도록 병원에 있어야 했고, 가족들 모두가 심한 고통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비록 죽음에는 이르지 않게 하셨지만 비싼 대가를 치르고
깨닫게 하신 하나님께 눈물어린 감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사랑하시기에 징계를 하십니다. 만약 우리가 '사생아'라면 징계를 받지 않을 수 있으나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잘못한 일에 대해 징계를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징계의 목적이 우리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유익하게 하고 믿음을 세워 주기 위함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닫는다면 큰 은혜가 될 것입니다

 

 

 
 
 

 

 

체벌의 필요성
 
1973년 어느 학교의 6학년생인 러셀이란 소년이 고의적으로 창밖으로 공
을 던져 그의 선생에 의해 매를 맞았는데 이를 안 소년의 어머니가 체벌금
지를 주장하며 학교 당국에 상대를 고소를 했다.



그리고 2년후 대법원에서
판결이 났는데 공립학교 교사는 부모의 반대가 있더라도 체벌은 가능하다고
했다.



 단 매질은 다른견책수단에 실패했을 때 사용해야 하며 어떤 경우에
는 처벌을 미리 학생에게 통보해야하고 부모의 요구에 설명서신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랑의 징계
 
어느날 유명한 부흥사인 무디에게 어떤 여자 교인 한 사람이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범죄해도 하나님은 저를 그대로 놔두시데요. 그러므로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 분이신 것이 분명해요."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무디는 부인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부인! 부인은 지금 부인이 스스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왜요? 제가 교회를 얼마나 오래 출석했는데요" 라고 부인이 반문하자 무디는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은 당신을 그대로 놔두지 않았을 것이요."

그렇습니다. 징계는 자녀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자녀의 잘못을 그대로 방관할 수 없어서 사랑하는 자녀를 향해서 사랑의 채찍과 매를 듭니다. 그처럼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그대로 방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징계가 올 때, 그것이 해석되고 징계로 확신될 때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매는 아끼지 말아야 한다
 
다섯살 된 한 어린이가 아버지로부터 호되게 매를 맞았다.어린이는 강한 호기심으로 교회의 헌금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훔쳤던 것이다.이 어린이는 그날의 실수를 교훈삼아 평생 단 한번도 남의 것에 손을 대지 않았다.그는 땀흘리지 않고 거액을 벌어들일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그러나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이 사람의 정직성은 갈수록 빛을 발해 미국의 대통령에 당선됐다.그는 대통령 재직시 ‘인기없는 지도자’로 불렸으나 지금은 ‘사랑의 지도자’로 통한다.지금도 주일에는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한다.



또 연장가방을 들고 전세계를 다니며 집없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집’을 지어주고 있다.이 사람이 바로 사랑의 집짓기 운동 총재인 지미 카터.

어린 시절,부모의 따끔한 질책이 헌금을 훔친 이 어린이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매를 아끼면 자녀를 망친다.단 그 매 속에는 반드시 사랑이 담겨 있어야 한다.

 

 

 
 
 

 

 

매맞는 것을 감격스러워 하라
 
아이들은 부모들에게 매를 맞을 경우 자신의 부모들이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부모들이 매를 드는 것은 자식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하기 때문인 경우가 더 많습
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법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는 나쁜 일들을 통해서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도 합니다.
만일, 당신이 원치 않는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저를 좋아하시
지 않는군요."하고 말하기 전에 "하나님,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하기를 바
라십니까 ?"하고 겸손하게 주님의 뜻을 물으시기 바랍니다.



만약 당신이
그렇게 하신다면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최상의 것으로 인도하기 위해
세밀하게 간섭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감격에 찬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꾸중보다는 격려가 낫다
 
"무릇 더러운 말을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 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 엡 4:29.

"온량(溫良)한 혀는 곧 생명나무라도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 니라" - 잠 15:4.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 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 히 3:13.

어느 교회에서 성찬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목사가 한 소년에게 성
찬식에 쓸 포도주를 가져오라고 시켰습니다. 그런데 그 소년은 너무 긴
장한 나머지 그만 포도주가 담긴 병을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화가 난
목사는 조심성 없는 아이라고 소년을 호되게 야단쳤습니다. 그 일 이
후로 그 소년은 더이상 그 교회에 출석하지 않았으며, 결국 하나님에
게서 멀어졌습니다. 다른 교회에서도 그와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러나 그 교회 목사는 소년을 야단치는 대신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
다. "네가 너무 긴장해서 포도주를 엎질렀나 보구나. 너무 당황해 하지
마라. 하나님은 네 마음을 잘 아신단다.



하나님 일을 하는 데 긴장하는
걸 보니 너는 커서 훌륭한 목사가 될 것 같구나" 훗날 그 소년은 정말로
훌륭한 목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꾸중은 잘하지만 격려는 잘 못합니
다. 그러나 사람들은 꾸중 대신 격려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이왕이면
격려를 하십시오.
사랑 담긴 격려는 나약한 한 사람을 위대한 지도자로 만들 수 있습니다.

 

 

 
 
 

 

 

징계(견책)하라
 
북극 탐험대의 한 사람인 존 프랭클린은 어느 날 눈과 빙산 사이에서 추위에 떨며 잠든 일행을 보았습니다. 탐험 대장은 30분이 지나면 의식이 없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을 깨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얼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얼마간 쉬기를 원할 따름입니다."

30분이 지나자 그들은 잘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탐험 대장은 그들을 치고 때렸습니다. 그들은 오두막 안으로 비틀거리며 들어갔고 살아났습니다. 그들을 때린 손이 그들을 구해 낸 손이 된 것입니다.


건방지고 으스대는 사람은 징계를 받아도 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 따라다니던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가 징계 받는 것을 보고 정신을 차립니다. 한편 명철한 사람은 잘못했을 때 굳이 징계까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금방 깨닫고 잘못을 고치기 때문입니다. 지혜롭게 명철한 사람이라 해서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사람은 꾸짖으면 빨리 알아듣고 바로 돌이킬 뿐 아니라 이전보다 더욱 지식을 얻고 지혜로워 지는 것입니다.

거만한 자를 때리라 그리하면 어리석은 자도 경성하리라 명철한 자를 견책하라 그리하면 그가 지식을 얻으리라?"

 

 

 
 
 

 

 

백성을 신칙 하라
 
찬송가 256장은 한국 교회가 즐겨 부르는 노래입니다.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지러운 세상 중에 곳곳마다 상한 영의 탄식소리 들려온다…”
일제 치하에서 한국 교회의 찬송가는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일제의 정책에 반대되는 내용의 찬송가를 삭제하고 사용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해방 2년 뒤인 1947년에 우선 급하게 임시로 펴낸 찬송가에는 256장의 가사가 이러했습니다.

“눈을 들어 산을 보라 만신초목 욱였구나. 곳곳마다 가시덤불 굴어있는 해골 떼라. 재목 없어 집 못 짓고 살 곳 없어 방황하는,맹수 밥이 되는 영혼 주의 종아 어이 할꼬”
해방 후 나라의 피폐한 모습이 눈에 선하지요. 그러나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와닿지 않는 시대 지난 표현들로 금방 눈에 띕니다.


신학을 처음 공부할 때 어느 교수님이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본문을 가지고 ‘돌격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실감나게 설명한 일이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쓰고 있는 개역 성경이 ‘참 재미있는 말로’ 번역해 놓았다고 했습니다. 출애굽기의 이 부분을 읽으면 늘 그 생각이 납니다. 얼마나 재미있고 또 실감나는 표현인지 모릅니다. “나 여호와가 그들을 돌격할까 하노라”(22·24절). 백성이 경계선을 넘는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돌파’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젊은 세대 가운데 신칙(申飭)이란 말을 쉽게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신칙은 ‘단단히 타일러 경계하는 것’을 말합니다. 개역개정판 성경을 보면 21절이 훨씬 쉽게 이해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을 경고하라. 백성이 밀고 들어와 나 여호와께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



성경은,찬송가도 그렇지만 시대가 바뀌게 되면 또 새롭게 번역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쉽고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고쳐 옮겨야 합니다. 중세를 흔히 암흑시대라고 합니다. 성경 말씀이 묻혀있었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이 그 어두움을 걷어냈는데 개혁자들이 성경을 당시 평범한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사랑하여 읽고 묵상하는 사람은 빛 가운데서 살아갑니다.

출애굽기 19;20∼2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을 신칙하라 백성이 돌파하고 나 여호와께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출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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