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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곽선희 목사 설교

믿음의 사람 모세(히브리서 11장 24절~32절)

by 【고동엽】 2023.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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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사람 모세(히브리서 112432)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뿌리는 예를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내가 무슨 말을 더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최근, 뉴질랜드의 북쪽에 위치한 그레이트 베리어(Great Barr-ier)섬 해안에서 무려 140여 마리의 고래가 급히 헤엄쳐 뭍으로 올라오더니 다시는 바다로 들어가지 못하고 집단자살 하는 소동이 있었습니다. 이 희한한 사건을 놓고 전문가들이 연구를 해보았습니다. 그 연구 결과는 이렇습니다. 고래가 떼를 지어 다니는 데에는 반드시 지도자가 있다고 합니다. 모든 고래는 그 지도자가 인도하는대로 헤엄쳐 다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지도자급의 고래 한 마리가 방향감각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도자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따르고 지도자를 찾아 헤매는 모습을 보시고 "목자 없는 양과 같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자 없는 양"---참으로 불쌍합니다. 누구를 따를 것입니까?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좋은 지도자를 만난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파멸하게 됩니다. 지도자란 미래를 주장(主掌)하는 사람입니다. 미래는 모두 지도자에게 맡겨두고 아무 근심걱정 없이 그날 그날 맡겨진 일에 충실하고 싶은 것이 우리들 백성입니다.

사실 우리 백성이 미래에 대해서 무슨 걱정을 합니까? , 걱정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지도자가 모든 걱정을 다 맡아주고, 그래서 우리는 그저 맡은 일이나 마음놓고 충실하게 해나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안정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함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지도자가 인도하는 길을 믿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도자에게 방향을 제시할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고민이 많은 것은 그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미래를 똑바로 보여주는 지도자, 그 미래를 향하여 우리를 떳떳하게 이끌어갈 지도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시내티(Cincinnati)대학의 총장을 지내다가 지금은 U.S.C대학의 경영학교수로 있는 베니스(Warren Bennis)는 지도자가 지녀야 할 리더십의 네 가지 요소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럴듯합니다. 첫째, 지도자가 되려면 먼저 가이딩 비전(guiding vision)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지도자의 책임은 이 비전을 사실로 승화시키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묻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Where we are going?)"---지도자는 이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합니다. 분명한 방향감각을 가지고, 그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행기를 타보신 분들은 아시겠습니다마는 비행기 안에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세계지도와 비행기가 나타나 실제 비행 모습을 보여줍니다. 지금 당신은 어디까지 왔습니다, 어디로 가고 있습니다, 몇 마일 왔고 앞으로 몇 마일이 남았습니다, 몇 시간을 왔으며 앞으로 몇 시간 지나면 도착할 것입니다…… 이런 것을 계속 보여줍니다. 이렇듯 지도자는, 지금 우리가 어디까지 왔는지를, 이대로 가면 어디로 가는 것인지를 분명하게 제시해주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이런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둘째, 패션(passion)이 있어야 합니다. 정열과 열의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인스피레이션 옵티미즘(inspiration optimism), 즉 낙천적 영감이 필요합니다. 낙천주의가 필요합니다. 지도자는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세계를 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다 망했습니다, 끝났습니다, 잘못됐습니다'라는 소리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소망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에 길이 있습니다. 항상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라야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다 망한다고 해도 그만은 망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 틀렸다고 해도 그만은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항상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우리를 인도하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이때문에 지도자에게는 열의가 있어야 합니다. 미래로 향한 열의와 정열이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세째, 인테그러티(integrity)---성실성이 필요합니다. 자기자신에 대해서 성실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기본적으로 알고, 그리고 솔직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시인할 줄 모르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엄청난 실수를 할 것입니다.

사실을 인정하는 솔직한 마음이 우리에게 신임을 줄 수가 있습니다. 이렇듯 성숙된 인격, 그것이 바로 성실성입니다.

네째,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추진력이 필요합니다. 위험을 무릅쓰는 용기, 미경험지를 향하여 백성을 인도하는 용기, 모든 어려움과 고난을 극복하는 용기를 갖춘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모세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학자도 아니요 부자도 아니었습니다. 또한 특별한 경험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직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보고, 믿음으로 알고 믿음으로 선택하고, 믿음으로 결단하고, 믿음으로 백성을 인도했을 뿐입니다. 400여 년 동안이나 노예생활을 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고, 그 거친 광야 40년을 거쳐 그들을 가나안땅으로 인도했습니다. 실로 위대한 역사적 지도자 상입니다.

모세에게서 우리는 용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개인적인 안일을 거절하는 용기를 가졌습니다. 믿음으로 거절했습니다. 그는 바로의 궁전에서 성장했고, 공주의 아들이라고 하는 명예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전설에 따르면, 왕은 마침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모세를 양자로 입적시켜서 장차 애굽의 왕으로 삼으려 했다고 합니다. 대 이집트제국의 왕이 될 수 있는 명예와 권세가 그의 눈앞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것을 거절했습니다. 모세는 안일과 자기 자신에게 오는 향락을 거절하는 용기를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그 무거운 사명을 감당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우리가 목마르게 필요로 하는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모세는 개인적인 부족함이나 자기 허물, 그리고 과거의 좌절 같은 것을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극복할 수 없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세상 어디에 성자가 있으며, 또 있다고 한들 그 무슨 교만이겠습니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자기 허물과 부족을 겸손하게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극복하는 데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내라고 하셨을 때, 그는 자신의 부족함과 서툰 언변을 들어 자꾸 사양했습니다.

이를 두고 하나님께서 사람의 입을 지은 자가 누구냐, 왜 이렇게 말이 많으냐고 책망하십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애굽으로 가라 명하십니다. 그 때 모세에게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사람을 죽이고 도망나온 사람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그것을 모르실 리가 있습니까? 어쨌든 그는 이 말을 하고 싶지만 차마 하지는 못합니다. 그는 도망해서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의 은둔생활을 한 사람입니다. 살인을 범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입은 신세와 은혜를 모두 저버린 사람입니다. 이런 그가 어떻게 다시 바로의 궁전을 찾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자신의 부족함과 좌절과 지난날의 모든 허물을 오직 믿음으로 극복했습니다. 마침내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모세는 자기 사랑을 버리고 백성을 사랑한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백성을 사랑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면서 노예성품과 노예체질에 아주 젖어버린 백성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을 인도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인도하는 가운데 그들의 원망과 불평이 얼마나 많았는지는 성경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인도하면서 얼마나 고생을 했겠습니까? 심지어 그들은 모세가 산에 올라가 하나님과 만나는 잠깐의 시간도 견디지 못해서 금송아지 상을 만들어 신으로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백성을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32:9, 10)." 이에 대하여 모세는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아룁니다.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땅에서 인도하여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32:11)?" 그리고 기도합니다.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주옵소서(32:32)"---이 백성을 멸망시키실 것이면 차라리 나를 죽여달라고, 생명을 걸고 기도합니다. 모세가 이렇듯 백성을 사랑함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진노를 거두셨습니다.

2차대전 당시 수많은 미국의 젊은이들이 이슬과 같이 사라져갔습니다. 전쟁 준비가 없이 일본의 도전에 대응하려니 많은 군인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을 보충병으로 소집하게 되었습니다. 영장을 받은 젊은이들은 소집에 응하여 훈련소로 나왔습니다. 그들은 기차역에 모여서 기차를 타고 훈련소에 가서 잠깐 훈련을 받고 일선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국민들에게 너무 근심을 끼칠까봐, 소집된 젊은이들의 이동은 항상 밤을 이용해서 실시했습니다. 추운 겨울의 어느날 밤, 그날 밤도 소집된 젊은이들이 밤기차를 타고 떠날 참인데, 허름한 옷차림의 한 노인이 역에 나오더니 더운 차를 만들어 젊은이들에게 나누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날부터 노인은 하루도 빼지 않고 그 일을 되풀이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어느날, 그 노인을 알아본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 노인은 바로 루스벨트 대통령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젊은이들을 일선으로 내보내면서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위장을 하고 밤마다 나와서 젊은이들에게 뜨거운 차 한잔씩을 대접했던 것입니다. 그는 이렇듯 국민을 사랑하는 지도자였습니다. 우리에게도 백성을 이용하는 지도자가 아닌, 백성을 위하여 사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은 모세의 사람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25)"---여기서 우리는 백성과 함께 고난당하는 것을 더 즐거워하는 사람, 그런 가치를 지닌 사람으로서의 모세를 엿볼 수 있습니다. 전쟁준비를 해놓고 돌격의 때를 기다리는 장군이 있습니다. 이제 내일 아침이면 전쟁이 시작됩니다. 수많은 병사들이 희생될 것입니다. 잠을 이룰 수 없이 초조해서, 그는 막사를 나와 군영을 돌아봅니다. 밖에 젊은 보초병이 서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물어보았습니다. "지금 기분이 어떤가?" "초조하고 두렵습니다, 장군님." 장군이 말합니다. "그렇다면 나와 좋은 짝이 되겠네. 나도 초조하거든. 나도 불안해. 자네, 나하고 산책이나 하면서 이야기 좀 나누세." 초조하고 불안하다고 말하는 병사를 책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군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나도 초조하거든'---이 한마디의 말이 병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아랫사람과 고난을 함께하는 사람, 기꺼이 그렇게 하는 사람이 참된 지도자입니다.

잠시 낙을 누리는 것보다 영원한 것을 추구하고, 죄악을 누리는 것보다 의로운 고생을 선택하는 바른 결단의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본문은 깨우쳐줍니다. 처칠(Churchill. Winston)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도자로, 11년 동안이나 영국 수상직을 역임한 사람입니다. 후보자들이 선거에 나서서 유세할 때, 백성들로부터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다른 후보들은 '내가 수상이 되면 어떻게 하겠다, 뭘 해주겠다'라고 떠들었습니다. 그러나 처칠 경은 언제나 한결같은 말을 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피와 땀과 눈물을 약속합니다. 여러분에게 피와 땀과 눈물을 요구합니다"---그는 이렇게 해서 백성들의 신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요즘 유세장에서 후보들이 외치는 공약들의 거의가 '내가 당선되면 무엇무엇을 해주겠다'는 내용입니다. 해준다는 것이 누구 돈으로 할 것입니까? 우리가 낸 세금입니다. 그런데 '해준다'고 떠드니 무엇을 준다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쓸데없는 소리들입니다. 누가 약속을 할 수 있습니까? 모두 허상입니다. 몇년 전만 해도 영부인이 종종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찾아가 금일봉을 전해주고, 버스 안내양이나 공원들에게 선물을 주는 모습이 방송에 나곤 했습니다. 그것을 보다못해서 제가 관계자분을 만나 이야기했습니다. 대통령 월급이 도대체 얼마나 되길래 여기저기 금일봉이나 선물을 갖다주느냐, 그것이 모두 국민이 낸 세금이 아니냐, 왜 그 세금을 영부인 개인이 쓰고 다니느냐, 우리 국민이 그렇게 어리석은 줄 아느냐,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말하고 난 다음부터는 안합니다. 여러분, 누가 누구에게 약속을 합니까?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준다는 것입니까? 그것이 누구의 것입니까? 우리는 지혜로워져야만 합니다. 우리 국민은 그런 말이나 들을 정도로 유치하지 않습니다. 잘못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많이 배웠습니다. 더는 허상에 움직이지 말 것입니다.

모세는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왕의 진노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믿고 보이지 않는 땅, 약속의 땅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백성을 인도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사람은 마침내 믿는 바를 보게 된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바로 모세가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약속의 땅을 믿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에게는 두려움도 절망도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택시를 탔습니다. 택시기사는 손님을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무슨 책인가 하고 물어보니 성경책이라고 대답합니다. "그것은 왜 봅니까?"하고 손님이 다시 묻자, "저는 성경을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교리는 뭐요?"라는 물음에 그 기사는 대답합니다. "제 교리요? 간단하지요. 저는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을 전적으로 따릅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그대로 기대합니다." 여러분의 신조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이시요, 하나님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시고 오늘도 우리를 인도하시며, 당신의 지도자를 통해서 역사하실 줄로 믿습니다.

모세는 결코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위대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믿음의 사람이요 믿음의 지도자였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믿음 있는 지도자, 우리의 미래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위탁하고, 안심하고 따라갈 수 있는 지도자가 아쉽습니다.

하나님이여, 우리에게 믿음의 모세와 같은 지도자를 주시옵소서.

여러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느 처지에 있든지 여러분도 이러한 믿음의 지도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 모세(히브리서 112432)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뿌리는 예를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내가 무슨 말을 더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최근, 뉴질랜드의 북쪽에 위치한 그레이트 베리어(Great Barr-ier)섬 해안에서 무려 140여 마리의 고래가 급히 헤엄쳐 뭍으로 올라오더니 다시는 바다로 들어가지 못하고 집단자살 하는 소동이 있었습니다. 이 희한한 사건을 놓고 전문가들이 연구를 해보았습니다. 그 연구 결과는 이렇습니다. 고래가 떼를 지어 다니는 데에는 반드시 지도자가 있다고 합니다. 모든 고래는 그 지도자가 인도하는대로 헤엄쳐 다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지도자급의 고래 한 마리가 방향감각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도자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따르고 지도자를 찾아 헤매는 모습을 보시고 "목자 없는 양과 같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자 없는 양"---참으로 불쌍합니다. 누구를 따를 것입니까?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좋은 지도자를 만난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파멸하게 됩니다. 지도자란 미래를 주장(主掌)하는 사람입니다. 미래는 모두 지도자에게 맡겨두고 아무 근심걱정 없이 그날 그날 맡겨진 일에 충실하고 싶은 것이 우리들 백성입니다.

사실 우리 백성이 미래에 대해서 무슨 걱정을 합니까? , 걱정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지도자가 모든 걱정을 다 맡아주고, 그래서 우리는 그저 맡은 일이나 마음놓고 충실하게 해나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안정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함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지도자가 인도하는 길을 믿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도자에게 방향을 제시할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고민이 많은 것은 그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미래를 똑바로 보여주는 지도자, 그 미래를 향하여 우리를 떳떳하게 이끌어갈 지도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시내티(Cincinnati)대학의 총장을 지내다가 지금은 U.S.C대학의 경영학교수로 있는 베니스(Warren Bennis)는 지도자가 지녀야 할 리더십의 네 가지 요소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럴듯합니다. 첫째, 지도자가 되려면 먼저 가이딩 비전(guiding vision)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지도자의 책임은 이 비전을 사실로 승화시키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묻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Where we are going?)"---지도자는 이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합니다. 분명한 방향감각을 가지고, 그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행기를 타보신 분들은 아시겠습니다마는 비행기 안에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세계지도와 비행기가 나타나 실제 비행 모습을 보여줍니다. 지금 당신은 어디까지 왔습니다, 어디로 가고 있습니다, 몇 마일 왔고 앞으로 몇 마일이 남았습니다, 몇 시간을 왔으며 앞으로 몇 시간 지나면 도착할 것입니다…… 이런 것을 계속 보여줍니다. 이렇듯 지도자는, 지금 우리가 어디까지 왔는지를, 이대로 가면 어디로 가는 것인지를 분명하게 제시해주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이런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둘째, 패션(passion)이 있어야 합니다. 정열과 열의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인스피레이션 옵티미즘(inspiration optimism), 즉 낙천적 영감이 필요합니다. 낙천주의가 필요합니다. 지도자는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세계를 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다 망했습니다, 끝났습니다, 잘못됐습니다'라는 소리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소망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에 길이 있습니다. 항상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라야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다 망한다고 해도 그만은 망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 틀렸다고 해도 그만은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항상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우리를 인도하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이때문에 지도자에게는 열의가 있어야 합니다. 미래로 향한 열의와 정열이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세째, 인테그러티(integrity)---성실성이 필요합니다. 자기자신에 대해서 성실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기본적으로 알고, 그리고 솔직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시인할 줄 모르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엄청난 실수를 할 것입니다.

사실을 인정하는 솔직한 마음이 우리에게 신임을 줄 수가 있습니다. 이렇듯 성숙된 인격, 그것이 바로 성실성입니다.

네째,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추진력이 필요합니다. 위험을 무릅쓰는 용기, 미경험지를 향하여 백성을 인도하는 용기, 모든 어려움과 고난을 극복하는 용기를 갖춘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모세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학자도 아니요 부자도 아니었습니다. 또한 특별한 경험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직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보고, 믿음으로 알고 믿음으로 선택하고, 믿음으로 결단하고, 믿음으로 백성을 인도했을 뿐입니다. 400여 년 동안이나 노예생활을 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고, 그 거친 광야 40년을 거쳐 그들을 가나안땅으로 인도했습니다. 실로 위대한 역사적 지도자 상입니다.

모세에게서 우리는 용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개인적인 안일을 거절하는 용기를 가졌습니다. 믿음으로 거절했습니다. 그는 바로의 궁전에서 성장했고, 공주의 아들이라고 하는 명예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전설에 따르면, 왕은 마침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모세를 양자로 입적시켜서 장차 애굽의 왕으로 삼으려 했다고 합니다. 대 이집트제국의 왕이 될 수 있는 명예와 권세가 그의 눈앞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것을 거절했습니다. 모세는 안일과 자기 자신에게 오는 향락을 거절하는 용기를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그 무거운 사명을 감당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우리가 목마르게 필요로 하는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모세는 개인적인 부족함이나 자기 허물, 그리고 과거의 좌절 같은 것을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극복할 수 없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세상 어디에 성자가 있으며, 또 있다고 한들 그 무슨 교만이겠습니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자기 허물과 부족을 겸손하게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극복하는 데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내라고 하셨을 때, 그는 자신의 부족함과 서툰 언변을 들어 자꾸 사양했습니다.

이를 두고 하나님께서 사람의 입을 지은 자가 누구냐, 왜 이렇게 말이 많으냐고 책망하십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애굽으로 가라 명하십니다. 그 때 모세에게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사람을 죽이고 도망나온 사람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그것을 모르실 리가 있습니까? 어쨌든 그는 이 말을 하고 싶지만 차마 하지는 못합니다. 그는 도망해서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의 은둔생활을 한 사람입니다. 살인을 범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입은 신세와 은혜를 모두 저버린 사람입니다. 이런 그가 어떻게 다시 바로의 궁전을 찾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자신의 부족함과 좌절과 지난날의 모든 허물을 오직 믿음으로 극복했습니다. 마침내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모세는 자기 사랑을 버리고 백성을 사랑한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백성을 사랑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면서 노예성품과 노예체질에 아주 젖어버린 백성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을 인도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인도하는 가운데 그들의 원망과 불평이 얼마나 많았는지는 성경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인도하면서 얼마나 고생을 했겠습니까? 심지어 그들은 모세가 산에 올라가 하나님과 만나는 잠깐의 시간도 견디지 못해서 금송아지 상을 만들어 신으로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백성을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32:9, 10)." 이에 대하여 모세는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아룁니다.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땅에서 인도하여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32:11)?" 그리고 기도합니다.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주옵소서(32:32)"---이 백성을 멸망시키실 것이면 차라리 나를 죽여달라고, 생명을 걸고 기도합니다. 모세가 이렇듯 백성을 사랑함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진노를 거두셨습니다.

2차대전 당시 수많은 미국의 젊은이들이 이슬과 같이 사라져갔습니다. 전쟁 준비가 없이 일본의 도전에 대응하려니 많은 군인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을 보충병으로 소집하게 되었습니다. 영장을 받은 젊은이들은 소집에 응하여 훈련소로 나왔습니다. 그들은 기차역에 모여서 기차를 타고 훈련소에 가서 잠깐 훈련을 받고 일선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국민들에게 너무 근심을 끼칠까봐, 소집된 젊은이들의 이동은 항상 밤을 이용해서 실시했습니다. 추운 겨울의 어느날 밤, 그날 밤도 소집된 젊은이들이 밤기차를 타고 떠날 참인데, 허름한 옷차림의 한 노인이 역에 나오더니 더운 차를 만들어 젊은이들에게 나누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날부터 노인은 하루도 빼지 않고 그 일을 되풀이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어느날, 그 노인을 알아본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 노인은 바로 루스벨트 대통령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젊은이들을 일선으로 내보내면서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위장을 하고 밤마다 나와서 젊은이들에게 뜨거운 차 한잔씩을 대접했던 것입니다. 그는 이렇듯 국민을 사랑하는 지도자였습니다. 우리에게도 백성을 이용하는 지도자가 아닌, 백성을 위하여 사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은 모세의 사람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25)"---여기서 우리는 백성과 함께 고난당하는 것을 더 즐거워하는 사람, 그런 가치를 지닌 사람으로서의 모세를 엿볼 수 있습니다. 전쟁준비를 해놓고 돌격의 때를 기다리는 장군이 있습니다. 이제 내일 아침이면 전쟁이 시작됩니다. 수많은 병사들이 희생될 것입니다. 잠을 이룰 수 없이 초조해서, 그는 막사를 나와 군영을 돌아봅니다. 밖에 젊은 보초병이 서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물어보았습니다. "지금 기분이 어떤가?" "초조하고 두렵습니다, 장군님." 장군이 말합니다. "그렇다면 나와 좋은 짝이 되겠네. 나도 초조하거든. 나도 불안해. 자네, 나하고 산책이나 하면서 이야기 좀 나누세." 초조하고 불안하다고 말하는 병사를 책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군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나도 초조하거든'---이 한마디의 말이 병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아랫사람과 고난을 함께하는 사람, 기꺼이 그렇게 하는 사람이 참된 지도자입니다.

잠시 낙을 누리는 것보다 영원한 것을 추구하고, 죄악을 누리는 것보다 의로운 고생을 선택하는 바른 결단의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본문은 깨우쳐줍니다. 처칠(Churchill. Winston)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도자로, 11년 동안이나 영국 수상직을 역임한 사람입니다. 후보자들이 선거에 나서서 유세할 때, 백성들로부터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다른 후보들은 '내가 수상이 되면 어떻게 하겠다, 뭘 해주겠다'라고 떠들었습니다. 그러나 처칠 경은 언제나 한결같은 말을 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피와 땀과 눈물을 약속합니다. 여러분에게 피와 땀과 눈물을 요구합니다"---그는 이렇게 해서 백성들의 신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요즘 유세장에서 후보들이 외치는 공약들의 거의가 '내가 당선되면 무엇무엇을 해주겠다'는 내용입니다. 해준다는 것이 누구 돈으로 할 것입니까? 우리가 낸 세금입니다. 그런데 '해준다'고 떠드니 무엇을 준다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쓸데없는 소리들입니다. 누가 약속을 할 수 있습니까? 모두 허상입니다. 몇년 전만 해도 영부인이 종종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찾아가 금일봉을 전해주고, 버스 안내양이나 공원들에게 선물을 주는 모습이 방송에 나곤 했습니다. 그것을 보다못해서 제가 관계자분을 만나 이야기했습니다. 대통령 월급이 도대체 얼마나 되길래 여기저기 금일봉이나 선물을 갖다주느냐, 그것이 모두 국민이 낸 세금이 아니냐, 왜 그 세금을 영부인 개인이 쓰고 다니느냐, 우리 국민이 그렇게 어리석은 줄 아느냐,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말하고 난 다음부터는 안합니다. 여러분, 누가 누구에게 약속을 합니까?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준다는 것입니까? 그것이 누구의 것입니까? 우리는 지혜로워져야만 합니다. 우리 국민은 그런 말이나 들을 정도로 유치하지 않습니다. 잘못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많이 배웠습니다. 더는 허상에 움직이지 말 것입니다.

모세는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왕의 진노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믿고 보이지 않는 땅, 약속의 땅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백성을 인도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사람은 마침내 믿는 바를 보게 된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바로 모세가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약속의 땅을 믿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에게는 두려움도 절망도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택시를 탔습니다. 택시기사는 손님을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무슨 책인가 하고 물어보니 성경책이라고 대답합니다. "그것은 왜 봅니까?"하고 손님이 다시 묻자, "저는 성경을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교리는 뭐요?"라는 물음에 그 기사는 대답합니다. "제 교리요? 간단하지요. 저는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을 전적으로 따릅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그대로 기대합니다." 여러분의 신조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이시요, 하나님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시고 오늘도 우리를 인도하시며, 당신의 지도자를 통해서 역사하실 줄로 믿습니다.

모세는 결코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위대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믿음의 사람이요 믿음의 지도자였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믿음 있는 지도자, 우리의 미래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위탁하고, 안심하고 따라갈 수 있는 지도자가 아쉽습니다.

하나님이여, 우리에게 믿음의 모세와 같은 지도자를 주시옵소서.

여러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느 처지에 있든지 여러분도 이러한 믿음의 지도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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