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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인 명설교편◑/이정익목사 명설교(385편)

직업을 통한 섬김의 삶 (5)

by 【고동엽】 2022. 4. 17.

직업을 통한 섬김의 삶 (5)

 

 

 

 

 

 

 

 

                                      3:22-4:1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말

 

 

 

                     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중보사역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성숙한 삶과 원숙한 삶은 중보의 삶입니다. 누구를 위한 삶이고 배려하는 삶입니다. 그 삶을 우리는 중보의 삶이라고 말합니다. 이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진정 행복한 삶은 이렇게 관심을 나누는 삶이고 마음을 나누는 삶입니다. 누군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마음으로 돕고 관심을 나누어 배려하는 삶, 얼마나 소중한 삶입니까. 그때 마음이 따뜻해지고 마음이 풍성해지고 넉넉해짐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그 삶이 행복의 원천인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미국 포틀랜드지역의 교회가 연합해서 연합 부흥회를 가졌습니다. 포틀랜드 지역이 시골이고 조용한 곳이라 영적으로 매우 저하되어 있다고 해서 아주 부담스럽게 부흥회에 임했는데 부흥회 도중에 저녁부흥회를 인도하기 위해서 교회에 가 있는 도중에 호텔방에 도둑이 들어 와서 가방, , 서류, 여권 등 모두를 가져가 버렸습니다. 아주 망연자실했습니다. 순간 이 일을 어쩌나 하고 암담해 했습니다. 이럴 수가 있는가, 수십 년 여행을 다녀보았지만 후진국에서도 없었던 일이 미국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모두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고 내가 도울 길이 없느냐고 물어 왔습니다. 그러니까 집회기간에 모두 더 열심히 기도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때 비로소 내 마음이 놓였습니다. 위로가 되었고 마음이 한결 편안해 졌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살아가는데 이웃이 필요하고 친구가 필요하구나 하고 다시한번 이 중보의 삶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웃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입니까.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이렇게 서로 돕고 격려하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 삶이 중보의 삶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이렇게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관심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방법으로 중보하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직업을 통해서도 중보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 직업을 통해서 함께 살고 더불어 살고 누군가를 위해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직업을 갖고 일하느냐가 참 중요한 일입니다. 여러분은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까. 오늘은 직장 얻기가 참 힘든 시대입니다. 그래서 오늘 젊은이들이 직장을 찾지 못해서 방황 대는 일이 많습니다. 미국도 보니까 이 직장 얻기가 힘들어 주유소에는 의례히 셀프 주유를 하는데 이제는 그것도 없앴다고 합니다. 한사람이라도 더 고용하기 위해서 주유원을 두어 일자리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직장을 얻어도 사람들이 모두 만족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적성에 맞지 않아 만족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지금 직장을 옮기려 하는 사람이 72.6%나 된다고 합니다. 직장이 적성에 맞지 않아 불만족 상태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도 71% 나 된다고 합니다. 사람은 직업을 통해서 중보의 삶을 살고 공헌하고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이 상태로는 만족하게 헌신하고 희생하고 섬김의 정신을 발휘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일을 하되 대부분 대충 적당히 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삶이 얼마나 불행하고 한심한 삶입니까.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은 한 가지 유념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직업을 통해서 섬기고 중보하고 공헌하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직업을 선택할 때 아주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선택한 직업에 대해서 불만족하게 되면 이 정신이 발휘되지 않습니다. 제가 이 목회에 대해서 적성에 맞지 않아 대충 일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그러면 저 자신만 불행한 일이 아닙니다. 나 자신은 물론이고 여러분들도 교회도 하나님께도 불행한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직업을 갖느냐 하는 문제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이 직업을 가지고 일할 때 가져야 하는 정신이 3가지가 있습니다.

 

 

 

 

 

 

 

 

분명한 직업관

 

 

 

 

 

 

 

 

그리스도인은 직업을 선택할 때 두 가지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하나는 살리는 직업을 선택하는 일입니다. 직업에도 세상을 죽이고 사람을 죽이는 직업이 있고 살리는 직업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살리는 직업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직업에 대한 소명입니다. “이 직업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이다“하는 소명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때 내 직업을 통해서 중보의 삶을 살고 공헌하는 삶을 살고 섬김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전4:11절을 보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고 강조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틴 루터는 “모든 직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일을 수행할 때는 마치 “성직 수행하듯이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모든 직업은 신성한 것이고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분깃입니다. 그래서 일을 할 때는 마치 성직 수행하듯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 삶에서 행복이 주어지고 기쁨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지 사명감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라남도 함평에 가 보니까 군수가 30대인데 특히 그 분은 군민의 삶의 향상을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농촌지역을 세상에 알리고 생활의 향상을 위해서 아이디어를 짜 냈는데 그것이 나비축제라는 행사였습니다. 넓은 들에 벼를 베고 난후 자운영이라는 꽃씨를 뿌립니다. 그리고 비닐하우스에서 나비를 양식합니다. 온 들이 자운영 꽃이 만발할 때 양식한 나비를 들에 풀어놓으면 수많은 나비들이 온 들판을 날아다니며 춤을 추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전국에서 그 모습을 보기 위해서 철이 되면 모두 함평으로 모여드는 것입니다. 얼마나 기발한 아이디어입니까. 그렇게 해서 지역을 홍보하고 낙후돼 지역경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게 하기위해서 수고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을 통해서 무엇인가 지역에 도움을 주는 중보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또 미국 그린 우드에 가 보니까 아주 유명한 음식점이 있었습니다. 그 음식점이 유명해지게 된 이유는 그 주인의 특별한 경영철학 때문이었습니다. 그 음식점은 주로 점심식사만 준비하고 저녁 식사는 하지 않는 음식점입니다. 저녁식사까지 준비하게 되면 일이 너무 많아 혹시 식사 준비에 소홀할까 해서 아예 저녁식사는 만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점심식사를 만드는 일에 온 정성을 다 쏟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역 사람들이 그런 음식점이 자기 고장에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 정신이 프로정신입니다. 그러니까 모두 그 음식점을 신뢰하고 믿고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 정신이 섬김의 정신이고 중보의 정신이고 세상을 고치고 치유하는 소망적인 정신입니다.

 

 

 

그 삶은 결국 나에게 만족함과 행복함을 주고 너에게 감동과 신뢰와 믿음을 주는 삶입니다. 그 삶이 내 직업을 통해서 세상에 이바지하고 공헌하고 중보하고 고치는 삶이고 정신입니다. 그 삶이 직업에 대해서 철학을 가진 정신이고 그 삶이 섬김의 정신입니다. 그 삶에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는 삶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라”고 했습니다. 그 정신이 직업에 대한 소명감입니다.

 

 

 

 

 

 

 

 

하나님 창조사역에 동참하는 직업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인간을 통해서 하나님은 역사하시고 일하시고 뜻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당신 스스로 일하시지 않고 미약하지만 인간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전도를 하나님이 직접 하신다면 하루에도 이 세상을 다 이루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무지하지만 나약한 인간을 통해서 전도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이 직접 일하시면 훨씬 효과가 빠르겠지만 하나님은 보잘 것 없는 인간을 통해서 사역하시고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전도를 한다면 그 일이 바로 하나님의 창조의 사역에 동참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직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내 직업을 통해서 정성을 다해서 일한다면 그 일도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동참하는 일이 됩니다. 그리고 그 일은 결국 이 세상을 건강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집을 짓는 사람이 정성을 다해서 집을 짓는다면 우선 집을 정성을 다해서 짓는 자기 자신이 누구보다도 행복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정성을 다해서 지은 집에서 사는 사람이 행복할 것입니다. 그 일은 결국 이 세상을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 됩니다. 그리고 그 삶이 바로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동참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집을 짓는 사람이 집을 짓되 적당히 지어 보십시오. 그러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겠습니까. 우선 자기 자신이 불행할 것입니다. 그 집을 짓는 자체가 행복함이 없습니다. 억지로 집을 짓습니다. 이 일보다 더 불행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그 적당히 지은 집에 사는 사람도 참 불쾌할 것입니다. 비만 오면 물이 새어 들어옵니다. 그래서 집을 매년 고칩니다.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울 것입니다. 그것은 곧 이 세상을 오염시키고 부실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것이 죄이고 악인 것입니다. 세상을 파괴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작은 일입니까.

 

 

 

어느 건축가가 평생 건축을 하다가 정년을 맞게 되었습니다. 사장이 정년을 맞는 그 건축가에게 마지막으로 집 한 채를 더 짓고 퇴직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건축가가 마지막 날 까지 부려먹는다고 불평을 하면서 마지못해 집을 짓는데 아주 부실하게 형식적으로 지어놓았습니다. 그랬더니 사장이 평생 내 회사에서 일을 했으니 선물을 주고 싶은데 당신이 마지막으로 지은 이 집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것이 무슨 자세입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직업에 대해서 소명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말에는 이런 뜻이 들어 있습니다. 집을 짓되 대충 일하고 집을 짓는 일은 나의 인생에도 오점이지만 그것은 곧 세상을 망치는 일입니다. 그래서 집장사가 지은 집을 보면 엉망이고 대충 지어진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니 그 집에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불쾌하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도 망치는 일입니다.

 

 

 

우리는 내게 주어진 직업을 수행할 때 나도 이 직업을 통해서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동참한다는 정신으로 직업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것이 결국은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그 삶이 이 세상을 밝히는 삶입니다. 그 일은 결국 내 이웃을 섬기며 치유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중보의 삶입니다. 그래서 본문을 보면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귀천이 없는 직업

 

 

 

 

 

 

 

 

오늘 우리나라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직업의 귀천을 너무 따진다는 것입니다. 대학을 너무 따지고 직업을 너무 따집니다. 졸업을 해도 취직이 안 될 줄 뻔히 알면서도 인문계 4년제 대학을 고집합니다. 그리고 취직이 잘되는 이공계대학은 기피합니다. 이 풍토가 얼마나 비생산적이고 비능률적입니까.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 같은 고질적인 생각과 풍토에 놓여있습니다. 그러니 그 사회가 건강할 수가 없습니다.

 

 

 

이 고질적인 정신을 타파하려면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모든 직업은 하나님 안에서는 귀천이 없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소명의식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천직의식이 나오고 직업을 통해서 섬김의 삶을 살겠다는 정신이 울어 나옵니다. 이렇게 내 직업을 소중히 여기고 열심히 일하는 그 삶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고 그 삶이 결국 이 세상을 치유하고 고치는 중보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하는 직업관입니다.

 

 

 

어느 청소부가 아침 일찍 청소일 나가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오늘도 이 지구를 청소한다.” 이 정신이 얼마나 고귀합니까. 누가 이런 사람을 향해서 무시하고 우습게 여기며 천한 직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 정신이 바로 소명을 가진 정신으로 이 세상을 고치고 치유하고 중보 하는 삶을 살게 만드는 정신입니다.

 

 

 

 

스타 벅스라는 커피체인점이 있습니다. 워싱턴 주립대학 학생이 교내 커피점을 운영하기 위해서 개발했다는데 이것이 마침내 오늘은 세계적인 유명 체인점이 되었습니다. 이 회사의 정신이 평화, 화합, 한 가족입니다. 그래서 이 회사는 유독 직원 간에, 종업원간에 화합, 형제애를 강조합니다. 이 회사 종업원 가운데 한사람이 1200억원 상당의 복권에 당첨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종업원은 그 당첨금에서 세금을 제외하고 받은 800여억 원을 10등분해서 10여명의 종업원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습니다. 참 쉽지 않은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기자들이 와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 많은 돈을 아낌없이 나누어 줄 수 있습니까.” 그때 이 종업원이 대답합니다. “이 종업원은 모두 내 형제들입니다.” 기자가 또 물었습니다. “이제는 돈을 많이 벌었으니 일할 필요가 없겠네요.” 그러자 이분이 또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이 일은 내게 주어진 천직입니다. 나는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이 일을 사랑합니다.

 

 

 

얼마나 자신만만합니까. 이 자심감은 내가 하는 일에 만족함과 즐거움 그리고 소명감이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이 일이 하늘이 나에게 주신 일이다” 하는 것을 깨달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이 삶이 바로 중보의 삶이고 섬김의 삶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삶에 멋이 있고 행복이 있고 감동이 있고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삶은 엄숙한 것입니다. 그냥 생각 없이 살아가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베드로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런 삶의 사명은 이 세상에 단 몇 사람에게 주어진 특별한 은사이고 사명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부여된 일반적인 삶을 충실하게 살면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의 모습니다. 그 일반적인 삶조차도 내 능력으로는 부족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에만 가능한 삶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 같이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오직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그리하면  주께로부터 상을 받으리라“.

 

 

 

우리는 내 직업을 통해서 중보의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런 정신과 소명감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이 세상을 고치고 다스리고 중보하고 건강한 세상으로 고칠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살아갈 때 나의 삶에 행복감이 주어지고 만족함과 기쁨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삶이 곧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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