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 강 보아스의 선포
룻기 4:9∼10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고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취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 그 이름이 그 형제 중과 그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않게 함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느니라
오늘 본문에는 보아스가 법적인 절차를 마무리짓는 장면이 나옵니다. 9절과 10절에 보아스가 자기가 해야 될 절차를 마무리짓는데, 9절은 기업 무르는 일에 대해서, 10절은 룻을 자기의 아내로 취하는 일에 대해서 마무리를 짓습니다. 본문 뒤에 나오는 11절과 12절에서는 증인들이 보아스가 한 일을 인정해주고, 또 나아가서 보아스의 집과 그 후손들을 위해서 복을 빌어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4:9,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보아스가 장 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 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고."
요즘도 어떤 중요한 회담이 있으면 중대발표를 합니다. 기자들을 다 모아놓고 발표를 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보아스도 중요한 일을 마무리지으면서 "장로들과 또 모든 백성에게" 말합니다. 다른 친족에게 하는 말이 아닙니다. 성문에 앉아 있는 베들레헴의 장로들 10명과 거기에 모여 있는 모든 백성, 방청객들에게 발표를 합니다. 장로들과 방청객들, 베들레헴의 모든 백성에게 보아스가 발표를 합니다. 아주 엄숙하고 또 정확하고 자세하게 지금 이루어진 모든 일들을 선언합니다.
보아스가 선언하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샀다는 것입니다.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산 일과."
엘리멜렉은 나오미의 죽은 남편이고, 기룐과 말론은 나오미의 죽은 두 아들입니다. 엘리멜렉뿐 아니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 그러니까 땅이라든지, 엘리멜렉과 나오미가 살던 집이라든지, 그런 부동산뿐만 아니라 가축과 같은 동산까지도 모두 파악을 해서 무엇이든지 간에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당신들이 증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책임을 누가 진다는 것입니까? 보아스가 지겠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앞으로 이 일에 대해서 시시비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확하고 아주 자세하게, 또 총망라해서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다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오늘날 너희가 증인이 되었고"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에서 증인들은 어제 증인이 된 것도 아니고, 내일 증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언제 증인이 되었다고 했습니까? "오늘날" 증인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구약 성경에 "오늘날"이라고 할 때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엄숙한 의미를 줄 때 "오늘날"이라고 합니다. 옛날 우리 독립선언문이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로 시작하는데 "자에"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이에"라는 말입니다. 특별한 의미는 없지만 엄숙함을 더하기 위해서 "이에," "자에"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문에서도 "오늘날"이라는 말을 넣었습니다.
창 25:31, "야곱이 가로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
이 기사에도 중요한 것을 강조하고 약속이나 계약의 엄숙함 것을 더해주기 위해 "오늘날"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래서 우리말로 번역을 하면서도 그냥 "오늘"이라 하지 않고 "오늘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창 31:48, "라반의 말에 오늘날 이 무더기가 너와 나 사이에 증거가 된다 하였으므로."
창 47:23, "요셉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늘날 내가 바로를 위하여 너희 몸과 너희 전지를 샀노라."
삼상 12:5,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 손에서 아무것도 찾아낸 것이 없음을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거하시며 그 기름 부음을 받은 자도 오늘날 증거하느니라."
이와 같이 "오늘날"이라는 말은 중대발표를 할 때 엄숙하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고"라 하였습니다.
두번째로 선언한 것이 있습니다.
4:10,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취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 그 이름이 그 형제 중과 그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않게 함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느니라."
이 구절은 무슨 말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까? "또." 기업 무르는 일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 뽑기라는 것을 해보셨습니까? 가게에 가서 10원짜리를 하나 내고 뽑기를 합니다. 그러면 껌이 나오기도 하고 풍선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풍선 + 또"라고 나오면 기분이 좋지요. 한 번 더 뽑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라는 말로 시작한 것은, 보아스에게 더 중요한 것은 기업을 무르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실을 룻에게 약속한 것을 이루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룻을 아내로 맞아들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룻기의 다른 곳에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중요한 것이 뒷부분에 나옵니다.
보아스가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내 아내로 취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룻이라고 하지 않고 룻을 두 가지로 설명을 합니다. 첫째로, "말론의 아내"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혼자 있는 과부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모압 여인"이라고 했습니다. 베들레헴 사람이 아니라 이방인이라는 것입니다. 보아스는 정직했습니다.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다 털어놓았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것들은 룻의 약점입니다. 남편 없는 과부이고, 또 이방 여인입니다. 그런 두 가지 약점을 적나라하게 솔직하게 그대로 다 내놓고 이런 여자이지만 나의 아내로 취한다고 선언합니다. 나중에 법적인 문제가 되지 않도록 정확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 약점을 감추려고 애를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직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한 가지를 감추기 위해 또다른 거짓말을 합니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했습니다. 언제나 보아스처럼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진솔하고 솔직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취하고"라는 구절 다음에 중요한 말이 나옵니다.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
자기가 룻을 아내로 취하는 것은 절대로 자기의 욕심을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상상컨대 룻이 아름다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아름다웠다 할지라도 여러분 생각해십시오. 그 가난한 집에서 잘 먹기나 했겠습니까? 제대로 치장이나 했겠습니까? 옷이 날개라고 하는데 의복을 잘 입었겠습니까? 또 모압 땅에서 베들레헴까지 오는 긴 여행에 얼마나 지치고 피곤했겠습니까? 그런데도 바로 이삭을 주우러 밭에 나갔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를 공경하기 위해서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땡볕 아래서 이삭을 줍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습니까?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렀고 손도 거칠어졌을 것입니다. 이처럼 외모는 보잘것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룻을 아내로 취하는 것은 내 욕심을 위해서, 내가 젊은 여자와 즐기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엘리멜렉의 친족으로서 친족을 위하여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친족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참 훌륭한 사람이지 않습니까? 자기의 권리를 생각하기에 앞서서 자기의 책임과 의무를 다 할 줄 아는 참 멋있는 이상적인 이스라엘의 남성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복을 받았겠지요?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는데 두 가지 영역에서 잇게 한다고 했습니다.
4:10 하반절, "그 이름이 그 형제 중과 그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않게 함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느니라."
첫째, "그 이름이 그 형제 중"에서입니다. 만일 룻이 아이를 낳지 못하면 엘리멜렉의 가문은 완전히 이 지방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니까 형제 중에서 계속해서 족보가 이어지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두번째는, "성문에서"입니다. 성문에 누가 앉아 있었습니까? 장로들이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엘리멜렉도 베들레헴에서 유력하고, 또 장로에 해당되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법적인 사회적인 권리가 그대로 이어지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보아스는 다시 한번 엄숙하게 그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 형제 중과 그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않게 함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느니라."
이렇게 해서 그동안 나오미가 그토록 간절하게 열심히 기도했던 제목, 가련하고 불쌍한 자부가 좋은 신랑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던 나오미의 간절한 기도의 제목이 이루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룻의 소원, 즉 자기 어머니를 위해서, 자기 죽은 남편을 위해서 기업을 잇게 해주고자 하는 소원, 그래서 수치를 무릅쓰고 보아스를 찾아가서 그 발치에 누워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라고 했던 그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또 보아스가 룻에게 원하는 것을 다 해주겠다고 했던 약속도 다 이루어졌습니다. 이제야 나오미와 룻이 그동안 겪었던 모든 괴로움을 다 잊어버리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오늘 이 아침에 주님의 무릎 아래 꿇어 엎드려 기도하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도 나오미와 룻처럼 마음에 있는 소망과 기도의 제목이 이제 남김없이 다 이루어지는 놀라운 역사가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감사할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 우리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보아스와 같은 사람이 많이 생기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울러서 우리 주변에 보아스와 같은 인물이 많이 생길 뿐만 아니라 이제 날씨가 무더워지고 있는데 이 무더운 여름철에 보아스처럼 남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청량제가 되셔서 보아스가 받았던 그 놀라운 축복을 남김없이 다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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