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 강 기업 무를 권리를 얻은 보아스
룻기 4:7∼8
옛적 이스라엘 중에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 신을 벗어 그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의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 신을 벗는지라
오늘 새벽에 일어나 하나님 말씀을 잠시 읽고 묵상하는 중에 번개, 천둥이 얼마나 치는지 우리집 막내 아이가 다른 방에서 자다가 일어나 무섭다고 제 방으로 왔습니다. 큰 녀석 둘은 코를 골면서 자고 있는데 막내는 아직 어리고 제일 민감한 모양이에요. 무섭다고 왔습니다. "뭐가 무서워서 그러니?"라고 물었더니, "아빠는안 무서우세요?"라고 되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데 뭐가 무섭냐?"고 했더니 아빠를 아주 존경하는 눈초리로 쳐다보더라구요.
그런 가운데 천둥번개가 얼마나 치는지 불이 다 나갔습니다. 부랴부랴 촛불을 켜서 성경을 보는데 하나를 켜서는 불을 밝힌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3개, 4개의 촛불을 켜고 성경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평소에 전기불이 환할 때는 전기불이 고마운 줄 몰랐는데 전기불이 나가고 나니까 그 귀중함을 이렇게 깨닫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평소에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잘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않습니까? 언제나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을 잊지 말고 늘 생각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져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그 은혜를 잊지 말고 늘 기억하시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시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오미의 죽은 남편 엘리멜렉에게는 두 사람의 친족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보아스고, 또 한 사람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아무개였습니다. 그런데 이 아무개는 자기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해서 자기에게 주어진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책임을 감당할 수 없으니까 권리 자체를 포기했습니다. 그 권리를 보아스에게 넘겼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법적 효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말만으로는 안 됩니다. 절차가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보면 룻기의 기자는 보아스와 아무개라는 친족 사이에 진행되는 대화를 잠시 중단하고 법적 절차를 위해서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관례적으로 행하던 풍습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 풍습은 일을 확정할 때 신을 벗어서 주는 풍습입니다. 그 관례를 설명해주고 8절에서는 의식을 실제로 행한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4:7, "옛적 이스라엘 중에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 신을 벗어 그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의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옛적"이라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룻기의 배경이 된 시대는 룻기 1장에서 보았듯이 사사들이 치리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룻기가 실제로 기록된 시대는 사사 시대가 아닙니다.
4:21,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적어도 보아스와 다윗 사이에 지금 몇 세대가 지났습니까? 보아스 다음에 오벳, 오벳 다음에 이새, 이새 다음에 다윗입니다. 3 세대가 흘렀습니다. 또 룻기에 이미 다윗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왕이었습니다. 왕이 없어서 혼란했던 사사 시대가 아니라 왕이 등장한 이후입니다. 룻기가 기록되었을 때는 왕이 다스리던 왕정 시대입니다. 왕정 시대가 되면서 관습이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왕정 시대에는 법적인 문서가 잘 발달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요즘 우리도 등기 이전이라든지 하는 것들을 다 문서로 합니다. 다윗 시대에는 문서가 잘 발달되어 있었지만 사사 시대에는 문서가 아직 발달되어 있지 않았던 때입니다. "옛적"은 사사들이 치리하던 시대를 말합니다.
그 다음에 지역은 "이스라엘 중에"라 했습니다. 지역마다 관습이 다 다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나서 이를 쑤실 때 어떻게 합니까?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합니다. 그러나 미국 사람들과 식사를 해보니까 그런 것이 없습니다. 가리고 하지 않습니다. 다 보이면서 이를 쑤십니다. 잘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그것을 예의라고 합니다. 대신에 그 사람들은 음식을 쩝쩝거리면서 먹거나 입에 음식을 잔뜩 집어넣고 말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인간 이하로 취급을 합니다. 교양이 없는 사람, 상대 못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입에 음식을 넣은 채 말을 잘 합니다. 나라마다 관습이 달라서 그런 것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방귀 끼는 것을 참 조심스러워 합니다. 방귀 끼는 것이 굉장한 실례가 됩니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 사이에서는 음식을 먹고 트림하는 것을 아주 실례로 여깁니다. 아주 싫어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 가면 유대인도 살지만 아랍 계통의 사람들도 살고 있는데 이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나면 꺼억하면서 트림을 아주 잘 합니다. 제가 하도 이상해서 물어 보았습니다. "트림하는 것은 에티켓에 어긋나는데 그렇게 하느냐?" 그랬더니 아랍 사람이 자기네는 트림하는 것이 건강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건강하니까 트림을 하는 것이랍니다. 건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음식을 먹고 나면 안 나오는 트림을 억지로 한다고 합니다. 관습이 다 틀려서 그런 것입니다.
법적인 효력을 가져야 할 일들이 무엇이 있습니까?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이 법적 효력을 가질 필요가 있는 일들입니다. "무르는 것"은 하나의 사회적인 책임입니다. 친족으로서의 책임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또 "교환하는 일"은 상거래를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사고 팔고 할 때는 주로 무엇을 사고 팔고 하겠습니까? 토지입니다. 또 소나 양같은 가축도 있고, 오늘 본문을 보면 무엇이 해당되겠습니까? 룻과 같은 여자도 해당됩니다. 옛적 이스라엘 중에 땅이든지 가축이든지 여자든지 간에 모든 것을 총망라해서, 다시 말해서 사회적인 책임을 감당하든지, 상거래를 하든지 간에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무슨 일을 했다고 했습니까?
"사람이 그 신을 벗어 그 이웃에게 주더니."
자기 신을 벗어 주는 것이 어떤 일을 처리하고 확정하기 위해서 하는 관습이었습니다. 그러면 신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신 1:36, "오직 여분네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신 11:24, "너희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너희 소유가 되리니."
수 1: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수 14:9, "그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가로되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이 말씀들을 보면 신은 소유와 관련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으로, 발로 밟는다는 것은 소유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을 준다는 것은 소유를 넘겨준다는 뜻입니다.
신을 신었으면 벗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신을 벗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이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출 3:5,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무슨 뜻입니까? 네가 서 있는 곳은 속된 네 소유의 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룩한 땅, 하나님의 땅이라는 것입니다. 신을 벗는 것은 상대방의 소유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소유를 포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일을 확정하기 위해 "사람이 그 신을 벗어 그 이웃에게 주더니"라고 했는데 누가 신을 벗어서 누구에게 주는 것입니까? 본문에서는 아무개라는 친족이 신을 벗어서 보아스에게 주는 것입니다. 자기의 권리를 보아스에게 양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이 구절은 다시 한번 그 의식의 중요성, 엄숙성을 강조해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일을 확증하는 이스라엘의 전례입니다. 그렇게 해야 법적인 효력이 나는 것입니다.
기업 무를 권리를 포기한 친족 아무개와 보아스 사이에 일을 확정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관습을 실제로 행합니다.
4:8,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자기의 신발을 벗는지라."
신을 벗어서 보아스에게 주었습니다.
룻 4:4, "내가 여기 앉은 자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고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그가 가로대 내가 무르리라."
처음에는 무르겠다고 한 가장 가까운 친족이 무르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가까운 친족과 보아스 외에는 더 이상 나오미의 기업을 무를 친족이 없다고 했는데 한 친족이 포기했으므로 오직 보아스만이 기업 무를 자로 남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한 분만이 천국의 기업을 물러주십니다. 오직 한 분 외에는 우리를 구속해 주실 분이 없습니다. 누구입니까?
행 4:12,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 우리를 구원해주실 수 있습니다.
신을 벗어주는 관례까지 다 마침으로써 드디어 그동안 우리가 보아스와 룻을 위해 기도했던 기도가 응답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어떠한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보아스와 룻을 위해서 기도했던 우리의 기도의 제목이 응답되었던 것처럼 이 아침에 여러분의 모든 기도의 제목들이 다 남김없이 이루어지는 놀라운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 24 강 네가 아니면 내가 무르리라 (0) | 2022.04.15 |
---|---|
제 25 강 기업 무를 권리를 포기하는 친족 (0) | 2022.04.15 |
제 27 강 보아스의 선포 (0) | 2022.04.15 |
제 28 강 백성과 장로들의 축복 (0) | 2022.04.15 |
제 29 강 보아스가 룻을 취함 (0) | 2022.04.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