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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0 강 기쁨을 회복한 나오미

by 【고동엽】 2022. 4. 15.

제 30 강  기쁨을 회복한 나오미

룻기 4:14∼17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가 낳은 자로다

 우리 나라에서는 아들을 낳으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합니까? 아들이면 처마 밑에 금줄을 해서 고추를 달고 딸이면 숯을 달아 놓습니다. 이스라엘은 우리와 관습이 다릅니다. 아들을 낳으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창 25:24∼26,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동이가 있었는데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갖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이스라엘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이름을 지어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이름 짓는 것이 먼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름 짓는 것은 17절까지 잠시 뒤로 미루어지고 여기서는 장면이 바뀝니다. 조명이 그동안에는 무대에 등장한 남자 등장인물들을 비추었습니다. 성문에 있던 보아스와 기업 무를 친족, 성문에 앉아 있는 장로들, 또 증인들을 비추었는데 이 조명이 14절에 보면 여인들과 나오미를 비추고 있습니다.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이 여인들이 누구입니까? 나오미가 베들레헴에 왔을 때 "이가 나오미가 아니냐? 동네 사람들이여 나와 보라"고 하며 반가와서 떠들던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때 나오미가 뭐라고 했습니까?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 하라. 내 마음이 심히 괴롭다." 불행해져서 돌아온 나오미를 맞이하던 여인들이었습니다. 그 여인들이 와서 기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친구란 참 좋은 것입니다.
 이 여인들이 기쁜 소식을 듣고 나오미에게 좇아왔습니다. 와서 제일 먼저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아니하셨도다." 누구를 찬송합니까? 여호와를 찬송합니다. 왜입니까? "여호와께서 오늘날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아니하셨도다." 이 여인들은 13절에서 성경 기자가 말했던 것을 그대로 인정합니다.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4:13, "이에 보아스가 룻을 취하여 아내를 삼고 그와 동침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로 잉태케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잉태케 하시고 아들을 낳게 하신 것이 누구라는 것입니까? 여호와시라는 것입니다.
 사실 아기를 낳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1장에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 2장에 룻이 아침 일찍 이삭을 주우러 갔는데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이르러서 보아스를 만나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 또 3장에 나오미가 룻을 위해서 세웠던 계획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도 하나님의 은혜, 또 4장에 보아스가 장로들 앞에서 친족으로부터 모든 권리를 양도받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배후에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 은혜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오늘 이 아침에 이 자리에 나와서 호흡하며 찬미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가  하늘 나라에 가는 그 시간까지 살아가는 것도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렇게 좋은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무엇인가 엄숙한 것을 선포할 때 오늘날이라는 말을 쓴다고 했습니다.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한 말,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아니하셨도다"에서 "기업 무를 자"는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보아스입니까? 아니면 다른 친족이겠습니까? 아니면 이제 태어난 아들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아들입니다.
 4:10,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취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
 이 말씀에 비추어서 볼 때 14절의 말씀은 "죽은 엘리멜렉의 이름으로 기업을 잇게 할 자가 없게 아니하셨도다"는 말과 같습니다. 만일 아이가 태어나지 않으면 엘리멜렉의 기업이 끊어져버립니다. 슬픈 비극을 미연에 막아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오미의 비극을 막아주신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여러분이 당한 어려움, 슬픔, 이 모든 것을 미연에 다 막아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대로 다 이루어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닥칠 어려움을 다 미연에 막아주실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유명이라는 말이 4장에 이미 한 번 나옵니다. 누가 누구를 축복할 때 나온 말입니까? 11절에 보면 증인이 된 백성들과 장로들이 보아스를 축복할 때 나왔습니다.
  룻 4:11,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가로되 우리가 증인이 되노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 집을 세운 라헬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너로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케 하시기를 원하며."
 지금 14절에서는 여인들이 룻이 낳은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해지기를 원한다고 축복했습니다. 그런데 잘 보세요. 11절에 증인들이 보아스에게 유명하게 되기를 원한다는 것과 14절에 여인들이 룻의 아이가 유명해지기를 원한다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4:11, "너로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케 하시기를 원하며."
  4:14,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어느 쪽 스케일이 더 큽니까? 베들레헴이 범위가 큽니까? 이스라엘이 큽니까? 베들레헴은 작은 지역이고 이스라엘은 나라 전체입니다. 스케일이 남자가 큽니까? 여자가 더 큽니까? 여자들이 훨씬 더 컸습니다. 베들레헴이 아니라 이스라엘 중에서 유명하게 되기를 원한다고 축복했습니다.
 실제로 어떻게 되었습니까? 보아스보다도 룻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엘리멜렉의 기업을 잇는 그 아이가 다윗의 조상이 되어서 더 유명하게 됩니다. 축복의 말 그대로 되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스케일이 커야 합니다. 남자들처럼 베들레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 여인들처럼 큰 포부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큰 비젼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15절에서는 나오미가 아이를 통해서 받게 되는 혜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지금까지 나오미는 해결해야 할 아주 어려운 문제가 두 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는 배고픔의 문제이고 또 하나는 끊어진 기업을 이어나가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 두 가지가 한꺼번에 다 해결이 되었습니다. "네 생명의 회복자"라는 것은 한 가문의 끊어진 생명이 이방 여인을 통해서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네 노년의 봉양자"라고 했습니다. 배고픔의 문제가 이 어린아이를 통해서 다 해결이 됩니다. 그 뒤에 중요한 말이 나옵니다.
  "곧 너를 사랑하며."
 누가 누구를 사랑하는 것입니까?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의 근본적인 동기는 사랑입니다. 룻이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 결혼이 있게 해준 것이 어디서 나온다는 것입니까? "내가 사회적인 책임, 가족에 대한 책임을 감당해야지"라는 단순한 책임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동기가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1:16∼17,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룻이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자기 나라, 자기 동족 모압을 떠나 나오미를 따라 낯선 베들레헴으로 왔던 근본 동기가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사랑입니다. 룻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내가 밭에 가서 보리 이삭을 주워오겠습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서, 살 길을 위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어머니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룻이 수치를 무릅쓰고 보아스가 누워 있는 곳을 찾아가 발치 이불을 들고 누웠습니다. 그 근본적인 동기가 어머니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룻이 젊은 사람을 다 제쳐두고 나이든 보아스와 결혼했습니다. 그 근본적인 동기가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입니까? 깊은 애정,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여러분께서 본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을 하든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억지로 하면 안 됩니다.
 여인들이 계속 말합니다.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가 낳은 자로다."
 성경에 일곱이란 수는 완전수입니다.일곱이라는 수가 아들에 관계할 때는 가족 구성상 이상적인 아들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욥에게 아들이 몇 명 있었습니까? 아들이 일곱이 있었습니다. 딸은 셋이었습니다.
 욥 1:2, "그 소생은 남자가 일곱이요 여자가 셋이며."
 삼상 2:5, "유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않도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일곱이란 수는 충만한 수자입니다.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가 낳은 자로다." 룻을 통해서, 그리고 룻이 낳은 아이를 통해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었습니다. 실제로 나오미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두 아들은 기업을 잇게 하지도 못하고,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룻은 다 해결해주었습니다.
 우리 승동교회의 모든 자부들은 일곱 아들보다 더 귀한 자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만일 룻이 없었다면 나오미는 혼자 외롭게 쓸쓸하게 살다가 이름도 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룻이 있었기에 나오미의 이름도 유명해졌고 또 성경에 기록될 수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목사님, 우리 시어머니는 이미 하늘 나라에 가셨어요. 저한테는 사랑하고 공경할 시어머니가 없어요."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5계명을 주실 때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한 것은 부모가 살아 있을 때만 공경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부모가 돌아가셨다 할지라도 우리는 내 생명이 다할 때까지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5계명을 주실 때에는 나이 어린 아이들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어른에게 주신 것입니다. 부모가 돌아가셨다 할지라도 부모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지고, 고마운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너희 할머니, 할아버지는 참 훌륭하신 분이었다고 아이들에게 조상의 좋은 점들을 계속 이야기 해주어야 합니다. 부모님의 뜻, 남기신 유지를 늘 생각해서 아이들에게 "너희들 할아버지가 늘 내게 이러이러한 것을 가르치셨다. 그러니 너도 할아버지의 뜻을 잘 따라라." 이렇게 교훈하는 것이 바로 부모가 돌아가셨을지라도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됩니다.
 내가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부모 공경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에는 계속해서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할지라도 그 시어머니를 늘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시어머니에 대한 좋은 인상, 좋은 생각을 늘 기억하며 살고, 또 주 안에서 좋은 유지를 기리고 그 뜻을 순종할 수 있는 며느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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