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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강 꿈의 해석2(2:39)

by 【고동엽】 2022. 4. 13.

제22강 꿈의 해석2(2:39)

 

2:39-43
왕의 후에 왕만 못한 다른 나라가 일어날 것이요 셋째로 또 놋 같은 나라가 일어나서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며 넷째 나라는 강하기가 철 같으리니 철은 모든 물건을 부숴뜨리고 이기는 것이라 철이 모든 것을 부수는 것 같이 그 나라가 뭇 나라를 부숴뜨리고 빻을 것이며 왕께서 그 발과 발가락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이요 얼마는 철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나누일 것이며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철의 든든함이 있을 것이나 그 발가락이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인즉 그 나라가 얼마는 든든하고 얼마는 부숴질 만할 것이며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들이 다른 인종과 서로 섞일 것이나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철과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이다

오늘 본문 첫 절 39절을 함께 읽어보십시다. "왕의 후에 왕만 못한 다른 나라가 일어날 것이요 셋째로 또 놋 같은 나라가 일어나서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며." 오늘은 이 한 절 말씀만 공부하시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교훈을 간단히 생각하겠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은 꿈을 꾸고 나서 언제 자기가 보았던 거대한 신상이 뜨인 돌에 의해서 박살이 나 버릴 것인지 두려운 마음으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다니엘의 해석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왕의 마음을 알고 왕을 안심시켜 주었습니다. 세 가지로 왕을 안심시켜 주었습니다. 첫째로, "왕은 열왕의 왕이십니다." 둘째로, "왕은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해서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주신 분이십니다." 셋째로, "왕은 금머리입니다. 그만큼 귀중한 존재입니다." 이렇게 왕을 세워주면서 왕을 안심시켰습니다.
39절을 보시겠습니다. "왕의 후에." 이 말은 "왕의 통치가 다 끝난 후에"라는 말입니다. "왕만 못한 다른 나라가 일어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만일에 "왕의 후에"라고 하지 않고 "왕이 통치하는 도중에 다른 나라가 일어날 것이요"라고 했다면 이것은 반란입니다. 왕위를 빼앗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얼마나 마음에 얼마나 두려운 생각이 들겠습니까? 그런데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왕의 통치가 다한 후에 왕만 못한 다른 나라가 일어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느부갓네살 임금이 꿈에 보았던 뜨인 돌이 신상을 쳐서 무너뜨리는 것은 자기가 통치하는 중에는, 자기가 살아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안심되는 말입니까?
여러분 마음속에 있는 근심 걱정들이 이와 같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귀한 역사가 이 아침에 다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마음속에 있는 불안 걱정들을 다 떨쳐 버리고 오늘도 평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나와 함께 하셔서 내가 든든히 서리라는 믿음과 자신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2:46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에 느부갓네살 왕이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고 명하여 예물과 향품을 그에게 드리게 하니라"고 했습니다. 만일 "왕이 통치하는 가운데 그런 일이 생길 것입니다"라고 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벨드사살아, 내가 어찌하면 좋겠느냐?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하면서 우려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자기 대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니까 다니엘에게 큰 상을 내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왕하 20:19을 보면 이와 똑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물어볼 테니 아는 분은 빨리 손을 들고 대답해보시기 바랍니다. 유다 왕 때였습니다. 바벨론의 사신들이 찾아왔습니다. 유다 왕은 바벨론 사신들에게 나라의 모든 보물과 무기를 자랑할 마음으로 다 보여주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선지자 이사야가 왕을 찾아와서 왕을 질책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하셨습니까? 왕이 자랑했던 모든 보물과 모든 무기들을 바벨론에 다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왕의 몸에서 태어난 왕의 후손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서 환관이 될 것입니다." 그랬더니 왕이 왕하 20:19에 보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의 전한 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가로되 만일 나의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자기가 사는 날 동안에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므로 하나님의 행사가 선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왕이 누구입니까? 예, 히스기야입니다. 바벨론 느부갓네살 임금도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39절입니다. "왕의 후에 왕만 못한 다른 나라가 일어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신상의 머리는 금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두 팔과 가슴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라고 했습니다. 왕의 후에 왕만 못한 다른 나라가 일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은이 금보다 질적으로 떨어지지 않습니까? 은은 어느 나라를 상징한다고 했습니까? 팔이 두 개인 것처럼 나라가 나뉘었습니다. 어느 나라입니까? 메대와 바사입니다. 메대와 바사는 역사적으로 보면 은으로 유명합니다. 바벨론은 금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 임금이 황금 도시를 만들려고 애를 썼습니다. 메대와 바사는 세금 제도가 아주 발달된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공물을 은으로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메대와 바사가 바벨론보다 못하다고 했는데 어떤 면에서 그렇습니까? 나라의 크기로 말하면 메대와 바사가 더 큽니다. 그리고 세번째 일어난 나라에 대한 본문의 설명을 보면 "셋째로 또 놋 같은 나라가 일어나서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영토 면에서 다음에 나타나는 나라들이 조금도 못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떤 면에서 그렇습니까? 금보다 은이 질적인 면에서 떨어집니다. 은보다는 놋이 질적인 면에서 떨어집니다. 질의 면에서 떨어집니다.
질의 면에서 떨어진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두 가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편에서 보면 도덕적인 수준이 떨어집니다. 도덕적으로 더욱 타락합니다. 그래서 결국 뜨인 돌에 의해서 박살나 버릴 수밖에 없는, 멸망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점차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아마도 느부갓네살 임금이 가졌던 강력한 절대 주권, 중앙집권적인 권력이 후대로 갈수록 약해진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계속 본문 39절을 보십시다. "왕의 후에 왕만 못한 다른 나라가 일어날 것이요 셋째로 또 놋 같은 나라가 일어나서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며." 두번째 일어나는 나라는 메대와 바사라고 했습니다. 세번째로는 놋 같은 나라가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이 셋째 나라는 헬라 제국이라고 했습니다. 헬라 제국은 놋으로 투구를 만들고, 놋으로 흉배를 만들어 가슴에 붙이고, 놋으로 칼과 창을 만들고, 놋으로 방패를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이 놋 같은 나라 헬라 제국이 일어나서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하나 물어봅니다. 성경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분의 세계사 실력을 테스트 해보겠습니다. 헬라 제국에 유명한 왕이 있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온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누구입니까? 알렉산더 대제입니다. 알렉산더 대제는 20세 때 왕이 되었습니다. 20세에 왕이 되어 결심한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인간이 살고 있는 모든 땅은 내가 정복하리라." 알렉산더 대제는 사람이 살고 있는 모든 나라를 다 정복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울었다고 합니다. 더 이상 정복할 나라가 없다는 것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정복하는 나라마다 자기의 이름을 따서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세웠습니다. 지금도 세계에는 70군데의 알렉산드리아라고 하는 도시가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무력으로 전세계를 정복했습니다.
주전 330년에 알렉산더 대제는 성도인 예루살렘을 정복할 계획을 세우고 수많은 군대를 이끌고 위용을 과시하면서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서 결국은 예루살렘을 점령했습니다. 그런데 알렉산더 대제는 33세라고 하는 젊은 나이에 아라비아 사막에서 열병으로 일찍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영원할 것 같던 그의 나라 헬라 제국도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 뒤에 3백년이 흘렀습니다. 한 시골 청년이 역시 세상을 정복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는 알렉산더 대제처럼 화려하게 올라간 것이 아닙니다. 어린 나귀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알렉산더 대제처럼 무력으로, 세상 권력으로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서 올라간 것이 아니라, 사랑과 희생과 용서와 봉사의 정신으로 세상을 정복하기 위해서 어린 나귀를 타고 겸손하게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알렉산더 대제와 같은 33세의 나이로 돌아갔습니다. 누구입니까? 예,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알렉산더 대제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흘렸고 세상에서 최고가는 침략자로 낙인찍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랑과 용서와 희생 정신으로 올라가서 사랑으로 세상을 정복했습니다. 그리고 35절에 있는 말씀처럼 태산을 이루고 그의 왕국은 온 세계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예루살렘을 향해서 올라가고 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모습으로 올라가는 사람이 있고 예수님의 모습으로 올라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알렉산더 대왕이 화려해 보입니다. 권위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길은 좁은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입니다. 희생을 요구하는 길입니다. 고난을 요구하는 길입니다. 용서를 요구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만이 승리의 길이요, 축복의 길이요, 영생의 길이요,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길임을 알아야겠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 십자가의 길을 주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십자가를 지고서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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